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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07 (수) 11:1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6-1.hwp (27KB) (Down:6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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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6강]일어나 걸어가게 하신 분

2010년 요한복음 제 6강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 요한복음 5;1-15
요절: 요한복음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창조주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병든 자가 되었습니다. 병든 인간이 모여 사는 세상 또한 병든 사회가 되어 하나님의 근본 치료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38년 동안 병으로 고생한 절망적인 병자를 낫게 하신 예수님의 love story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절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나음 받아야 할 병자임을 인식하고 예수님께 나아와 나음 받는 은혜를 덧입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네가 낫고자 하느냐?(1-6)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명절은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이런 명절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이 질병으로 고통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는 못이 있고 거기에는 행각 다섯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는 많은 병자들,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즐비하게 누워 있었습니다. 이곳의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탄식소리, 한숨소리, 원망과 불평소리, 애걸복걸하며 졸라대는 소리, 저주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그들이 생을 포기하지 않고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는 나음 받을 한 가닥 희망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 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 가느다란 자비와 은혜를 기다리며 생명을 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극히 제한된 희망 때문에 또 다른 심각한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천사가 언제 물을 움직이게 할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항상 초긴장으로 대기상태에 있어야 했습니다. 밤에도 단잠을 자지 못하고, 잠시 움직일 때도 핸드폰을 들고 있어야 했습니다. 24시간 긴장해야 한다는 것은 정말 사람을 죽게 만듭니다. 긴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위장병, 불면증, 불안, 초조, 심장병, 정신병, 압박감 등 갖가지 육신적, 정신적인 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물이 움직인다 해도 오직 한 사람만 나음을 받으므로 어쩔 수 없이 서로 경쟁을 해야 했습니다. 경쟁 때문에 사람이 무정하고 무자비하고 이기적이 됩니다. 사람들은 서로 양보하고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지상낙원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내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 앞에서 어느 누구도 양보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위해 남을 해치고 어쩔 수 없이 경쟁에서 이기고자 합니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해결할 수 없는 딜레마입니다. 베데스다 못가는 현재 우리가 겪으며 살고 있는 인간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의학의 발달로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더 많은 종류의 병으로, 더 독한 병원체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또 육신은 건강해졌지만 내면은 연약하여 쉽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고, 작은 유혹과 시험 앞에서도 쉽게 넘어져 일어나지 못합니다. 약자의 절망과 슬픔은 보복과 파괴, 시기와 살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사람들은 영적으로 깊이 병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하지도 않으며,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은 갈수록 더욱 심각한 육신의 병, 정신의 병, 영혼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병든 세상에서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돕고 살아야 하는데 서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가리켜 무한경쟁 시대라 부릅니다. 어릴 때부터 입시경쟁, 커서는 취직경쟁, 승진경쟁 등 우리의 삶은 경쟁의 연속입니다. 경쟁에서는 소수의 사람만 이기기 때문에 대부분은 패배감과 열등감과 운명주의와 우울증에 빠지게 됩니다. 또 경쟁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우울증 환자가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를 바꾸고 환경을 바꾸어보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를 타고 내리막길을 달리는 것처럼 위험한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어떤 약으로도 치유될 수 없는 중병 환자들의 집합과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베데스다 못가에 희망의 빛이 비추게 되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베데스다 못 가에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는 38년 된 병자로서 사람이 병으로 인해 얼마나 비참해지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환자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을 찾아오신 것은 단순히 위로하고 동정하기 위함이 아니요 근본적으로 낫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같이 자리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의 꺼져가는 생명에 희망의 불을 붙이고자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셨습니다. 6a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 된 줄 아시고...” 사람을 도우려면 먼저 그 사람의 상태를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누운 것을 보실 때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셨습니다. 병이 오래되면 어떻게 됩니까? 낫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또한 돕는 사람도 병이 깊은 사람은 어떻게 도와야 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6b절을 보십시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은 낫기 위해 베데스다 못 가에 38년 동안이나 떠나지 않고 기다리던 병자를 무시하시는 질문처럼 들립니다. 왜 예수님은 불쌍히 여겨 내가 곧 고쳐주겠다 하지 않으시고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것입니까? 이 질문이 38년 된 병자에게 주는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그가 나음 받아야 할 병자임을 일깨워주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그도 병자임을 인식하고 베데스다 병원에 입원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곳에 지내면서 어느덧 그의 삶은 본래부터 그렇게 살도록 되어 있는 것처럼 그냥 지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병자가 바로 자기가 병자임을 모르는 병자입니다. 게으른 사람들만 모인 곳에서는 부지런한 사람이 이상하게 보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 소경거지 바디매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 질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심으로 그에게 눈을 뜨고자하는 소원과 믿음을 먼저 심으셨습니다.
