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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3-28 (일) 13:03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5-1.hwp (27KB) (Down: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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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5강]영생의 샘물

2010년 요한복음 제 5강

영생의 샘물

말씀: 요한복음 4:1-26
요절: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범죄한 인간은 누구나 목마름을 안고 살아갑니다. 이는 근본 영생수 되시는 주님을 떠나 살기 때문입니다. 생수의 근원 되신 예수님을 떠나 살 때 인간은 언제나 목마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지 않고 이 세상 것을 많이 얻으므로 해결하고자 수고하며 고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목마른 영혼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이 시간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 목마름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하나님의 선물, 영생의 샘물(1-14)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셨습니다. 때는 복음역사가 세례요한으로부터 예수님께로 넘어가는 과도기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의 출현으로 큰 도전을 받았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느끼자 이 소문을 듣고 신경이 더욱 날카로워졌습니다. 이 사실을 아신 예수님은 이들과의 무모한 충돌을 피해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려면 이방 땅처럼 되어버린 사마리아 땅을 지나야 했습니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고자 둘러서 다니며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치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오랜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부터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로 나눠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이 우상숭배의 죄로 인해 BC 722년 앗수르에게 멸망한 이후 앗수르는 강제 이민정책을 써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앗수르로, 앗수르 사람들은 사마리아로 이주시켰습니다. 그 결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혼혈족이 되고 많은 이방신들로 인해 우상숭배자들로 전락하였습니다. 반면 남 유다는 70년간 바벨론 포로생활을 했지만 선민의 순수성을 지켰기 때문에 유다이즘이 강했습니다. 이로 인해 남 유다 사람들은 북쪽 사마리아 사람들을 무시하고 서로 적대시하였습니다. 이들의 적대관계는 BC 450년 경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할 때 사마리아인들의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때부터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따로 예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뿌리 깊은 장벽을 넘어서 사마리아로 통행하고자 하셨습니다.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Now he had to go through Samaria.)” 이 말씀은 반드시 사마리아를 통과하겠다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땅에도 복음을 전하고자 목자의 심정으로 그 두터운 장벽에 도전하셨습니다. 적대적인 사마리아 땅을 누가 밟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민족적인 감정 때문에 그곳을 피해 가셨다면 사마리아인들은 죄 가운데서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배척과 박해를 받더라도 복음을 전해야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오늘날 캠퍼스는 진리를 상실하여 목마른 영혼들이 각종 이단 사상을 무분별하게 좇는가하면 한편으론 성경말씀을 배척하고 예수님을 대적하는 안티 세력이 팽배해 있습니다. 또한 세상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빠져 말씀에 순종하여 살기를 거부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기독교에 대한 좋지 않은 편견과 악감정으로 신자들을 배척하고 미워합니다. 이 때문에 언제부터인가 캠퍼스 개척을 위해 부르심 받은 우리도 캠퍼스 땅을 밟기를 싫어하고 멀리 둘러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을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습니까? 우리가 “캠퍼스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이런 목자의 심정과 결심으로 병든 영혼들을 만나 섬기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오랜 장벽을 가지고 있어도 예수님이 먼저 그 장벽을 깨고자 하실 때 이미 그 장벽은 더 이상 장벽이 아니었습니다. 이를 볼 때 캠퍼스 양들이 가진 장벽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장벽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먼저 신세대 양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섬기기 싫은 이기심, 무관심의 마음의 장벽을 깨고 통과하고자 하는 결심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찾아가서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일행은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야곱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또 유서 깊은 야곱의 우물이 있는 곳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모세가 축복을 선포한 그리심 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앞에는 저주를 선포한 에발 산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황량한 사막 길을 120리나 여행하셔서 야곱의 우물에 도착하시자마자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셨습니다. 때는 낮 12시(육시)였습니다. 중동지방의 낮 열두시는 40도까지 오르는 무더운 날씨입니다. 이때는 모두 하던 일을 중단하고 낮잠을 자는 시간이고 제자들은 배가 고파 예수님을 두고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 역시 배고프고 목말라 대낮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고 완전히 육신의 한계에 갇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오고 있었습니다. 대개 여인들은 아침저녁 시원한 때를 이용하여 물을 긷는데 이 여인은 아무도 없는 낮 12시에 홀로 물 길으러 왔습니다. 여인은 무엇인가 문제가 있어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려는 굳은 결심으로 오셨지만 예수님의 상태는 당장에 누군가를 도와줄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음 기회로, 다른 사람이 오면 한다고 미루지 않으셨습니다. 현재 찾아온 양을 돕고자 자신의 힘든 형편을 개의치 않으시고 이 여인을 주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하는 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르지 않으시고 이 여인을 하나님이 보내신 양으로 영접하여 돕고자 하셨습니다. 