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9-27 (일) 12:2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09요한계시록4-1.hwp (48KB) (Down:386)
ㆍ추천: 0  ㆍ조회: 2816      
IP: 211.xxx.239
[2009년요한계시록제4강]차든지 뜨겁든지
2009년 요한계시록 제 4강

차든지 뜨겁든지

말씀: 요한계시록 3:1-22
요절: 요한계시록 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오늘 말씀은 일곱 교회 가운데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세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교회마다 각기 다른 문제를 안고 있지만 이 세 교회들의 문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는 미지근한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미지근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심령을 뜨겁게 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사데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1-6); Wake up!
  1절을 보십시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고원지대에 세워졌는데, 이 지역의 이교도들은 그들의 신들이 치유의 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교회에 메시지를 전하시는 주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라고 소개하십니다. 일곱 영과 일곱별은 모두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킵니다. 주님은 천사들을 주관하시며 이들을 통해 사데 교회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사데 교회 성도들의 행위를 속속들이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에베소 성도들같이 도전적이고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신자들로서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평판을 얻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시는 주님은 안타깝게도 그들을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제로는 죽은 자라고 평하십니다. ‘죽은 자’는 육신은 살았으나 더 이상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생명력이 소실된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같이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았지만 믿음으로 하지 않았기에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새 생명을 탄생하는 생산성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같이 열매 없는 죽은 나무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평판에 만족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투쟁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엄히 명하십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주님이 이들에게 깨어나라(Wake up!)고 하신 것을 보면 그들은 영적으로 깊은 잠을 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에 자족하며 ‘힘든 시대에 이만하면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며 더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또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믿음의 투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없이 자기만족을 위해 신앙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깨어나라(Wake up)!” 깨어나서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히 하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 중에는 죽음에 이르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직 살아 있는 자들이 있음을 말해줍니다. 이들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릴 수 있을까?’ 애쓰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 시대에 하나님이 남겨두신 거룩한 희망의 불씨들이었습니다. 아무리 타락한 시대라도 하나님이 남겨두신 거룩한 남은 자(holy remnants)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복음역사를 다시 굳건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복음역사는 믿음으로 살고 있는 남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이 친히 이루어나가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일어나라고 명하십니다. 깊은 영적 잠에서, 자족하는데서, 이기적인 삶에서, 안일과 게으름에서, 절망에서, 적당주의에서, 불신에서 깨어나서 주님과 함께 복음역사를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더 이상 안일의 자리에 누워 지내지 말고 일어나서 주님과 함께 복음역사를 섬기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노라” 이 말씀의 요지는 ‘회개하라 그러지 않으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회개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의 평판으로 만족하던 데서 돌이켜 처음 받은 것을 생각하고 지키는 것입니다. 처음 받은 것, 곧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에는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자 투쟁하였습니다. 오히려 그때는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 때 그들의 믿음은 건전하였고 열매도 맺게 되었고 자연히 세상에서도 좋은 평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의 평판에 눈이 어두워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순수한 믿음을 잃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이 처음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고 어린아이 같이 단순히 순종하던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죽은 상태에서 살아나는 유일한 길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평판은 참된 것일 수 없고 오래 가지도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일점일획도 어김없이 이루어지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회개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은 도둑 같이 이르러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 진리 위에 서기는 어려워도 망하는 것은 순간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들의 인정이나 평판에 연연하지 말고 순수하게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처음 받은 것, 순수하였던 그 때로 돌아가서 새 출발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은 이런 가운데서도 사데 교회에 희망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 그들이 누구며 어떤 옷을 입고 있다는 것입니까?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믿음의 사람이요 이 옷을 더럽히지 않고 믿음의 절개를 지키는 그 시대에 남은 그루터기들입니다. 그 시대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고 새 삶을 출발하였지만 세상 죄의 탁류에 더럽힘을 받아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은 죄악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물질주의, 육신주의의 세상 흐름에 자신을 맡겨둔 채, 인본주의의 헬라철학에 영향을 받아 순수 복음신앙이 변질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소수의 남은 자들이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순수 복음신앙을 지키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주님과 함께 하기에 합당한 자라고 평하십니다. 주님은 복음신앙으로 무장하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을 귀히 여기시고(be worthy) 그들과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의 인정과 칭찬을 바라고 살아갑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주님은 의의 옷을 더럽히지 않고 믿음의 절개를 지켜나가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실 영광스러운 약속이 무엇입니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5)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입니다. 이는 완전한 구원이요 영생의 약속입니다. 죄악된 세상에서 온갖 무시와 박해를 받는다 해도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 않도록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흰옷을 입고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지워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6)

