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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4-13 (월) 11:25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1강_청년아_일어나라(2)_함바나바.hwp (33KB) (Down: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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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함바나바
2009년 부활절 수양회 제 1 강             함바나바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 누가복음 7:1-17
요절/ 누가복음 7:14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Happy Easter! 부활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백부장의 종이 죽어가고 있을 때 예수님은 말씀을 믿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종을 강건하게 하셨습니다. 과부의 외아들이 이미 죽어 관에 누워 있을 때 예수님은 ‘청년아 일어나라’ 말씀하심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죽은 자도 살리는 놀라운 말씀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을 듣는 자 속에는 구원의 역사,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믿고, 주님의 생명의 음성을 들음으로 우리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기를 기도합니다.

1. 백부장의 믿음(1-10)
1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택하신 후에 산상수훈을 말씀하신 후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이 때 몇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가버나움에 주둔하고 있던 100명의 로마 군인의 지휘관인 한 백부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 가버나움에서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고 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하던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잔인하고 무정하기 쉬운 로마 군인이었지만 보잘 것 없는 한 종을 아끼고 사랑했으며, 이 종이 병들자 쓸모없다고 내버리지 않고 어찌든 살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어떤 병자도 고치신다는 소문을 듣고는 큰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얼른 유대인 장로 몇을 예수님께 보내어 그 종을 살려주시도록 간구하였습니다.

4절과 5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유대인의 장로이니 이방인에 대하여 얼마나 꼬장꼬장하고 까다로운 사람들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이런 자들이 로마 군인의 부탁을 받아 병들어 죽어가는 한 노예의 일로 아쉬운 소리를 하러 나온 것입니다. 장로들의 말에 의하면 백부장은 유대 민족을 위하여 회당을 지어주었는데, 이것은 정책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과연 백부장이 어떤 사람인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인간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은 밑바닥 사병에서부터 출발하여 여러 전쟁을 겪으면서 업적을 많이 쌓은 군인이 뽑혔습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인의 꽃으로서 충성되고 용맹스러운 반면, 잔인하고 엄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사람을 사랑하는 휴머니스트였습니다. 그는 당시에 살아있는 물건에 불과하던 한 노예를 아끼고 사랑했으며,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도 이제는 쓸모없다며 버리지 않고, 어찌든지 그를 살리고자 애썼습니다. 또 피지배 민족을 무시하지 않고 사랑하며, 그들의 가치관과 관습을 존중하여 회당도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참으로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인간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인간애를 가진 자를 귀히 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백부장과 같이 사랑을 소유한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역사를 섬긴다고 하지만 자칫 인간애를 잃고 일중심이 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즈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을 사랑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땅에 떨어지고 인간은 돈을 버는 수단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고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시대에 우리는 목자로 부르심 받았습니다. 목자는 한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섬기는 자입니다. 요즈음 누가 자기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말 안 듣는 양들을 쫓아다닙니까? 이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영혼을 귀히 여기고 사랑할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백부장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병든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하고 있기에 그 자체로 귀한 존재입니다. 캠퍼스 양들은 겉모습은 아무 문제없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병들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들을 사랑해주고 이들의 병든 내면을 고쳐달라고 주님께 기도하는 목자가 필요합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그는 예수님을 감히 집으로 모실 수 없는 창조주시요 영적 총사령관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권세를 절대적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백부장은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병마까지도 복종케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심과 신뢰가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는 8절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는 군인 사회에 살면서 명령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상급자의 입에서 나오는 명령이 후임병들의 행동으로 열매 맺는 것을 수없이 목도했습니다. 자기도 윗사람의 말에 따라 그대로 움직였고, 아랫사람들도 자기가 하는 말을 따라 그대로 움직였습니다. 상관의 말은 입에서 내뱉는 즉시로 사라지는 허상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움직이는 권세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예수님은 영적군대의 총사령관으로서 그 말씀에 엄청난 권세가 있으시니,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백부장이 말하는 것을 들으시고 몹시 놀라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이만한 믿음은 이렇게 위대한 믿음(such great faith)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선민으로서 마땅히 예수님을 영접하고 큰 믿음을 가져야 했지만 예수님을 불신하고 배척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예수님은 오히려 이방인 백부장에게 말씀 자체를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을 보시고 기이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크게 칭찬하시고 축복하사 병들어 죽어가던 그의 종을 고쳐주셨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은 믿음이 없어서 표적만 구하는데, 오히려 이방인이 이렇게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에 놀라셨습니다. 