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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09-12-29 (화) 14:32
분 류 로마서
첨부#1 2009년_송년예배(롬12장)-.hwp (56KB) (Down: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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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송년예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2009년 송년 메시지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말씀: 로마서 12:1-13
요절: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009년도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이제 사일 후면 대망의 2010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올해는 국가적으로도 다사다난 했고 저 개인적으로도 큰일을 많이 치룬 한해였습니다. 여러분 올 한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로마서 12장 말씀을 통해서 지난 한해를 점검하고 새로운 한해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로마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1장에서 11장까지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하는 교리 편이고 12장부터는 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하는 실천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12장 1,2절은 신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하려고 할 때 서론에 해당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때 삶의 모습이 어때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제1장 산 제물로(1,2)

  1절을 보십시오. 1절은 무슨 말씀으로 시작합니까? “그러므로” 여기 그러므로는 보통 ‘그러므로’가 아닙니다. 바울이 11장까지 증거 한 내용의 핵심은 성도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또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구원의 은혜가 큰 사도 바울이 감격해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았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심판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주님의 십자가의 피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주시는 대단한 선물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구원받았으면 구원받은 성도답게 사십시오! 라는 말입니다. ‘구원 받은 이후로 마땅히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라는 말이죠.
  ‘그러므로’ 이후의 구체적인 내용은 1,2절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권한다’는 말은 명령보다 더 강하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구약의 제사에서 짐승을 하나님께 드릴 때는 하나님 앞에 점 없고 흠 없는 일 년 된 양을 구별시켜 드렸습니다. 이처럼 구원 받은 자의 삶은 우리 몸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왜 몸을 바치라고 하셨을까요? 마음을 바치라고 하거나 몸과 마음을 바치라고 하거나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이렇게 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몸을 바치라는 것은 삶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토탈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 몸으로 십자가에서 완전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산 제물로 드리라는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산 제물로 드린다 할 때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저는 처음에 좀 무시무시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 성경에는 산제사라고 쓰였는데 산제사하면 그래도 뜻이 모호한 게 듣기에 좀 낳았는데 이제는 산 제물 하니까 뜻이 분명해졌습니다. 근데 좀 부담되었습니다.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특별히 영적 예배라 하였습니다. 예배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서 우리와 만나 주십니다. 죄악된 내가 거룩하시고 높으신 하나님과 부족한 내가 전능하신 하나님과 예배를 통해서 만나주는 시간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예배를 잘 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심코 보내는 시간이 일상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라면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라면 우리 믿는 자들은 얼마나 기쁘고 행복합니까!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니 놀라운 축복입니다.
  성경에서 예배를 잘 드린 사람이 누구입니까? 에녹을 들고 싶습니다. 창세기 5장 24절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더라” 에녹의 삶에 관하여 창세기 5장 24절 한절이 나올 뿐입니다. 에녹이 이 땅에서 직업이 무엇이었고 재산이 얼마였고 어느 대학 나왔는지 나오지 않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였는지도 나오지 않습니다. 에녹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나타내는 성경구절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이 한마디인데 여기에 에녹의 삶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였습니다. 이 땅에서 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잠깐 살았지만 하늘나라에서 그는 영원히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멋집니까.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삶. 하나님께 예배로 드려지는 삶은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시고 이런 사람에게 큰 상급을 예비하십니다. 우리가 하루를 바삐 정신없이 살 고 있는데 어떻게 하루 24시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축복된 시간이 될 수 있을까요? 갈라디아서 5장 16절에서 18절은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과 만날 수 있습니다. 항상 기도함으로 하나님과 늘 대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위로부터 부어지는 영적인 기쁨을 항상 누리는 것입니다
둘째로, 산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입니다.