내가 현재 내 힘든 형편, 내 힘든 마음, 내가 가진 선입견을 앞세우며 하나님이 보내신 양을 내버려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게 할 때 그 사람은 어느 때도, 어떤 양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말씀이 필요한 양을 어느 때든 영접하고 돕는 준비된 목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저앉아 계신 예수님께 지치고 피곤한 양이 가까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공부가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 높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영적인 것에 전혀 관심이 없는 쌩둥이 양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7b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놀랍게도 예수님은 “물을 좀 주십시오” 하며 아쉬운 부탁을 하셨습니다. 목마른 나그네가 우물가에서 물을 좀 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같습니다. 그러나 당시 배경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에는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라는 뿌리 깊은 민족적 장벽이 있었고, 또 폐쇄된 율법사회에서 남녀간의 엄격한 장벽, 신분상의 장벽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여인은 남편을 다섯이나 바꾼 부도덕한 여인으로서 하늘나라의 황태자이신 거룩하신 예수님께는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자마자 날카로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이렇게 하는 것은 유대인과 사마리아 인이 서로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9) 여인은 예수님을 유대 남자로 보고 배척하고 경계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까칠한 반응 때문에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은 여인의 말에 말려들지 않으시고 이 여인이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도록 영적인 대화로 이끌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을 선물로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알았다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고 그가 생수를 주었을 것이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여인은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11)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의심하였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선물과 예수님이 생수를 줄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는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여인의 마음에는 벌써 장벽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서로 상종하지 않는 장벽을 알면서도 그는 계속 대화하며 예수님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여자는 생수를 보통 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비교하며 실제적인 도움이 안 되는 예수님을 은근히 무시하였습니다. 예수님이 겉보기에는 생수를 줄 수 있는 분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물을 남겨 준 위대한 조상 야곱을 떠올리며 예수님을 그와 비교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번에도 여인의 말에 말려들지 않으시고 예수님도 비교법을 쓰셔서 영생수를 소개하셨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황량한 사막과 같은 이 땅에 이렇게 좋은 우물을 남겨준 야곱이 위대한 종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야곱의 물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목마름을 해결해줄 뿐입니다. 조금 있으면 또 다시 목마른 것이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서 야곱의 우물물로 만족을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잠간 만족을 얻었다가 다시 목이 말라 또 다른 우물로 전전합니다. 야곱의 물로 만족을 얻을 수 없으므로 갈수록 더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됩니다. 이렇게 하여 원치 않게 야곱의 물에 노예가 되어 일생 만족 줄 야곱의 물을 찾아 헤매다가 죄를 짓고 아쉬운 인생을 마감합니다. 인간의 삶은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날마다 야곱의 우물가를 전전하는 고달픈 삶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갖가지 목마름을 해결 받고자 눈물겨운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과 인정에 대한 목마름, 지식과 능력에 대한 목마름, 물질에 대한 목마름, 명예에 대한 강한 목마름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에 대한 목마름이 가장 큽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일 것입니다. 어릴 적에는 가정에서 희생적인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 자기만을 사랑해줄 이성의 사랑을 찾고자 각종 미팅을 헤매고 다닙니다. 그리고는 연약한 인간에게 절대적이고 특별한 사랑을 요구하다가 서로 상처를 주고받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아서 아무리 받아도 받은 것 같지가 않습니다. 오늘날은 물질주의 시대라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목마름으로 쉽게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젊은이들은 쾌락에 대한 목마름으로 죄의 종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우리는 이 말씀을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세상의 우물물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여기에 목을 매달고 살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어떠합니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의 내면에는 영생의 샘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샘에서 사랑과 인정의 물, 은혜와 진리의 물, 평안과 자유와 기쁨의 물, 진정한 소망과 비전의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사랑의 물은 한없이 깊고 넓고 풍성하여 얼마든지 마실 수 있고 마실수록 우리를 부요하게 만듭니다. 영생의 샘물은 믿는 자 속에 내재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7:39)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암8:11)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개하여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할 때 성령께서 영혼의 기쁨과 참 만족을 얻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영혼이 소생하여 삶에 활력과 비전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합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예수님께로 와서 마음껏 영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다.(사55:1)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더 이상 목마르지 않고 야곱의 우물물을 길으러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인간은 육과 함께 영혼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육의 만족만으로는 참된 만족이 안 됩니다. 