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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10-01-14 (목) 11:22
분 류 로마서
ㆍ추천: 0  ㆍ조회: 2413      
IP: 211.xxx.239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최동진
2010년 신년말씀 제 1 강 (최동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말씀: 로마서 1:8-17
요절: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오늘 말씀에는 바울의 복음에 대한 확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또한 신자들의 믿음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2010년도를 출발하면서 사도바울과 같이 복음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덧입고 사명을 감당함으로 제자 양성의 열매를 맺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바울의 감사와 기도 (8-12)

 8절을 보십시오.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인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바울은 먼저 로마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으로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로서 부와 권력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식민지로부터 착취한 모든 부가 로마로 들어왔습니다. 로마에는 육신의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각종 위락 시설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원형경기장이 있었고 캠퍼스 주변에는 한집 걸러 술집, 노래방, PC방, 고급 레스토랑, 모텔 등이 즐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이단 종교와 사상들이 범람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한 무리의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로마로 이민해 온 자들로서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노예 출신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을 무시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시대와 구별된 삶을 사는 거룩한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의롭고 경건했으며 순수하고 진실했습니다. 그들은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죄악된 분위기와 타협치 않고 거센 탁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살아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로마를 넘어 온 세상에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멀리서 이들의 믿음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이 후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는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볼 때 이들은 로마의 어떤 사람들보다도 귀한 자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생각 할 때 벅차오르는 감격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로마 교인들을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9절을 보십시오. 그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내세울 만큼 항상 쉬지 않고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한 번도 로마에 가본적도 없고 그들의 얼굴도 몰랐습니다.  소문으로만 듣고 그들의 이름만 아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도 새벽기도 때나 철야기도 때 선교사님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선교사님들이나 이름만 들어서 알고 있는 양들을 위해 쉬지 않고 간절히 기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각 사람의 기도제목을 알고 기도하기 위해서는 평소 깊은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하기 힘든 것은 관심과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 대해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로마 성도들이 늘 그의 마음에 있었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날마다 로마 성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의 기도생활을 잘 배워야하겠습니다. 새 해에는 마음을 넓혀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기 위해 헌신하고 계신 선교사님들에 대해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한 중보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뜻 안에서 그들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 선교 전략상 반드시 정복되어야 할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를 세계선교의 Headquater로 삼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때마다 길이 막혀 나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으며 헬라어도 유창하게 잘 했습니다. 텐트메이커로서 자립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로마에 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해외로 나갑니다. 방학 때나 연휴 때에는 해외로 나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해외로 나간다고 다 선교사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복음을 들고 가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선교사입니다. 그러므로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아무리 애를 써도 길이 열리지 않을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보다 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길 열어 주시도록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가기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로마 관광을 하기 위해서입니까? 텐트를 팔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그저 그들의 얼굴이나 한번 보기 위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바울이 로마로 가려는 것은 그들에게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그들의 믿음을 견고하게 만들어 주려 함이었습니다. 신령한 은사란 영적인 선물(spiritual gift)로서 신령한 영적 세계의 비밀을 말합니다. 로마서 15:29절에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그들에게 나눠 줄 충만한 영적 선물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풍성한 생명의 말씀이 있었고, 그의 심령에는 항상 은혜와 사랑이 넘쳤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끊임없는 교제로 인해 위로부터 신령한 은사가 그에게 부은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말한 것을 볼 때 신령한 은사는 곧 복음을 가리킵니다. 로마 성도들에게 복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복음을 영접했고 그들의 믿음은 로마 전체에 널리 영향을 끼칠 정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볼 때 로마 성도들의 믿음은 연약한 초보단계의 믿음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뿌리가 깊지 못했고 복음의 깊은 세계의 비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핍박과 같은 비바람이 몰아칠 때 흔들리기 쉬웠습니다. 당시 육신주의와 물질주의로 가득 찬 로마의 분위기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고 핍박을 이겨낼 뿐만 아니라 세계선교의 Headquater로 쓰임 받기 위해서 로마 성도들에게는 견고한 믿음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믿음이 견고한지 연약한지 어떻게 알수 있습니까? 대게 율법을 잘 지키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믿음이 강한 것처럼 생각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 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율법과 형식을 잘 지켜도 내면에 복음신앙이 없으면 연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복음 신앙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기초한 믿음을 말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부족하고 연약해 보여도 복음신앙이 분명한 사람은 어떤 유혹이나 핍박가운데에서도 절대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복음 신앙으로 강하게 하고자 했습니다.

