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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10-01-14 (목) 15:34
분 류 갈라디아서
첨부#1 2010_신년_2강(갈라디아서5장)-.hwp (27KB) (Down: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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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신년제2강] 성령을 좇아 행하라
2010년 새해 메시지 제 2강

성령을 따라 행하라

말씀: 갈라디아서 5:16-26
요절: 갈라디아서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Happy new year! 대망의 경인년 새해에 사랑하는 우리 동역자님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죄와 죽음권세로 죽었던 죄인들에게 예수님을 통해 구원과 참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또한 우리에게 이 하나님을 섬기는 복된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 찬송 드립니다. 올 한 해도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는 가운데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복을 받고 또 받은 복을 전달하는 메신저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복음역사를 섬기는 근본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줍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십니다. 왜 우리가 반드시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합니까?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올 한 해 새 마음, 새 믿음으로 성령의 역사를 섬길 믿음을 배우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성령을 따라 행하라(16-18)
  5: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다고 증거합니다. 이 자유는 죄로부터, 또 율법의 멍에로부터의 진정한 내면의 자유를 의미합니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고귀한 자유입니다. 그러나 한번 자유를 받았다고 해서 저절로 계속 자유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속하여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하십니다. 굳건하게 서라는 것은 군대용어로서 진지를 사수하라는 뜻입니다. 만일 자유의 진지를 사수하지 못 하면 다시 사탄의 종, 죄의 종으로 전락하여 자유를 빼앗기게 됩니다. 자유를 잃어버리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한 구원역사가 헛되게 됩니다. 자유를 잘 못 쓰면 그 자유로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데 쓰게 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지만 우리 속에는 여전히 육체의 욕심이 남아 있습니다. 이 육체의 욕심은 믿음으로 얻은 자유를 육체의 욕심을 이루는 기회로 쓰게 합니다. 육체의 욕심은 결코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죄의 종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얻은 자유를 값지게 사용해야 할 것을 잘 알지만 내 속에 있는 육체의 욕심이 이를 용납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참 자유를 누리는 길을 가르쳐주십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성령을 따라 행하라는 것은 명령입니다. 이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강하게 명하였을까요? 현재 갈라디아 성도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갈라디아 성도들이 성령으로 구원받고 새 삶을 출발하였지만 율법주의자들의 교훈을 받아 율법을 지킴으로 육체의 욕심을 극복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구원받고 새 삶을 출발하였지만 그 속에 남아 있는 육체의 욕심은 그들을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더욱 죄의식이 들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복음진리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율법주의자들은 이런 연약함을 빌미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될 수 없고 율법을 지켜야 온전한 의에 이른다고 꾀었습니다.(3:1)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율법으로 의롭게 되고자 한다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라고 책망하였습니다.(5:4) 대신에 성령을 따라 행해야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육체의 욕심은 불 같이 강력한 세력이므로 율법으로 다스려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의지로는 작심삼일로 끝나고, 세상을 등지고 수도원에 산다고 해도 육체의 욕심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께서 내 속에 살아 있는 육체의 욕심을 다스려주셔야 제어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함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17) 이를 볼 때 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받고 거듭난 ‘나’에 대해 육체의 욕심이 있는가하면 동시에 성령의 소원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은 '육체 중심', '나 중심'으로 살게 만들고, 성령은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거룩한 영적 소원대로 살게 합니다. 과거 우리는 사탄의 종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롬6:16)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책 없이 육체의 소욕에 맡겨두지 말고 그 자유로 성령을 따라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분별하는 지혜와 이를 섬길 내적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성령이 다스려주실 때 거룩한 영적 소원으로 충만하게 되고 비로소 육체의 욕심이 힘을 잃고 더 이상 사람을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 행한다(live by the Spirit)’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과 다스림을 받는 것이요, 우리 자신은 성령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한 순간 반짝 어떤 특별한 사건에서만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나의 마음과 생각을 지배하고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은 어떤 신비스러운 기적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인격체로서 우리 삶 속에서 믿음의 인생을 살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고 실제로 다스려주십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보다 더 큰 일도 행하십니다.(요14:12)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선한 목자 예수님을 따르듯 성령을 따르는 것이요, 예수님과 교제하듯 성령과 교제하는 것이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듯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율법은 우리를 아래에 두고 감독하는 감독자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인도하는 인도자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우리를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시고 보혜사가 되사 우리의 상담자가 되어주십니다. 