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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2-22 (일) 12:53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9년마태복음제40강-1.hwp (48KB) (Down: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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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마태복음제40강]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2009년 마태복음 제 40강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말씀: 마태복음 22:15-46
요절: 마태복음 22:37,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그 질문을 통하여 그들의 죄를 깨우치실 뿐 아니라 신자의 근본 도리를 가르치시고, 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신자는 이 땅과 하늘나라의 이중 시민권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이 두 시민권 사이에서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신자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삶의 자세를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Ⅰ.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15-22)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악한 의도를 품고 헤롯 당원들과 합세하여 예수님의 약점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예수님이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다고 아첨의 말을 하였습니다.(16) 그리고 예수님이 진실만을 말씀하시도록 분위기를 만든 다음 올무에 걸려들 수밖에 없는 난해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이 어느 쪽으로 대답을 하시더라도 올무에 걸려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 하시면 로마법을 인정하시는 것이 되어 유대인들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요, 옳지 않다고 하시면 로마에 반역하는 것이 되어 헤롯 당원들에게 체포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yes냐 no냐 말씀하시는 것은 이미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들의 악한 의도를 아시고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책망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당시 세금 낼 때 사용하던 데나리온을 가져오게 하신 후 거기에 새겨진 가이사의 형상과 글자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당시 어려운 상황을 모면하시기 위해 임기웅변 식으로 하신 답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누구에게도 바치기 싫어하는 그들의 이기적인 죄를 책망하심과 동시에, 하늘나라와 이 땅에 이중 시민권을 가진 신자들이 세상 권세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이 땅에서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근본원리를 가르쳐주시는 중요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고 하신 것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열렬당원들은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하나님께 불충하는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기고 목숨을 걸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세금 내는 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마땅한 의무임을 인식시켜주셨습니다. 성경은 신자도 세상 권세에 복종해야함을 가르칩니다. 권세는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롬13:1)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국방의 의무, 노동의 의무, 교육의 의무, 납세의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세금을 기본적으로 잘 내야하고 형제들은 국토방위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학과공부에 충실해야 하고, 직장인은 직장 일을 충실하게 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끝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바리새인들이 원수나라에 세금을 바칠 수 없다는 명목으로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나님께 바칠 것을 제대로 바치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지 않는데 대한 책망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것은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고, 첫 열매도 주의 것이기 때문에 주께 드려야 합니다. 안식일도 주의 날(the Lord's day)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구별하여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신23:21)
  그러나 이런 외적인 것 뿐 아니라 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은 내면의 중심이요 믿음과 충성과 경배와 찬양입니다.(23:23)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을 낼 것인가 말 것인가 관심을 가졌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정의와 긍휼과 믿음에 대한 절대적인 자세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의 주인으로서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나 자신과 내가 가진 젊음, 시간, 재능, 지혜, 그리고 가정과 자녀들도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타락과 멸망은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는데서 시작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삶을 사는 것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 어렵다고 합니다. 이를 하나님은 이해하실 것이라 합리화시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기 때문에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상일을 무시하고 안하고자 합니다. 이것을 믿음이요 자신의 영성이라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나 하나님께 바치는 두 가지 시민권자의 몫을 다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지만 주의 말씀에 순종코자 할 때 감당할 믿음과 힘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창세기의 요셉은 철저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셉을 높이사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자인 우리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근본도리를 다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향력 있는 신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23-33)
  바리새인들이 물러가자 바로 그날 이번에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인들이 새로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다윗 시대에 제사장 사독의 자손들로서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하며 눈에 보이는 현상세계만 인정하고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부인하는 자들이었습니다.(행23:8) 자연히 그들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을 희망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세상 부귀영화를 누리고, 성경도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런 사두개인들이 신명기 25:5,6절을 근거로 부활이 없고 또 있어도 안 된다는 자기들의 주장을 합리화시키고자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24-28) 부활이 있다면 형제끼리 아내 쟁탈전을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질 것이고, 이 땅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였던 여인은 현세보다 더 비참하고 운명적인 고통스런 부활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부활을 어디까지나 현실의 연장선에서 생각하였으므로 부활은 고통이 많은 인생들을 더욱 비참하게 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들이 부활이 어떤 것인가 알지 못하고, 부활을 믿지 못할 때 이성의 세계에 갇혀서 부활을 부인하며 쾌락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져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문제를 어떻게 지적하여 주셨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 하였도다”
첫째로, 그들은 성경에 무지하였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였다(in error)는 것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길을 벗어났다’ ‘헤매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정경으로 인정했는데 모세오경에 부활이라는 말이 없다고 해서 부활의 진리를 부인하는 오류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그들이 믿는 모세오경을 기초로 부활의 진리를 깨우쳐주셨습니다. 31,3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하나님이 이 말씀을 모세에게 하실 당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은 지 이미 400여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모두 현재형으로 자신을 이들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모두 현재형으로 살아 있고, 비록 모세오경에 부활이라는 단어가 없어도 부활이 이미 기록되어 있음을 깨우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성경을 기록된 문자대로만 생각했지 성경의 내용과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겸허한 마음으로 듣고자 할 때 성령님이 깨우쳐주셔서 성경을 바로 알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의미와 뜻을 알지 못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으로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성경은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알려주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본래 구원의 도리를 깨닫지 못하여 부활을 영접하지 못하였습니다. 곧 이들은 자신은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실은 성경을 잘 알지 못해 오류 속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또한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여 부활에 대해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이 세상의 연장으로 생각하였습니다. 