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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10-18 (일) 13:20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요한계시록
첨부#1 2009요한계시록7-1.hwp (77KB) (Down: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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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요한계시록제7강]셀 수 없는 큰 무리(쓰리랑카선교사-백바나바)
2009년 요한계시록 제 7강(쓰리랑카선교사-백바나바)

셀 수 없는 큰 무리

말씀: 요한계시록 6;1-7:17
요절: 요한계시록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오늘 말씀은 어린양 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인을 떼시는 장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곧 앞으로 다가올 재앙을 말해줍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구원의 주가 되신 어린양이 심판을 주관하시는 주가 되신 것입니다.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지만 이런 심판 가운데서도 어린양의 충만한 자비의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심판과 구원의 놀라운 복음역사를 배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속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인을 떼시는 어린양(6장)
  1,2절을 보십시오.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속 진행되는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도 요한의 눈에 드디어 어린양이 일곱 인을 떼시는 장면이 들어왔습니다. 성부 하나님께 눈물로 호소하던 요한이었기에 어린양이 인을 떼신다는 것은 감격 그 자체였습니다. 첫째 인을 떼시는 순간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같이 큰 소리로 요한을 오라고 초청하였습니다. 요한이 가서 보니 흰 말이 있고 그 탄자는 손에 활을 가지고 있었고 면류관을 받고 싸우러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백마는 전쟁 시에 대장이 타는 말입니다. 백마를 탄 자가 활을 가지고 면류관을 쓰고 나가는 모습은 활로 적진을 물리치고 최후의 승리를 얻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장수는 이기고 또 이기는 오직 승리만이 있는 백전노장입니다. 이는 복음 역사가 이기고 또 이기는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사단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세상에서 실패하고 낙오 될 것이라는 두려움을 심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군사로 모집받은 성도들은 주님과 함께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결단하고 나가는 자는 이미 세상을 이겼고 또 이길 것입니다. 비록 과정에서 손해도 보고 멸시와 천대를 받기도 하지만 끝까지 믿음의 삶을 자들에게 하나님은 승리의 면류관을 예비해두셨습니다.

  이제 어린양이 둘째 인들 떼시자 다른 붉은 말이 나왔습니다. ‘붉은 말’은 피 흘림을 상징합니다.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고 서로 죽이고 죽는 참혹한 살상이 일어납니다. 이는 인간에 내재되어 있는 가인의 살인의 피로 말미암아 이 땅에는 진정한 화평이 없고 전쟁은 더욱 심화될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생명 경시풍조는 도를 지나 대량 살상무기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는 잔악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진리의 말씀으로 죄를 다스리지 않을 때 내면에 흐르고 있는 악한 피로 인해 생명을 함부로 죽이는 속성이요 하나님은 이것을 심판의 도구로 쓰시고 계심을 말해줍니다. 셋째 인을 뗐을 때 요한이 주시하여 보니 검은 말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5) 그 말을 탄 자의 손에는 저울이 있었습니다. 다시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한 데나리온은 어른 한 사람의 하루 품삯인데 그것으로 겨우 밀 한되나 보리 석 되밖에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가 치솟아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해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저울은 가치평가를 상징합니다. 사단은 검은 세력들 이용하여 저울을 조작합니다. 원유의 저울을 조작하여 한때 원유1배럴에 150불 까지 치솟았습니다. 주가의 저울을 조작하여 하루 아침에 주가가 휴지 조각이 되게 합니다. 식량의 저울, 환율의 저울을 조작합니다. 오늘날 빈곤의 문제는 생산력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덕성 파괴와 끝없는 탐욕이 원인입니다. 이로 인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 가진 자는 너무 많이 먹어서 각종 질병으로 고통 받고, 없는 자는 먹지 못해 배고픔으로 고통 받습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감람유와 포도주는 남겨두라 하시며 마지막 자비를 베푸십니다.