성령은 진리의 말씀으로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깨우쳐 주시므로 죄인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게 하십니다.(요16:7,8) 성령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인도자가 되십니다. 그러나 율법은 우리를 율법 조항에 얽매이게 하여 잘 하면 당연한 것이요 못하면 정죄하여 불의한 마음, 부정적인 생각으로 더욱 움츠러들게 만듭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죄인들은 일생 율법 아래서 정죄 받다가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비참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함을 받게 되면 율법의 감옥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의 역사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로, 회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하였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라”(행 2:38) 우리가 구원받고 새 삶을 출발하였지만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죄의 소원 때문에 죄를 짓게 되고 이를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 충만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더러워진 발을 씻듯이 죄로 더러워진 내면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보배피로 씻음 받아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회개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지은 죄만큼 선을 행하거나 더욱 엄한 율법을 만들어 죄를 다스려보고자 합니다. 때로는 반복해서 죄를 짓는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자기는 어쩔 수 없다고 자학하며 죄에 자신을 내맡겨버리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 능력의 한계요 율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씻는 길은 오직 회개하여 사함 받는 길뿐입니다. 우리는 연약하여 죄를 짓지만 하루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죄를 회개하면 의로우시고 미쁘신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요한1서 1:9)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된 회개가 따라야 합니다.
둘째로,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서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성령께서 더 깊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시고 경건하고 의롭게 살 힘을 공급해주십니다. 사도행전 5:32절은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말씀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인격, 가치관,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참예하게 하십니다.
셋째로, 기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과 자기를 신뢰하는 마음을 버리고 온전히 성령께 자신을 맡겨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와 간구를 드려야 합니다. 누가복음 11:13절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쳐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주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귀히 쓰임 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성령은 도전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유럽의 관문 빌립보에 이르렀지만 꿈에 본 사람은 간데 온데 없고 기도할만한 곳도 없는 황량한 벌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절망치 않고 강가에 나가 그곳에 모인 여인들에게 도전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이때 주께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 자매님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유럽 개척의 시작이었습니다. 성령은 상황이 어렵다고 힘들어하며 주저앉아 있는 자에게 임하지 않습니다. 성령은 믿음으로 일어나 개척하고 도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임하시고 역사하십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하나님을 주인으로 섬기는 삶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고 소감을 쓰고 기도하기에 힘쓰는 것도 회개와 간구를 통해 성령 충만함을 받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 성령의 인도되는 삶을 살고자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신앙성장은 성령을 따르는 생활의 열매입니다. 새해 새 마음으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영적인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19-26)
  이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를 비교하여 우리가 어떤 일에 힘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19-21절에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과 같은 15가지 육체의 일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은 모두 죄악된 본성에서 나오는 것들로서 도덕적 타락과 하나님 앞에서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과거를 씻고 새 인생을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더러운 욕망을 탐닉하며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노골적으로 방탕한 생활을 하여 자신과 가정을 파탄에 빠뜨리는 일도 생깁니다. 또 이 시대 풍조를 따라 물질주의, 인본주의, 혼합주의에 빠져 하나님께 대한 절대성을 잃어버리고 상대적인 생각에 빠져 우상숭배 하기도 합니다. 인간 상호간의 관계도 사랑과 신뢰 대신 적대감과 분쟁으로 원수를 맺고 해치는 관계로 전락합니다. 또한 술 취함과 방탕함과 그 외에도 비슷한 죄들이 많습니다. 이런 육체의 본성대로 사는 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경고하십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경고입니까? 신앙생활을 하지만 율법이나 자기 성실에 의지하여 살 때 죄악된 육체의 본성에서 나오는 갖가지 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따라 살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내 안에, 또 양들 속에 갖가지 죄 문제로 연약해진 모습을 볼 때 무력감을 느끼고 신앙생활에 대한 회의와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갖가지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도 하고 성공사례를 답습해보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엇이 문제인지 끊임없이 원인분석 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잘 투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육체의 죄악된 행위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노력이나 어떤 강력한 법으로도 죄를 다스릴 수 없음을 겸손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길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두 손 들고 자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할 때 거기에 비결이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따라 행하면 어떻게 달라집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의 열매에서 가장 먼저 언급되는 열매가 사랑(love)인데, 이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기꺼이 자기 생명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 사랑을 가리킵니다. 