 견고하게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피차 안위를 얻기 위함입니다. 즉 서로 위로하고 위로 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열매를 맺기 위함입니다. 믿음 생활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다 하더라도 혼자 있으면 외롭고 흔들리기 쉽습니다. 믿음 안에서 받은바 성령의 은사를 나누며 믿음으로 격려할 때 믿음이 견고해지고 피차 위로를 받습니다. 이는 세계선교의 Headquater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센타에서 많은 선교사를 파송케 하시고 세계 곳곳에서 놀라운 생명 구원의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재충전이 필요한 선교사님들이나 훈련이 필요한 이방 목자들을 보내 주시고 교제케 하심으로 우리 센타를 이미 세계선교의 전진기지로 삼으시고 귀하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복음신앙에 기초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요즈음 많은 선교사님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본국에 들어오시는데 이 분들을 적극적으로 영접하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선교지를 적극적으로 돌아보고 섬겨야 하겠습니다. 아무도 없는 이방 땅에서 외롭게 사명을 감당하느라 지친 선교사님들과 은혜를 나누고 교제함으로 피차 위로 받고  믿음이 견고해지는 역사가 저희 가운데 풍성히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Ⅱ. 빚진 자 사도 바울 (13-15)

 바울은 여러 번 로마 성도들에게 가고자 한 것을 그들이 모르기를 원치 아니했습니다. 이는 그들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들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고자 했기 때문입니다(13). 바울은 어디로 가든지 복음의 경영가로서의 분명한 자세가 있었습니다. 그는 절대 손해보는 장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추수를 하여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바울은 어찌하든지 로마에 있는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근본 동기가 무엇입니까?

 14절을 보십시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헬라인이란 헬라 문화권에 살며 헬라어를 할 줄 아는 자들을 말합니다.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을 가리킵니다. 오늘날 캠퍼스 지성인들이 이런 부류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복음에 대해 경계하고 따지고 배척합니다. 인터넷에서 온갖 말로 비방을 하기도 합니다. 간혹 자세가 좋아 보이는 사람도 믿으려 하기보다 머리로 이해하려고만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헬라인과 같은 사람들은 너무 이성적이어서 복음전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야만인은 육체의 힘과 외모를 자랑하며 먹고 마시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육신주의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겉모습만 봐도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을 것 같아 부담스럽습다. 지혜 있는 자는 교육을 많이 받아 교만한 자요, 어리석은 자는 무지하여서 복음을 깨닫기 힘든 자들입니다. 이리저리 따지다보면 복음 전할 만한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을 복음전파의 대상으로 보았습니다. 헬라인은 이성의 세계에 사로잡혀 영적인 세계를 모르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하고 야만인들은 육신의 소욕을 좇아 죄짓는 생활을 하면서 멸망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복음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복음 전파하기 힘든 핑계거리가 사도바울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안되는 분명한 이유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볼 때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있는 자들이나 어리석은 자들이나 세상 누구든지 복음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가 빚을 졌다고 말합니다. 사도바울의 마음속에는 빚진자의 심정이 충만했습니다. 빚진자의 마음을 아십니까? 빚진자는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늘 마음이 무겁습니다.  빚을 갚았다고 자기 의를 내세울 수도 없습니다. 빚을 갚는데 늘 얽매어 있습니다. 자나깨나 빚을 갚고자 모든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빚을 갚을 때 큰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바울이 빚진 자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 은혜의 빚을 졌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래 도저히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자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복음 역사를 훼방하고 성도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하러 가던 그를 예수님께서 만나주시고 그의 죄를 일방적으로 용서해 주시고 그를 흑암의 권세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는 일생 예수님께 은혜의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에 있는 자들에게 어찌하든지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은 그의 인간적인 야심이나 사업적인 욕심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님의 은혜를 갚고자 하는 빚진 자의 심정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빚진 자의 심정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큰 업적을 쌓은 후에도 교만해지거나 자족하지 않고 끊임 없이 개척 역사를 감당케 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에 빚진 자의 마음이 있는 사람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가 않아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습니다. 반면에 복음에 빚진 마음이 없는 사람은  아쉬울게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성을 못느끼고 희생하고 섬길 이유도 없습니다. 