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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3-29 (일) 13:40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9년마태복음제45강-1.hwp (39KB) (Down: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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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마태복음제45강] 나의 피 곧 언약의 피

2009년 마태복음 제 45강 (김반석)

나의 피 곧 언약의 피
말씀 마태복음 26:1-30
요절 마태복음 26:29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오늘 말씀은 유월절이라는 유대인의 명절을 이틀 앞두고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여인으로부터 향유 부음을 받으시고, 그 이튿날에는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유월절 만찬을 하셨습니다. 이 만찬석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주시며 “이 것은 내 몸이니라” 하셨고, 또 잔을 주시며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하셨습니다. 이 시간 향유를 부은 사건과 유월절 만찬의 의미를 생각해 봄으로써 성만찬의 의미를 되새기며 주님께서 주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는 은혜를 덧입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예수님께 향유를 부은 마리아(1~16)
1,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가르치는 자로서의 지상사역을 완수하시고, 십자가를 통한 인류구속에 대해 가르쳐주고자 하셨습니다.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이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리리라” 유월절은 이스라엘의 3대 명절 중의 하나로 가장 크고 중요하게 지켜졌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유대력으로 니산월(태양력으로는 3~4월) 14일인 금요일에 시작하여 7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자신이 받으실 고난과 죽음에 대해 3번이나 가르치셨는데(16:21, 17:22, 20:18), 여기서는 더 구체적으로 유월절 기간 중에 그 사건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틀 후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는데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희생하신 것처럼, 인류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희생 제물로 내어주실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우연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때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3~5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예수님을 잡아 죽일 흉계를 꾸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월절에 예수님을 체포했다가는 메시야로 믿는 무리들이 민란을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명절에는 하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그들 속에는 진리와 거룩함이 없고, 거짓과 시기와 음모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적이었습니다.
반면 그들과는 대조적인 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의외의 행동을 하였습니다. 6,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베다니 지역의 나병환자인 시몬의 집에 계실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절박한 시기에도 양을 돌보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한 여인이 매우 귀하고 지극히 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보통 유대 사회에서는 집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냄새를 제거하고 기분을 상쾌하게 할 목적으로 향유를 손이나 머리 위에 한 두 방울 떨어뜨려 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향유가 담긴 옥합을 왕창 깨뜨려서 맛있게 식사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쏟아 부어 버렸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비싸고 귀한 것이라고 해도 식사 도중에 머리에 쏟아 부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너무 황당해서 밥맛이 떨어져 숟갈을 집어 던질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은 교양 없고 무례한 행동을 한 여인에 대해 분개하여 “무슨 의도로 이것을 허비하느냐?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책망하였습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여인의 행동이 어처구니없고, 참으로 어리석게 보였습니다. 예수님께 드리고 싶으면 옥합을 깨지 말고 통째로 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300데니리온 즉 근로자의 1년 연봉에 해당하는 적지 않은 돈인데, 이것을 팔면 장막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단체로 유럽 국제수양회에 참석할 수도 있을 텐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아까웠습니다. 물질적이고 인본적인 가치관을 가진 자들의 관점으로 보면 여인의 행동은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이었습니다. 맹목적인 신앙이라고 비난할만합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일대일 말씀으로 양을 섬기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요 인생을 허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에 풀타임을 하고 선교사로 나가는 것을 보면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도대체 이 여인은 왜 그런 돌발행동을 하였을까요? 요한복음(12:3)에서는 이 여인을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의 여동생 마리아라고 이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오빠를 살려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감사했습니다. 자신의 인생문제, 심각한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틈틈이 자신의 집에 들러 은혜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주님께 싶은 마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결혼을 위해 한 방울 한 방울 모아서 장롱 속 깊이 숨겨 둔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 주님께 드린 것입니다. 이는 주님을 향한 마리아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에서 나온 진실된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물질에만 있었기 때문에 이런 마리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무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비뚤어진 내면을 꿰뚫어 보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게 하느냐”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하시며 마리아의 행동을 크게 칭찬해 주셨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한 행동은 비난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인정받고 칭찬받을 만한 좋은 일입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땅에 다 떨어져 없어졌지만 주님은 마리아의 진심과 열정과 사랑을 다 받아 주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은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 받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믿을 때 손해의식이나 비교의식에 시달리지 않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헌신하고 충성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인정하시는 좋은 일을 행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 이 말씀은 가난한 자들은 항상 그들과 함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도울 수 있으나 예수님을 섬기는 데에는 때가 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틀 후에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자신을 희생하시게 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미 세 번이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 영접하지도 않았고, 준비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마리아의 행동은 예수님께 큰 힘과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염두에 두고 향유를 부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예수님은 마리아가 한 행동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한 것이라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만일 마리아가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 수 천명에게 설렁탕을 사 주었다면 “마리아 자매님! 고마워요.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입을 싹 닦아버리고 기억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에게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행한 일을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보시고 역사화 시키셨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마리아의 행동은 아름다운 믿음의 향기를 발하여 후대에까지 그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우리도 마리아의 행동을 기억하고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또 마지못해 섬길 때가 많습니다. 향유 한 두 방울 부어드리고 주님께 대한 의무를 다했다고 뒷짐을 지며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또 우리의 심령에도 은혜와 기쁨이 없습니다. 그 신앙은 무기력하고 생명력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부족하지만 마음을 바쳐 정열적으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이때 주님께서 귀하게 써주시고, 우리의 심령에도 기쁨이 넘칩니다. 우리의 심령에 은혜와 기쁨이 없는 것은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통 드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장래를 위해 향유를 모으는 것은 잘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언제,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지를 몰라 결국 때를 놓치고 헛된 것에 허비해 버립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고, 섬기는 데에도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믿는다고 미루다가 불의한 일을 만나 구원받을 기회를 놓쳐 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지금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지금은 나이도 어리고 할 일이 많고 바쁘니 이 다음에 나이도 먹고 좀 여유가 있을 때 주님을 섬기겠다고 미루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시간이 많고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어도 주님을 섬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늘 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은 쏜 살과 같이 휙 날아갑니다. 시간은 결코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붙잡아야 합니다. 현재 특히 젊을 때 주와 복음역사를 헌신적으로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진심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계5:12).

