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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0-04 (일) 12:38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09요한계시록5-1.hwp (31KB) (Down: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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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제5강]보좌에 앉으신 분
2009년 요한계시록 제 5강

보좌에 앉으신 분

말씀: 요한계시록 4:1-11
요절: 요한계시록 4: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기독교 극동방송에서 어떤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추석명절을 보내고자 고향을 향하여 가는 사람들의 간절함이 천성을 향하여 가는 성도들의 믿음의 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요지였습니다. 3000만 명의 대 이동으로 인해 고속도로는 정체되고 사고도 많고 짜증스럽게 만들지만 사람들이 즐겁게 고향을 향하여 가는 것은 그곳은 자기가 난 곳이요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늘나라 본향을 향하여 가는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본향으로 가는 길이 고되고 험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믿음으로 산 자녀들을 사랑으로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시니 기쁘고 즐겁게 갈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천성을 향해 가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성부 하나님을 보여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지금까지 일곱 교회에 대한 격려와 위로와 책망의 메시지를 끝맺고 앞으로 있을 일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이제 장면이 지상에서 천상으로, 현세에서 장래 일로, 지상의 교회에서 하늘나라의 보좌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는 환난과 고난 중에 있는 사도 요한과 교회 성도들과 오늘날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과 위로와 힘이 됩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 믿음으로 천상의 하나님 보좌를 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곳에서 절대 주권과 권세로 세상을 그 뜻대로 다스리시는 성부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1-4)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이 일 후’는 요한계시록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로서 새 장면이 전개될 때 계시의 사실성과 현장성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말씀입니다. 초청자는 사도 요한에게 장차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보여주시고자 천상으로 그를 초청하십니다. 그를 초청하시는 분은 처음부터 나팔 소리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시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주님은 열린 문을 통해 사도 요한을 하늘 왕궁으로 초청하십니다. 이때 요한은 성령에 감동된 상태, 곧 성령 안에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육신을 입고 있으면서도 천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환난과 감금과 박해 가운데서도 성령 안에 거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님은 이런 요한에게 놀라운 광경을 보여주셨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2) 사도 요한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하늘 성전의 한 가운데 있는 ‘보좌’였습니다. 보좌가 무엇입니까? 다스림과 통치를 상징합니다. 그 보좌는 비어있지 않고 그 위에 창조주 하나님이 앉아 계셔서 지고(至高)하신 위엄과 영광 가운데 온 세상을 다스리고 계셨습니다.
  3절에는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앉으신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보좌에 둘렸고 그 모양이 녹보석 같았습니다. 왜 하나님의 모습을 각종 보석으로 묘사하였을까요? 영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인간의 말이나 글로써 표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보석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석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의 형상을 극대화하고자 하였습니다. 벽옥은 대 제사장의 흉패에 붙인 보석의 하나로서 맑고 순수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는 것이요, 홍보석은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상징하고, 무지개는 다시는 홍수로 심판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순결하시고 공의로우시며 자비로 충만하십니다. 사람들은 무지개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무지개의 구원과 함께 공의로운 심판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구원과 심판을 위하여 자비와 공의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그 백성을 주권적으로 구원하시고 믿지 않는 자를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4절에는 성부 하나님이 앉아계신 보좌 주위로 24 보좌들이 둘려 있고 그 위에 흰옷을 입은 24 장로들이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12지파와 신약의 12사도를 가리키는 숫자로서 온 세상 교회의 대표를 상징합니다. 흰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씻음 받고 정결케 되었음을 나타내고, 이들이 쓴 금관은 승리자에게 주는 빛나는 면류관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환난과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끝까지 믿음의 지조를 지켰을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부끄러울 것이 없이 똑 바로 산 승리자들입니다. 믿는 자의 승리는 악의 세력을 무력으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악의 세력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승리한 이들에게 금 면류관을 씌어주셨고 하나님의 보좌 옆에 교회의 대표자 자리에 앉게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가장 먼저 하늘나라의 보좌를 보여주신 것은 다스림의 주체가 누군가를 깨우쳐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과연 누가 세상을 다스리는가?” 