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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4-25 (일) 15:47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8-1.hwp (30KB) (Down: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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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2010년 요한복음 제 8강                                                최바울

생명의 떡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 6:22-59
요절: 요한복음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오늘 말씀은 오병이어로 배불리 먹은 기적을 체험한 후 예수님과 무리들 사이에 떡을 주제로 나눈 대화의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목마르지 않고 주리지 않고 풍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원합니다. 도대체 그런 삶을 어디서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선언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고 배고프지 않는 생명의 떡을 소유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22-27)
  22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여기서 ‘무리’는 어제 오병이어로 떡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식민 통치하에서 실로 오랜만에 예수님 덕분에 배불리 먹게 되자 참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이들은 예수님만 잘 따르면 먹는 문제만큼은 확실하게 해결될 것이라는 계산이 섰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가시는 길을 예의주시하였습니다. 그런데 이튿날 떡 먹던 현장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전날 배가 한 척 밖에 없었고 예수님은 제자들만 보내시고 분명 그 배에 오르지 않으셨는데 자고 나서 보니 거기에 예수님이 안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배를 타고 예수님을 추적해 가버나움까지 갔습니다. 다행히 그곳에 예수님이 계신 것을 보고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한편으로는 배고픈 양무리를 내버려두고 훌쩍 떠나오신 예수님께 원망하는 마음으로 물었습니다. “랍비여 언제 여기까지 오셨나이까?” 이런 무리들은 열심히 필사적으로 예수님을 찾는, 영적 소원이 충만한, 질 좋은 양무리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꿰뚫어보시고 다소 냉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들이 처음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은 예수님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믿기보다 떡을 먹고 배가 부르자 예수님보다 떡에만 관심이 돌아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이 예수님을 찾는 의도가 잘못된 것에 대해 책망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27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27) ‘썩을 양식’은 육신을 위해 먹는 양식이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영적 생명을 위해 먹는 양식입니다. “-위하여” 란 인생 목적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노동의 가치를 부인하신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 곧 인생 목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육의 양식을 반드시 먹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을 양식에 불과한 육의 양식을 ‘위하여’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인생의 목적을 썩는 양식에 두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물질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에 최고 가치를 두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도 잘 먹고 잘 사는 구복신앙에 둡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한 것들은 아무리 가치 있고 고상한 것이라도 결국 쇠하고 썩어 없어집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고귀한 존재로서 영원을 추구하는 값진 삶을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썩을 양식을 얻는 것을 인생목적으로 하면 짐승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데 두어야 합니다.(고전10:31) 예수님은 물질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우리가 진실로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의 인생목적을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에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드리지 못하고 늘 쫓기며 피곤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신앙생활이 자기만족이나 자아완성이나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이 또한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일하는 목적과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이 썩을 양식을 위해 하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는 순수한 인생목적과 동기가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 나는 생명의 떡이니(28-40)
  2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무리들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물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특별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양식을 얻을 수만 있다면 아무리 어려운 하나님의 일이라도 하고자 하는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양식을 얻는 수단으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29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단수(The work of God)로 되어 있는데 이는 일의 종류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 그 자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예수님을 믿게 하는데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사역은 구원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말씀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이 없고 또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 일처럼 사람의 노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자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먼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갖게 하고 또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믿음을 갖도록 돕는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의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근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그런 다음 그 믿음의 표적으로 많고 많은 표적 가운데 하필이면 과거 조상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던 사건을 상기시켰습니다.(31) 그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도 떡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무리들에게 만나는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요, 만나는 그 자체가 참 떡이 아니라 장차 주실 참 떡의 모형임을 깨우쳐주셨습니다.(33) 그러나 무리들은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며 이 떡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항상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34) 그들은 육신의 떡에 얽매어 예수님의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이들에게 참 떡을 주시고자 말씀하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마침내 예수님은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생명의 떡은 참 생명을 주는 떡이요, 계속하여 생명을 공급해주는 떡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참 떡’(32), ‘하나님의 떡’(33), ‘생명의 떡’(35)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두 예수님이 주실 떡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이 인생들을 위해 친히 내려주신 떡으로서 이 떡을 먹는 자마다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누리는 참된 떡이 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떡은 육신의 생명을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할 필수 양식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분이십니다. 예수님 없이는 영적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유지시킬 수도 없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을 통하여 육신의 떡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인생들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함 입니다.
