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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11 (일) 16:13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제2강_예수님의_영광스러운_부활(문대범).hwp (29KB) (Down: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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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2010년 부활절 2강                                                             문대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

말씀: 요한복음 20:1-31
요절: 요한복음 20: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요한복음의 특징은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기술을 한 복음서 인데 부활 사건만큼은 사실적인 기록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는 부활은 사실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임을 만나므로 심령에 역사하는 모든 슬픔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부활의 산 증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빈 무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였습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을 당한 사람은 죄수를 위한 공동 무덤에 던져졌고 또한 공개적으로 애도를 해서도 안 되었던 것을 생각할 때 이는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일몰 후부터 시작되는데 안식일이면 모든 행동이 중단되기 때문에 요셉과 니고데모는 서둘러서 장례 절차를 수행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신을 싸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가까운 동산의 무덤에 모셔두었습니다. 20장 1절을 보십시오.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아직 어두움이 물러가기 전 이른 아침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그 밑에서 이를 지켜보았으며 시체를 장사지낸 것도 목격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안식일이 되었지만 마리아는 핍박 받고 고통스럽게 돌아가신 예수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여 예배도 드릴 수 없고 잠조차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없다는 사실에 슬퍼서 울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것을 생각하다 억울해서 울고 하염없이 울고만 있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마리아는 안식일 때문에 미처 마치지 못한 일 아마도 예수님의 시체에 향유를 발라드리는 일을 하고자 무덤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마리아가 무덤에 와 보니 그 큰 돌이 무덤에서 옮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무덤을 막는 돌은 성인 남자 두 세명이 힘을 합쳐야 옮길 수 있는 큰 돌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원수들이 와서 무덤을 파헤치고 시체를 훔쳐 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막 달려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영원한 라이벌이자 동역자인 베드로와 요한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기 경주를 했습니다. 요한이 베드로 보다 젊기 때문인지 더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무서워서 감히 무덤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만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달리기에는 졌지만 용기에서는 지지 않고자 용감하게 무덤 안으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이 따로 개어져 놓여 있었습니다. 무덤 속은 마치 자고난 사람이 잠자리를 가지런히 정돈해 놓고 외출한 것 같았습니다. 만일 사람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면 시체를 쌌던 세마포와 머리를 쌌던 수건까지 벗기고 이를 잘 정돈해 놓을 리 없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여러 번 말씀하셨고 무덤 안에 부활에 대해 증거하는 많은 단서들이 있었지만 슬픔과 패배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마리아와 제자들은 부활에 대해서 아무런 인식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두 제자는 시체의 행방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II. 마리아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두 제자는 집으로 돌아갔으나 마리아는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계속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고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지금까지 없었던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님의 시체 뉘었던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에게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고 가볍게 책망하였습니다. 이 말은 이제 예수님은 부활하셨으므로 더 이상 울 필요가 없어졌는데 왜 계속 우느냐는 뜻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과거 더러운 일곱 귀신에 들려 심한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정욕 귀신, 교만 귀신, 시기심 귀신, 판단 귀신, 욕심 귀신, 자학 귀신, 두려움 귀신 등 일곱 가지 귀신들이 번갈아 가며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사람들은 그녀가 너무 추하여서 멸시하며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사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많은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황공주와 같이 귀히 여기시고 딸처럼 사랑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마리아는 살아났고 새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마리아는 모든 진심과 애정을 바쳐 주님과 복음 역사를 섬겨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므로 참으로 큰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어떤 고생도 문제가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마리아에게는 이보다 더 큰 슬픔이 없었습니다. 선하신 예수님, 그렇게 능력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예수님도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은 마리아를 더욱 슬프게 하였습니다. 마리아의 슬픔은 겉으로 볼 때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졌기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근본 뿌리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모든 비극은 죽음으로 인해 생깁니다. 한 국가의 가장 높은 곳에서 모든 권력을 가졌던 대통령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만인의 우상이었던  배우도 예외 없이 죽는 다는 사실은 우리를 근본적으로 슬프게 만듭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다가도 큰 병마와 투쟁하는 신앙 동료나 이미 우리 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면 슬픈 생각 때문에 spirit을 빼앗기고 때로는 믿음을 잃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마리아는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복음 역사를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해결되지 않는 슬픈 문제를 안고 슬픈 신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충성스럽게 복음 역사를 섬기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수에 찬 얼굴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슬픈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만 슬픈 일이 있어도 무기력해지고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을 잘 합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마리아를 어떻게 도와 주셨습니까? 15a절을 보십시오.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이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하고 울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왜 마리아는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을까요? 이는 마리아가 돌아가신 예수님만을 찾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마리아에게 누구를 찾느냐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열심히 찾지만 돌아가신 예수님, 실패하신 예수님만을 찾을 때가 많습니다. 역사를 열심히 섬기지만 빛의 역사를 바라보지 못하고 어둠의 역사 실패의 역사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이때 신앙생활을 하지만 기쁨도, 소망도, 보람도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와 같이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하게 됩니다. 나는 누구를 찾고 있습니까? 죽음의 권세도 파하시고 승리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을 때 더 이상 울지 않게 됩니다. 손해 의식, 피해 의식에 시달리지 않게 됩니다. 