세상은 로마 황제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지고, 하나님이 진정한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당시 세상역사의 중심에는 로마황제가 있었고 믿음의 사람들은 온갖 박해와 순교까지 당하는 극한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요한 자신도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다가 붙들려 밧모섬에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암담한 형편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가 세상을 통치하는가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더구나 믿음으로 살다가 박해를 받으면 손해 보는 어리석은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현상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믿음으로 살았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때, 복음역사에 헌신했는데도 눈에 보이는 열매가 없을 때 꼭 이렇게 믿음으로 살아야 하나 의심과 회의에 빠집니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재앙의 소식을 들을 때 과연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우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체는 힘든 현상 세계만 바라보다가 믿음을 잃고 하나님은 죽었다 하며 신성모독의 망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에 의해 창조 되었듯이 그 역사도 보좌에 앉으신 분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공동체의 시선은 현상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오직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통치를 믿어야 합니다. 이때 현상 세계를 왜곡됨 없이 제대로 볼 수 있고 이런 세상에서 정말 힘써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올바른 판단이 서게 됩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청년의 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왔습니다. 그는 멸망으로 치닫고 있는 절망적인 시대에 태어났지만 좋은 집안에서 명석한 머리와 잘 생긴 외모를 가지고 태어나 역경의 때에 전화위복으로 선진국에서 고국에 있을 때보다 더 좋은 대접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키고자 이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세상 상식 밖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의 선택은 혈기 넘치는 젊은 시절 한 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세상 왕조가 네 번씩 바뀌기까지, 인생을 마칠 때까지 끝까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시련의 때가 있었습니다. 그가 그토록 힘쓰고 애써 자기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기도하였지만 그들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강대국들의 횡포는 더욱 거세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에서 돌이킬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선지자 다니엘은 노쇠하였고 피곤하고 지쳐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옛적부터 항상 계신 보좌에 앉으신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이 그를 섬길 것이며,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을 영원한 것임을 보여주셨습니다.(단7:13,14) 다니엘이 이 하나님과 그 통치를 보게 되었을 때 다시 힘을 덧입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회복하고 구속역사를 끝까지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 힘들어하는 사도 요한을 위해 힘든 상황을 개선시켜주시기보다 천상의 실체를 보여주심으로써 소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복음역사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신자는 하늘 보좌에 앉아서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눈에 보이는 현상 세계에 머물러 있지 말고 그 너머 천상의 보좌에 앉아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통치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역사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찬양하세(5-11)
  본문에는 성부 하나님께 대한 경배와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하는 실체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과 24 장로들입니다. 5절을 보십시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입니까? 사도 요한이 지금까지 세상에서 본 어떤 광경도 이보다 두렵고 위엄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살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위엄과 능력을 지니신 심판 주의 모습이요, 택하신 백성에게는 능력과 권위로 지키시고 선하게 인도하시는 보호자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보좌 앞에 켠 일곱 등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자비하신 영이시오 동시에 심판하시는 영이십니다.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6)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는 성부 하나님의 거룩함과 순수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맑은 유리 같이 투명하여 누구도 거짓을 숨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 앞에 진실되게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 하나님 주위를 날고 있는 네 생물들은 이사야 선지자가 본 스랍들(사 6:1-3)과 에스겔 선지자가 본 그룹들(겔 10:2,14)로서 높은 지위의 천사들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본 천사들의 모습을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첫째 생물은 용맹스러운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충성스러운 송아지 같고, 셋째 생물은 지혜로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빠르고 강한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생김새는 각각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여섯 날개와 안과 주위에 가득 있는 눈들을 가졌습니다.(6a) 여섯 날개를 가졌다는 것은 기동성과 신속성을 의미하는데 성부 하나님의 명령을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날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앞 뒤에 눈이 가득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엄청난 지식에 감명을 받은 지혜로운 존재로서 쉬지 않고 관찰하고, 끊임없이 경성하고, 부단히 통찰함으로 하나님의 심판 사역에 봉사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현재 이들이 쉬지 않고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8b절을 보십시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그들은 여섯 날개로 날면서 쉬지 않고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찬양제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거룩하심(holiness)입니다. 