  사람에게는 육신의 배고픔이 있고, 또 영적 배고픔이 있습니다. 춥고 배고프면 그렇게 불쌍하고 초라해 보일 수가 없습니다. 또 먹지 않으면 힘이 없어서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배가 고프면 만사를 제쳐놓고 “우선 먹고 합시다!” 주장합니다. 그러나 영적 주림은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웬만큼 심령이 곤고하지 않으면 먼저 육신을 편히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육신의 주림보다 영적인 주림을 참으로 심각한 문제로 보십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출발하실 때 40일간 금식 기도하신 후 먼저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사탄의 유혹 앞에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는 기록된 말씀으로 단호하게 물리치셨습니다.(마4:4) 세상에는 육신적으로는 부족함이 없지만 영적으로 굶주린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내면에 항상 허전함을 느낍니다. 무슨 일을 하다가도 알 수 없는 허무 때문에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어두운 생각에 사로 잡혀 일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기를 잘 합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텅 빈 가슴을 안고 곤고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이는 영적으로 굶주렸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하려고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재미있는 3D 영화를 보기도 하고 멀리 여행을 떠나보기도 하지만 그때 뿐 조금 있으면 또 허무와 무의미에 시달립니다. 이런 영혼의 굶주림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떡을 먹어야만 채워집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생들을 위해 보내신 유일한 생명의 떡이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생의 떡보다 육신의 떡을 더 원했습니다. 예수님을 수단으로 삼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자는 항상 불만과 내적인 갈등으로 괴로워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었다 할지라도 잠깐 즐거울 뿐 곧 더 큰 허무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목적으로 삼고 예수님을 얻는 자는 육신이 조금 주릴지라도 내면에 참 만족과 기쁨과 생명력이 넘칩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를 마지막 날에 살려 주십니다.

Ⅲ. 참된 양식, 참된 음료(41-59)
  4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하자 무리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요셉의 아들로만 보고 하늘로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이 되심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들은 드러내 놓고 반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정도 되면 타협하고 그냥 떡 하나 주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과 조금도 타협치 않으시고 수군거리지 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44). 예수님께서 무리들의 집요한 요구에도 타협치 않으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에 남는 자는 하나님께서 남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떤 자가 남는 자입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선지자의 글에 그들이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가르치심을 받아들이는 자, 곧 하나님께 듣고 배우는 자가 예수님께로 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이 있으면 양들에게 확신 있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신앙으로 돕게 됩니다. 그러지 않고 양들이 혹시 도망가지나 않을까 염려하여서 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 주는데 급급하다 보면 양들은 요구사항이 만족되든, 안되든 떠나가 버립니다. 또 손해 볼 것 같고 어려움이 있을 것 같으면 미련 없이 보따리를 쌉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 하나님께서 남기실 자는 남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영적 소원을 갖게 하시고 또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각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실 때 누구든지 주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며 교만해진 이들과 타협하시거나 포기치 않으시고 계속해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시요 이 예수님을 믿는 자가 누리게 될 특권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48-51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지금 무리들에게 떡을 안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정말 무리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최고의 떡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아무리 맛있게 먹어도 배부름과 만족이 한나절 밖에 지속되지 않는 떡이 아니라 그 가치와 효력이 영원토록 지속되는 떡, 그 안에 생명이 있는 떡, 그래서 그것을 먹으면 생명이 살아나고, 생명이 소생케 되고, 역동적이고, 생명력이 충만한 삶을 살게 하는 바로 그 떡을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떡이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예수님께서 이처럼 생명의 떡이 되시고 그 예수님의 떡을 먹으면 영생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떡의 한계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세상의 떡은 모두 땅에서 나온 떡이라는 것입니다. 땅에서 나온 떡은 흙인 육신만을 만족시키는 떡입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저주받은 이 땅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것들은 언젠가는 썩고 부패하고 없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땅의 음식, 이 땅의 음료수, 이 땅의 각종 문화와 예술, 철학과 사상, 거기에는 반드시 수명이 있고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은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예수님 자신부터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모든 것들은 다 영원합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진리,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권세, 예수님의 능력, 이 모든 것들이 다 영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을 먹고 살면 죽지 않고 영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하늘양식을 먹고 살면 우리는 영원토록 없어지지 아니하는 하늘의 기쁨과 감격 속에서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말로만 자신이 생명의 떡이다,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자신의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도록 친히 양식과 음료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요, 생명의 떡이라 할지라도 그 예수님의 몸이 찢겨지고 않고 부서지지 않으면 우리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채찍에 맞으시고, 창에 찔리시고, 못에 그 몸이 찢겨져서 우리가 먹기에 좋은 양식이 되셨습니다. 온몸에서 피를 쏟으심으로 우리가 마시기에 좋은 음료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무리들은 이 말에 기겁을 하고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52절을 보십시오.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우리가 식인종인가?”