둘째로, 그에게 나음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누워 지냈고 또 낫고자 여러 번 못에 먼저 들어가는 시도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일등을 하지 못하고 물만 묻히고 나오면서 어느덧 원망과 절망감 패배감이 자리 잡아 그의 사고와 생활을 지배하였습니다. 희망도 잃고 자포자기 한 채 그저 연명하여 살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자 하셨습니다. 희망이 있는 곳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고쳐주시겠다는 의지와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울고 있는 아이에게 할머니가 “너 사탕 먹고 싶으냐?” 묻는 것은 먹고자 하면 사탕을 주겠다는 의지와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폐인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의지와 사랑과 목자의 심정으로 돕고자 하셨습니다.
넷째로, 예수님이 낫게 해주신다는 믿음을 심으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낫고자 하는 소원이 있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나을 수 없습니다. 이 사람을 낫게 해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이제까지 자기 힘으로 낫고자 애를 쓰다가 실패하였지만 예수님을 의지하면 나을 수 있다는 믿음을 심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고질병도 고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인간은 모두 죄로 인해 38년 병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겉으로는 건강한 척하지만 그 내면은 갖가지 죄의 고질병으로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낫고자 하는 소원을 잃어버린 채 안주하며 살고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에서 멀어진 병든 모습을 일깨워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평생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하지도 않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새로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빌3:12-14) 주님은 우리가 자족하는 마음, 안주하는 앉은뱅이의 병에서 낫고자 하는 소원을 덧입으라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나의 반복되는 고질적인 죄의 병을 능히 고치실 수 있음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말씀을 의지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목자의 심정과 의지를 가지고 말씀을 통하여 나를 찾아와 주심을 영접하고 그 앞에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의 병으로, 어떤 사람은 꺼지지 않는 세상 욕심과 정욕의 고질병으로, 어떤 사람은 원망하는 병으로, 어떤 사람은 불신과 의심과 이기심의 병으로, 어떤 사람은 게으름과 의존심과 중풍병으로 38년 병자가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시고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자신의 병든 모습 있는 그대로 나오도록 초청하십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께 나아가 고침 받고 건강한 종으로 변화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7-15)
  예수님의 질문에 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7절을 보십시오.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그는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기보다 평소 자기가 경험한 바를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못에 넣어주기를 바랐는데 그런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먼저 가므로 실패했다는 긴 내력을 말했습니다. 그의 병의 중함을 생각할 때 다른 사람을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그의 처지가 너무나 운명적이고 불쌍합니다. 그를 안 도와준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베데스다 못가에는 모두가 불치병 환자들만 있으므로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조건적인 생각,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뿌리 깊은 의존심은 그를 더욱 연약하고 무기력하고 절망하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 뼈를 맞고 뼈가 위골되었을 때 더 이상 자기를 의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고 하나님은 그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존재가 변화되는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누구나 절망적인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만날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8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이 명령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이 명령은 38년 동안이나 자리에 누워있던 중증환자에게 너무 무리한 명령같이 보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내가 너를 못에 넣어주겠다 하지 않으시고 일어나 걸어가라 하신 것입니까? 이제까지 못 일어난 환자임을 아시면서 왜 불가능한 요구를 하신 것입니까? 그는 이제까지 사람의 능력과 도움을 의지하였고 지금도 조건이 좋아지기만을 바라고 누워 있었습니다. 여건이 좋아지는 것에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은 여건이 더 좋아지기를 추구하느라 더 나은 조건, 더 나은 점수, 더 나은 보수를 향해 쉬지도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to be better라고 해서 그를 근본적으로 살릴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좋아져도 거기에는 또 다른 경쟁이 기다리고 있고, 또 실패와 좌절이 있습니다. 이것이 베데스다 못가의 치료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그에게 도전하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가 근본적으로 일어나 걷는 인생을 살려면 그가 낫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일어나 걸어가야 합니다. 그가 일어날 힘이 없는 것을 겸손히 인정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명하십니다. “일어나 걸어가라!”예수님은 그가 조건이나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하여 걷는 자, 자립적인 자가 되게 하시고자 못에 넣어주지 않으시고 말씀에 의지하여 일어나도록 도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능력은 즉각적으로 그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그가 일어나 걷기 위해 특별히 한 일은 없었습니다. 잔칫집 하인들같이 물을 아귀까지 채우는 순종을 한 것도 아니고, 사마리아 여인같이 남편문제가 드러나는 수치를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가 단순히 말씀을 영접하고 순종하였을 때 말씀의 권능이 그를 낫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죽은 자와 방불하였던 이 사람을 곧 자리에서 완전히 일으켜 세웠습니다. 