기쁨과 감사와 소망 가운데 자발적으로 주님과 그 복음 역사를 섬기게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인 줄 알고 당신이 시체를 옮겨갔거든 알려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마리아야!”하고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이 “마리아야!” 하는 음성은 생전에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부를 때와 같은 사랑과 인자가 가득한 목소리였습니다. 마리아는 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영적인 눈이 떠졌습니다. 그는 목자의 음성을 알아보았습니다. 마리아는 돌이켜 “랍오니여!”하고 외쳤습니다. 랍오니란 말은 나의 선생이라는 말로 랍비란 말보다 더 개인적이고 친근한 말이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마리아는 너무 기뻐서 예수님을 붙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붙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순간 꽉 붙들고 다시는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영원히 함께 오손도손 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를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짧은 기간에 제자들과 백성들에게 가서 부활의 믿음을 심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도 예수님과 오순도순 사랑과 섬김을 받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해야 할 부활의 증인으로써 사명을 주셨습니다. 17 하반 절을 다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과 제자들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떠한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변함없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임을 말해 줍니다. 이는 곧 예수님의 아버지가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고 예수님의 하나님이 제자들의 하나님이 되시며, 예수님의 부활이 곧 제자들의 부활이요, 예수님의 소망이 곧 제자들의 소망이 됨을 말해 줍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신다 하시므로 제자들도 장차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땅에 메시아 왕국을 건설할 꿈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그 꿈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두려움과 절망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참된 소망을 갖도록 하십니다. 사람에게 소망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인간을 꿈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하였고 희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불행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소망이 어떤가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이 결정 됩니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사는 자는 어찌하든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자 애를 씁니다. 또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생각하고 쾌락을 좇아 살아갑니다. 또한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도 내일이면 죽을 인생, 아둥 바둥 공부를 하면 무엇 하나 하며 방바닥을 헤맵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이 있는 자는 세상일에 얽매어 쫀쫀하게 살지 않고 진정으로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자신을 헌신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이 있기 때문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하루하루를 두렵고 떨림으로 진지하게 살아갑니다. 이런 자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나고 말에는 힘이 있고 발걸음은 가볍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에게 산 소망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을 주십니다.

Ⅲ.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
  한편 제자들은 이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두려워서 방문을 닫고 합심하여 떨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었을 때 방문을 닫고 떠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사람이 소심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방어를 하기에 급급하기 때문에 아무리 옳은 말, 진리의 말씀을 주어도 마음 문을 닫아버리고 안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어려운 현실 때문에 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로서 사단이 심어주는 것입니다.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취업난이 심할 때 공부와 진로에 대한 두려움이 대학생들을 사로잡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일주일에 말씀공부 한 시간 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럽게 여깁니다. 그리고 집중도 안 되고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데도 책상에 붙어 앉아서 열심히 줄치며 책에 공부의 흔적을 남기는 것을 위안 삼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붙어서 책을 펴놓고 있었는데 공부 끝내고 돌아오며 생각하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왜 이럴까 자학하며 내일은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재대로 집중할 수가 없고 내일 역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는 맙니다. 천신만고 끝에 직장을 다니게 되도 두려움은 마찬가지입니다. 위에 계신 분들의 눈치를 보며 마음에 들게 하려고 힘들게 노력하지만 날마다 부족한 자신 때문에 절망하게 되고 깊은 비교의식과 패배감의 노예가 됩니다. 이처럼 사람은 두려움이 심겨지면 진리를 위해 살 힘과 용기가 사라지고 사단이 시키는 대로 자신 만을 위해 살게 되며 부족한 자신 때문에 날마다 절망하며 비참하게 살게 됩니다. 두려움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파멸로 이끄는 줄 알기 때문에 이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내 힘과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극복하려고 능력을 키우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봐도 어느새 내 마음 속에 깊이 침투합니다. 이러한 모든 두려움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평강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면서 그들에게 부활의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이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심령에 강하게 역사하던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강이 생겼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시고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21b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은 두려워 떨 대상이 아니라 복음으로 정복할 땅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엄청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저희를 향하여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성령은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원천입니다. 능력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임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을 때 마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적이 심한 세상에서 능력 있게 복음 역사를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서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죄사함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완성하신 역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인류의 죄문제를 해결하시고 부활로 이를 인치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죄의 은혜를 덧입고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증거자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을 증거자로 부르시고 이날까지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전권을 위임하십니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전권대사’가 되었습니다. ‘대사(ambassador)'는 외교 사절의 최고 계급으로서 자기 나라를 대표하여 외교 교섭을 행하며 자국민에 대한 보호, 감독의 임무를 행한다(동아백과 사전 참조)고 되어 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외교 관계가 맺어지면 국제법상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대사는 함부로 해할 수 없으며 많은 특권과 면제 사항이 주어집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으로 파견하신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할 뿐 아니라 죄사함을 선포하여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세상이 무섭다고 대사관 문을 잠그고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무 역사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삼킬 듯이 대적하지만 이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보호하시고 또 많은 특권을 부여하십니다. 