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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1 (일) 16:0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제1강_다이루었다(이동욱,_한의대,_약대).hwp (29KB) (Down: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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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61.xxx.74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2010 부활절 수양회 주제 1 강                                                                   이동욱


다 이루었다

말씀: 요한복음 19장 1-30
요절: 요한복음 19장 30절‘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도구로서 고통과 수치와 패배의 상징입니다. 이런 십자가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구원과 승리와 영광의 십자가로 변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십자가를 자랑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를 지셨기에 십자가의 의미가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구원의 확신을 소유하고 영광의 십자가를 적극적으로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십자가에 못 박히신 유대인의 왕 예수님 (1-22)
  18장에서 예수님은 체포당하시고 유대 공회 앞에서 철야 심문을 받으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사형 집행권이 없는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로 끌고 갔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였지만 아무 죄가 없음을 발견하고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지도자들의 선동을 받은 무리들이 예수님 대신에 흉악범인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요구하였습니다.
  19:1절을 보십시오.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로마 시대의 채찍은 여섯 개의 가죽 끈으로 되어 있는데 끈 하나 하나에 납덩이나 뼛조각이 달려 있었습니다. 채찍이 예수님의 몸을 휘감을 때마다 살이 찢겨 나가고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이런 채찍을 예수님은 무려 120대나 맞으셨습니다. 마른 땅에서 나온 연한 줄기 같으신 예수님의 몸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상하셨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채찍질 당해야 합니까? 이 일이 있기 700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이렇게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내면의 상처를 담당하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무시 받은 상처, 제대로 사랑 받지 못한 상처, 술을 먹고 처자식을 때리는 아버지로 인해 받은 상처, 파괴된 가정으로 인해 받은 상처, 버림받은 상처 등, 세상에는 남모르는 상처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특히 죄로 인한 상처는 우리의 영혼의 기쁨을 앗아가고 쓰라린 고통과 후회를 줍니다. 대학생들은 겉으로 보면 아주 잘 생기고 멀쩡하지만 조금만 깊이 이야기를 해 보면 내면에 깊은 상처로 고통하고 시달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즘은 인터넷을 통한 음란한 영상을 들어가 보다가 내면의 순수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로 전락시켜 영혼에 씻을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나의 죄로 인한 것이든, 다른 사람의 죄로 인한 피해로 생긴 상처이건 간에 죄로 병든 인생들의 내면은 상처투성이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뿌리박힌 상처들을 어디서 치료받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나 대신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처와 질고를 이해하시고 담당하실 수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군병들은 가시로 면류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푹 눌러 씌웠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파고 들어가고 선혈이 예수님의 얼굴로 흘러 내렸습니다. 그리고 왕의 예복인 자색 옷을 입히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 지어다. 으하하” 하면서 손바닥으로 얼굴을 치면서 조롱하였습니다. 하늘나라 황태자이신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 할 조롱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이 예수님을 데리고 나가 말했습니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가시 면류관을 씌움으로써 무리들에게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는가 하고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자 오히려 피를 본 야수와 같이 소리 질렀습니다.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그러자 빌라도는 화가 나서 말했습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이 바로 우리 죄 때문임을 이방인 재판관을 통해 증거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율법에 따르면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므로 신성모독죄로 마땅히 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하며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로부터냐?”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에게 생사여탈권이 있음을 예수님께 주지시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자신을 해할 권세도 위로부터 온 것임을 증거하셨습니다. 이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으려고 더욱 힘을 썼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유대인들은 빌라도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빌라도는 이 말에 결정타를 맞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주었습니다.(16) 빌라도는 능력 있는 행정관리로서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했으며 유대인들이 불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관으로서 마땅히 진리 편에 서서 예수님을 무죄 석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회적 지위와 안전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다가 결국 불의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십자가형 선고를 받자마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갔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는 자신의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이었지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의 십자가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세상의 모든 죄가 집중되어 있는 가장 무거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밤새도록 심문받으시고 온몸에 채찍질을 당하시고 조롱과 멸시로 고통받으며 시달리셨기 때문에 육신의 기력이 다하여 언덕을 오르시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서서 가시다가 넘어지고 쓰러지셨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은 너무 상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이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십자가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기신 사명의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피와 멍투성이었습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포기치 않으시고 나중에는 구레네 사람 시몬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끝까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오르셨습니다. 이 길은 죄인들을 위한 고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원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우리도 이 주님이 가신 이 길을 좇아가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우리 주님께서 오라고 하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내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묵묵히 오르신 나의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때로는 넘어지고 엎어지더라도 끝까지 그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8a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골고다에 이르자 군병들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십자가가 있는 땅에 눕혔습니다. 그리고 양 손목에 날카로운 쇠못을 대었습니다. 그리고 쇠못을 손바닥에 대고 망치로 사정없이 박았습니다. 쾅! 쾅! 쾅! 한번 박을 때마다 붉은 선혈이 솟구쳐 올라 주위를 적셨습니다. 