말씀 안에서 완전한 치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그는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자리를 들고 당당하게 걸어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 번째 표적을 통해 가르쳐주시고자 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든 인생문제의 해결은 진정한 베데스다이신 예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해준다는 베데스다가 인간에게 소망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제한적이고 한계적이어서 이 소망 때문에 더 많은 아픔과 절망과 운명주의와 패배감을 낳습니다. 그러므로 베데스다 못은 병자들에게 구원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70년대 가난하였을 때는 새마을 운동이 베데스다였습니다. 온 백성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운동에 참여하여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 쾌락주의, 인간생명 경시 풍조 등 더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옛날 가난하였던 시절이 좋았다고 말합니다. 젊은이들에게는 대학이 베데스다입니다. 대학에만 들어가면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행복한 삶이 보장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오면 더 심한 경쟁에 접하게 되고 상대적인 열등감으로 위축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베데스다는 구원 받는 길을 화려하게 제시하지만 병자에게는 모두 그림의 떡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진정한 베데스다가 되셔서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자리에서 일어나 능력 있는 위대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다른 사람과 경쟁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내가 믿고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는 운명주의나, 패배주의가 없습니다. 헬렌켈러는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삼중의 고통을 극복하고 사회복지를 위해서 헌신한 ‘기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생후 19개월 때 중한 열병에 걸려 시력과 청력을 잃게 되었고 언어 발생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그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하버드 대학의 레드크리프 컬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습니다. 그 뒤에는 애니 설리번이라는 훌륭한 스승이 있었습니다. 설리번도 불행한 과거를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10살 때 남동생과 함께 고아원에 보내져 학대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면서 불결하고 빈약한 환경으로 남동생을 잃고 설리번 자신도 눈병에 걸려 실명직전까지 가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20세 때 헬렌의 가정교사로 제의를 받았을 때 6살짜리 헬렌은 아무런 교육이 되어 있지 않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주위의 물건을 집어던지는 야수와 같았습니다. 그날부터 설리번과 삼중고의 소녀와의 사투 끝에 헬렌이 스승의 말을 받아들이고 따르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어둡고 부정적인 세계에 갇혀 지내던 헬렌이 바깥세상을 보게 된 것은 스승을 만난지 8년 만에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설리번의 임종이 있기 몇 주 전 헬렌이 스승을 위로하려고 “선생님, 꼭 나으셔야 해요. 선생님이 안 계시면 헬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어요” 했을 때 설리번 선생은 슬퍼하며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정말 그렇다면 나는 실패한 삶을 산거야” 설리번이 언제나 가장 중요하게 여긴 목표는 헬렌을 자유롭고 자립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말씀으로 일으켜 세워주심으로 어떤 병자도 고침 받고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승리의 인생, 행복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터득하고자 애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도 현재 베데스다에 모든 소망을 걸고 있지는 않습니까? better를 향해 온 생명을 바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모두가 예수님이 주시는 근본적인 치료, 근본적인 해결을 얻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한계적인 베데스다에 목을 걸고 있는 캠퍼스 양들도 진정한 베데스다 예수님께로 인도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이런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지만 이를 기뻐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간 날은 공교롭게도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가 안식일 법을 어긴 것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조항을 지키는 것에 가장 큰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감격해야 할 일에 대뜸 누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더냐 따졌습니다. 유대인들이 핍박하자 그는 두려움이 생겨 나를 낫게 한 그 사람이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예수님께 책임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를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님이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 말씀은 구원의 은혜를 받고 새 인생을 출발한 자가 어떤 생활을 해야 하는가를 깨우쳐주시는 말씀입니다. ‘보라, 네가 나았으니...’ 이 말씀은 그가 이제 완전히 새 사람 된 것을 인식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새 사람이 되었으니 새로운 마음 자세로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가 나음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지 않을 때 더 심한 것이 생겨 더욱 쓸모없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기억하고 죄를 범치 않고자 투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과거 그의 무기력한 삶이 소극적인 죄를 짓는 삶이었다면 일어나 걷게 되었다고 자기 욕심대로 세리처럼 산다면 이는 더 심한 것이 생긴 삶입니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짓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적극적으로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 사람은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치신 이는 예수라 일렀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이 더욱 핍박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관심이 없고 유대인들과 좋은 관계성 맺고 잘 살아가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명하십니다. 우리를 찾아와 건강한 삶,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 우리를 근본적으로 낫게 하시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예수님 앞에 우리의 고질병도 나음 받고 새로운 삶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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