30절을 보십시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부활 시에 신자들은 천사와 같은 영적인 존재로 변화되어 하늘나라에 살기에 합당한 자가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더 이상 결혼이나 세상일에 얽매이고 죄로 갈등하는 제한된 인생을 살지 않고 천사와 같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신령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언젠가는 죽으므로 후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자녀를 낳고 키워야 합니다. 그러나 부활 시에는 영원히 사는 신령한 몸이 되어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이런 변화의 역사는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천지를 창조하신 권능의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믿게 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은 죽은 자도 능히 신령한 몸으로 살리시는 능력의 주이십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이성적이고 경험적인 기준으로 영의 세계를 판단하므로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현대인들은 과학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신비스러운 영의 세계, 부활의 세계를 단번에 거부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는 신자들이 체험하는 영적 기쁨과 부활의 생명력을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한계, 또 이성의 한계 속에서 살므로 그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배척하고 불신합니다. 이렇게 그 마음에 믿음이 없는 자를 예수님은 죽은 자라 하십니다. 신자로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만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을 때 죽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하여 그들의 문제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죽은 자는 사두개인같이 부활의 믿음이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 이들은 불신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져 영적으로 죽은 자였습니다. 생각이 죽었고, 말이 죽었고, 행동이 죽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거부하십니다. 반면 살아 있는 자는 어떤 자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절대적인 자들로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는 자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자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살아 있는 자입니다. 살아 있는 자는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살아 있는 믿음으로 도전하여 전진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사람들을 기뻐하시고 이들의 하나님이라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소망 없이 늙어가는 죽은 자와 방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약속과 하나님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믿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바치기까지 순종함으로 하나님은 그의 증명된 살아 있는 믿음을 인정하시고 그를 메시야의 조상으로 인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내면에는 죽음의 요소가 없습니다. 이들은 항상 밝고 긍정적이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우리가 실생활에서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불신하기를 잘 합니까? 이로 인해 작은 어려움 앞에서도 쉽게 절망하고 부정적이 되고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십니다. 죽은 자가 되어 아무리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하나님과 관계성이 이미 떨어졌으니 응답이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 되셔서 그와 더불어 교제하시고 그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죽은 자인가? 살아 있는 자인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려면 살아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하나님은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Ⅲ. 크고 첫째 되는 계명(34-46)
  예수님이 사두개인들마저 할 말이 없게 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시험하여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율법사는 율법에 능통한 성경학자입니다. 그들은 613개항이나 되는 방대한 율법 조항 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큰가 알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늘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고 율법을 가르치면서 많은 율법을 지키는데 한계에 부딪혔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중요한 율법이 무엇인가 알고 싶었을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문제를 대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7-4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크고 첫째 되는(the first and greatest) 계명이란 모든 계명의 원리가 되는 계명이란 뜻입니다. 원래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자칫 하나님이 주시는 복 자체에 빠져 복을 주신 하나님을 잊기 쉬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바로 타락하여 가나안 땅의 우상숭배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위험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도록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시고 이를 꼭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다른 사람을 헤치지 않고 도와주고 살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길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사회적인 존재로 살아야 할 인간이 이웃과의 관계를 맺는 길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임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때 인간 본연의 자세를 회복하고 본래 창조하신 목적대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이 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은 이를 절대계명으로 주셔서 이를 순종함으로 지키도록 하셨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고 누리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복을 계속하여 누리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복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명의 근본 의도를 알지 못하고 율법조항으로만 지키고자 할 때 그 율법을 굴레로 여기고 부담을 느껴 이에서 벗어나고자 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계명의 근본 의미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돕고 이웃을 사랑하도록 돕는 것이므로 이 율법의 근본 핵심을 알 때 다른 세부적인 율법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너무나 할 일이 많다고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것이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율법사는 많은 율법조항으로 힘들어하였는데 예수님은 첫째, 둘째 계명으로 요약하셨습니다. 인간은 심히도 연약하여서 힘들 때는 하나님께 끊임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잘 안되면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잘 되면 복 주신 그 하나님을 잊고 다른 우상, 사람이나 물질을 우상삼아 섬깁니다. 또 세상 것을 사랑하여 이에 빠집니다. 이를 볼 때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부족하고, 이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얼마나 투쟁이 필요한가 알 수 있습니다. 또 인간에 대해서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면 이용하고자 하고 도움을 얻고자 하여 가까이 하지만 아무 유익이 없고 오히려 부담이 되고 도움을 주어야 한다 싶으면 멀리하고 형식적으로 대합니다. 또 내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여유가 없다고 변명합니다. 죄인들은 어느 한 순간도 순수하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런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일생 지켜야 할 복된 계명을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 도리라고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우리 자신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있습니까? 또한 신앙인으로서 이웃을 나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애쓰고 있습니까? 이 시간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웃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계명을 생각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신자의 기본자세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십니다. ‘강령’은 요약, 핵심이라는 뜻으로서 성경의 핵심은 사랑이요 모든 율법은 사랑의 계명에서 파생(派生, hang on) 되었다는 뜻입니다. 율법을 잘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고 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은 위대한 치유의 힘이 있고 부흥의 원동력이 됩니다. 오늘날 캠퍼스 개척이 참으로 어려운 것은 양들이 영적으로 깊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요 이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들에게 말씀을 주고 또 중보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41-45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잘 못된 메시야 관을 바로잡아 주심으로써 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갖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야 함을 가르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에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계명을 새롭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또한 믿음으로 살아 있는 자가 되어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을 체험해야 함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삶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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