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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1 (일) 16:08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제2강_부활의_산증인들(이동원,_치대).hwp (27KB) (Down: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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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2010년 부활절 수양회 2강                                                                       이동원

부활의 산 증인들

말씀: 요한복음 20:1-31
요절: 요한복음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고”

 바야흐로 생명이 약동하는 희망의 계절, 봄의 계절, 부활의 계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금년도의 겨울이 유난히 추었던 것처럼 봄이 되었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좋은 계절, 희망의 계절이 오더라도 희망을 갖기에는 어두운 소식들이 도처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황, 도처에서 발생하였던 지진으로 사상자들이 많았고 국가적으로도 반인륜범죄소식과 남북간, 한일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가까이 지내던 지인이 죽었다는 슬픈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변치 않는 희망적인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마치 얼어붙었던 땅에서 생명이 움트는 사건같이 인간의 절망과 죽음에서 새롭게 깨어나는 엄청난 사건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오늘 말씀을 새롭게 영접하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새 생명을 덧입고 부활의 산 증인들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부활의 아침(1-10)
  1절을 보십시오. 부활사건은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날은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이었습니다. 이날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경위가 나타나 잇습니다. 사실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은 부활의 아침과는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 같아 보입니다. 그는 비천한 여인이요, 흉악한 귀신들렸던 자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으며 머리로 그 발을 씻던 죄인이었습니다. 실제로 여러 여인들이 그 날 아침에 무덤을 찾았는데 저자는 굳이 막달라 마리아를 부활의 첫 증인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기라성 같은 제자들을 제쳐두고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요? 먼저 막달라 마리아는 주일 아침 일찍이 무덤에 왔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구원의 은혜를 덧입은 후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폭적으로 섬겼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자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나는 충격과 아픔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편안히 침상에 누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무덤에 뉘이신 예수님의 시신에 향유라도 발라드리고 싶었습니다. 마리아처럼 예수님께 나아오는 일에 지체함이 없을 때 주님의 복을 받게 됩니다. 사단의 세력과 영적 전투를 벌이는 일에도 뒤쳐지거나 회피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그녀는 외적, 내적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그 당시 무덤을 무거운 돌로 입구를 막아놓은 것을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여인의 힘으로 옮기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도 마리아는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아직 어두울 때 인적이 없는 길을 간다는 두려움을 이겨냈습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어떤 장애물도 능히 극복하는 헌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막상 무덤 앞에 와보니 그 큰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었습니다. 무덤에 무슨 일이 일어났음에 틀림없었습니다. 그는 분명 누가 주님의 시신을 옮겨간 것이라 판단하고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마리아의 말을 듣고 황급히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해 달렸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렸으나 결국 날렵한 요한이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무덤 안에 먼저 들어간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베드로가 본 무덤 안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무덤 안에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쌓던 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이는 몸만 빠져나가고 세마포와 수건은 그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해 주는 정황이었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면 시체를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까지 통째로 가져갔거나 어지럽힌 흔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령한 부활을 하셨기 때문에 시공간을 초월하셨습니다. 몸에 걸쳤던 세마포와 수건은 그대로 두고 부활의 형체가 되신 것입니다. 이는 나사로의 부활과 차이가 있습니다. 나사로는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몸을 동여 맨 채로 걸어 나왔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요.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과 부활의 정황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부활을 몰랐을 때 그들의 삶과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내면에 자리 잡은 두려움과 염려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숨으러 도망치듯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Ⅱ.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11-18)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계속 울었습니다. “흑흑 예수님 어디 계시나요? 흑흑 예수님....” 마리아는 울면서 혹시나 하고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질문합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이 말은 이제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므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어졌는데 왜 계속 우느냐는 뜻입니다. 마리아의 슬픔의 눈물은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슬픔은 사랑하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기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비극은 결국 모두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無로 돌려버리고 모든 것의 가치를 부정하게 만들뿐더러 모든 희망을 앗아가 버립니다. 사람이 살아생전 아무리 능력이 많고 건강하고 부족함이 없으면 무엇합니까? 결국 죽는다는 사실 앞에 속수무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유익이 되는 일에만 열심을 냅니다. 죄를 용감하게 짓고 쾌락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합니다. 어떤 사람이 근래에 기상이변을 보고 2012년에 종말이 올 것이 분명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 갖고 있는 돈은 다 써버리자 선동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반면에 죽음의 권세 앞에 굴복하여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무기력하기 지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죽음을 끝이요 영원한 단절로 보면 무섭고 두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영원한 이별 같아 슬퍼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복음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슬픈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요.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 왔을 때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왜 마리아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는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시체를 옮겨갔거든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이는 마리아를 잘 아시는 예수님의 친근한 목소리였습니다. 양의 이름을 부르시는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이 음성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이나 부활하신 후나 조금도 변함이 없으신 목자 예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마리아는 그제서야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붙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 꽉 붙들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제 구원역사를 완성하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셔야하기 때문입니다. 즉 완전한 승리를 이루시고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17b절을 보십시오. 오늘 말씀의 요절인데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만유의 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는 자신을 종의 형체로까지 낮추시고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까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을 멸시하고 천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게 되셨습니다. 곧 예수님이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셔서 세상 역사를 그 뜻대로 주관하실 것입니다.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경배하고 섬기고 복종해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하나님이요, 아버지가 되십니다. 곧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는 형제 관계가 된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전보다 더 긴밀한 관계요 사랑의 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같이 제자들도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받을 상속자임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새로운 관계를 맺으시고 그에게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셋째로, 제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줍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신다 하시므로 제자들에게도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소망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 메시야 왕국을 건설할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그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새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참된 소망을 갖도록 하십니다.

