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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19 (월) 14:03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8Matthew35_1.hwp (45KB) (Down: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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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마태복음제35강]먼저 된자가 나중된다
2009년 마태복음 제 35강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

말씀: 마태복음 20:1-16
요절: 마태복음 20: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오늘 이 말씀은 9:30절 말씀의 뜻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주신 포도원 일꾼에 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특히 부자 청년과 비교하며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자랑하는 제자들이 주의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가능성으로 복음역사에 사람들을 부르시고 각각 인격적으로 그 사람에게 합당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 시간 복음의 일꾼이 가져야 할 부르심에 대한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워서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끝까지 잘 감당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1-7)
  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당시 이스라엘의 하루 일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열두 시간이었습니다. 주인은 기름진 땅에 아름다운 포도원을 만든 후 일꾼들을 찾으러 아침 일찍 나갔습니다. 당시 일꾼들은 장터에서 자기들을 써줄 주인을 기다렸습니다.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씩 약속하고 일찍 나온 이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또 제 삼시, 곧 아침 9시에 나가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달리 부지런한 사람들도 아닌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먹고 살아야 하기에 남들처럼 일어나 일자리를 구해보고자 보통 사람들이 출근하는 아침 9시에 장터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인은 은혜롭게도 평범한 이들도 상당하게 품삯을 주리라 약속을 하고 포도원에 들여보냈습니다. 제 육시(낮 12시), 제 구시(오후 3시)에도 그와 같이 하였습니다. 제 십일 시에도 나가보니 또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물었습니다. 이들은 건달처럼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하며 놀고 있는 자신들의 딱한 처지를 고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때 이 사람들은 분명 일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다녔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부족한지, 아니면 모난 성격 때문에 사람들과의 화합이 잘 안되었는지, 전과자로 호적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디에도 이들을 써주는 데가 없었습니다. ‘나를 써 줄 사람이 없다’는 고백처럼 비참한 말이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사람을 뽑을 때 능력, 학벌, 인맥, 외모, 나이, 과거전력, 건강, 성격까지 일일이 따지며 특별한 사람을 골라 채용합니다. 그러나 이 주인은 이런 인간조건을 전혀 개의치 않고 만나는 데로 누구나 다 포도원에 들어가 일하라고 초청합니다. 아무나 누구나 와도 좋소! 주인이 일꾼에게 한 시간만 일을 시키고 하루 품삯을 다 준다는 것은 분명 손해 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주인은 하루 종일 놀고 서 있는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기 포도원에서 일을 하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주인이 일꾼을 부르는 동기와 목적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단지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일꾼을 부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꾼들이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 행복을 누리도록 그들을 위해 부른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본래 사명의 존재로 지음 받았기에 할 일 없이 놀고 지내면 존재의미를 상실하고 불안과 허무에 시달려 괴로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할 때 보람을 느끼고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창1:28)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할 일없이 빈둥빈둥 놀고먹을 수만 있다면 복 받았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믿는 자들조차 사명인의 삶을 살지라도 남들보다 좀 더 편안하게 덜 힘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면 은혜를 받았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당장에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을 결산할 때보면 이런 삶이야말로 저주받은 삶이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복 받은 인생,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은 일생을 바쳐 감당할 사명이 있는 인생,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겠다는 그런 사명을 가진 자입니다.
