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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12 (일) 12:55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19강-1.hwp (29KB) (Down: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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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2020년 마태복음 제 19 강
말씀 / 마태복음 12:22-50
요절 / 마태복음 12:29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사는 것이 전쟁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쟁이라는 단어에는 이겨야만 하는 절박함, 고상한 자라도 흔들리고 탁월한 자라도 무너지게 만드는 치열함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여정에는 전쟁처럼 처절하고도 무서운 싸움, 도망치지 말고 견디고 버티고 이겨야 할 싸움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되려면 성령을 힘입어 사탄을 결박하시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믿음이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습니까! 믿음으로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귀신에 붙잡혀 눈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22)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했던 그 시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입이 열려 말하게 되고 눈이 열려 보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입니다. 무리들이 다 놀라 감탄하며 고백합니다.(23) “이 정도라면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가 확실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습니다.(24) “이 사람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마귀의 역사이니까 감동받지 마!” 어찌 이리 정반대의 해석, 부정적인 해석을 내놓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절대 신뢰할 수 없는 사람, 문제 많은 사람으로 낙인찍었기 때문입니다. 불신이 베이스에 깔려 있으면 무슨 일을 보여주어도 신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25) 사탄의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 우리와 우리 사이를 이간질시켜서 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분열시키는 사명을 줄기차게 감당합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스스로 분쟁해버리면 그 일을 해보지도 못하고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26) 어느 집이든지 내분이 일어나는 집구석 치고 잘되는 집안 하나도 없습니다. 아빠 엄마가 틈만 나면 피터지게 싸우면 아무리 탁월한 신앙교육을 할지라도 자녀들에게 믿음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고 냉랭한 가정은 자녀들을 불신세력의 공격에서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가장 좋은 신앙교육은 아빠가 엄마를 아껴주고 엄마가 아빠를 존경하기 위해 애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지 말라고 등을 떠밀어도 믿게 됩니다.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합니다. 밖에 있는 원수는 모임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오히려  뭉치게 만듭니다. 하지만 내부에 적이 있으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이단보다 똑똑한 사탄이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또한 당시 바리새인들 가운데 귀신을 쫓아내는 자들도 있었습니다.(27)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엉터리이며 스스로를 정죄하는 해석이 되어 버립니다.

귀신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없으며, 사람의 힘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시는 분이십니다.(28) 그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그에게 임한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를 제압할 수 있는 강력한 제국을 세워야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환경이 좋아지고 지위가 높아진다고 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 아래 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강한 것 같으나 실은 한없이 연약합니다. 첫 사람부터 간교한 사탄의 꼬임에 넘어가 낙원을 잃어버렸습니다.못배운 사람도 죄의 종이 되어버리고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도 죄의 종으로 삽니다. 형이 동생을 시기하여 죽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의 정욕을 즐기기 위해 신앙을 버렸습니다. 무서운 홍수 심판이 세상을 휩쓸었지만, 인간은 하나님에게 돌이키지 못하고 바벨탑을 쌓고 멸망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 모든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회개 대신 절망을, 도전보다 자포자기를 하도록 정죄하고 낙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려면 성령으로 일하시는 구원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을 사탄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구원자로 보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탄의 모든 정죄와 고소로부터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안에 있는 자들을 건드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성령을 힘입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악을 바꾸어 구원의 은혜가 되게 하시고 우리의 실패를 바꾸어 주님의 섭리가 되게 하십니다. 사람의 약점을 바꾸어 하나님의 강함을 자랑하는 통로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할지라도 성령은 친히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여 믿음의 길, 진리의 길을 가도록 이끌어 주십니다.(롬8:26)  

29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이 비유에서 사람은 예수님 혹은 성령을, 강한 자는 사탄을, 세간은 사탄에게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이 불신 세계에 있느냐, 거기에서 나와서 믿음의 세계로 이동하느냐는 그 사람의 마음먹기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을 결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을 결박할 수 없습니다. 복음역사에 적용하면, 목자의 힘으로 사탄을 결박할 수 없고 양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목자가 황금의 입으로 양을 설득할지라도 불신 세계에서 믿음의 세계로 옮길 수 없습니다. 맛있는 것을 끝없이 사주어도 안되고 날마다 만나서 세뇌를 시켜도 안됩니다. 교수의 권위로 달래고 압박하여도 안됩니다. 저는 2부 개척기에 1년 정도 5층 목자방에서 금요일밤부터 주일까지 이불을 깔고 잠을 자며 메시지를 준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심을 내면 역사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배숫자가 갈수록 줄어들었고, 어느 날 목자들은 예배 감소의 원인이 저의 긴 메시지에 있다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본 4학년 손태호 형제가 말씀공부를 시작하였는데, 그 주에 주일예배를 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주 말씀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였습니다. 한참 어려운 시기였는데 귀한 양님이 온다고 하니 주중부터 걱정이 되었습니다. ‘양에게 너무 센 말씀인데.., 다른 말씀으로 바꿀까?’ 그런 연약한 생각을 안고 주일예배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태호 형제는 예배 말씀을 듣고 심령이 뻥 뚫려 모든 것을 결단하고 목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목자들에게는 그리 큰 감동이 없어 보였는데, 이 분은 감동받고 난리가 났습니다. 목자가 어떻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성령께서 이 분 안에 있던 모든 허무와 절망의 세력을 결박해버리고 산소망과 비전의 세계로 이끌어내신 것이었습니다. 