복음 역사를 조금 섬긴 후에는 자기 만족과 피해의식 손해의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리도 과거 헬라인이나 야만인처럼 살다가 죄의 짐을 지고 죽을 수밖에 없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쳐주고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준 분들이 있음으로 인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지고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얻게 되었고 구원 받은 새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실로 엄청난 은혜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다 구원의 빚, 생명의 빚을 진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빚진자의 심정을 잃어버려서는 안되겠습니다. 이 빚을 갚는 길은 죄악 가운데 죽어가는 양들에게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고 이들이 구원 받고 새 삶을 살기까지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양무리를 섬기는 것은 이 은혜의 빚을 갚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값없이 받았으므로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생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의 빚을 진 자들로서 나의 생명을 바쳐 양들을 섬기는 가운데 은혜를 감당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Ⅲ.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바울 (16,17)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고린도전서 1:22,23절은 당시 시대의 가치관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적인 우월성을 자랑하고 로마인들은 힘을 자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마의 힘의 철학이 온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힘의 철학에서는 강자가 진리며 약자는 불의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약소 민족의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서 사시다가 마침내는 흉악한 죄수 취급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무력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부활의 복음은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므로 배척하였습니다. 게다가 신자들은 사회에서는 약자요 힘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복음과 신자들이 무시 받을 때 복음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질주의, 육신주의 세력 아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대로 편리한 인생을 즐기며 살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 지식과 부와 권세와 타이틀을 자랑합니다. 복음신앙을 가지고 철저하게 말씀대로 살면 무시하고 때로는 핍박합니다. 이런 시대 분위기 가운데서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두더지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확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십자가를 사랑하고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는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헬라인 앞에서나 권력을 자랑하는 로마인들 앞에서 조금도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그립바 왕 앞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심문받을 때도 담대하게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그는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복음을 자랑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16). 로마는 무력으로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인간 내면의 죄와 죽음의 세력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로마는 결국 내적 도덕적 부패로 말미암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근본 문제는 죄와 죽음 문제입니다. 인간을 파멸시키는 것은 죄와 죽음의 세력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어느 누구도,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나 종교도 죄와 죽음의 세력을 파할 수 없습니다. 이는 오직 복음만이 가능합니다. 바울은 복음만이 인생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는 능력이 됨을 믿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의 능력을 체험으로 확신했기 때문에 복음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은 말이나 이론이 아니라 능력입니다 (살전1:5). 죄를 이기는 능력이요, 최후 심판을 이기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어떤 몹쓸 자도 변하여 새 사람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핍박자 사울을 복음 증거자 바울로, 탕자 어거스틴을 성 어거스틴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는 본래 우상 숭배로 가득찬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곳에서 3년 동안 줄기차게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자복하고 마술을 행하던 자들은 은 오만어치나 되는 책을 불사르는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이 들어가는 곳에는 우상과 구습이 타파되고 새 생명의 역사가 창조됩니다. 이 복음의 능력은 오직 믿는 자에게 임합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애통히 회개하고 겸손하게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복음이 능력으로 역사하게 됩니다. 이 진리는 선민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대표하는 헬라인이나 다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시대 복음 증거자로 삼아주셨습니다. 