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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5-24 (일) 13:36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출애굽기
첨부#1 2009_출애굽기_7강-.hwp (39KB) (Down: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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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출애굽기제7강]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2009년 출애굽기 7강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말씀: 출애굽기 13:17-15:21
요절: 출애굽기 14:31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유월절 사건으로 이스라엘은 출애굽 하여 당당히 새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목적지 가나안에 무사히 이르기 위해서는 인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친히 이들의 인도자요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사는 우리도 바르게 인도해줄 인도자를 만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인도자요 길이 되시는 하나님께 나의 모든 생애를 맡기고 믿음으로 따를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13:17-23)
  장자 재앙을 당한 바로는 하나님께 항복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 지긋지긋한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새 삶을 살 것을 생각할 때 발걸음도 가볍게 행군하였습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지름길로 빨리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전혀 달랐습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가까운 블레셋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멀고 험한 홍해 광야 길로 인도하셨을까요?
첫째로, 그들을 안전하게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지 얼마 안 되어 전쟁을 하게 되면 두려운 나머지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아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호전적이고 난폭하여 이스라엘이 그 길을 통과하는 것을 선전포고로 여기고 전쟁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말만 여호와의 군대지 실제로는 영육간에 훈련 되지 않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견딜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감격으로 들떠 있어 강하고 담대해 보였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믿음을 잃고 옛 생활로 돌아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블레셋 길로 4-5일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이보다 여섯 배가 더 소요되는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가장 안전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둘째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해 광야 길로 돌리신 것은 그 방향이 하나님의 호렙산 쪽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실 때 그를 보내신 증거로 그들이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라 하셨습니다.(출3:12) 하나님은 처음부터 분명한 계획 가운데 이들을 호렙산으로 인도하사 율법을 주시고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키우고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생활을 통해 이에 합당한 내면성을 갖도록 훈련하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남들이 다 가는 지름길이나 편안한 길보다 믿음의 길, 연단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가나안에 무사히 들어가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믿음의 사람, 훈련받은 영적인 사람이 되어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백성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빚어지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세상의 악영향을 받아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기에는 블레셋 길로 빨리 들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best way요, 홍해 광야 길로 돌아가는 것은 고생스럽고 손해 보는 힘든 길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반대입니다. 잠언 14:12절은 말씀합니다. “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때로 우리의 보기에 좋지 않은 것 같지만 실상은 가장 안전하고 좋은 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택하신 종들을 모두 믿음의 길, 연단의 길로 돌려 인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25년 동안 믿음의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의 조상으로 서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위해서 7년 동안 광야에서 모진 훈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빨리 많은 양들을 키워서 위대한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쉽게 양을 주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을 통해 먼저 목자의 내면을 갖도록 연단하시고 믿음을 가르쳐주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당장에 편안하고 쉽고 빠른 길로 조건개선을 이루어 눈에 보이는 성공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섬길 때도 쉽고 빨리 성공하는 길은 없는가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분명한 목적과 계획 가운데 느린 것 같아도 가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바라며 순종하여 따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모세가 요셉의 해골을 취하여 나왔습니다. 이는 400여 년 전 요셉이 임종 시에 그의 후손들에게 한 유언에 기초한 것입니다. 이는 애굽의 화려한 총리생활을 하면서도 요셉은 늘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소망하며 살았음을 말해줍니다. 그는 세상에 속한 것은 잠시 잠간 화려함일 뿐이요,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함을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400년 앞을 내다보고 이런 유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믿음대로 출애굽의 와중에서도 그의 해골을 취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숙곳에서 발행하여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은 그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름기둥은 광야에 내리쪼이는 태양열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었고, 불기둥은 추운 밤에 따뜻한 열을 제공해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그들 앞서 행하며 그들의 인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인도자요 보호자가 되어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출애굽 하였지만 막상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습니다. 그들은 생전 처음 외국 여행하는 배낭족같이 막연하고 막막하였을 것입니다. 더구나 광야는 험하고 길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런 광야에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친히 보호자요 인도자가 되어주셨습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을 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세상 명예도, 권세도, 물질도, 지식도 우리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주고 책임져주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안전하게 인도할 인도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길을 보이시고 보호하실 때 가장 안전하고 가장 좋은 길이 됩니다. 광야 길을 가는 우리에게 이 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무엇인가 확실한 것을 붙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적금을 들고 주식을 사고 투기를 하여 대책을 세우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 분위기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왠지 불안해 보입니다. 이렇게 대책 없이 살다가 세상에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닌가? 사탄의 회의에 찬 속삭임을 듣다보면 염려와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 것들이 결코 나를 천성까지 안전하게 인도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나의 앞길을 스스로 알아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또 세상은 겉으로 보기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광야와 같이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독버섯들이 가득하고 진리의 길에서 벗어나 곁길로 나가게 하는 유혹자, 핍박자, 거짓 선지자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냉철한 눈으로 관찰해보면 결코 나의 지혜나 지식, 경험만으로는 무사히 천성에 이를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하나님만이 나의 보호자요 인도자가 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되 지도 한 장 던져주고 네가 알아서 가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 앞서 인도하십니다. 때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공급하셔서 사탄의 유혹과 거짓 사상에서 보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구름기둥, 불기둥이 앞서 인도할 때 나의 계획과 계산을 모두 중단하고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또 구름기둥, 불기둥이 멈추어서면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멈추어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생각을 부인하고 인도하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길로, 선한 방법으로 인도하셔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따르는 가운데 승리의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Ⅱ.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14:1-15:21)
  14: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돌이켰다는 것은 방향을 180도로 바꿨다는 것입니다.(turn back) 하나님은 그들의 가는 길을 반대로 돌려 홍해로 인도하셔서 바다를 등지고 장막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다를 등지고 진을 치는 것은 전술적으로 아주 불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은 숫자로 큰 적을 물리쳐야 할 경우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하는 일종의 적극적인 전술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때 이런 위험한 전술을 구사하셨을까요?