이 분 또한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응답한 역사였습니다. 한 사람이 변화되어 복음의 일군이 되기까지 성령의 손길과 이에 대한 믿음의 응답이 있습니다. 어떤 양은 목자가 전심으로 섬기고 온 마음을 다해 말씀을 주었는데, 목자와 모임을 불신하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목자들이 말렸지만 불신에서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일 오후에 농구하러 갔다가 별다른 충격이 없었는데도 차에 싣고 와야 할 정도로 허리를 크게 다쳤습니다. 그래서 장막에 10일 넘게 누워있어야 했고, 그렇게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남아 지금은 든든한 목자가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목자와 내기하는 것처럼 토익 850점을 맞으면 하나님의 함께 하신 손길로 알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정확히 850점, 이전에서 없었고 이 후에도 얻을 수 없던 점수를 얻어 그 체험을 발판으로 믿음의 세계에 들어서게 되었고 훌륭한 목자로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구원받고 믿음의 길을 가는 여정에는 성령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손길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성령의 역사로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주셨으면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통해, 사건을 통해 역사하셨으면 그를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소망을 성령의 역사로 알고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것이 영적 싸움입니다.
계신대학원 최만석교수는 강의중에 자기 아내에게서 들은 충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목회에 실패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5시간동안 설교를 준비하고 1시간 기도한다고 합니다. 반면 성공적인 목사는 1시간 설교를 준비하고 5시간 기도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잘 가르치는 능력보다 성령의 음성을 듣기에 힘쓰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는 충고입니다. 성령으로 끊임없이 일하시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만 있다면, 반드시 새 역사가 있습니다. 지난 주일 아침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순간 많은 염려와 불안이 몰려왔습니다. ‘메신저의 마음이 이리 어두워서야 어찌할꼬’ 탄식이 나오고 엎드려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가 언제는 강했느냐, 나는 약한 자의 하나님이다. 네가 약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였고 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았느냐’ 성령의 음성은 큰 위로가 되었으며 담대히 기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 왼쪽 어깨가 아픕니다. 고쳐주세요’ 그러자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아팠던 어깨통증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 안에 임하는 것을 체험하였고 담대히 말씀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부르심을 따라 살고 있다면, 이미 거기에는 성령의 손길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강하고 완전하기에 복음의 일군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허물과 약점을 드러날 때마다 성령을 의지하여 따라가면 됩니다. 당장 눈앞의 상황이나 형편에 따라 울고 웃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희망과 비전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을 붙들고 적극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30)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와 복음역사를 대적하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습니다.(31) 예수님은 간음중에 잡힌 여자도 용서하셨고, 십자가에 자신을 못박든 자들까지도 용서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죄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32절을 보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하십니다.(32) 예수님은 성령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광야의 시험을 통과하셨고 공생애를 시작했습니다. 성령을 힘입어 기적을 행하였고 성령을 따라 죽음의 길을 가셨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그 모든 일들이 성령의 역사였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고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고 하든지 해야 합니다.(33) ‘사과는 열렸지만, 사과나무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이상 소통하기 어렵습니다. 그와 같이 바리새인들의 비방은 단순한 무지나 말실수가 아닙니다. 그들이 진실했다면, 겸손하고도 간절한 마음을 가졌다면 예수님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 책망하십니다.(34) 독사는 겉으로 화려한 무늬를 갖고 있지만 속에는 무서운 독을 품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매너 좋고 전통 잘 지키는 good man처럼 보이는데, 속으로는 교만과 불신과 비방하는 마음으로 가득했습니다. 선한 사람 DNA 따로 있고 악한 사람 DNA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35) 선을 쌓기에 힘쓰는 사람이 선한 것을 내고 악한 것을 쌓기에 힘쓰는 사람이 악한 것을 내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긍정의 말, 비전의 말이 나오려면 평소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을 쌓아야 합니다. 내 입에서 부정적인 말, 비방하는 말이 나오는 것은 내 마음에 어둠을 쌓고 이리저리 꼬인 마음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쁜 음식을 먹으면 병들고 좋은 음식을 먹으면 건강해지듯이, 좋은 말은 위로와 용기를 주고 나쁜 말은 깊은 상처와 어둠을 안겨줍니다. 심지어 죽음에 이르는 영혼의 병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하여 예외가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 사탄의 힘으로 병자를 고쳤다는 비방을 들었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계속 예수님 따라야 하나?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닐까?’ 두려움에 휘둘려 제자의 길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생겼을 것입니다.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습니다. 아무 말이나 마구 내지르지 것은 때로는 눈을 감고 날선 칼을 마구 휘두르는 것처럼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내가 지금 흉기를 휘두르고 있는지, 섬세하게 요리하고 있는지’, 말조심을 해야 합니다. 또한 사람들의 말에 휘둘려 하염없이 상처만 받고 있을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일 뿐,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은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가!’ 다 알고 계시며, 심판의 날에 모든 것을 드러내어 판단하십니다.(36) 37절을 읽겠습니다.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덕을 끼치고 살리는 말을 했으면 칭찬과 상급을 받을 것이요. 의심을 심고 죽이는 말을 했으면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대로 웃음과 위로와 용기 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분노가 쌓이거나 감정이 격해질 때에는 가급적 침묵하는 것이 좋습니다. 골로새서 4:6절은 말씀합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가운데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은혜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소금처럼 맛을 내는 말을 하고자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하고 무슨 말을 하지 말아야 할지 보이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길 기도합니다.