14~16절은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팔고자 흥정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유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리아의 행동을 본받고자 했으면 좋았을 텐데, 불행하게도 그는 물질에 눈이 어두워져 은혜 망각증, 헌신 기피증에 걸려 배반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당시 노예들의 몸값에 불과한 은 삼십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길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은혜를 감당하지 않으면 결국 언젠가는 유다와 같은 배은망덕한 길을 가게 됩니다.  

Ⅱ. 최후의 유월절 만찬(17~30)
17절을 보십시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유월절 음식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물었습니다. 무교절의 첫날은 유월절을 말하는데, 이 날에 흠 없는 1년 된 어린 양을 잡아 가족 단위로 유월절 식사를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어디서 유월절 만찬을 예비하기 원하시는가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배반자 가룟 유다를 의식하여 정확하게 위치를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방향만 지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유월절의 영적 의미를 가르치기 위해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제자들과 유월절 식사를 나누기를 간절히 소원하셨습니다(눅22:15).
저물 때에 예수님은 열 두 제자와 함께 유월절 만찬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식사 도중에 폭탄선언을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먹던 음식이 목에 걸려 체할 뻔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가룟 유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제자들의 마음을 준비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3년 여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하였는데, 예수님을 배신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불가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자신이 배반의 장본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므로 제자들은 몹시 근심이 되고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주여 누구입니까?” 라고 묻지 않고, “주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물었습니다. 23,24절을 보십시오.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예정하신대로 즉 거룩하신 하나님의 경륜대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스런 하나님의 보좌에 앉으시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배반하고 판 것은 어디까지나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결국 배신행위에 대한 엄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유다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다른 제자들이 다 물어보는데 자신만 하지 않으면 들통이 나기 때문에 유다는 자신을 위장하기 위해서 형식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제자들과 달리 예수님을 랍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자들도 속이고, 예수님을 속이고자 하였지만 불꽃같은 눈으로 심령을 감찰하시는 예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네가 말하였도다”하시며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배신자를 알았다면 배신하기 전에 즉시 제거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다에 대한 목자의 심정으로 사랑하시고 끝까지 도와주고자 하셨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이런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밖으로 나가버렸습니다(요13:30). 그는 회개치 않고 물질을 좇아 세상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면 그는 예수님을 팔아서 은 삼십이라도 챙겼으니 인생을 현명하게 산 사람입니까? 자신은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유익을 남긴 머리 좋은 사람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마태복음 27:5절에 보면 그는 그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목매어 자살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18절에 보면 그는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소중한 옥합을 깨어서 주님께 드림으로 그 안에서 향유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유다는 자살한 후 그 몸이 깨어지고 부서져서 창자가 흘러 나왔습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다 내 인생이 깨어지고 부서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처럼 아끼고 소중하게 보관해 온 옥합도 언젠가는 다 깨어지고 부서집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향유가 흘러 나와서 감동을 주지만, 또 어떤 사람은 가룟 유다와 같이 창자가 흘러 나와서 사람들을 슬프게 합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어차피 한번 밖에 없는 인생, 언젠가는 깨어지고 쏟아질 인생,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수치로 끝나는 자들이 되지 아니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서 주님께 영광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가 되는 아름다운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유월절 만찬을 먹을 때에 예수님은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고난 받으시며 찢기실 자신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음식을 먹는다 해도 언젠가는 죽어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찢기시며 우리에게 준 몸은 우리에게 새 생명(new life),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선물로 줍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강권하는 사랑으로 “받아서 먹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이 시간 주님이 주시는 몸을 믿음으로 받아먹어야 하겠습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사 고귀한 몸을 찢기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십니다. 사람이 떡을 먹어야 생명이 유지가 되고 또 힘을 얻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식사를 잘 하는 사람은 건강하고 힘이 넘칩니다. 마찬가지로 영의 양식을 잘 먹는 사람이 건강하여서 스피릿을 덧입고 하나님의 복음역사를 힘차게 감당하게 됩니다. 날마다 자립적으로 일용할 양식을 잘 먹는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하여 박해나 죄의 유혹이 오더라도 능히 물리칩니다. 예수님의 몸은 영적으로 굶주린 우리의 영혼에 진정한 영의 양식이 되어 생명과 힘과 참된 만족을 줍니다.