Ⅱ.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7-13)
  7절을 보십시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빌라델비아 교회에 편지를 보내시는 주님은 다윗의 구원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 열쇠로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이 주님께서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아무도 닫을 수 없는 열린 문을 두었다고 기쁜 소식을 전해주십니다.(8) 이들이 이렇게 엄청난 은혜와 특권을 받는 것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작은 능력을 가진 자에 불과한 그들이었지만 주님의 말씀을 지켰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세상의 거센 죄의 탁류에 대항하여 끝까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운 것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이런 자에게 항상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그들이 처한 환경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족 유대인들의 거짓 고소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을 참소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이라 하지만 실상 사탄의 회당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들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 가운데 몇 명을 일벌백계로 다스려 성도들 앞에 무릎을 꿇어 절하게 하시겠다 하십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성도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증거로 삼기 위함이었습니다.(9) 또한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 장차 온 세상에 임할 시험을 면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10) 이 시험은 누구나 다 받게 될 것이지만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에 이를 면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현재 받는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이 가진 믿음과 말씀을 굳게 잡아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도록 하라고 격려하십니다.(11)
  그리고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인내의 말씀을 굳게 지키며 믿음의 중심을 흩트리지 않는 자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를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셔서 결코 다시 나가지 않게 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입니다. 이 성전에 기둥이 되고 또 다시 나가지 않게 된다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힘든 시대에 믿음으로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고귀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과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 약속하십니다. 이는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의 내면에 하나님의 형상과 구원과 영생의 확신을 새겨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인내로 말씀을 지키는 삶은 당시에는 고되고 힘들지만 그 열매는 달고 영광스럽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더불어 주님의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아가는 작은 교회였지만 주님의 칭찬과 위로와 격려를 받은 모범적인 교회였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주님의 인내의 말씀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인내의 말씀이라 하신 것을 볼 때, 그들의 말씀 중심의 삶이 인내가 필요한 고난이 따르는 것이었음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주님의 인내의 말씀은 그들을 강하고 담대하고 신실하고 지혜롭게 하였습니다. 말씀은 그들에게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믿음을 공급해주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을 기뻐하시고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힘쓰고 애써 해야 할 일은 날마다 주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남아 있고 말씀에 순종하고 지키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의 은혜를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Ⅲ.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14-22);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하시는 주님은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분”이십니다.(14) ‘아멘’ ‘충성’ ‘참된 증인’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는 모두 절대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룩한 직함입니다. 주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서는 바로 충격적인 책망을 하십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15절을 보십시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들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하였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역겹게 신앙생활 하는 자들을 입에서 토하여 버리리라 엄히 경고하십니다.(16) 그러나 주님의 이 책망은 그들이 뜨거워지기를 바라는 데서 나왔고 동시에 미지근한 것에 대한 탄식이었습니다. 미지근한 것이 너무나 역겨워서 차라리 찬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차기라도 하면 복음을 들을 때 무언가 반응이 있습니다. 그런데 미지근하면 회개의 필요성도, 복음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명목상의 그리스도(nominal christian)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차라리 찰지언정 미지근하면 안됩니다. 스펄전은 미지근한 신앙에 머물러 있는 영국 교인들에게 마음 아프게 질타하였습니다. “나에게 12명의 진지한 심령들을 주십시오. 나를 런던의 어떤 곳에 내려놓아 주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좋은 도우심으로 광야와 적막한 땅으로 하여금 즐거워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마음을 절반만 바치고 결단력이 없고 관심 없는 여러분 모두를 주신다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여러분은 단지 사람들의 열정과 진정을 뒤로 잡아당기는 걸림돌이 될 뿐입니다. 미지근한 교인 오천 명은 오천 개의 장애물일 뿐입니다. 미지근한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것이 낫습니다”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미지근하게 되었을까요?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핍박도 없고 어려움도 없고 물질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타락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일시적인 평안과 물질적인 부를 영적인 부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 주님의 말씀에 관심을 쏟지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은 점점 주님께 대한 뜨거웠던 마음이 식어졌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주님께 차갑게 대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 걸치고 어중간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지혜로운 자 같지만 주님은 ‘너희들이야말로 얼마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어 있고 벌거벗었는지’ 조목조목 그들의 죄를 지적하십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미지근한 삶에서 속히 나오도록 간절히 권면하십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첫째,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불로 연단한 금’은 불순물이 제거된 순수한 믿음을 가리킵니다. 