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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8-30 (일) 13:35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에스겔
첨부#1 가을학기준비특강(3)-.hwp (38KB) (Down:397)
ㆍ추천: 0  ㆍ조회: 3162      
IP: 211.xxx.239
[2009가을학기준비특강-3] 마른 뼈들을 군대로
2009년 가을학기준비특강(3)                                                                                             서홍일
                               

마른 뼈들을 군대로

말씀/에스겔37:1-14
요절/에스겔37:10“이에 그 명령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나서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오늘 말씀은 이스라엘 바벨론포로의 절망적 시기에 선지자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희망찬 환상입니다.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그러했듯이 에스겔 선지자 역시 역사적으로 암울한 시대에 말씀선포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망한지 130년이 흘렀고 그나마 남은 남유다도 바벨론에 점점 짓밟히기 시작하여 결국은 완전히 망해버렸습니다. 에스겔은 세계사에 ‘이스라엘 바벨론 유수’라고 기록 된 치욕스러운 시대에 말씀 사역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그 어느 선지자보다도 찬란한 하나님의 희망을 품고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는 바싹 말라버린 뼈들이 살아나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될 희망을 보았습니다. 이 시간 마른 뼈도 살아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희망을 품고 말씀을 대언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1-3)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하시고 여호와의 영으로 그를 데리고 가셔서 한 골짜기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곳은 맑은 물이 흐르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쉴만한 피서지가 아니라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킬링필드였습니다.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골짜기에는 다름 아닌 사람의 뼈가 지면에 가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을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셨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뼈들이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탁탁’ 적막을 깨는 소리가 들리더니 해골 하나가 뼈 무더기 위에서 에스겔의 발 앞으로 떼굴떼굴 굴러 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세월의 풍상 속에 비바람에 맞고 햇볕에 쏘여 구멍이 숭숭 뚫리고 손만 대면 바스러질 만큼 아주 바싹 말라있었습니다. 에스겔이 사방으로 다니며 뼈들을 살펴보니 모두가 바싹, 아주 바싹 마른 뼈들이었습니다. 그 곳은 생명의 기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의 골짜기였습니다.

  에스겔이 본 마른 뼈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 뼈들은 이스라엘의 현재 형편을 의미합니다. 11a을 보면 하나님이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족속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B.C 586년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멸망당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에 침공하여 성을 허물고, 성전에서 청년들을 무참히 죽이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 유다 왕 여호야긴은 쇠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에 끌려왔습니다. 귀족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성들도 포로가 되었습니다. 남은 자들은 늙고 병든 비리비리한 자들뿐이었습니다.11b절을 보면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암울한 자신들의 형편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는 'cut off'라고 되었듯이 우리는 절단 났다. 잘렸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끝났다며 절망과 비통에 섞인 한숨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보다 더 비참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은 이제 꿈을 잃은 백성이요 꿈조차 꿀 수 없는 암울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오직 남은 것이라고는 폐허와 절망뿐이었습니다. 오늘도 포로생활 속에서 오직 생존을 위해서 몸부림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골짜기 가득 쌓여있는 마른 뼈 같이 영광이 마르고 꿈이 마르고 생명이 마른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숭배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 복을 받을 때까지는 좋았는데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부담과 짐처럼 여겨졌습니다. 안 해도 될 일을 하게 되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안일하고 게을렀습니다. 그들은 거룩한 사명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가나안의 우상들을 섬기며 마음과 육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면 더 풍요롭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먼저는 그들을 위대하게 했던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영광이 떠나버렸습니다. 그들이 자랑하던 예루살렘은 파괴되고 죽임을 당하고 남은 자들은 포로가 되었습니다. 자유는 억압당하고 빈곤과 멸시와 학대 속에 미래가 없는 암울한 현실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런 형편을 알려주심으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가지도록 하셨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겉모양만보고 그 속에 있는 암세포 보지 못한다면 치료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목자가 양들의 영적인 상태를 볼 수 있는 눈이 없으면 도울 수 없습니다. 캠퍼스에는 우리보다 젊고 건강하고 세련되고 잘사는 양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사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겉모습만 본다면 그들은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이 큰 군대요 그들을 돕는 우리가 마른 뼈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로 죽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아야합니다. 물질과 육신의 세상우상을 좇다가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마지막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겉은 멀쩡하나 죄로 인해 두려워하고 남모르게 신음하는 암울한 내면의 모습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목자의 심령을 가지고 도울 수 있습니다.