  넷째 인을 뗐을 때 청황색의 말이 등장하였습니다. 청황색(pale)은 죽음의 색깔로서 공포에 질려 창백해진 모습을 상징합니다. 청황색 말은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인데 음부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육신의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요 그 뒤에는 두 번째 죽음 곧 음부(지옥, Hades)에 빠지게 됨을 말해 줍니다. 죽음과 음부는 칼과 흉년과 사망(역병,plague)과 땅의 짐승을 도구로 삼아 땅의 사분의 일에 해당하는 지역을 죽음권세로 지배하게 됩니다. 재앙의 도구가 점점 잔인하고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한때 쥐를 매개로 한 페스트로 유럽인구의 삼분의이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인간에게 이로운 짐승인 소가 광우병을 일으키고 돼지는 스완 플루(flu) 새들은 조류 플루를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불러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 원인조차 알수 없는 치명적인 플루들이 전 세계적인 범위로 인류를 위협합니다. 하나님은 네 마리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강하고 빠르며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세력들에 대해 심판을 경고하시고,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속히 구원하시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그러나 사분의 일만 재앙을 내리겠다 하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완전 멸절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경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앙은 있지만 구원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재앙 중에서도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재앙이 인간의 죄로 인한 것임을 인식하고 욕심의 죄, 교만의 죄, 우상숭배의 죄, 불신의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는 자는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 들어오게 됩니다.
  다섯째 인을 뗐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이 다섯째 재앙은 교회도 예외가 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다만 이 재앙은 죄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 당하기까지 박해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이들의 순교의 피는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가 되어 복음역사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됩니다. 구약 시대에 희생 제물로 드려진 짐승의 피가 제단 아래에 부어졌던 것처럼 순교 당한 영혼들은 거룩한 제물로 하늘 성전 제단 아래에 살아 있습니다. 그들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히브리11:4) 그들은 큰 소리로 대 주재이신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합니다.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순교자들은 땅에 거하는 사탄의 종된 자들을 심판하심으로 그들의 피 값을 갚아달라고 주님께 호소합니다. 이들의 호소는 최후 심판을 향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리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주님은 순교자들에게 먼저 흰 두루마리를 입혀주십니다. 흰 두루마리는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며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하는 거룩한 삶을 산데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나타내는 옷이요 위로의 옷이요 상급입니다. 하나님은 죽기까지 고난당한 그들의 눈물과 아픔을 위로하시고 거룩한 흰 옷으로 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마지막 심판은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잠시 동안 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 이렇게 하신 것은 최후의 심판을 유보하시며 죄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땅에 남아 있는 성도들은 앞서 가신 순교자들같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도록 충성스럽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 역사는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랜만에 피슁하러 나간는데 영적 소원이 좋은 양을 만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두번의 일대일로 양이 화끈하게 변화 되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희생의 잔이 채워져야 합니다. 기도의 수가 채워져야 합니다. 인내의 날들이 채워져야 합니다. 순교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고 교회의 꽃이 되고 열매로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여섯째 인을 떼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12-14) 이 얼마나 가공할 일입니까? 이제 재앙이 땅과 우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창조 질서가 무너지고 해와 달이 빛을 잃고 하늘의 별들이 추풍낙엽같이 우수수 떨어지고 땅에서는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벗어나 옮겨질 것입니다. 심판의 영역이 땅과 우주로 확대됩니다. 이 재앙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지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 산과 바위에게 제발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의 하나님과 어린양의 진노에서 숨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 천사가 안타깝게 말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17) 진노의 큰 날이 이르면 모든 사람들이 어린양 앞에 서게 되고 각각 선악간에 행한 대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어린양은 자신의 희생적인 사랑을 거부하고 끝내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않으시고 최고로 엄한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누가 이를 피할 수 있습니까? 아무도 이 심판을 견딜 수 없습니다. 권세로도 부로도 능력으로도 주 앞에 설수 없습니다. 이 공의로운 심판 앞에 오늘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성도들은 거짓된 세상에서 진리의 증거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미움과 무시와 왕따를 당합니다. 그런다할지라도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야 할 이유는 최후의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죄에 대한 심판이요 동시에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종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는 날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공명정대하게 선악간에 행한 대로 상벌을 주십니다. 이 하나님을 의식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자 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눈을 뜨게 하사 하나님의 최후의 공의로운 심판을 보게 하시고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Ⅱ. 어린양을 찬양하는 셀 수 없는 큰 무리(7장)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이 일 후’란 진노의 큰 날에 누가 능히 서리요‘ 한탄하는 천사의 소리에 대한 답으로 그 진노의 큰 날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들, 곧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언급하기 위한 접속사입니다. 이 일 후에 요한은 하나님의 재앙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유심히 살피고 있습니다. 요한이 보니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사방에서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한 바람씩 붙잡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람은 곧장 불고자 몸부림치는데 천사는 이 바람이 불지 못하도록 막고 있어서 세상은 폭풍 전야와 같이 고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를 말해줍니다. 한편 또 다른 천사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3)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네 천사들이 바람을 막고 있는 이유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인을 친다는 것이 무엇이며 왜 인침을 마칠 때까지 바람이 불면 안 되는 것입니까?