27절을 보십시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떡을 먹었으면 이제는 잔도 마셔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죄사함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피를 물려받습니다. 부모의 혈액형이 O형이면, 자식도 O형의 피를 물려받게 됩니다. 그래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범죄하고 타락한 피를 물려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타락한 피를 물려받아 죄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가 없고, 아담 안에서 죄 가운데 태어난 우리는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의 삯으로 사망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는 동안에도 온갖 죄의 세력에 시달리다가 죽고 결국에 지옥의 저주에 던져져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하게 되었습니다(계 21:8).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기 때문에 더러워진 피를 깨끗케 하기 위해 누군가가 우리 죄를 대신해서 피를 흘리며 죽어야 합니다(레17:11)..
이런 우리를 위해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속함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자기의 죄를 위해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려 단에 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인간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하고, 그 효과도 일시적이었습니다. 이것은 장차 올 참된 속죄의 그림자였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보내셔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순결한 어린양으로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주셨습니다(요1:29).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에 대하여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피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언약은 쌍방간에 맺은 약속입니다. 어느 한쪽이라도 영접하지 않거나 파기하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언약에는 구 언약과 새 언약이 있습니다. 구 언약은 율법에 기초한 행위언약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의 요구를 100% 충족시킬 수가 없으므로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대신에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돌아가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인간이 받아야 할 죄 값을 다 치루시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사함 받고, 일방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받게 됩니다. 이를 은혜 언약, 또는 믿음 언약이라 부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로 맺으신 새 언약이므로 결코 변개함이 없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피의 능력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은 죄가 너무 많아 자신은 도저히 구원받고 새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또 계속해서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지을 때 자신의 고질병은 고침 받을 수 없다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9:13,14절을 말씀합니다.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를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어떤 몹쓸 죄를 지었는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같은 죄를 지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의 능력을 믿고, 얼마나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죄를 회개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피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새로운 피조물로 변하여 새 사람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의 피를 받아 마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가 자기는 너무나 죄를 많이 지어서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 하소연하며 어떻게 하면 구원 받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 사람의 지은 죄를 다 들은 목사님은 “정말 많은 죄를 지었군요. 그러나 만일 형제님이 심판 받는다면 지금까지 지은 죄 때문이 아니라 독생자를 내어주시기 까지 형제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는 죄 때문일 것입니다.” 조언해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믿기만 하면 어떤 몹쓸 죄를 지었을지라도 용서받고 구원받습니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피의 능력을 믿고,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심령에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을 위대한 복음의 일군으로 변화시켰습니다. 허랑방탕한 삶을 살던 어거스킨을 변화시켜 성어거스틴이 되게 하였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의 죽으심의 의미를 설명하신 후 제자들에게 죽음이 끝이 아니라 그 후에 승리와 영광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그곳에서 새로운 유월절 잔치를 하실 것을 말씀하심으로 지금까지의 짐승의 피로 드리는 유월절 행사는 끝이 나고, 새 유월절이 제정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에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그 후 그들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갔습니다(30).

결론적으로, 주님은 이렇게 자신의 몸과 피를 우리를 위해 다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그 몸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사 몸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의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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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9강]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관리자 2009-06-07 2669
29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8강] 하늘에서 양식을 내리리니 관리자 2009-05-31 2593
2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7강] 홍해에 길을 내신 하나님 관리자 2009-05-24 3099
27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6강] 그 피가 표적이 될지라 관리자 2009-05-17 3500
26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5강]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관리자 2009-05-10 3696
25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4강] 네가 아니라 내가 하리라 관리자 2009-05-03 2948
2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3강]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리라 -김반석 관리자 2009-04-26 3050
23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2강] 왕자에서 나그네로 관리자 2009-04-19 2658
22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강] 학대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관리자 2009-04-14 2694
21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함바나바 관리자 2009-04-13 2734
20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천수원 관리자 2009-04-13 2785
19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 <청년아 일어나라>-김태영 관리자 2009-04-13 2867
18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장원규 관리자 2009-04-12 2660
17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최바울 관리자 2009-04-12 2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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