  성경에서 이에 부합되는 인물을 찾자면 사도바울입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쓴 저자이기도 하지요. 빌립보서 2장 17절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전제는 제사에 드려지는 물이나 포도주와 같은 것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이 믿음의 사람들이요 섬김의 종들로 성장한다면 나 사도바울은 이 한 몸이 하나님께 전제로 드려진다 해도 기뻐하고 너희와 함께 기뻐하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전제로 드려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포도주와 같이 엑기스를 짜서 부어드려져야 합니다. 바울은 기꺼이 이렇게 드려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바치겠다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주와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이 산 제물로 드리는 삶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은 말합니다. “우리 몸을 불의의 병기로 드리지 말고 의의 병기로 드리라” 우리 몸을 죄로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우리손이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적인 손이 아니라 연약하고 무기력해진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다정한 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눈이 추한 세상의 죄의 문화를 바라보기보다 하늘나라의 신령함을 바라보는 맑은 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발이 오직 먹고 살기위해 뛰어다니는 발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사용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시기하는 입술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고운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제사를 드리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하십니다. 이 세대는 하나님 없이 사는 세대입니다. 우리는 싫든 좋든 그들과 같이 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패턴을 따라가기 쉽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패턴이 무엇일까요? 요즘 스포츠 계 연예계에 톱뉴스가 무엇이죠? “타이거 우즈의 불륜” 얼마 전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총 14명의 여인들이 자신이 우즈와 관계를 맺었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이세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골프 황제가 밤의 황제로 전락한 것은 청년의 정욕을 다스리지 못한 것이지요. 육신주의의 전형입니다. 이런 삶의 모습이 다만 우즈 뿐이겠니까? 요즘세대의 젊은이들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요. 창피한줄 모르고 자신이 우즈와 관계를 맺었다고 주장하고 돈을 요구하는 여인들은 돈에 눈이 먼 것이지요. 이를 경쟁적으로 보도하면서 상업성을 부추겨 돈을 버는 언론 매체들도 물질주의의 전형입니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통해서 유익을 보려는 이기주의까지 다나옵니다. 한마디로 육신주의 물질주의 이기주의가 이세대의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교회마저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육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고 편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예배를 쉽게 빠집니다. 과거 선배들은 목숨 걸고 주일을 성수하였습니다. 헌데 비디오 예배 인터넷예배가 웬 말입니까? 인생의 진지함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영적소원이 없습니다. 개인주의의 영향으로 손해 보기 싫어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기만을 생각하고 희생하기 싫어합니다. 겉보기에는 화려하고 풍성하고 부족함 없어 보이나 내용은 부실합니다. 연약합니다. 쉽게 절망하고 포기하며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자살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세대와 단절할 수 있습니까?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새해가 온다고 저절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해가 시작하고 신년수양회하면 잠깐 새로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심삼일로 그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한 해를 출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이 새로워 질수 있습니까?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육신은 늙어갑니다. 얼굴에 잔주름이 늘어만 갑니다. 거울보기가 싫어집니다. 이처럼 우리마음도 그냥 내버려 두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워지기는커녕 낡고 부패해져 갑니다.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버립니다. 신앙생활 초기의 주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 구원역사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식어집니다. 웬만큼 은혜롭지 않은 말씀은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자기중심적이 되어버립니다. 마음과 생각이 자기와 가족 중심으로 오그라듭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려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합니다. 날마다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자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회개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특히 하나님의 주시는 훈련을 통해서 회개하고 새로워 질수 있습니다. 그때 영안이 열리게 됩니다. 형식적인 회개, 말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가슴을 찢는 회개여야 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부족한 자인가 자아발견하고 회개하고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버린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사람에서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자기 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다시금 마음과 생각이 변화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새 부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이 말씀을 준비하며 올 한해를 돌아보니 참으로 열심히 살아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기 중심적으로 살았던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그러면 산제사로 드리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제2장, 사랑으로(3-13)

  3-13절은 교회 안에서 성도 상호간의 삶이 어떠해야하는지 가르쳐주십니다. 14절 이후는 세상에서 신자의 삶의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올바르게 하고 이제 합심동역해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고 합심동역을 잘하면 교회가 성장하게 됩니다. 합심동역을 잘하면 교회가 따뜻합니다. 양들이 왔다가 그분위기에 은혜 받고 또 오고 싶어 합니다.