  인(seal)은 고대 근동의 군주가 공식 문서에 효력을 가할 때나 가축이나 노예가 주인의 소유임을 표시할 때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어디서나 잘 보이도록 이마나 손목에 인을 쳤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을 치는 것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는 귀한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인은 하나님의 백성의 ID 카드와 같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권을 의심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내 몸에는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흔적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인입니다. 천지가 무너저도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까? 이는 하나님의 인이 쳐진 자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당신의 영광을 위해 부르셨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의 인이 심령에  쳐진 자입니다.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친 것을 보면 인치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하고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하나님의 종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여기시고 이를 이루시기까지 심판을 유보하십니다. 오늘날 말세의 징조가 만연한데도 최후의 심판이 유보되는 것은 인침을 받은 하나님의 종들의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기 위함입니다. 그런데도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무엇이냐?” 하며 하나님의 심판의 약속을 조롱합니다.(벧후3:3,4) 그러나 이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주님의 약속은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께서는 심판 받을 자들에 대해 오래 참으시며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4절에서 요한이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었는데 이스라엘의 12지파에서 똑같이 12,000명씩 뽑힘 받아 총 144,000명이었습니다.(5-8) 이들의 모습은 민수기1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군진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144.000명은 하나님 백성 전체를 의미하며 동시에 전투하는 공동체임을 상징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복음의 원수들을 향하여 복음의 깃발을 높이 들고 진군하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하나님의 군대는 그 가슴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인이 찍힌 자들이요, 모집한 자를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자기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요(딤후2:4),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을 소유한 자들입니다.(갈6:17) 교회 공동체는 계모임이 아닙니다. 교회는 상처를 치료하는 곳이지만 과거 상처를 붙들고 내적 치료에 연연하는 클리닉 센터로 지향 되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 죄악의 세력과 반기독교 세력과 싸우는 하나님의 군대(camp)가 되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이것은 또 무슨 뜻입니까? 요한이 자세히 보니 144,000명의 뽑힌 자들은 그가 들은 바와는 달리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뽑힌 자들로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넘어 세계 열방의 모든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은 자손을 허락하시리라 약속하신 대로 바로 그 믿음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서 큰 소리로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흰 옷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씻겨 졌고 세속에 더렵혀지지 않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요, 종려가지는 승리의 구원의 잔치에서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이 모습은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한 후 축하하는 군대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혼자 외로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144,000명으로, 아니 셀 수 없는 큰 군대입니다. 오합지졸의 군대가 아니라 이미 승리가 보장된 싸움을 싸우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현재는 이 땅에서 믿음의 싸움을 싸우느라 지치고 피곤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실패로 인해 패배감과 좌절을 맛보며 슬픔에 잠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어린양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고백한 사도 바울의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하나님의 군대로 거듭나기 위해 그리스도의 흔적이 새겨지기까지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고난을 통하여 순종을 배워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원수들과 싸울 수 있는 믿음의 용사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큰 무리의 찬양에 이어 모든 천사가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그러자 장로 중 하나가 이에 응답하여 요한에게 질문합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13) 이 질문은 그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질문을 유도한 것입니다. 요한은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며 알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장로 중 하나는 흰옷을 입게 된 과정과 그들이 받게 될 은혜와 특권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줍니다.
