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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0-11 (일) 12:43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09요한계시록6-1.hwp (60KB) (Down: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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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요한계시록제6강]어린양 사자
2009년 요한계시록 제 6강

어린양 사자

말씀: 요한계시록 5:1-14
요절: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4장에서 하늘보좌에 앉아 세상역사를 주관하시는 성부 하나님을 배웠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성자 예수님에 대해 증거합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어린양 사자’입니다. 이는 희생을 통한 승리, 고난을 통한 영광, 죽음을 통한 부활의 복음진리를 나타냅니다. 이 시간 우리가 어린양 사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고난의 의미와 승리의 비결을 배우고 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 사자(1-6)
  1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두루마리가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하나님의 보좌를 주시하던 사도 요한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성부 하나님의 오른 손에 들려져 있는 두루마리였습니다. 두루마리는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 계획을 담은 비밀문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두루마리가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다는 것은 성부 하나님이 계시의 최고 권위자시오 집행관이시오 완성자이심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자세히 보니 보통 두루마리와는 달리 이곳에는 글이 안팎으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는 얼마나 내용을 빈틈없이 충실히 기록하였고, 앞으로 있을 일이 하나님의 완전무결한 뜻과 계획 가운데 진행될 것임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이 두루마리는 일곱 인으로 완전 밀봉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큰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누가 그 두루마리를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2) 인을 뗀다는 것은 두루마리의 내용을 계시하는 것과 집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앞으로 있을 ‘역사의 주관자가 누군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 어디에도 능히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할 자가 없었습니다.(3)
  4절을 보십시오. “그 두루마리를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아니하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요한은 복음역사를 섬기느라 온갖 어려움을 다 겪은 사도였지만 지금까지 어떤 고난과 환난도 참고 견디며 눈물을 보이지 않았는데 두루마리를 개봉하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자가 없는 것을 보고는 크게 소리를 내어 울고 있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노종이 큰 소리로 울겠습니까? 아마도 사도 요한의 머릿속에 지금도 고통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성도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요한은 양떼들이 말씀을 듣지 못해 실망하는 모습을 생각할 때 깊이 낙심이 되고 주체할 수 없는 큰 슬픔으로 소리 내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제발 이 인봉된 두루마리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성부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는 계시에 대한 요한의 믿음과 고난 가운데 있는 양들에 대한 목자의 눈물의 기도였습니다. 이때 장로 중 한 사람이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5) ‘울지 말라’는 것은 이제 그 인을 뗄 자격을 갖춘 분이 나타났기 때문에 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유대 지파의 사자요 다윗의 뿌리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 믿음의 조상 야곱은 유다를 가리켜 새끼 사자라고 하였고, 실로가 오시기까지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예언하였습니다.(창49:9,10) 사자라는 칭호는 고난당하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지배하는 왕으로서의 메시야를 칭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뿌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동물의 왕 사자와 같이 지혜와 모략과 능력을 두루 갖춘 왕의 왕 주의 주이십니다. 그러나 지혜와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역사의 주관자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의 뿌리에서 난 약속된 메시야로서 죄 많은 인생들을 위해 죽기까지 자신을 희생하심으로써 죄와 죽음권세를 이기셨기 때문에 능히 인을 뗄 자격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제 요한의 시선은 이 분으로 향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에게 보이신 주님의 모습은 어떠하였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 분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 곧 중보자의 위치에 계셨습니다. 요한이 자세히 보니 이 분은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았던 어린 양의 모습이었습니다. 일찍이 선지자 이사야도 어린양 메시야를 예언하였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사자의 모습에서 죽임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바뀐 것은 어린양으로서 희생을 통하여 사자의 권세와 영광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은 희생 제물로 도살당하셨습니다.(be slaughtered as a sacrifice) 어린양이 죽임 당하신 것은 힘이 없어서도 아니요, 권세가 없어서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치신 것입니다. 어린양은 연약한 모습이지만 일곱 뿔과 일곱 눈을 가졌습니다. 일곱 뿔은 완전한 권세와 능력을, 일곱 눈은 완전한 지혜와 통찰력을 상징합니다. 이 어린 양에게서 성령이 나옵니다. 성령님은 온 세상의 사역을 섭리하시는 성자의 대행자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주님은 더 이상 무덤에 계시지 않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성부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로 세상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성자는 최고의 희생을 통해 최고의 권세를 얻으심으로 인을 떼기에 합당하신 분이 되셨습니다.