손과 팔은 경련하고 터진 입술에서 고통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발목은 서로 겹치게 하여서 발등에다가 대고 못을 꽂은 뒤 양발을 꿰뚫어 십자가에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쇠못에 박힌 손과 발의 살이 예수님 자신의 몸무게로 인해 점점 찢겨져 내려갔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서 피와 땀을 흘리며 점점 말라 죽어갔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왜 이토록 고통스러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왜 나무에 달려 비방과 멸시와 조롱의 표적이 되시고 저주받은 자가 되셔야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고통받으니 그냥 불쌍하다 하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가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우리의 허물과 죄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고 증거 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벧전 2:24절에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내 죄 때문에 내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으시고 내 죄로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나의 교만과 정욕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나의 불순종과 반발심, 나의 욕심과 이기심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원한과 증오심 때문에 채찍에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예수님의 좌우에는 흉악한 강도들이 있었습니다. 선하신 예수님은 흉악한 강도 같은 나 대신에 흉악범들과 나란히 취급당하셨습니다. 강도 중의 하나는 선한 예수님을 비방하며 악을 내뱉으며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강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두 부류로 나눕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죄인입니까? 아니면 배척하는 죄인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는 패를 써서 히브리어, 헬라어, 로마어로 써서 십자가 위에 붙였습니다. 이는 세상만민의 왕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에는 죄목 대신에 ‘유대인의 왕’이라는 신분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란 메시야, 곧 구원의 주의 별명입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모든 종교, 모든 권력, 모든 철학이 줄 수 없는 유일한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만민을 구원코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영광과 생명의 십자가입니다.

II. 다 이루었다 하신 예수님 (23-30)
  군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그 겉옷을 취하고 속옷은 제비 뽑고 있었습니다. 이는 시편 22:18절에 예언된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달려 죽어가는 십자가 앞에서 제비 뽑고 있는 군병들은 영적으로 관심 없고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자들로서 인간성을 상실한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저 십자가에서 달리신 것이 눈에 보이지만 돈 벌 생각, 아르바이트 할 생각, 이성 친구 만날 생각으로 마음이 꽉 차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그 마음을 차지할 수 없다면 이 군병들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평소 예수님을 사랑하고 뒤에서 복음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기던 자들로서 십자가의 증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 밑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모친 마리아는 아들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그 앞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울고 있는 모친을 위로해 주시고 그 장래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친의 슬픔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친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슬픔을 담당해 주셨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슬픔의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후에 예수님은 모든 일이 이미 이룬 줄 아시고 성경으로 응하게 하시기 위하여 “내가 목마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갈증보다 성경 말씀을 온전히 성취하는데 더 목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같이 30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라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메시아에 대한 모든 구약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뜻입니다. 구약을 보면 예수님이 세상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어 죽으신다는 것이 성경의 중심 주제입니다. 성경에는 시대와 때와 장소를 달리하여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약속과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일거수일투족이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는 생애였습니다.
둘째로, 온전한 대속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죄 값을 치러야 하는데 그것은 죽음입니다. 로마서 6:23절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육체의 생명을 그 피에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범죄 한 인간은 죄의 대가로 피를 쏟고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속죄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한마디로 죄의 대가로 죽지 않고 살아서 속죄받을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 대신 짐승의 피를 흘려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것이었습니다. 히 9:22에 보면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제도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아무 죄 없는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들이 수 없이 인간의 죄에 대한 속죄제물로 피를 흘리며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속죄의 효과가 그때뿐이어서 인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장차 올 참된 속죄 역사의 그림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랫동안 준비하신 속죄 제물은 그 효과가 달랐습니다. 요 1:29절에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하나님은 구약의 제사제도를 통해서 보여주었던 속죄 제물과 비교할 수 없는 참된 속죄제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히 9:28절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단번에’란 말은 “Once for all”인데 ‘나의 모든 죄에 대한 단 한 번의 제사’를 말합니다. 이는 나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뿐만 아니라 가벼운 죄에서부터 추악하기 그지없는 죄까지 그야말로 나의 모든 죄에 대한 속죄를 십자가에서 단번에 해결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기 자신을 단번에 영원하고 온전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습니다. 아멘! 왜냐하면 그의 피는 짐승의 피가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피요, 죄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어기면 그 사람은 죄인이 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하였느니라는 말씀을 듣고 이대로 살고자 오늘 낮에까지 잘 지키다가 오늘 저녁에 갑자기 형제를 보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는 순간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므로 죄인으로 전락하게 됩니다. 우리는 율법이 옳다는 것도 이해하고 율법대로 살아야 된다는 것도 알지만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르시므로 더이상 율법을 어긴 죄의 값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거의 다 이루었다’, ‘99% 이루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99% 이루셨다면 우리는 나머지 1%를 이루어야 합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여서 1%의 행위로도 죄의 값을 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자 하면 할수록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내랴”하고 죄악된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해서 선행을 한다고 해서 주홍빛과 같은 내 죄가 나의 양심에서 지워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간들을 위해 우리의 죄 값을 100% 온전히 치르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나의 1%의 행위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믿음만이 요구됩니다. 이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단순히 믿기만 할 때 우리에게 위로부터 놀라운 죄사함의 은혜가 임하고 구원의 기쁨이 영혼 깊은 곳에서 솟아나게 됩니다. 나를 그토록 얽어매고 괴롭히던 죄의 사슬이 뚝 끊어지고 참 자유와 평강을 맛볼 수 있게 됩니다.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 영생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 다 이루었다” 이는 죄로부터 완전한 해방선언입니다.