첫째, 흰 옷을 입게 된 과정:
  14b절을 보십시오.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큰 환난에서 나왔다는 것은 셀 수 없는 큰 무리도 어느 시대나 있을 수 있는 큰 환난을 만났고, 큰 환난으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지 않고 그 환난에서 믿음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환난이 면제된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사느라 더 많은 환난을 만나기도 하고 고난도 더 많고 심지어 순교를 당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창설 초기부터 어려움이 있었고 박해가 있었고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런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환난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굳건히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왔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이런 성도들의 옷을 그리스도의 피로써 희게 해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만이 우리의 더러워진 옷을 희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나아가 죄로 더러워진 우리의 옷을 씻음 받아 눈같이 희고 아름다운 의의 옷을 입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흰 옷을 입은 자가 누릴 은혜:
  15-17절은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누리게 될 은혜와 특권이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을 권리를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15) 그들은 어린양의 피로 죄사함 받아 정결하게 되었기 때문에 거룩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고 성결과 의로 성전에서 밤낮으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원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제사장에게만 주어진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직접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흰 옷 입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요 최대의 특권입니다. 둘째로, 다시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고 해를 받지 않게 됩니다.(16) 성도들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사느라 궁핍에 처하기도 하고, 배고픔과 목마름과 온갖 고난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하는 어려움을 당했습니다.(고후6:4,5) 불신자들의 입의 뜨거운 기운에 쏘여 상처를 안고 괴로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모든 궁핍과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상함도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질병이나 해됨도 없습니다. 참된 만족과 안전과 기쁨이 충만한 삶을 영원히 살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어린양이 목자가 되십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임이라” 와!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목자가 되어주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요 큰 특권입니까! 선한 목자이신 어린양은 우리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는 현제 믿음으로 누릴수 있는 은혜요 장차 하늘나라에서 온전히 누릴 은혜입니다. 이 은혜와 특권은 우리가 항상 기억하고 감사하고 찬양할 제목입니다.

이시간 죄와 죽음의 권세가운데서 멸망할 저를 어린양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종을 그리스도의 군사로 삼으시고 지난 14년 동안 스리랑카 족속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여 주신 은혜를 감사 찬송합니다. 스리랑카는 2500여년간 계속되어온 오리지널 불교의 종주국입니다. 450 여년간의 서구 식민 통치와 독립후 종족분쟁, 정치 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의 약 7%가 기독교이며 그중에 대다수는 문화적 캐톨릭 신자이며 약 1%만이 개신교입니다. 소수의 개신교회 조차 종교 다원주의와 정치적 핍박으로 영적 힘을 일어버리고 핍폐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볼때 스리랑카는 광야와 같습니다. 14년전 이곳에 왔을때 저는 막막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때 이사야43:19절 말씀을 심령에 주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라. 내가 나타내리라 너희가 알지 못 하겠는냐. 내가 정녕히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 강을 내리라.” 저는 이 말씀을 의지하여 이 땅에 복음의 길 제자양성의 길을 내달라고 기도하였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립이 어려운 가난한 나라에서 학원을  설립하여 국가에 등록함으로 물질자립과 비자의 길을 내주셨습니다. 일대일 말씀을 통하여 이나라 최고 지성인이 프라딥 형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콜롬보 의대 가운데 믿음의 조상으로 살고자 하는 결단을 하게 도우셨습니다. 지난해 언제부터인지 새벽과 저녁에 1시간씩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가 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알고보니 정부가 무슬림 사원 기도소리를 금하고자 하다 법 형편상 불교 사원에서도 불경소리를 금한것이었습니다. 표면의 이유야 어째든 하나님께서 지난 14년간 독경 소리에 맞춰 드린 맞불기도를 들으시고 기도가 차매 불경소리를 금하신 것은 믿습니다. 올해는 지난 25년 동안 7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끌어오던 내전이 종식되었습니다. 그 강하던 반군들이 순식간에 뿌리가 뽑힌것을 보며 정부 당사자들도 놀랐습니다. 그동안 반군들로 인한 태밀 크리스챤들과 순박한 백성들이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가 차매 심판 하신 것을 믿습니다. 이 외에도 한국에 노동자로 오는 길을 내시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이일을 위해 많은 환난의 터널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미국의9.11사태이후 스리랑카경제 사정이 악화되고 저의 학원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장기간의 물질 문제는 저의 힘을 많이 뺐습니다. 올해 들어 물질 문제가 극에 달했습니다. 