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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09-12-22 (화) 22:01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09년성탄예배제3강(눅2장)-.hwp (27KB) (Down: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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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211.xxx.239
[2009년 성탄예배제3강]구유에 누인 아기- 최베드로(12.20)
2009년 성탄 제 2강
말씀 : 누가복음 2:1-14
요절 : 누가복음 2:12절

구유에 누인 아기

“너희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메리 크리스마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비천한 이 땅, 그 중에서 가장 낮은 구유에 오심을 찬송합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이시간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기뻐하고 감사하고 경배하는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이사란 ‘존엄자’란 뜻으로서 통상적으로 ‘로마황제’를 의미합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로마의 평화를 가져온 탁월한 정치가였습니다. 얼마나 정치를 잘했으면 로마 원로원에서 자원하여 모든 권력을 아구스도에게 바치면서 ‘가이사, 황제’라고 불러주었습니다. 그는 전쟁을 종식시켜 ‘팍스 로마나, 로마의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의 번영을 이끌었습니다. 그 위대하신 가이사 아구스도께서 천하로 다 호적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호적 명령은 제국의 구석구석까지 파악하여 시스템을 정비하고 제국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가이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사람들이 각각 호적하러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다윗의 후손 요셉도 마리아와 함께 본적지 유대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습니다.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20km되는 산악길입니다. 오늘날이면 한시간이면 달려가는 길이지만 당시에는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걷더라도 사흘을 꼬박 가야 했습니다. 요셉에게 돈이 많았으면 마차를 부르고 대리운전을 시켜서 고향땅으로 갔을 터인데...,  가난한 요셉은 앞에서 끌고 마리아는 나귀를 타고, 오늘날로 하면 리어카를 타고 터벅터벅 걸어갔습니다. 만삭이 된 임산부에게는 힘들고 가혹한 길이었습니다. 제국의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가난한 요셉과 마리아에게 고통과 슬픔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천신만고 끝에 베들레헴에 왔을 때, 마리아가 산통을 시작했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겠습니다.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아이구 배야! 요셉, 요셉 아기가 나올 것 같아요!” 요셉은 정신없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방 한칸 내어주기를 간청했습니다. “사장님, 저기요, 저 아내가 해산해야 하는데요, 방 한칸만 내어주세요! 은혜를 베풀어주시면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호적 시즌에 한 몫 잡으려는 여관 주인들에게 요셉의 절규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추운 겨울날, 어느 누구하나 선뜻 자리를 양보해주겠다고 나서는 자도 없었습니다. 수많은 집들이 베들레헴에 있었지만 마리아가 쉴 수 있는 집이 없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인심은 참으로 각박했습니다. 마리아의 산통은 커져만 가고 결국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마굿간으로 향하였습니다. 마리아는 거기서 첫아들을 낳아 포대기로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마굿간이 어떤 곳이며 구유는 어떤 곳입니까? 크리스마스 카드에는 마굿간이 낭만적으로 웬지 아늑해보이고..., 자연친화적으로 그려져 있지만..., 마굿간은 오늘날에 비유하면 주차장입니다. 예수님은 주차장에서 태어나서 아기 침대 대신 라면 박스같은 곳에 뉘여진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장면입니까!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더군다나 가이사 아구스도의 시대,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인간적으로 보면 아기 예수의 탄생은 큰 슬픔의 나쁜 소식입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이 말씀은 가이사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가이사는 세상의 힘과 권력을 대표합니다. 힘과 권력은 세상을 움직이고 삶의 패턴을 바꾸어 놓습니다. 산을 뚫어 강을 만들 수 있고 강을 연결하여 운하도 만들 수 있고 바다를 메워 신도시를 세우기도 합니다. 세계 곳곳으로 길을 뚫고 하늘을 찌르는 건물을 짓고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달라지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이사 아구스도가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풍성하게, 아름답게 구원하지 못합니다. 로마의 번영과 평화는 가져왔으나 사람들의 내면을 평화스럽지 만들어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해산이 임박한 산모에게 방 한 칸 내줄 수 없을 정도로 무한 경쟁과 이기심과 탐욕의 각박한 땅이 되게 하였습니다. 힘과 권력이 인생들을 이기심과 정욕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달하는 과학문명은 가이사처럼 인간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구원해주지는 못합니다. 요즘 청년들에게 아이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저도 며칠전 처음으로 아이폰을 구경했는데 신기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아이폰 안에 별의별 것들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전자사전은 기본이며 영화, 게임, 성경, 찬송가..., 엡스토어에서 계속하여 콘텐츠를 다운받으면 다른 것도 볼수 있다고 했습니다. 손을 터치하니까 종이 넘기듯이 화면이 넘어갔습니다. 마치 T.V 나왔을 때 신기하게 봤던 것처럼 계속 봤습니다. 아이폰이 없는 분들은 별로 와닿지 않지요? 괜히 샘이 나고 입맛이 떨떠름한가요? 제가 지금 아이폰을 선전하고 있는 것입니까? 그런데 아이폰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이폰으로 웹스토어에서 별의별 것들을 다운받을 수 있지만 행복은 다운받을 수 없습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다운받을 수 없습니다. 아이폰을 손에 쥔다고 해서 마음까지 풍성해지고 고상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폰을 쥐어도 여전히 고독하고 여전히 비교의식과 정욕의 소욕에 휩쓸려 살아갑니다. 장래 염려와 삶의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며 고통합니다. 아주 조그만 일에 분노하고 견디지 못할 정도로 조급해 합니다. 가이사가 구원해주지 못합니다. 인간의 힘과 권력이, 과학문명이 인간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가이사의 세상, 그 어디에서도 구원받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서 구원의 희망을 보아야 합니까? 우리가 어떻게 내면이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받을 수 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사실은 자기 양 떼가 아니죠. 