  합심동역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은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첫째로 교회 구성원이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이 천사 중에 뛰어났지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으니까 사단이 되었습니다. 사단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가 사단이 난 것 아닙니까?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나 자신에 대해서 지혜롭게 생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잘 알면서 자신은 잘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잘 알고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입니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다’라고 자기비하 열등감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교만한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없는 은사를 옆의 형제가 갖고 있습니다. 내가 못하는 것을 옆의 형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옆의 형제와 비교해서 더 나은 것 인간 조건이 우월한 것 더 나은 은사를 가졌다고 우월의식을 갖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실제로 더 나은 은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물론 형제의 장점을 시기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지요. 내 속마음을 누가 알랴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겉으로 다 나타납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신자의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이요 지체입니다. 모든 지체는 각기 다른 기능을 가졌습니다. 눈 머리 손 발 다 기능이 다릅니다. 어떤 지체도 필요하지 않는 부분이 없습니다. 발이 되기 싫다고 내가 왜 발이 되어야 하냐고 발이 되기를 거부하고 머리가 되고 싶다고 전부다 머리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정말 머리가 아플 것입니다. 교회가 머리만 크고 발이 없으니 움직이지 못하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각각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셨습니다. 타고난 은사가 있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다 보니 후천적으로 발견한 개발된 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다만 은혜로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은사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교회 구성원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배치되어서 각자의 은사를 발휘한다면 많은 열매를 거둘 것이고 은사를 발휘하는 구성원이 모두 행복할 것입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여기서 예언은 무엇을 말할까요? 예언 -글자 그대로 앞날을 예측하는 것을 말할까요?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서 은사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예언하기를 힘쓰라 해서 그런지 예언한다는 분들이 참으로 많은데요, 우리병원의 환자 중에 자칭 예언을 잘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단골 환자이신데 저를 믿고 오시는 것은 좋은데 이분이 저더러 전부터 절대로 망우동을 떠나지 말라고. 조금 잘된다고 교만해저서 강남이나 그런데 가지 말라고, 그러면 바로 망한다고, 여기 있으면서 자기를 잘 치료해 달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병원을 크게 지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된 게 자기가 기도해서 그런 거라고 해서, 아무튼 감사합니다 했는데 또 하나님께서 이번에 계시하셨다는 거예요. 정형외과 의사를 두어서 수술도 하고 병원을 더 크게 키우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그리고 자기 다리 좀 수술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칭 예언한다는 분이 주변에 많습니다. 용하다 소문난 분들도 있고요. 그러나 여기서 예언은 그런 예언이 아닙니다. 예언은 사도시대에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예언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풀어서 하늘나라의 비밀을 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 메신저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가슴을 파고들며 심령을 울리는 말씀은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습니다. 다이너마이트와 같아서 딱딱하게 굳어있는 내면을 깨뜨리는 파워가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어떤 사람은 섬기는 은사를 받은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서빙 하는 날이면 잔칫집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섬기는 일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속이 시끄럽기 쉽습니다. “왜 밤낮 나만 섬기냐고 저 사람은 모냐고” 입이 나오기 쉬운데요.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즉, 섬기는 자체로 은혜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는 위대한 자입니다. 또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가르침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경을 잘 가르칩니다. 말씀공부 하는 양들이 잘 살아 납니다.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부지런히 가르쳐야 합니다. 이런 분들은 부디 많은 생명을 살리십시오. 가르치는 은사를 받고도 가르치지 않는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위로 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 훈련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바나바와 같이 인커리지를 잘하는 사람은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로 힘든 사람을 일으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기분 좋으면 구제했다가 나쁘면 안하고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꾸준히 구제하라는 것입니다. 주는 생활에 힘쓸 때 풍성하게 채워지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받고 살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주는 생활의 영적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다스리는 자, 즉 지도자는 부지런하라 하십니다. 목자가 한양을 다스리고 지도하지요. 목자인 우리도 공통적으로 다스리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양이 말씀을 받지 못하고 굶주리고 있는데 목자가 게을러서 때를 따라 먹을 양식을 주지 않는다면 후에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 많이 두들겨 맞는다 하셨습니다.(눅12:47) 세상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은 능력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는 교회는 부지런함이 필수 덕목입니다. 하나님이 게으른 종을 쓰신 예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마지못해서 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 때 은혜가 배가 됩니다.