아버님이 위급하여 한국에 오고자 했지만 비행기 티켓을 고사하고 애들 학비와 비자비마저 못내고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많은 기도 가운데 우리의 사역을 잘 아는 몇분 신자들에게 선교사 생활 처음으로 물질을 꾸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돈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면 거절을 당했습니다. 저는 말할 수 없는 참담함과 슬픔을 느꼈습니다. 아버님의 암이 발견되자 동생들은 화살을 제게로 돌렸습니다.  양들은 이러한 목자의 사정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한 양은 유럽수양회 보내주지 않았다고 저를 비방 할 뿐 아니라 믿음으로 서있는 프라딥 형제마저 넘어뜨리고자 끊임없이 문자와 전화로 의심을 심었습니다. 한 형제는 어려운 가운데 물질 지원해 주었는데 저희 형편상  더 지원할 수 없자 저를 원망하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짐을 센타에 놓았는데 잊어버렸다며 저에게 찾아내라는 식으로 요구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역겨워 그의 짐을 주고 센타에서 나가라고 밀어내었습니다. 그러나 목자로서 못할짓 같아 주었던 짐을 다시 센타에 들여놓았습니다. 그리고 가서 다시 영접하고자 나가보니 이미 그 형제는 가고 없었습니다. 저는 죄인의 옹졸함과 혈기로 인해 주님의 양을 끝까지 섬기지 못한 것으로 엎드려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지난달 15일 아버님의 폐암 수술 후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는 아버님을 간호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의 기도를 섬김을 통해 아버님을 회복하셔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제가 하나님의 종이 된 것을 보여주시길 원했습니다. 저는 막 10:29,30 약속을 붙잡고 지난 24년동안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대로 저의 3명의 동생들을 구원하시고 어머니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술을 앞두고 그토록 완고하던 아버님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셨습니다. 이제 회복하셔서 주님을 섬기며 저의 효도를 받기를 원했는데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10여일 후에 아버님을 데려가셨습니다. 저는 밀려오는 죽음의 권세로 말할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그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10여일간 중환자 가족들과 함께 거하며 3명이 죽어 실려 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중의 한명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모습을 바로 눈앞에서 보았습니다. 한명은 전날 기도해 준 환자인데 다음날 죽었습니다. 환자가족들은 그들은 섬기며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격었습니다. 그 고통이 너무 가여워 한번은 한 아주머니를 따라가 두 신장을 떼어내 온몸이 산더미 처럼 부어있는 그 분의남편을 붙잡고 통곡하며 기도하여 주었습니다. 저는 이를 보며 사람들이 왜 그토록 물질, 혈연, 인간관계를 중시하는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고통과 슬픔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질수 없는 무거운 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이 복잡한것 같아도 바로 근본 문제는 죄와 죄로 인한 죽음의 문제라는 것을 똑똑히 목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우리의 죄와 죽음을 위해 대신 피흘여 죽으신 예수님을 새롭게 발견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인해 10일간 중환자 가족들과 거하며 그들을 목자로 섬길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입을 통해 제가 하나님의 종 된것을 저의 어머니 앞에 증거하여 주었습니다. 장례식에 넘치는 은혜를 주셔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왔습니다. 3 일동안 8번의 예배를 드려 장례식의분위기가 아니라 축복된 하늘 입성식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주관하는 가운데 동생들의 저에 대한 오해와 응어리를 풀게 하셨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평가회를 가졌는데  동생들은 형님을 오빠를 새롭게 보았다고 했습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에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운구차를 타고 선영 장지로 오는 길에 코스모스가 좌우에 하늘거리며 저희의 행렬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길이 아버님이 간 길이요 장차 제가 갈 하늘에 본향까지 펼쳐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심령에서부터  찬송이 나왔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 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저는 이땅에서 성공에 목말랐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것은 저의 참된 소망이 아닙니다. 저의 참된 소망은 하늘에 있습니다. 저의 참된 소망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아버지와 나를 위해 피흘려 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그 피로 저를 적셔주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저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제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위로와 주님의 피의 은혜를 앉고 다시 선교지로 나아 갑니다. 하늘에 입성하는 그날까지 어린양 예수님께서 가신 순종과 희생 섬김의 길을 걸어 가기를 소원합니다. 이를 통해 광야같은 스리랑카에 셀수 없는 무수한 하나님의 백성을 일으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결론적으로, 요한이 본 셀 수 없는 많은 무리들은 죽임 당하신 어린양 그리스도의 피로써 흰 옷 입은 성도들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군사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하심이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 있다고 믿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환란에 주저앉은 자들이 아니라 어린양의 피의 은혜와 능력으로 환란의 터널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밖에 걱정 안에 근심 많으나 예수 보배로운 피를 힘입고 믿음으로 셀 수 없는 큰 무리의 대열에 들어서기를 기도합니다. 흰 옷 입은 자가 누릴 은혜와 특권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 우리를 모집하신 하나님을 섬기고 찬양하고 경배하는 복된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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