당시에는 목자들은 가난한 하층민들로서 마을 사람들의 양들을 돌보는 알바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향한 불평 불만으로 인해 말 못하는 양들을 쥐어박고 화풀이하기 쉬웠습니다. ‘아이고 내 팔자야,  이런 뺀질대는 양들 때문에 잠도 못자고...’ 하지만 그들은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자기 양떼처럼 지켰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들은 누가 보나 안보나 상관없이 하나님앞에서 충성했습니다. 주의 사자가 저들을 찾아왔고 주의 영광이 저들에게 비추었습니다. 천사는 그들에게 놀라운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0,11절을 천사의 스피릿으로 읽어보겠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구주, 곧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것입니다. 옆사람에게 전해보겠습니다. 잠시 천사가 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탄생의 소식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으로 듣지 않습니다. 요즘은 길거리를 다녀도, 백화점이나 마트를 가도 크리스마스 캐롤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탄생 때문에 기뻐하기보다 산타의 선물 때문에 기뻐합니다. 세상은 그리스도, 구주 탄생의 소식보다도 다른 소식으로부터 기쁨을 누리고자 합니다. 내년에는 한국 경제가 5% 성장할 것이라는 소식,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지 않을까하는 희망으로 기뻐합니다. 2010년에는 결혼할 수 있다, 대학에 다닐 수 있다, 취업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일 때 기뻐합니다. 목자는 열심히 도왔던 양이 회개할 때 크게 기뻐합니다. 오늘 저녁식탁에 맛있는 반찬이 오를 것이라는 소망이 보일 때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기쁨들이 날마다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있으면 좋은데..., 이런 기쁨들은 일시적이며 상대적입니다. 결혼하지 못한 사람, 취업하지 못한 사람, 양이 없는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낙심의 소식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천사가 전해준 소식은 이런 기쁨의 소식과 차원이 다른 소식입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고 크게 기뻐할만한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구주 탄생의 소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한사람도 예외없이 구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류역사상 온 백성에게 미치는 가장 큰 슬픔의 나쁜 소식은 인간이 죄를 지어 낙원을 상실하고 죽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불행한 것은 돈이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학벌이 안 좋아서, 꽃미남이 아니어서, 키 작은 루저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에 많은 문제가 있는 것 같으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죄문제입니다. 아무리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정욕의 죄에 빠지면 비전을 잃고 하나님의 부르심대로 살지 못합니다. 가정을 파괴하고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열등감에 빠진 사람은 늘 절망과 자학으로 쪼그라든 인생을 삽니다. 교만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을 힘들게 하면서도 자아발견을 하지 못하여 회개할 줄 모르고 점점 소외되고 외톨이로 전락합니다. 욕심의 죄에 빠지면 분수를 모르고 무리하다가 부끄럽고 추한 모습으로 전락합니다. 죄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다투고 훔치고 파괴하고 죽이는 세상살이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가 사람을 병들게 하고 못쓰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겁 없이 죄를 짓지만, 죄는 반드시 흔적을 남기고 댓가를 요구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영원한 심판이 있습니다.(히9:7) 사람들은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알면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어나면 죽어야 하고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하는 것, 모든 인간이 반드시 가야 할 길입니다. 얼마전 연쇄살인범 정모씨가 감옥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그는 사형판결을 받고 수감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극심한 불안과 불면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 다닐 때, 그렇게 최후를 맞이할 것을 몰랐던 것일까요? 알면서도 설마 그 날이 자기에게 다가오겠는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이 사형수로써 죽음을 기다리는 것을 너무나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간의 삶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죄인으로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 하나님의 심판대앞에 서야 하는 것, 그것이 인생입니다. 만약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불안하고 끔찍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언젠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사형수에게 무죄!라는 선고가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이듯이, 인생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실 구주가 오셨다는 소식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의 소식입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하나님은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타락했을 때부터 구원자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다윗의 동네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긴 세월동안 그리스도를 준비하시고  때가 되자 다윗의 동네에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서 제사장, 왕, 선지자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생들의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케 하시는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은혜와 진리로 다스리시는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대해 왜곡된 마음을 바로잡게 하시고 세상의 본질을 알게 하시고 참된 내 모습을 알게 하시는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따를 때,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죄와 죽음의 종노릇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습니다. 종신토록 성결과 의로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목자로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을 모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서 건지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인생들의 구주, 예수님을 보내어주신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그러면 아기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아니, 어떻게 구유에 누인 아기가 구주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까? 