그러므로 조금도 두려워할 필요 없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세상에 보내신 ‘영적 대사’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은 참으로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요 가만히 있으면 많은 영혼들이 죽어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자들입니다. 내가 믿음으로 행하고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으면 나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요, 내가 못난 짓을 하면 하나님께 욕이 돌아갈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므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이 되셨습니다.(마 28:18) 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세상에 보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와 가정을 중심으로 소시민적인 삶을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보내신 예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에 복종하고 충성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공교롭게도 도마가 없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시나무 떨듯이 떨던 제자들이 마음에 큰 기쁨과 평강을 가지고 확신 있게 증거할 때 도마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더구나 한명도 아니고 열명의 증거는 믿을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하며 단호하게 믿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고 내가 직접 보고, 만지고, 경험해 보아야만 믿겠다하는 경험주의자요, 회의주의자였습니다. 그의 말에는 강한 자존심과 교만이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도마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지 여드레 후에 의심하는 도마 한 사람을 위해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의 말을 괘씸하게 생각하시고 만나자마자, “너는 어떻게 된 사람이 끝까지 의심하느냐?”하고 책망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마를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그가 믿음이 연약하여서 매사에 의심하는 경향이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여주시고 직접 손을 넣어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마음의 의심을 풀어주시고 부활의 믿음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마를 다른 제자와 비교하여 믿음 없다고 판단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마 자체를 사랑하셨습니다. 도마는 이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확신에 찬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님은 바로 도마의 주요 도마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그 후부터 도마는 의심의 사람에서 확신의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후에 인도에 가서 복음을 확신 있게 전하다가 순교 당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도마와 같이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 자들을 무시하고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심하는 자도 고의로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연약하여서 자신도 원치 않게 의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4:1에서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도마와 같은 자도 마음에 품고 그 의심하는 바를 인내심을 가지고 조근조근 풀어주어야 합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계속해서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은 부활의 증인들의 증거를 통해 믿는 자들이 복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보고 믿으려고 할 때 우리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칼빈은 “믿음이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만이 믿음에 이를 수 있고 더 깊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저자가 이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함입니다.
  저는 과거 학생시절 학업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담대한 종으로 연단하셨습니다. 저는 인턴 후 당연히 붙을 줄 알았던 내과 시험에서 11명 모집에 12등으로 떨어지게 하셨습니다. 경희사모님은 저에게 미국 선교사의 비전을 주셨고 공보의 시절에 미국 선교사의 비전을 품고 usmle공부를 시작했지만 그 때부터 시작된 근육 통증으로 장시간 앉아서 공부하기가 매우 힘들게 되었습니다. 인내하며 공부해서 1차 시험을 보았지만 저조한 성적으로 인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usmle 2차를 공부하다가 다시 본국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기로 방향을 정하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내과의 정원이 17명으로 늘어났고 지원자 중 내신 성적도 상위권인 편이여서 쉽게 들어갈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점 몇 점의 한두 문제 차이로 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존심에 매우 상처를 입었지만 이렇게 근소한 차이로 두 번 떨어지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분명한 인도하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병리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리과에서 현미경을 보는 중 오른쪽 시야에 먼지 같은 것이 계속 시야를 가리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어 안과를 찾았는데 선천성 백내장이 있다는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근육통도 악화되어서 장시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눈이 시려서 현미경을 조금만 보아도 눈물이 계속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셨다면 왜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하는 불평과 의심이 마음속에 들어왔고 믿음이 흔들리자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슴을 무겁게 누르는 듯 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저에게 부활의 믿음과 소망을 주시며 부활의 믿음으로 도전하게 하셨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니 오른쪽 눈에 시야를 가렸던 점이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그렇게 두렵고 부담스럽게 하던 논문도 순적하게 실리게 되고 또한 발표 잘한다고 교수님들께 칭찬도 받으며 병원에서도 인정받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믿음을 배우고 감당하였을 때 장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어지고 하루하루를 믿음 안에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리아에게 기쁨을 주시고,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평강을 주시고, 의심하는 도마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대사로 부르시고 세상에 내보내십니다. 이제 슬픔과 두려움과 의심에서 일어나서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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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리스닝 2010-06-07 2961
10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634
10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633
10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1강]세상의 빛 리스닝 2010-05-16 2823
10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0강]용서의 은총 리스닝 2010-05-10 2966
10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1
10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016
10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34
101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리스닝 2010-04-11 2924
100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리스닝 2010-04-11 2860
9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160
98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70
97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58
9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원규연) 리스닝 2010-04-11 3647
9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6강]일어나 걸어가게 하신 분 리스닝 2010-04-07 2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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