그의 믿음은 신약의 아브라함이라 할 만큼 말씀을 절대적으로 믿고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그는 말씀의 능력을 단순히 믿었습니다. 말씀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최종적으로 가르쳐주고자 하시는 믿음입니다. 이 시대는 백부장과 같이 사람을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사랑의 목자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믿음의 소유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결국 백부장의 믿음으로 종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수님을 감동시키고, 영적으로 죽을병에 걸린 양들을 살리는 이 시대의 백부장들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2.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11-17)
11절과 12절을 보십시오.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하더니,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한 어머니의 독자요 그의 어머니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나인 성은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과 가까운 곳으로, 그 뜻은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행렬은 즐거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망자는 한 과부의 외아들로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친 자였습니다. 이 젊은이가 왜 죽었는지, 신입생환영회 때 사발식 하다가 죽었는지,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으나, 젊은 날 그의 죽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하게 하고 특히 그 어머니의 마음을 찢어놓았습니다. 예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당하고, 그 동안 이 아들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이제 이 아들마저 떠나버리니 그녀의 슬픔을 누구도 위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의 미래와 희망, 인생 전체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처럼 죽음은 사람을 슬프게 만듭니다. 특히 젊은 날의 죽음은 인생의 꿈도 아름다움도 모두 짓밟아 버리기에 더욱 슬프게 합니다. 죽음은 젊은 자나 늙은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세자나 가리지 않고 찾아옵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인생들은 모두 죽음의 행렬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가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단 말입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사랑하는 독자를 잃고 슬피 울고 있는 과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불쌍히 여기신 것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닙니다. 이는 몸과 마음의 모든 것이 동원되어 그녀의 슬픔에 깊이 동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슬픔과 비통함에 깊은 연민을 느끼시고 동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권세 앞에 절망하고 무기력하게 슬피 울고 있는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습니다. “울지 말라!” 이 말은 여인에게 가장 필요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오직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죽은 아들의 생명을 되돌려 줄 수 있는 부활의 주님이시오 생명의 수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가까이 가서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예수님은 과부를 위로하신 후 가까이 가셔서 그 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러자 관을 멘 자들이 멈추어 섰습니다. 유대의 장례법은 시체를 세마포에 싸서 뚜껑이 없는 관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누워 있는 시체를 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청년이 벌떡 일어나 앉았습니다. 그리고 말도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어머니에게 주어 그녀를 위로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크게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잠깐 청년이란 어떤 존재인지 한번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찾아보면 청년은 20-30세 사이의 젊은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 구실을 해야 사람이라 할 수 있듯이, 나이만 젊다고 해서 다 청년이 아니고 청년다워야 청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 가운데 서홍일 목자님은 홍보부 책임 목자님을 맡고 계시면서 어떻게 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모임을 캠퍼스 가운데 홍보할 것인가 끊임없이 연구하고 계십니다. 최근에는 불혹을 넘기신 나이에도 불구하고, 홍보 동영상을 만들기 위해 포토샵을 새롭게 배우고 계십니다. 나이는 청년이 아니시지만 이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시는 이 정신만큼은 청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년의 여러 가지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자면 가능성일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가능성은 있지만 분별력이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경험과 분별력은 있지만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에게는 분별력과 가능성이 동시에 있습니다. 무한한 가능성은 청년의 특권입니다. 청년은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인가 생각할 여유도 있고 선택할 권리도 있습니다. 청년의 가능성은 어떤 방향을 잡느냐에 따라 무한히 발휘될 수도 있고 시들고 말라버릴 수도 있습니다. 청년의 때에 진리에 기초한 인생관을 쌓고 진리의 말씀에 인생의 뿌리를 내린다면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래의 지도자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청년은 어떠합니까? 그는 죽어서 관속에 누워있습니다. 그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꿈과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관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은 자신만 비참한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슬픔과 절망감을 안겨 줍니다. 오늘날 나이는 젊지만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죽은 후에는 둘째 사망 곧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자들은 죽어 관속에 누워있는 청년과 같습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은 살아갈 때도 사망권세에 시달리며 두려움과 불안과 슬픔과 허무 가운데 살아갑니다. 죽음의 세력은 청년을 관 속에 가두어둡니다. 청년의 꿈과 가능성, 비전을 삼켜버립니다. 요즈음 청년들은 인터넷이라는 관에 자신을 가두고 좁고 어두운 곳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욕적인 생각, 운명적인 생각, 절망적인 생각의 관 속에 드러눕게 만듭니다.