  “다 이루었다.” 이 말씀은 소년 허드슨 테일러를 거듭나게 하여 중국 선교의 아버지가 되게 하였습니다. 17살인 테일러는 어느날 창고 한 쪽 구석에서 복음 소책자를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한 문구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다 이루었다 ”는 말씀이었습니다. “다 이루었다? 무엇이 다 이루어졌다는 말인가?” 이때 그의 마음에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이 “완전하고도 영원한 속죄”임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거듭남을 체험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모든 죄의 빚을 깨끗이 청산하시고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일이라고는 한 가지도 없다. 다만 무릎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셔 들이고 주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 영원히 주님을 찬양하는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 길이 너무 쉽고 단순하여서 이를 잘 영접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구원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내 죄 값이 얼마나 중한데 그래도 내가 뭔가를 해야 하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구원의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용서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식에 시달리며 괴로워합니다. 특히 반복해서 죄를 지을 때 깊은 불의에 빠져 주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너무 염치없는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어떤 몹쓸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십자가에서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과거에 지은 죄, 현재의 죄, 반복해서 지은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도 십자가에서 소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하시며 이루신 사역은 놀라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만 믿음으로 십자가 앞에 나아가 나의 죄짐을 내려놓기만 하면 됩니다. 히 10:19절은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우리는 내 죄에 대해서 머뭇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거룩하신 하나님이 원하시는 율법의 요구수준을 나의 생명 대신 그리스도의 피가 다 충족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담대히 나아가서 죄를 인정하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 밑에서 예수님의 옷을 나누는 군병들과 같이 영적으로 무지하고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차 있던 자였습니다. 무엇보다 정욕적인 생각과 그로 인한 죄의식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고상하고 순수하게 살고자 하는 꿈과는 달리 대학에 들어와서도 술과 쾌락과 사람의 인정을 좇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식적이고 피상적인 인간관계, 삶의 무의미 앞에 모든 것이 허무하였습니다. 내면의 수치심과 죄의 욕망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89년, 친구를 통해 여름수양회로 죄인을 초청하여 주셨습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을 때 무거운 정욕의 죄 짐이 벗겨지고 허무함 대신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과 자유함이 밀려 왔습니다. 제가 졸업 후 다시 세상 욕심을 좇아 하나님을 떠났을 때도 예수님은 변함없는 십자가 사랑으로 저를 찾아 오셨습니다. 저는 술 마시고 쾌락을 즐기며 세상에서 꿈을 이루며 살고자 하였습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면서도 저는 불안한 장래에 두려웠습니다. 평생 농사만 지으시던 아버지는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자살하셨습니다. 저는 제 인생이 실패로 끝나감을 느꼈습니다.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를 포기치 않으시고 서경희 사모님과 목자님들을 통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을 제 심령에 깊이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저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변하지 않는 진리가 진정 저를 자유케 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가 제 인생의 진리요, 생명이요, 길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제가 구원을 얻고 지금 저와 같은 죄인들을 섬기는 고귀한 목자의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십자가의 놀라운 사랑을 몰라 방황하는 캠퍼스의 지성인들을 말씀과 기도로 섬기면서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십자가의 증인으로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간 십자가상에서 그 귀한 피를 흘리시며 ‘다 이루었다’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나의 모든 죄 값을 다 치르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심으로 누구나 아무런 대가없이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하면 죄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이 시간 그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나아가 죄사함의 은혜를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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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리스닝 2010-04-11 2827
100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리스닝 2010-04-11 2755
9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114
98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34
97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25
9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원규연) 리스닝 2010-04-11 3611
9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6강]일어나 걸어가게 하신 분 리스닝 2010-04-07 2912
94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4강 리스닝 2010-04-01 2709
93 누가복음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3강 리스닝 2010-04-01 2632
92 시편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2강 리스닝 2010-04-01 2481
91 누가복음 2010년 신입생 바이블 아카데미 1강 리스닝 2010-04-01 2449
90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5강]영생의 샘물 리스닝 2010-03-28 2850
89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4강]거듭남 리스닝 2010-03-21 2735
88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3강]새성전 리스닝 2010-03-16 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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