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육신의 살을 뜯어 먹고, 빨간 피를 빨아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서 살이 찢기시고 피를 쏟으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날 밤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주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눅22:19)” 또 포도주를 따라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눅22:20)” 예수님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친히 자신의 몸을 떼어 주시고 피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묵상할 때에 우리 안에 예수님의 살과 피가 들어와서 예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몸의 세포 안에 예수님의 살이 들어와서 나의 병들고 죽어가던 세포를 살려 주십니다. 내 혈관 안에 예수님의 피가 들어와서 나의 더러워진 피를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말씀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우리가 성경말씀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가 내 안에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에 하늘의 영양소들이 우리의 몸속에 파고들어서 우리의 죽어가는 영성을 살려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저 한번 쓱 성경을 읽어보고 별로 재미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입맛이 너무나 인스턴트화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화나 TV, 인터넷처럼 자극적인 것들에 길들여진 우리의 입맛은 참 간사하여서 금방 감칠맛을 느끼지 못하면 다시는 찾지 않습니다. 주일 메시지도 5분에 한번씩 웃음을 주지 않으면 지루해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 섭취하면 우리의 생명이 말라 죽습니다. 영적인 영양실조에 걸려서 쉽게 죄에 오염되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생명의 영양소가 농축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야로 말씀을 묵상할 때에 하늘 양식이 내 안에 충만케 되어서 우리의 영적 생명이 풍성케 되고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시절을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의 살을 참된 양식이요, 예수님의 피를 참된 음료라고 하셨을까요?(55) 양식과 음료는 우리가 매일 먹고 마시므로 생명력과 힘을 얻습니다. 양식을 규칙적으로 잘 먹는 아이가 건강하게 잘 성장합니다. 반면에 주로 간식을 먹고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아이는 잔병치레를 많이 합니다. 영적으로도 참된 영의 양식을 잘 먹는 사람이 제대로 성장하고 또 건강하여서 세상의 유혹이나 핍박도 능히 견디어 냅니다. 예수님의 살이 참된 양식이요 피가 참된 음료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규칙적으로 먹고 마시는 사람은 항상 은혜와 생명력이 넘치고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따르기를 기쁨으로 감당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나아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구원의 역사를 믿고 영접할 때 세상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새 힘과 위로를 얻게 됩니다. 몇 년이 가도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자주 것은 말씀공부도 형식적으로 해치우고 소감도 대충 써버리고 예수님의 살과 피와 상관없는 다이어트식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실 때 예수님의 생명력이 내 속에 거하게 되고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가 다시 살아나 새 인생을 힘차게 살게 됩니다.
  56,57절을 보십시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교제를 해야 함을 가르쳐 줍니다. 양식과 음료를 내가 아닌 남이 대신 먹어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도 내가 해야 합니다. 1:1 목자님이 대신 먹어 줄 수 없고 사랑하는 동역자가 대신 마셔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관계성을 맺고 함께 신앙 생활하므로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는데 소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있더라도, 또 아무리 바쁘더라도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사귐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루 세끼 밥을 먹듯이, 규칙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묵상하고 새 힘과 은혜와 위로를 덧입어야 합니다. 이때 우리는 내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죽음도 맛보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해 생명의 떡이요 참된 양식과 음료가 되시는 예수님을 먹고 마시는 삶을 살아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새로 시작한 평신도 생활을 통해 나도 이제 제대로 된 떡 좀 먹어보자는 심정으로 밤낮없이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생 썩을 양식을 위해 썩은 이를 보고 살아야 하는 치과의사의 삶은 단순하고 힘들고 의미 없고 비참했습니다. 저는 어리석고 무지하여서 직장생활을 해보고 개업을 해보고 나서야 이를 깨닫고 썩을 양식을 위해 살 수밖에 없던 자를 구원하시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살도록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떡은 죄인을 더욱 병들이고 주리게 하고 목마르게 하지만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떡은 세상살이에 피곤하고 지친 저의 영혼에 참 만족과 새 힘을 주었습니다. 제가 계속하여 평신도로서 이 생명의 떡을 먹고 힘을 내서 직장의 십자가 뿐 아니라 캠퍼스 지성인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올해도 변함없이 저희 모임을 통해 캠퍼스의 주리고 목마른 지성인들을 생명의 말씀으로 먹이시고 살리시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시대를 잘 살아보고자 온갖 투쟁을 하는 우리들에게 상한 마음으로 말씀하십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저와 여러분이 생명의 떡 되시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참된 양식과 음료로 먹고 마시는 가운데 이 땅에서 참 만족과 행복을 누리고 장차 영생을 얻는 은혜를 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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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7강]열매를 맺으려면 리스닝 2010-06-27 2646
111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6강]참된 생명의 길 리스닝 2010-06-21 2790
110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5강]서로 발을 씻어주라 리스닝 2010-06-13 3041
109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리스닝 2010-06-07 2963
108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3강]부활과 생명 리스닝 2010-05-30 2638
107 요한복음 [2010년요한복음제12강]참 목자 리스닝 2010-05-30 2636
106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1강]세상의 빛 리스닝 2010-05-16 2828
10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10강]용서의 은총 리스닝 2010-05-10 2972
104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9강]생수의 강 리스닝 2010-05-02 2663
103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8강]생명의 떡 예수님 리스닝 2010-04-25 3022
102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7강]오병이어를 축사하신 예수님 리스닝 2010-04-18 2740
101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부활(문대범) 리스닝 2010-04-11 2928
100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하신예수님(이인구) 리스닝 2010-04-11 2874
99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2강]부활의 산 증인들(이동원) 리스닝 2010-04-11 3166
98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최바울) 리스닝 2010-04-11 2672
97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이동욱) 리스닝 2010-04-11 2559
96 요한복음 [2010부활절수양회1강]다이루었다(원규연) 리스닝 2010-04-11 3650
95 요한복음 [2010 요한복음6강]일어나 걸어가게 하신 분 리스닝 2010-04-07 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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