왜 뜨거웠던 사람이 미지근하게 됩니까? 내면에 불순물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도 사랑하지만 세상도 사랑하고, 또 믿음으로 살고자 하지만 동시에 물질을 의지하고, 자녀들을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가르치지만 동시에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고 싶은 불순물이 마음에 파고들어올 때 주님으로 향하였던 뜨거웠던 열정은 사라지고 마음은 미지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불순물은 나의 힘과 의지로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불과 같은 시련과 연단을 통해 얻어집니다. 불같은 시련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지만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고(히12:11), 뜨거웠던 마음을 회복하게 됩니다. 둘째, 흰 옷을 사서 입고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흰 옷은 순결한 의의 옷, 곧 주님의 보혈로 씻음 받은 믿음의 옷입니다.(7:14) 그들이 미지근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힘과 의지로 버티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삶을 자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런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강한 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좋은 본이 되는 것처럼 자기를 자랑하였지만 주님은 이들에게 다시금 흰 옷을 사서 입고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할 때 뜨거웠던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미지근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눈이 병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병들면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오해가 많고 가치관이 비뚤어집니다. 진리의 말씀을 보지 못하니 심령이 곤고하고 피곤해집니다. 영적인 눈이 병들면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어둡고 편협한 자기 세계에 갇혀 살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은 염려와 불안으로 가득 차 뜨거웠던 심령이 미지근하게 됩니다. 주님은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십니다. 안약은 진리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그들의 눈이 치료되어야만 올바른 가치관,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을 소유하고 주님 오실 때까지 뜨겁게 주와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저절로 뜨거워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뜨거웠던 사람도 미지근해집니다. 우리는 불로 연단한 정금 같은 믿음을 덧입고,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고 심령이 새로워지며,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과 세상을 올바로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만이 뜨거웠던 초기 마음을 회복하고 열정적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들 모두를 주님께로부터 사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심령이 뜨거워지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이들을 사기 위해 투자하라는 것입니다. 다른데서 얻을 수 없고 오직 주님께로부터 살 수 있습니다. 19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메시지를 듣고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낙담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열심을 내어 회개하기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예수님은 문밖에 서서 우리 인생들 속에 들어오시기 위해 안타깝게 문을 두드리십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도 그에게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게 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 교제입니까? 이는 주님과 한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문을 열기만 하면 주님은 내 속에 들어와 함께 하시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실 것입니다. 미지근한 마음 상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의 문밖으로 추방하였던 예수님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심령에 들어오시기만 하면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심령을 뜨겁게 해주실 것입니다. 이런 자에게 주님은 또 다시 귀한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21) 승리하신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보좌에 앉는 것같이 승리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보좌에 그와 함께 앉아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영원히 공유하게 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22)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떠합니까? 한 때 뜨거웠다가 지금은 미지근해진 상태가 아닙니까? 주님은 이런 우리가 다시금 뜨겁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시기에 정금과 흰옷과 안약을 파시기 위해 종일 소리를 지르십니다. 하지만 아무도 응답이 없자 집까지 찾아와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부디 마음 문을 여십시오!” 우리를 뜨겁게 하는 것을 얻는 방법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요,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다시 모셔 들여서 뜨거움을 회복합시다. 나 자신의 심령에 불이 붙고, 가족과 교회와 온 나라에 희망의 불을 붙여 뜨겁게, 열정적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섬기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4 창세기 [창세기 영어예배 1강] 리스닝 2010-02-11 2899
73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6강]천년동안 왕 노릇하리라 리스닝 2010-02-07 2925
72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5강] 어린양의 혼인잔치 리스닝 2010-02-02 2575
71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4강] 거기서 나와라 - 권영진 휴화산 2010-01-25 2454
70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3강] 이길 것이다 휴화산 2010-01-19 2690
69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 제12강] 자기 옷을 지키는 자-고영훈 휴화산 2010-01-14 2655
68 갈라디아서 [2010년 신년제2강] 성령을 좇아 행하라 휴화산 2010-01-14 2873
67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서홍일 휴화산 2010-01-14 2764
66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김반석 휴화산 2010-01-14 2874
65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최동진 휴화산 2010-01-14 2413
64 로마서 [2009 송년예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휴화산 2009-12-29 3043
63 누가복음 [2009년 성탄예배제3강]구유에 누인 아기- 최베드로(12.20) 휴화산 2009-12-22 2938
62 누가복음 [2009년성탄예배제2강]구원의 뿔 - 권영진(2009.12.13) 관리자 2009-12-13 2642
61 누가복음 [2009년성탄예배제1강]은혜를 입었느니라(2009.12.6) 관리자 2009-12-06 2809
60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1강]믿음을 지키는 자 관리자 2009-11-29 2288
59 하박국 [2009년추수감사예배]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관리자 2009-11-22 2450
58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2726
57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기드온의 삼백 용사(주니어팀-천수원.. 관리자 2009-11-09 3247
56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큰용사여(주니어팀-함바나바) 관리자 2009-11-09 4088
55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3089
1,,,313233343536373839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