38절을 보십시오. 그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중 몇 사람이 예수님에게 요청했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에게 표적 보여주시기를 원하나이다.” 말만 보면 영적 소원이 충만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책망하십니다.(39) 그들이 악한 것은 많은 표적을 보여주었는데도 받아들이기는 커녕 계속하여 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음란한 것은 생명구원역사의 표적이 아니라 잘 먹고 잘 사는 나라, 세상 영광을 위한  표적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선포하십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다가 나온 것 같이, 예수님도 사흘 동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십니다.(40) 물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가 이방인 니느웨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켰듯이, 부활하신 예수님은 온 세상 만민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십니다.
심판의 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정죄할 것입니다.(41)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에게서 메시지 같지 않은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망할거야. 회개하지 않아서 망하면 나는 더 좋구...’ 그런데도 니느웨 사람들은 그런 메시지를 듣고도 왕에서 백성까지 베옷을 입고 애통하며 회개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느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면서 온 심정을 다해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은 은혜받기는 커녕 대적하고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우리는 메시지만 듣고도 회개했는데..., 정말 완악한 사람들이네요!’ 심판 때에 남방 여왕도 이스라엘을  정죄할 것입니다.(42) “저는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엄청난 예물을 싸들고 수천 킬로를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셔서 하나님의 지혜를 전해주는데도 왜 이리 썰렁한가요?” 이스라엘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회개하지 않음을 당연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부끄럽고 애통한 마음으로 회개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 대해 충격적인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43-45절을 보십시오. 한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쫓겨나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했습니다.(43) 하지만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았습니다. 결국 자기가 나온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습니다.(44) 그런데 와보니 깔끔하게 청소되었고 수리까지 되었는데도 집은 비어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그 집에 살았습니다.(45) 결과적으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영적 현주소가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을 건져내어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전과 비교되지 않는 자유롭고 풍족한 생활이 주어졌습니다. 안식일과 할례를 지키며 종교적으로 고상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왕이요 주인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아들을 구원자로 보내었는데, 이스라엘은 자기들 입맛에 맞지 않는다며 거부하고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애굽에서 종노릇할 때보다 더 악한 죄를 짓고 더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비극은 우리에게도 준엄한 경고가 됩니다. 우리가 깨끗하고 폼나게 사는 것으로만 자족하고 하나님을 삶의 주인이요 왕으로 모시기에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구원받기 전보다 더 심한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겉으로 고상한 폼을 유지할지라도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지 않는 인생은 결국 망가지고 맙니다. 정욕과 교만과 안일과 탐욕과 비교의식과 세상염려에 빠져 더 심한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예수님을 삶의 중심에 모실 때만이 축복이 축복다와지며 진정 고상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예수께 말하려고 밖에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3:21절을 보면 친족들이 예수님에 대한 악소문을 듣고 ‘혹시 미친 것은 아닐까?’ 염려되어 데리러 왔다고 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흉흉해지자, 어머니와 동생들마저 예수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47) 그러자 예수님이 그들에게 반문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동생들이냐” 49,5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이 말씀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무시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들인가를 강조하신 것입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도 무관심했으며, 바리새인들은 적대심을 가졌습니다. 가족들도 거기에 영향을 받아 예수님을 미친 것으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지 아니하고 변함없이 옆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모두가 오해하고 외면할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배우며 함께 했으며, 예수님은 그들을 통해 큰 힘을 얻었습니다.
가족이 무엇입니까? 내가 어려울 때 위로받고 상대방이 어려울 때 내가 그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지치고 피곤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줌으로써 적대적인 세상을 견디고 이길 수 있는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가족같은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면, 그 모임은 아무리 악한 세상에 서 있을 지라도 능히 승리합니다. 세상이 악할수록 더더욱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우리형제 자매들은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세상이 사나와질수록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부드러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이 치열해질수록 동역자 한 사람, 양 한 사람 소중히 여기기에 힘써야 합니다. 동역자의 기쁨에 같이 기뻐하고 동역자의 아픔에 같이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을 이기는 예수님의 비결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믿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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