표적이란 기적속에 담긴 하나님의 증거를 의미합니다. 모든 인류를 구원할 그리스도라면 최소한 로마 황궁에서 태어나야 품위에도 어울리고 사람들로 인정을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구유에 누인 아기가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야말로 세상 그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희생이요 가장 큰 겸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의 영광과 권력을 포기하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땅히 크고 화려한 모습, 인생들을 주장하고 요구하는 자의 모습으로 오셔야 하는데, 와 주시는 것만 해도 황송한데, 가장 힘없는 자, 배척받는 자, 가장 가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신 것은 완전한 낮아짐과 희생으로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는 섬김과 희생의 길을 갔습니다. 예수님은 세 번씩 부인하며 물고기 잡으러 떠나버린 베드로를 끝까지 섬기사 인류의 스승이 되게 하셨습니다. 돈벌레 세리 마태와 동고동락하시며 성마태가 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병들고 냄새나는 자들과 같이 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며 그들을 고치시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예수님에게 감동받기보다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저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신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들의 공격을 받고도 변함없이 병든 자들, 죄인들, 어둠에 갇힌 자들을 찾아가 천국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마침내 스스로 십자가에 못박혀 대속제물이 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의 희생을 알지 못하고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힘이 없고 무능하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네가 그리스도여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런데 그리스도는 저들의 조롱과 비웃음속에서도 끝내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눅23장) 우리는 가장 끔찍하고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에서 무엇을 보았습니까? 비참한 패배가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한없는 사랑, 한없는 겸손, 한없는 희생, 한없는 하나님의 지혜를 봅니다. 우리의 모든 죄짐을 풀고 주님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용기, 순종하고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덧입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유에 누인 아기로 오셨고 그 길을 가심으로 모든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 있고 죄사함받을 수 있고 새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십니다. 누가 에이즈에 걸려 고통하는 우간다 어린이들의 아픔과 절망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이십니다. 누가 나의 상처받은 억울한 심령을 이해할 수 있으며 누가 나의 운명적인 과거를 이해할 수 있고 누가 나의 무거운 죄짐을 감당해줄 수 있습니까?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이십니다. 죄인들은 스스로 마음의 벽을 쌓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죄의식과 불안으로 남모르는 고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장 부요하신 분으로서 가장 가난한 자가 되시고 가장 존귀하신 분으로 가장 비천한 자가 되심으로 모든 사람들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구유에 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는 그리스도의 역사, 구원역사의 비밀입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처럼 광이 나는 자리, 군림하는 자리에 서기를 좋아하지만 가이사의 자리에서는 생명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생명의 열매를 맺으려면 구유에 누인 아기처럼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리, 구유의 자리에 서야 합니다. 낮아지고 희생하는 자리가 손해인 것 같은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가이사와 구유 사이에서 어중간하게 오락가락하지 말고 구유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끝까지 희생하고 끝까지 손해보고 끝까지 희생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쁨을 주시고 그들을 통해 생명의 열매, 승리의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는 진리입니다. 로마제국 시대에 가이사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별 짓을 다했습니다. 가이사와 로마제국이 그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박해했습니까! 성도들은 순수하게 살면 살수록 손해보고 핍박당하고 죽임당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망한 것은 로마였습니다. 가이사의 역사는 죽은 유적으로만 남았고 구유의 역사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의 역사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나갔습니다. 로마를 이겼고 전 세계 온 백성에게로 퍼져나갔습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따라서 낮아지고 희생하는 그 길을 갔던 자들을 통해 주님의 생명구원역사는 온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역사의 주류는 가이사가 아니라 구유에 누인 아기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표적을 보고 따르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구유까지 낮아지고 희생하는 자들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이사의 역사를 크게 생각하지만, 가이사는 구원역사를 위해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배경에 불과합니다. 믿음의 눈이 없는 자들은 배경을 붙들고 살다가  배경이 사라지면 배경과 동시에 사라지는 허무한 인생을 삽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우리는 구유에 누인 아기에게서 그리스도의 표적을 봅니다. 구유로 낮아지는 역사야말로 가장 위대하고 가장 강력한 역사임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눈을 열어주사 구유에 누인 아기로 인해 크게 놀라고 기뻐하고 감동받고 경배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구유에 누인 아기를 따라 낮아지고 희생하며 시간과 물질과 온 마음을 드리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기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2010년 한해에도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놀라운 생명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구주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찬송을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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