  도대체 그런 사명이 무엇입니까? 사명의 절대가치는 그 종류보다 누가 불렀느냐에 달렸습니다. 세상에 해야 할 일이 많지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야말로 가장 우선적으로 감당해야 할 절대적 가치가 있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는 은혜와 특권을 주셨습니다. 캠퍼스는 지도자 양성소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년들의 집합소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고 바른 가치관과 인생관을 심어 지도자로 키우는 사명이야말로 참으로 귀한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정말 귀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유럽 지부장 신년 수양회에 특강을 준비하면서 저의 삶과 우리 모임을 되돌아볼 기회를 가졌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기 그지없는 저를 캠퍼스 개척역사에 복음의 일꾼으로 써주셨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선생으로 부르심 받았지만 처음 10년 동안 양 한 사람 제대로 섬기지 못하는 능력 없는 성경선생이었지만 누가복음 12:42절,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초청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때를 따라 나누어주는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였을 때 하나님이 친히 경희대, 광운대, 동덕대, 가대에 복음역사를 이루어주셨고, 이제는 인천과 전 세계 17개국 개척역사를 이루고 계심을 보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였습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데 드린 시간과 진심과 헌신은 하나도 헛됨이 없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귀하게 써주신 것을 발견하고 눈물로 감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위해 드린 시간과 진심과 헌신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하도록 불러주신 이 은혜야말로 비천한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사명인은 그 사명을 사랑하기 때문에 누가 보나 안보나 상관없이 열심히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러니 일의 효과가 극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인으로서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나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복 받은 청지기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8-16)
  날이 저물자 주인은 약속한대로 품삯을 계산하고자 일꾼들을 불러 모았습니다.(8) 그런데 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 온 자로부터 품삯을 주라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는 품삯은 단순히 일한 대가라기보다 은혜로 받는 것임을 보여주고자 함이었습니다. 청지기는 이들에게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습니다.(9) 여기서 품삯은 구원에 해당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하나님 앞에 의인이요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라고 자기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만 불쌍히 여기사 독생자를 대신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를 믿는 자는 누구나 은혜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요3:16) 여기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아무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야 말로 평생 잊어서는 안 될 감사제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먼저 온 자’들이 볼 때 한 시간만 일한 자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는 자기들에게는 분명 더 많이 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자기들에게도 달랑 한 데나리온만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이들은 마지막 한 시간만 일한 자들과 이른 새벽부터 수고와 더위를 견디며 하루 종일 일한 자기들을 똑같이 대우한다고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12)
  이들에 대한 주인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13-15절을 보십시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주인은 먼저 온 자들에게 본래 약속한대로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었기 때문에 다른 일꾼들과 비교하여 손해의식으로 주인을 원망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고 깨우쳐 주었습니다. 나중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줌으로써 손해 본 것은 주인이지 먼저 온 일꾼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포도원에 들어온 자는 누구에게나 똑 같은 은혜를 베푸는 것이 주인의 마음이요, 주인의 선한 주권임을 깨우쳐주셨습니다. 이는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가리킵니다. 주인은 자기 소유를 주인이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은혜 베푸는데 똑같이 사용하였습니다. 이를 ‘주권적 은총’이라 부릅니다. 먼저 온 자든, 나중 온 자든 은혜로 품삯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온 자는 일찍 좋은 주인을 만나 좋은 포도원에서 열심을 다하여 일함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불러주신 주인에게 감사해야 했습니다. 나중 온 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세상에서 아무도 써주지 않는 자격 미달인데도 선한 주인을 만나 좋은 일터에서 훌륭한 일꾼들과 동역하며 일하게 되었으니 자타 공인으로 은총을 받은 자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들은 서로 간에도 은혜를 주고받았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먼저 온 자들이 더운 낮에 땀 흘려 수고한 것이 사실이지만 막판에 지치고 피곤하여 힘이 다 하였을 때 나중 온 자들이 함께 동역하여 일을 잘 마무리 해줌으로써 책임을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복음역사 또한 개척자들의 수고와 땀으로 기초가 놓이기는 하지만, 이어서 나중 온 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잘 동역함으로써 계승 발전되는 것입니다. 개척자들은 그들 나름대로, 또한 마무리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수고하며 애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먼저 온 자와 나중 온 자가 잘 동역하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왕성하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일찍 나온 성실한 사람이든, 막차를 탄 지각생이든, 부지런한 사람이든, 게으른 사람이든, 악한 자든, 세상에서 방황하던 자든 인간조건이나 상황에 관계없이 믿음으로 나오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자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이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비유의 결론으로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16) 먼저 된 자는 분명 한번뿐인 인생을 촌음을 아껴 의미 있는 일을 위해 헌신하고자 길을 찾아 나선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들이 늦잠 자며 인생을 낭비할 때 좀 더 자고 싶은 마음을 부인하고 일찍 일을 찾아 나섰기에 하나님의 은혜로 선한 주인을 만나 좋은 관계성을 맺고 포도원에 들어와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하지도 않고 끝까지 견뎌낸 훌륭한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나중 된 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부르심에 대한 감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나중 온 자는 아무 내세울 것이 없었기에 불러주신 그 자체에 감사하여 감지덕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여 대낮에 땀 흘리며 고생스럽게 일하다보니 자기 의가 생겨나서 부르심이 은혜가 되지 못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남들보다 잘 나서, 부지런하여서, 성실해서, 능력이 많아서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였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기에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이렇게 자기 의가 생겨날 때 감사보다 불평과 원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먼저 온 자들도 손해 본 것 없이 다른 사람들 못지않게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아무 자격 없지만 일방적인 부르심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요, 부족하지만 이날까지 구조조정 당하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의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큰 은혜였습니다. 