첫째로, 애굽을 심판하고자 하신 것입니다.
  장자재앙으로 하나님께 항복하고 이스라엘을 내보냈던 바로는 정신을 차리자 다시 완악해져 이스라엘을 내보낸 것을 후회하며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하였습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바 되었다 하리라”(3) 하나님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섬멸할 때까지 끝까지 싸우십니다.
둘째로,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시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신 것입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데 있습니다. 바로는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을 믿고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후회하며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총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추격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앞에는 홍해, 뒤에는 바로 군대로 사면초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만 의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군대를 완전히 수장시키시므로 하나님만이 우리가 경외하고 섬길 분이시요, 우리의 구원자 되심을 나타내십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서 절망하고 자포자기하지만 하나님은 이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고 산 믿음을 배우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아무런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삶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고, 믿음도 배울 수 없습니다. 오히려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은 극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났을 때입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절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바라며 산 믿음을 배우고자 해야 합니다.
  애굽 군대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심히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향하여,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1,12) 불평과 원망을 쏟아 내었습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부딪히면 본성이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은 어려움에 직면하자 노예근성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몸은 출애굽 하였지만 내면은 여전히 노예근성으로 가득 차 어려움에 부딪히자 지도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양들은 상황이 좋을 때는 목자에게 별로 감사하지 않다가 상황이 어려워지면 목자를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왜 도서관에서 잘 자고 있는 나를 깨워서 성경공부하게 했느냐?” “왜 축제에 초대한다 해놓고 요한복음 축제로 데려왔느냐?” 하며 목자 때문에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고생하며 죽는 것보다 바로를 섬기더라도 편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생명에 대한 애착 때문에 출애굽의 은혜마저 부인하고 애굽 생활이 좋았었다고 회상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긍지를 잃어버리고 생존의 보장을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위대한 사명인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 섬기기를 포기하고 생존에만 얽매어 산다면 그 인생은 비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비굴한 자들이 된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출애굽의 은혜와,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힘든 현실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모세는 어떻게 돕고 있습니까? 13,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백성들과 함께 절망하거나 백성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렇게까지 힘들 줄 몰랐다” 하며 책임 회피하거나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도왔습니다. 애굽 사람은 반드시 심판 받을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며 요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명하였습니다. 모세가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백성들에게 요동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이 하실 것을 바라보도록 도울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였기 때문입니다. 모세도 홍해와 애굽 군대가 두려웠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백성들이 자기에게 원망하고 대들 때는 차라리 홍해에 빠져죽는 것이 덜 괴롭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힘든 현실보다, 연약한 자신보다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싸우시고 역사하실 것을 믿고 기대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백성들에게 믿음과 희망을 심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지도자라면 이런 어려운 문제를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다 절망하고 무책임하게 도망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음으로 요동하는 백성들을 잠잠케 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도왔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있는 한 사람 모세를 주목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모세는 믿음으로 백성들을 잠잠케 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나님께 부르짖기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도록 지팡이를 잡고 손을 내밀라 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참으로 순종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들에게 앞으로 나가라는 것은 홍해에 빠져죽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뒤로 물러가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앞에 홍해가 있다고 해서 뒤로 물러나 바로의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믿음으로 전진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은 전진입니다. 믿음 있는 사람은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뒤로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든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10:38,39절은 말씀합니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믿음의 사람은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어찌하든지 앞으로 나아가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합니다. 장애물이 있다고 뒤로 물러나면 결코 믿음을 배울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고자 할 때 여러 번 홍해를 만나게 되기 때문에 믿음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는 법을 반드시 배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홍해입니까? 믿음이 없어 두려울 때는 아주 작은 어려움도 홍해가 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학과공부의 홍해가 있습니다. 학과공부의 홍해 앞에서 사명의 십자가를 지고자 할 때 ‘부족한 내가 두 가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워합니다. 목자들은 학생 양들과 세대 차이를 느끼는 제자양성의 홍해가 있습니다. 학사가 되는 분들은 장래 취업이 홍해입니다. 이런 홍해는 건너가다가는 빠져죽을 것 같아서 앞으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홍해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홍해 앞까지는 잘 옵니다. 그러나 홍해 앞에서 절망하고 홍해만 없다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홍해를 믿음으로 건너지 않으면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지 못하고 자기 세계에 갇혀 한계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홍해는 우리가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홍해를 믿음으로 한번 건너게 되면 바로를 더 이상 무서워하지 않게 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배우고 어떤 장애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고 극복하게 됩니다. 