  사도 요한이 듣고 본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린양 사자(the Lamb Lion)'의 서로 상반되는 특이한 모습입니다. 주님은 본래 하나님과 동등 되신 분이시지만 성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을 단번에 희생 제물로 드려 온전한 제사를 드리심으로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어린양 사자는 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서 성도들에게 승리의 비결과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원칙을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은 세상을 힘으로 제압하는 폭력의 방식이 아니라 섬김과 희생의 방식으로 모든 무릎을 그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빌2:9,10) 세상은 승리를 위해 사자가 되는 길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린양의 희생을 통해 강해지는 진정한 승리의 길을 제시합니다. 당시 세계는 누구도 로마의 힘을 당할 자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교회도 로마의 다스림 아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다”고 엄포를 놓았습니다.(요19:10) 이에 대해 예수님은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라”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양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역사의 주관자시요 집행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어린양 사자의 모습으로 사도 요한에게 현재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과 희생은 실패가 아니라 승리의 과정임을 깨우쳐주시고 끝까지 이 길을 가도록 믿음과 소망을 심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 힘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주 안에서 승리의 인생을 살기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십자가를 패배와 저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의 전제로 영접하고 이 역설적인 진리를 우리의 삶 속에 펼쳐 보여야 하겠습니다. 고난을 통한 영광의 길,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써 많은 열매를 맺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눈에 보이는 박해는 없지만 사탄의 보이지 않는 달콤한 유혹이 우리를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패배의 길로 가게 만듭니다. 십자가를 지기도 전에 십자가의 고난을 두려워하고 쉽고 편안한 길을 가도록 유혹합니다. 십자가 없는 편안한 길이 승리의 길이라고 거짓 확신을 심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길은 패배의 길이요 실패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은 죽음과 심판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는 어린양 사자의 길이 생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임을 확신하고 믿음으로 찬송을 부르며 이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누가 역사의 주관자가 되기에 합당합니까? 힘이 센 로마입니까? 지혜로운 헬라입니까? 다만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신 어린양 사자,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관자 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복음역사를 위해 사자의 강한 힘을 얻기 원하지만 이를 위해 희생하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러나 합당한 권세를 얻기 위해서는 능력이나 지혜의 많고 적음보다 하나님의 역사를 사랑하고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 지도자는 희생을 통해 강해지고 지도자의 권세와 권위를 얻게 됩니다. 주님은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를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우리가 어린양 사자이신 그리스도를 본 받아 오직 믿음으로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영육간에 강한 자가 되고 주와 복음역사를 감당할 자격과 권세를 갖춘 하나님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 사자(7-14)
  7절을 보십시오. “그 어린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두루마리를 취하시니라” 이 말씀은 성자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두루마리를 취하심으로 모든 권한을 위임받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장차 모든 사역을 집행하는 권세를 성자에게 위임하십니다. 이제 세상의 모든 역사가 어린양을 통해 성취될 것입니다. 어린양이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자 네 생물들과 24 장로들이 그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새 노래로 찬양하였습니다. 금 대접 안에 있는 향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8) 성도들의 기도는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고 어린양을 경배할 때 향이 되어 주님께 상달됩니다.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기도의 중보자이십니다. 9,10절에는 네 생물들과 24 장로들의 찬양제목이 나옵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위임식이 끝남과 동시에 모든 경배가 어린양에게 집중됩니다. 이는 구속의 노래(the song of redemption)요, 기쁨의 노래(the song of delight)입니다. 그들은 인을 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합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이유는 일찍이 죽임을 당하심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피로 사셔서 하나님께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은 힘으로 강제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들의 죄에 대해 자기 목숨으로 대신 값을 치르시고 정당하게 사셔서 하나님께 바치셨습니다. 어린양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천사들의 찬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어린 양이 이렇게 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죽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왕국과 제사장이 되게 하는데 있었습니다. 구속받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왕 같은 제사장이 됩니다. 이 천사들의 찬양은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하늘나라의 소망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강한 자부심을 갖게 합니다. 현재 신자들은 환난과 박해로 정든 고향에서 쫓겨나 정처 없는 나그네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산 결과가 이런 것인가?’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실패감에서 오는 슬픔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그들은 자녀들에게 ‘우리 세대는 그렇다할지라도 너희들은 우리같이 살지 말라’ 하며 잘못된 가르침을 전수합니다. 그러나 천사들의 찬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받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요,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는 그리스도의 지체요 한 가족입니다.(롬8:17) 그러나 그 고난조차도 깊이 생각해보면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박해와 손해로 움츠러들 것이 아니라, 이 영광스러운 희망을 붙들고 오직 믿음으로 어두움의 세상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교회는 구속받은 성도들의 모임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왕 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는 거룩한 신앙 공동체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우리의 감사제목과 찬양제목이 무엇입니까?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기만을 기다리며 이를 찬양제목으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노의 자식에 불과하였던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왕 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여 주시고 귀히 쓰시는 이 부르심의 은혜야말로 만 입이 있어도 다 찬양할 수 없고 밤낮으로 찬양해도 부족할 뿐입니다.