그러나 이 시간 예수님은 청년들에게 명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이는 무기력하게 관속에 누워있지 말고 일어나 높은 이상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닥쳐도 도전하고 그 어려움을 정복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죄와 현실이라는 한계에 갇혀 지내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자립적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청년은 일어나 힘찬 새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둥지를 박차고 일어나 넓은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내 힘으로 일어나려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우리 스스로는 허무와 운명의 관, 무기력과 정욕의 관에서 일어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생명의 음성을 들을 때 능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에는 생명을 살리는 권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25절은 말씀합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가 살아나 부활의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의 비전을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의 방법은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세 종류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나무는 작은 묘목일 때부터 가지고 있던 꿈이 있었습니다. 각자 나무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오동나무는 보석함으로 쓰임받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잘라져 말과 소들이 먹는 여물통이 되었습니다. 떡갈나무는 큰 배의 기둥이 되기를 원했지만 어부의 작은 나룻배가 되었습니다. 소나무는 위대한 건축물에 쓰임 받기를 원했지만 일꾼들에 의해 잘려 죄인들을 매다는 십자가로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때 누이신 말구유로 쓰임 받았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 바다를 건널 때 쓰임 받았고, 마지막 소나무는 예수님이 달리신 그 십자가로 쓰임 받았습니다. 현실의 어려움은 우리를 절망하게 하지만 하나님은 그 분의 방법으로 완전무결하게 이루십니다. 자식 없던 늙은 아브라함, 죄수 요셉, 물에 떠내려갈 운명에 있었던 아기 모세 모두 하나님의 방법대로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용될 것을 기대할 때 상황과 관계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본문에 나오는 청년처럼 관이라는 현실에 갇혀 아무런 꿈도 가지지 못한 채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찍찍거리고 약 먼지들이 날리는 한평 남짓한 한의원에 고용되어 거친 환자들에 시달리는 현실은 하나님께서 주신 캠퍼스 선교비전을 고이 간직하고 살기엔 너무 가혹하게 여겨졌습니다. 어찌든지 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증권에 빠져 몇 달을 보내고, 그것이 안 될 때는 인터넷 게임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야동까지 보면서 영육 간에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내면은 체워지지 않고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 어릴 적 순수했던 공학도로써의 꿈이 뭍어 있는 고향에 가고 싶어 향수병에 걸렸습니다. 저는 너무나 고향에 가고 싶어 하였습니다. 모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스카이뷰에 비친 경포대의 철썩이는 파도를 볼 때, 그리운 마음에 눈물이 글썽거릴 정도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보니 모든 것이 피곤하고 짜증스러워 사명의 십자가를 져야 할 것을 알지만 직장 끝나자마자 집으로 먼저 가기가 일쑤였고, 주말은 사명을 감당하는 유일한 날이 되지 못하고 유일하게 쉬는 날이 되어 있었습니다. 마음의 첫 자리가 하나님이 되어 있어야 했지만 일신의 안락함과 해결해야할 현실문제들로 주님의 사명은 잊혀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영적 위기였습니다. 제가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영접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실의 관에서 일어나 주님과 말씀에 대한 사랑을 회복함으로 캠퍼스에 날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기를 기도드립니다. 거절당하고 실패할 것 같은 두려움에서 일어나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는 역사에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시간 청년으로서의 자신을 돌아보며, 먼저 내 자신에게 주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하겠습니다. 이 음성을 통해, 나를 한계 짓게 하고 물러서게 하고 드러눕게 하는 내면의 원수들에게 믿음으로 도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통해, 나의 청년 됨을 깨닫고, 청년답게 일어나 도전하는 삶, 주님의 생명과 능력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고자 투쟁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캠퍼스의 많은 청년들이 오직 이 예수님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그들에게 나아가 청년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돕는 삶을 살기를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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