우리가 홍해를 통해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적극적인 도전정신과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모세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앞으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은 불기둥, 구름기둥을 이스라엘 백성의 뒤로 옮겨 애굽 군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에 맞추어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도 소용없이 홍해와 애굽 군대에 갇혀 꼼짝 없이 죽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손을 내밀자 기이하게 바다 가운데 길이 생겼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드신 길입니다. 하나님은 망망대해에 길을 내셨습니다.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은 어떤 장애물 가운데도 반드시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홍해에도 길이 열립니다. 우리 가운데 세계선교도 하나님이 기이한 방법으로 길을 내시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브라질을 시작으로 미국, 러시아, 독일, 일본, 북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멕시코 등 어느 곳 하나 하나님께서 길을 열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우리는 세계선교를 하고자 해도 길이 없어서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현재 나타난 길만을 가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개척자 Livingstone이 아프리카 선교보고를 하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고 아프리카에 나갈 수 있는 좋은 길이 무엇인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길을 가르쳐주어야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프리카 선교를 할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는 하나님을 믿고 스스로 길을 찾아오는 사람만이 선교를 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친히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뿐만 아니라 길 자체가 되십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길이 되시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전진하는 자에게 길이 되십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는 이스라엘에게는 길이 되셨지만 이를 시험하여 흉내 낸 애굽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져죽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시는 길을 보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가 세계선교역사에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0절을 보십시오. 그날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닷가에 애굽 사람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살기등등한 애굽 사람들을 보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하룻밤 사이에 시체로 변해버린 그들로 인해 하나님의 큰 능력과 공의의 심판을 보게 하시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들의 비참한 결과가 어떠한가를 눈으로 보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게 되었습니다. 31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백성들은 홍해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 모세에 대한 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믿음은 광야 길을 지나 가나안까지 가야 하는 그들에게 큰 힘과 방향이 되는 중요한 믿음이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이나 세상 지식이나 나의 경험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믿음의 대상은 여호와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종입니다. 15장에는 모세와 그의 누이 미리암의 찬송시가 나옵니다. 모세는 홍해를 건넌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며 능력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모세는 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견고해졌습니다. 홍해 사건을 통해 배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은 모세가 앞으로 어떤 난관도 극복하고 백성들을 안전하게 가나안까지 인도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15:13-18절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비전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현재 이스라엘은 심히 부족하지만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소망이 넘쳤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구속하신 백성이요 주의 거룩한 처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섬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더 이상 노예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었습니다. 모세의 찬송 시에 응답하여 미리암과 모든 여인들도 손에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화답하였습니다. 홍해를 건너는데 여인들의 믿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음에 틀림없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인도자시오 홍해에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홍해 앞에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할 때 홍해는 더 이상 홍해가 아닙니다. 홍해는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고 믿음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는 좋은 믿음의 길일뿐입니다.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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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2 요한복음 [2009가을학기준비특강-1] 오천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09-08-16 2522
4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7강]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관리자 2009-08-09 3326
4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6강] 주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소서 관리자 2009-08-02 3171
39 하박국 2009 여름수양회 1강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최바울 관리자 2009-07-26 2851
38 창세기 2009 여름수양회 2강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 -이동원 관리자 2009-07-26 3037
37 호세아 2009 여름수양회 3강 <주는 그리스도> -장원규 관리자 2009-07-26 3341
36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2661
3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4강] 내가 거할 성소를 지으라 -권영진 관리자 2009-07-12 2700
3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3강] 피로 세운 언약 관리자 2009-07-05 2844
3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2강]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관리자 2009-06-28 2921
32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1강] 여호와의 백성이 지켜야 할 계명(십계명.. 관리자 2009-06-21 2494
31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0강] 내 말을 잘 듣고 지키라 관리자 2009-06-14 2693
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9강]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관리자 2009-06-07 2702
2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8강]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리니 관리자 2009-05-31 2622
2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7강]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관리자 2009-05-24 3195
2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6강] 그 피가 표적이 될지라 관리자 2009-05-17 3529
26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5강]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09-05-10 3730
2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4강]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관리자 2009-05-03 2982
2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3강]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김반석 관리자 2009-04-26 3127
2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6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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