  11-14절은 수많은 천군 천사와 모든 피조물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장면입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11,12)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들의 한결 같은 찬양 제목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하는 이유도 내 대신 죽임을 당하시고 우리에게 죽음과 심판에서 온전한 구원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비참한 죄인을 위해 대신 죽임을 당하시고 참된 평화와 구원을 베풀어주신 어린양만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여기서 능력은 전능을, 부는 영적인 풍요와 충만함을, 지혜는 근본적이고 영원한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그 집행에서 드러나는 참된 지혜를 가리킵니다. 힘은 능력을 나타내는 내재적인 원동력이요, 존귀는 하나님께만 돌리는 영광이요, 영광은 존귀를 포함한 하나님의 광채를, 찬송은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에 대한 합당한 반응을 말합니다. 이상 7가지의 찬양 내용은 온전하고도 충만한 찬양으로서 어린양에게 바치는 우리의 찬양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천사들의 찬양에 이어 하늘 위와 땅 위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도 함께 어린양에게 찬양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찬양에 대해 네 생물이 아멘으로 화답하였고, 24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14)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찬양하라는 것이 계시록의 주제입니다. 이는 또한 우리의 신앙생활의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어린양을 찬양하라는 것은 그 거룩한 인격을 찬양하는 것이요 우리를 위해 행하신 그 일을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양을 찬양하는 것은 어린양을 나의 구주요 세상 역사의 주관자로 믿고 영접한다는 신앙고백이요, 애정과 경배를 드린다는 헌신과 충성의 표시오, 어린양만을 의지하고 섬기겠다는 믿음의 결단을 드리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어린양을 찬양한다는 것은 이 분이 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이 생명의 길이요 승리의 길임을 고백하고 이 길을 따르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이요 은혜와 특권으로 여기고 이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 내가 누구를 찬양하는가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누구를 찬양하느냐는 생명이냐 사망이냐, 승리냐 패배냐, 영생이냐 심판이냐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다만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수님께 경배와 찬양을 돌려드려야 하겠습니다. 당시 로마는 Pax Romana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인류에 평화를 주는 로마황제를 찬양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력과 법으로 유지되는 로마의 평화는 거짓 평화요 섬김과 찬양을 강요하는 로마황제는 찬양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은 육신을 찬양합니다. 물질을 찬양합니다. 세상 명예와 권세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구원과 참된 평화를 주지 못합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죽임 당하심으로 구원과 평강을 주신 어린양만이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어린양을 찬양하는 자는 세상을 뒤돌아보지 않습니다. 어린양을 찬양하는 자는 불확실한 장래 일로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린양을 찬양하는 자의 심령은 사탄의 유혹이 지배할 수 없습니다. 어린양을 찬양하는 자에게 주님은 구원의 주가 되어 주시고 하늘나라의 소망과 평강과 기쁨을 넘치도록 부어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인을 떼시고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어린양은 역사의 주관자시오, 왕의 왕 주의 주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거룩하심과 죽임 당하신 사랑과 희생의 역사를 인하여 영혼을 다하여 찬양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고난을 극복하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와 복음역사에 온전히 헌신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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