특별히 캠퍼스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저희 모임에 학생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학생 복음단체에 학생이 없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몇 년 째 가대 한명의 아브라함과 12제자를 위해 기도하며 매주 캠퍼스 심방하여 양을 얻고자 애를 써봤지만 상황은 점점 힘들어지다보니 과연 이런식으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에 대해 회의가 생기고 확신있게 복음을 전하기보다 양들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실패속에서 복음을 전파해야겠다는 간절한 문제의식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 역사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복음 전파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복음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키고 새사람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역사할 때 가대 캠퍼스에도 양들이 변화되는 생명구원역사가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제가 모든 불신을 회개하고 복음만이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믿음의 확신을 회복함으로 캠퍼스에 나아가 담대하게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기 때문입니다(17). 17절을 보십시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의로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를 죄없는 의인으로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것을 말합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마땅히 사형 선고를 받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에게 무죄 석방을 선언하심으로써 살려주시는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의는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로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로지 믿음뿐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는 것도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요, 구원 받은 후에 새 삶도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믿음으로 사는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를 덧입을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 성경 하박국 2:4절 말씀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박국은 믿음으로 살고자 애를 썼지만 시대는 갈수록 악해지고 열매는 맺혀지지 않는 현실로 인해 마음은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우리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지만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는 현실로 인해 삶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새벽기도도 열심히 하고 캠퍼스 심방도 꾸준히 감당하며 복음 전파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양들은 다 떠나가고 빈손뿐인 나의 처지를 바라볼 때 절망적인 생각이 듭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애매하게 오해받고 핍박당하거나 현실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하나님이 정말 나와 함께 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바라보고 현실에 좌우되는 것은 믿음의 삶이 아닙니다. 의인은 선하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말합니까? 믿음으로 산다고 당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태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다고 태산이 순식간에 옮겨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한 삽씩 떠서 흙을 옮깁니다. 그러면 언젠가는 태산도 옮겨지게 됩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 믿는 자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실제 삶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으로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현재 할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2041년까지 십만 명의 선교사를 세우실 하나님을 믿고 무릎 꿇고 기도하고 일대일 역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이런 믿음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자입니다.

결론적으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 저희 각사람이 심령에 이 복음의 능력을 믿는 믿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10년 새해에는 믿음으로 캠퍼스에 도전하여 말씀 전파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며 각자가 믿음으로 한 사람 제자를 양육함으로 우리가운데 배가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나를 통해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새해를 출발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도전하는 가운데 온전한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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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김반석 휴화산 2010-01-14 2874
65 로마서 [2010신년말씀제1강]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최동진 휴화산 2010-01-14 2413
64 로마서 [2009 송년예배]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휴화산 2009-12-29 3043
63 누가복음 [2009년 성탄예배제3강]구유에 누인 아기- 최베드로(12.20) 휴화산 2009-12-22 2938
62 누가복음 [2009년성탄예배제2강]구원의 뿔 - 권영진(2009.12.13) 관리자 2009-12-13 2641
61 누가복음 [2009년성탄예배제1강]은혜를 입었느니라(2009.12.6) 관리자 2009-12-06 2809
60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1강]믿음을 지키는 자 관리자 2009-11-29 2288
59 하박국 [2009년추수감사예배]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관리자 2009-11-22 2450
58 요한계시록 [2009년요한계시록제10강]여자와 용 관리자 2009-11-15 2726
57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기드온의 삼백 용사(주니어팀-천수원.. 관리자 2009-11-09 3247
56 사사기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1강]큰용사여(주니어팀-함바나바) 관리자 2009-11-09 4088
55 열왕기하 [2009가을제자수양회주제2강]역사를 계승한 엘리사(시니어팀_양용.. 관리자 2009-11-09 3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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