이를 세 번 연속하여 찬양하는 것은 강조를 넘어서 ‘완전’과 ‘최상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이 하나님의 통치의 궁극적인 목표는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섬김과 사랑과 오래 참음과 책망도 거룩함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첫째 찬양제목도 하나님의 거룩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 둘째로, 전능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원하시는 것과 계획하신 것을 조금도 어긋남 없이 다 이루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뜻대로 우주 만물을 다스리고 이끌어 가십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어긋나는 것은 어떤 세력도 굴복시키십니다. 세상 권력이나 물질의 힘도 막강합니다. 그러나 이런 피조물의 힘으로는 죄와 사탄의 권세를 굴복시킬 수 없고 사람의 마음을 다스릴 수 없습니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들을 그 뜻대로 다스리시고 복종시킬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에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셋째, 영존하심입니다. 천사들은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계신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만드신 창조주시오 범죄한 인간들을 위해 구원을 약속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제도 계신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라는 뜻입니다. 장차 오실 하나님은 심판하실 하나님, 영원히 살아 계셔서 장차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길이길이 왕 노릇 하실 왕의 왕, 주의 주이심을 나타냅니다. 네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영존하시는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렸습니다.(9) 이 하나님 외에 어떤 것에게도 경배와 찬양을 드리면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만이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10,11절에는 24 장로들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경배하고 찬양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경배할 때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들에게서 ‘관’은 승리의 면류관으로서 죽도록 충성한 것에 대한 위로요 상급이요 열매입니다. 그들은 이 영광의 관을 얻고자 온갖 환난과 박해와 멸시와 조롱도 참았으며 여러 힘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믿음의 선한 경주를 끝까지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딤후4:7,8) 그런데 그들은 이 관을 성부 하나님께 되돌려드렸습니다. 이는 그들이 받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은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은 그들의 영광보다 무한히 더 큰 완전한 영광이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것이 곧 자신들의 영광이요 진정한 상급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24 장로들의 하나님께 관을 드리며 찬양하는 모습은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좋은 신앙의 본이 됩니다. 신앙이라고 다 똑 같은 것은 아닙니다. 신앙에는 성숙의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초보 단계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지 못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히11:6) 둘째 단계는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것을 받고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믿음이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에 대해 범사에 감사하는 성숙한 신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가장 성숙한 신앙은 받은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신앙의 단계입니다. 많은 것을 받고서도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관을 드려 찬양하는 것은 내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상급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됩니다.
  그들의 찬양제목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주께서 만물을 그의 뜻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께 대한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공통적인 찬양 제목은 만물을 주의 뜻대로 지으시고 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찬양하는 것은 거룩하심과 전능하심과 영존하심을 찬양하는 것이요, 이 하나님은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그 사역을 찬양하는 자는 어떤 경우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박해와 유혹 가운데서도 인생방향을 흩트리지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꿋꿋이 살아갑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복음역사를 섬기면서 실패로 인한 아픔도 맛보고, 어려움도 만나고, 조롱도 당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 삶의 전부인가 생각하면 믿음으로 사는 삶이 의미 없어 보이고 슬픈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다는 아닙니다. 현상 세계 저 너머에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믿는 우리를 선하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모든 것을 보시며 선악간에 행한 대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느라 수고하는 성도들의 모든 수고를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찬송으로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찬양하는 자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회복하고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가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시간에 우리의 눈을 들어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 성부 하나님과 그 영광과 공의와 자비와 통치를 바라봅시다. 우리가 이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찬양하며, 모든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돌려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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