사랑은 모든 덕목의 기초요 기독교 신앙의 뿌리입니다. 그래서 아홉 가지 성령의 열매들은 사랑이란 가장에게 이끌린 가족이며, 사랑이란 기초 위에 한 층, 한 층 쌓아올린 건축물과 같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게 되면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싹틉니다. 상대방의 작은 실수에도 판단과 정죄를 일삼던 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참고 인내하고 화평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희락(joy)은 일시적으로 누리는 세상 쾌락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영혼의 기쁨을 말합니다. 희락은 성도들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어주어 어떤 고난도 견디고 이기게 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그 사명이 막중하여 고통 할 수밖에 없었지만 성령의 다스림을 받을 때 큰 기쁨으로 아름다운 찬송시를 썼습니다. 화평(peace)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마음의 평강입니다. 조그만 손해에도 쉽게 분을 품고 원수 맺던 사람이 마음에 평강을 잃지 않고 평화의 사도가 됩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도 늘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고 화평을 유지하였습니다. 오래 참음(인내, patience)이란 어떤 시련을 당해도 믿음을 잃지 않고 변함없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내적인 힘을 말합니다. 또한 인내는 불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믿음입니다. 창세기의 요셉과 다니엘과 욥은 인내로써 하나님의 연단을 마치고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인내는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고전 13:4) 인내하지 못할 때 믿음이 쉽게 흔들려 하나님의 복을 놓치고 인생의 쓴 맛을 보게 됩니다. 자비(kindness)와 양선(goodness)은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마음이요, 충성(faithfulness)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과 뜻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피곤하거나 힘들 때나 우직하게 은혜를 배반하지 않고 믿음의 절개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 소명을 다합니다. 온유(gentleness)는 겸손에서 오는 부드러운 심성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좇아 당을 짓기도 하고 분리하기도 하지만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해와 사랑으로 품고 섬겨 하나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온유함에 근원이 되십니다. 모세는 온유함으로 노예 백성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고 하나님의 소망을 심었습니다. 절제(self-control)는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는 자제력입니다.
  이상 9가지의 성령의 열매는 모두 성령께서 친히 역사하신 한 가지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령을 따라 살 때 성령께서 이런 열매를 능히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법도 이런 성령의 역사에 대해 반기를 들 수 없습니다. 곧 율법에 비쳐 봐도 완전하다는 것이요 또 성령의 열매는 율법의 영역 밖임을 말해줍니다. 율법에 사랑하라는 계명이 있지만 율법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기뻐하라고 명한다고 희락의 열매가 맺혀지지 않습니다. 오직 성령이 그 마음에 역사하셔야 이런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는 하루아침에 맺혀지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 맺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육체의 일은 당장 겉으로 드러나지만 성령의 열매는 삶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은 겉으로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소극적인 삶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내면에 개혁이 일어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기쁘고 즐겁고 은혜가 넘치는 삶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복된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을 것인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한번뿐인 인생에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열매는 우리의 수고로 맺혀지지 않고 오직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성령의 열매로 맺혀집니다.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신자들은 육체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줍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세상 사람들은 정욕과 탐심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여기고 이를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죄에 빠뜨리는 대표적인 세력이 정욕과 탐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정욕과 탐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신자들은 더 이상 정욕과 탐심을 좇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제 신자는 이를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을 좇아 새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성령에 의해 인도되고 성령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섬기며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열심이나 우리 생각, 경험, 지식이나 율법에 매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성령에 인도되고 성령을 의지하는 자가 되라고 명하십니다. 성령을 좇지 않을 때 열심히 신앙생활 한다는 자기 의로 오히려 성령의 역사를 거스리거나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또한 수고한 만큼의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 회의와 불신으로 부르심과 구원의 은혜를 잊고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올해는 말씀의 영, 기도의 영, 찬양의 영을 덧입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얻도록 은혜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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