그 영혼에 성령님의 역사가 있을 때 만족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면이 공허하고 만족이 없는 이유는 영생수 되시는 예수님을 떠나서 예수님 외에 다른 것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면에 죄의 찌꺼기가 영생의 샘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외롭다, 기쁨이 없다, 힘이 없다, 답답하다, 비전이 없다, 불안하다, 두렵다 하며 내면의 고통을 토로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데도 예수님 외에서 찾고자 하고 모임 탓, 사람 탓을 하며 회개하지 않습니다. 영원히 솟아나는 샘물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주시는 샘물을 거부하고 하나님 영광보다 자기 영광, 자기만족을 추구하며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교만의 죄의 찌꺼기를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그 속에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을 때마다 체험해야 합니다. 대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목마름 문제를 인정치 않고 문제를 외부 조건 탓으로 돌리기를 잘 합니다. 그러나 진실 되게 내 속에 목마름을 인정하고 예수님이 주시는 영생수를 마셔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우리가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므로 목마르지 않는 영생수가 솟아나는 참 만족이 있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내가 그라(15-26)
  예수님께서 영생수에 대해 말씀하시자 여인은 마음 문을 열고 간구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여인은 자기 삶의 목마름을 고백하고 삶의 권태로 인해 몹시 지쳐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대한 신뢰를 가지고 예수님께 그런 물을 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6) 예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은혜로우신 예수님이 갑자기 검사가 되어 여인의 치부를 조사하시는 것입니까? 이 명령은 여인이 영생수를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명령이었습니다. 여인에게 남편은 내면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경배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치료하시기 위해 그 자신을 open하여 예수님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하신 것입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인정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하심으로 여인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남편이 없다는 말을 인정해주셨을까요? 여인은 세상에서 이상적인 남편을 찾아 과거 다섯 번이나 남편을 바꾸었고 지금도 남편이 있지만 진정한 남편이 없었다고 그의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세상에는 이 여인이 찾는 이상적인 남편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아픈 고백을 깊이 이해하시고 그의 말이 옳다고 인정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과거와 현재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여인이 목마름을 채우려고 방황하며 지은 죄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며 참 남편을 얻기 위해 방황하며 괴롭게 산 그를 오히려 불쌍히 여기시고 영접해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정죄하고 따돌렸지만 예수님은 여인의 아픔과 상처와 갈급함을 함께 마음 아파하시고 “네 말이 옳다” 하시며 그 상한 마음을 간호해주셨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종, 선지자로 신뢰하고 존경했습니다.(19) 선지자는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하는 종입니다.
  20절을 보십시오. 이제 여인은 예수님이야말로 진정 자신을 도우실 목자이심을 깊이 영접하고 영적인 예배 문제에 대해 묻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비록 타락한 삶을 살았지만 그 영혼은 참된 예배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영혼의 소유자이므로 참된 예배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여인은 어디서 어떻게 예배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조상들은 이 산 곧 그리심 산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하였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영적인 소원과 갈망을 보시고 참된 예배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영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형식적으로 예배하지 않고 우리의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예배하는 것이요, 진리로 예배한다는 것은 자기 나름대로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진리에 기초하여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또 예배할 때는 ‘곧 이때라’ 예수님을 만난 때가 예배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잃었던 사마리아 여인을 찾으셔서 믿음의 어미로 쓰임 받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한 여인의 영적인 갈망을 아시고 찾아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 동안 참 예배 대상을 몰라 남편을 예배 대상으로 삼아 살았기 때문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황공주로 새롭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에게 새 인생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듣고 난 여인은 메시야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실 것이라 기대하였습니다. 여인은 메시아를 간절히 기다리던 하나님의 어린양이었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2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이 여인이 그토록 찾던 그리스도라 하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네 남편을 불러오라’하신 예수님은 ‘내가 그라’하심으로 여인의 메시아시오 참 남편이 되신다 하셨습니다. 드디어 이 여인은 그의 진심과 애정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예수님을 만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고 참 만족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가 전쟁과 지진의 위협, 경제 파탄과 범죄의 가속화로 살기 힘든 시대가 되었음을 절감하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어디가 안전한 곳인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심하며 평안이 없고, 가중되는 스트레스로 인해 시름시름 앓으며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목마름은 커져만 갑니다. 안정과 평안을 얻지 못해 잠을 자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시간 모두 예수님께 나아가 영생수 말씀을 듣고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와 소망과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 나아와 경배함으로 참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목마른 인생들을 예수님께로 초청하는 선한 목자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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