Ⅲ.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19-31)
  한편 제자들은 이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제자들은 현실이 두려워서 방문을 닫고 합심하여 떨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제 우리를 잡으러 오겠지?”, “우리 인생은 이제 끝났어” 하며 떨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마음의 문을 닫고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끊어 버립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어려운 현실 때문에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로서 사단이 심어주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를 자기 똘마니로 삼고자 두려움을 심습니다. 두려움이 심겨지면 진리를 위해 살 힘과 용기가 사라지고 사단이 시키는 대로 살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두려움이 나를 파멸로 이끄는 나쁜 것인 줄 알기 때문에 이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내 힘과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문을 걸어 잠그어도 어느새 내 마음 속에서 역사하여 나의 삶을 주관합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잠긴 문을 통과하여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님은 놀란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그들에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심령에 강하게 역사하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강이 생겼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시고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21b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은 두려워 떨 대상이 아니라 복음으로 정복할 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약속했던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능력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었다고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을 때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르라고 하셨습니다(행1;4). 오순절 성령을 받았을 때 그들은 비로소 각처로 나아가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능력 있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성령을 사모하고 받기에 힘써야합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죄사함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완성하신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인류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로 이를 인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증거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을 증거자로 부르시고 이날까지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전권대사’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파견하신 하나님 나라의 전권대사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죄 사함을 선포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세상이 무섭다고 대사관 문을 잠그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삼킬 듯이 대적하지만 이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호하시고 또 많은 특권을 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요 가만히 있으면 많은 영혼들이 죽어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행하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으면 나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요, 내가 못난 짓을 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마 28:18) 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와 가정을 중심으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도마를 찾아 이 사실을 전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살아나신 주를 보았어” “나도 보았어.” “도마 자네는 개인 행동하느라 못 보았지만 이 사실을 믿어야해” 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도마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단호하게 믿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고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해 보아야만 믿겠다합니다. 그의 말에는 강한 자존심과 교만이 숨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위해 제자들에게 나타나신지 8일 뒤, 도마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심방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의심을 무례하게 여길 만 하였습니다. “감히 스승의 상처를 확인하고서 믿겠다는 것이냐?” 하고 책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의 연약함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고 직접 손을 넣어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마음의 의심을 풀어주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도마는 땅에 엎드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고백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도마는 의심의 사람에서 확신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인도에 가서 복음을 확신 있게 전하다가 순교당했다고 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부활의 증인들의 증거를 통해 믿는 자들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본 고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 바로 증인들의 말을 듣고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바로 나타나지 않고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부활소식을 전하신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믿지 못함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셨고, 도마가 보지 못했다고 못 믿겠다고 해서 그를 위해서도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전해 주는 자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보지 못하고 믿게 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똑 같이 있게 하십니다. 우리는 다 보지 못하고 믿게 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보고 믿으려고 할 때 우리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이 믿음에 이를 수 있고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 수양회 강사로 세워주심으로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평소보다 더 큰 고난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말씀을 준비해야 하는데 여기저기서 해야 할 일들이 나타나므로 데드라인에 쫓기게 되었습니다. 충분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메세지를 준비하고자 하는 계획에 차질을 빚자 마음 가운데 ‘아! 나는 언제까지 일에 치여 살아야 하는가’ 짜증과 신세한탄의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떠올릴 때 저의 이런 볼멘소리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난주간에 동참하여 새벽기도를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활의 믿음이 없이는 이 땅의 복락을 추구하기 쉬운 자입니다. 잠시 이 땅의 것을 누리는 것인데 여기에 목적삼지 않고 부활의 믿음으로 세상유혹과 염려를 극복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인의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슬픔으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기쁨을 주시고(from weeping Mary to laughing Mary),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부르시고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이제 슬픔과 두려움과 의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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