무엇보다 일찍부터 주인과 교제하며 배우는 은혜와 특권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은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개척 사명을 감당하느라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를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당하고, 배고프고 헐벗고 자지 못하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자랑하지 않고 이 수고도 오직 자기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였습니다.(고전15:10) 그는 범사에 감사하였습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부부가 첫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기를 보는 순간 부부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를 뻔하였습니다. 아기는 보기조차 끔찍한 기형아였습니다. 그들은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우리가 무슨 큰 죄를 지었다고 이런 벌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으로 기도하던 그들은 점차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새 그들의 마음에 있던 원망이 사라지고 감사가 흘러나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저희를 이런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부부로 높이 인정해주시고 이런 아이를 맡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에게 이런 상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감사로 바뀌자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고 애정으로 키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부르심 받은 자가 범하기 쉬운 죄가 바로 자기 의를 내세우며 자기 자랑하는 것입니다. 부르심의 은혜는 자기 자랑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당하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나가십니다. 우리가 부르심의 은혜를 늘 간직하고 감사할 수 있기 위해서는 처음 부르심 받았을 때의 은혜와 감격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부르신 그 부르심의 의미를 잊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할 일 없이 되는 데로 비참하게 살 자를 일방적인 은혜로 불러주셔서 아름답고 광대한 캠퍼스 포도원에서 일할 수 있게 하신 은혜를 늘 마음에 간직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먼저 부르심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가 개척역사를 위해 그 동안 땀 흘려 고생하며 사명을 감당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으면 내가 왜 더 많이 고생해야 하느냐 불평과 원망하는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우리가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다시금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하여 부르심의 은혜를 감당하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부르심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는 항상 먼저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처음에는 주인의 부르심에 깊이 감사하였을 것입니다. 주인과의 관계가 좋았을 때는 한 낮에 땀 흘려 일할 때에도 입에서는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찬송을 하며 기쁨으로 일을 했고, 고생이 될 때에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고난의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계속 일꾼들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이들과 비교하다보니 포도원에 들어온 시간을 비교하였고, 수고하며 흘린 땀의 양을 비교하였고, 결국에는 주인과 약속한 품삯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비교의식에 사로잡혔을 때 모든 것을 품삯으로만 계산하는 물질주의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개척자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를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지는 경우를 살펴보면 나중 온 자에 대한 비교의식으로 인해 하나님께 대한 불평과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개척자로서 얼마나 수고를 많이 했는데 나중 온 자와 똑같이 대우할 수 있는가 하며 개척자로서 특별대우를 해주지 않는 것을 불평합니다. 집나갔다 돌아온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께 따지는 형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 최고의 은혜 베풀기를 원하시는 것처럼 나중 온 자에게도 그와 약속한 최고의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개척자는 개척자대로, 중간에 들어온 자는 그들 나름대로, 막차 타고 들어온 자는 또 그들 나름대로 하나님의 주권에 기초하여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자 인격적으로 그에게 합당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보상심리와 비교의식을 회개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부르심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과 좋은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에서 먼저냐 나중이냐 순서를 따지지 않고 모두 먼저 된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는 시간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성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받았으나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면 하나님과 멀어져 나중 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는 더 많은 삯을 받고 인정받고 대우받아야 한다는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회개하고 하나님과 가장 오래 신령한 교제를 나누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자요 맏형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된 자는 하나님의 마음과 소원을 품고 나중 온 자들을 잘 섬겨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먼저 된 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은혜와 그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주님 안에서 먼저 된 자가 받은 복을 끝까지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캠퍼스 포도원에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이 포도원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고 이 땅에서도 인생의 열매와 행복을 선물로 주는 에덴동산입니다. 우리는 이 포도원에서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유익을 드리고 우리 자신도 ‘행복’의 품삯을 받아 영원히 누리는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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