  9절 – 13절까지는 어떤 자세로 동역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은사를 받았는데 어떤 자세로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공동체 안에 그 어떤 은사보다 소중한 것은 사랑입니다. 성도들을 하나로 묶는 힘은 바로 사랑입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노력이 사랑으로 포장될 때 비로소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되 거짓이 아닌 참된 사랑을 하라 하십니다. 앞에서 말로만 “서정호 목자님 사랑해요” 하고 속으로는 “나보다 훨씬 연극을 잘 하네” 한다든지 “기도할게요” 하고 기도안하는 것, 말이 앞서는 것 립서비스는 물론 안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그래도 말만 하고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기름을 칠하지 않은 기계처럼 잘 동역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된 사랑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되 악을 도모하는데 합치지 말고 선에 속하라 하십니다.
  형제를 사랑한다 하면서 형제가 죄에 빠진 것을 보고도 무관심하여 버려둔다면 사랑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부족한 너는 나의 사랑이나 받아라’ 이런 일방적인 자세도 좋지 않습니다. 형제의 장점을 보고자 잘 찾아보면 장점이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장점을 보고 기본적으로 존경하는 마음을 품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11절의 키워드는 무엇입니까? 열심입니다. 우리 모임의 키워드가 무엇입니까? 열심입니다. 자고로 우리 모임은 열심이 있는 모임으로 자타가 공인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열심을 상실한다면 맛 잃은 소금이요, 꺼진 촛불입니다. 새해에는 열심을 냅시다. 열심으로 기도하고, 열심으로 하나님 역사를 섬깁시다. 열심으로 양들을 돌보고, 또 열심으로 전공에서 승리 합시다.
  12절을 보십시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란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환란 중에 있는 사람은 참아야 합니다. 길이 참아야 합니다. 특별히 이 기간에는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환란을 통해 나의 내면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고 훈련 후에 한 단계 성장한 나의 모습을 소망하며 오히려 즐거워하고, 하늘나라의 산 소망으로 기뻐하라 하십니다. 13절을 보십시오. 우리 가운데 궁핍하여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면 도와야겠지요. 선교사들 가운데 극한 가난 궁핍함에 처한 사람들이 계십니다. 저희 병원에 선교사님들이 건강검진차 오십니다. 우리 센터 출신도 오시고 다른 센터 출신의 선교사님들도 오십니다. 특히 자매 선교사님을 진료할 때면 10여 년 전에 보았던 고운모습은 어디로 가고 상하고 거칠한 얼굴, 병들고 지친 얼굴을 대할 때면 마음이 짠하게 아파옵니다. 물질문제로 고통 받는 선교사님을 돕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지요.

  결론적으로 대망의 2010년에는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받을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기중심에서 하나님중심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늘 동행하며 매순간 하나님영광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하여 위로부터 부어지는 영적 기쁨 영적 축복을 누리는 한해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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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누가복음 [2009년성탄예배제1강]은혜를 입었느니라(2009.12.6) 관리자 2009-12-06 2808
60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1강]믿음을 지키는 자 관리자 2009-11-29 2285
59 하박국 [2009년추수감사예배]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관리자 2009-11-22 2448
58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2719
57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기드온의 삼백 용사(주니어팀-천수원.. 관리자 2009-11-09 3244
56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큰용사여(주니어팀-함바나바) 관리자 2009-11-09 4084
55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3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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