  골짜기의 마른 뼈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형편을 보게 된 에스겔의 심정은 얼마나 참담했을까요? 마른 뼈와 같이 되어버린 동족들로 인해 그의 심정은 가눌 길 없는 아픔과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저미어왔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소망이 없게 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마른 뼈들이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나라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희망대로 제사장 나라요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 질문 속에는 마른 뼈들을 다시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강력한 소망과 의지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회복의 역사를 이루시면서 먼저 하나님의 종에게 회복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불어 넣어주십니다. 신약성경에는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마른 뼈와 같이 된 죽은 사람이 나옵니다. 베데스다 못가의 중풍병자, 38년 된 중풍병자입니다. 그에게는 소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물으심으로 그에게 나을 수 있다는 희망과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새 역사를 이루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뼈들이 바싹 말라지고 다 멸절되었을지라도 다시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는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마음속에 새 역사를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희망을 품기를 원하셨습니다. 희망을 품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절망의 안개는 걷히기 시작합니다. 근거 없는 낙관은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망적인 때에라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마른 뼈와 같이 된 그때에도 우리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하고 불신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희망을 품고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희망의 역사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이 안드레 선교사님의 간기능이 정상적으로 살아나는 희망의 역사를 쓰고 계십니다. 함에스더 선교사님을 스페인으로 보내셔서 사도바울도 원했던 스페인개척의 새 역사를 시작하시고 계십니다. 희망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질문에 대한 에스겔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3b를 보십시오.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에스겔은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는 물으시는 하나님에게서 마른 뼈와 같은 그 백성들을 다시 회복시키시려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능히 그 일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희망임과 동시에 에스겔의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것이기에 다만 주 여호와께서 아신다 하였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에 기초한 고백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경험과 인간적 안목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된다, 안 된다 판단하기 쉽습니다. 학생 제자양성이 점점 단절되고 영적소원이 말라가는 수년의 캠퍼스를 볼 때 과거처럼 신바람이 나지 않고 갈수록 어렵다 안 된다 생각이 자연스럽게 듭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주만한 머리에서 나오는 사람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에 개의치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친히 계획하시고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마른 뼈에도 생기가 돌게 하시고 마른 고목에도 새싹이 돋아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새 일을 행하시면 광야 길과 사막에도 강을 내십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니 막혔던 결혼의 물고가 터져 수개월간에 8팀의 house church가 서는 전무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덕분에 저희 목자님들이 주말이면 웨딩홀을 드나들며 진수성찬을 배불리 먹고 마시느라 입이 쫙 벌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니 학생 양들이 수양회에 참석하는 새 역사가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캠퍼스를 향한 하나님의 의지는 분명합니다. 마른 뼈가 살아나고 생명이 회복되고 거룩한 사명을 되찾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 이 캠퍼스가 다시 살아나겠느냐?”

Ⅱ. 생기가 불어서 살게 하라(4-14)
   에스겔의 대답을 들으신 하나님은 그에게 무슨 사명을 주셨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뼈들을 향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회복역사를 이루고자 하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마른 뼈들을 일으키시는 위대한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무슨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포로 되게 하신 것은 버리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우상 숭배의 죄악 된 삶에서 깨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와 치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고 깊은 불신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불신과 절망 속에서 삐쩍 말라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가냘픈 믿음과 소망마저 말라 결국 마른 뼈와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셨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희망을 심고 믿음을 심고 소망을 심어서 그 백성들을 회복시키기를 원하셨습니다. 환란과 시련과 자체가 사람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사람을 살리고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죽은 영혼이 깨어 살아나게 됩니다.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에스겔에게 대언하라고 하십니다. 5절을 보십시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친히 생기로 들어가게 하심으로 그들을 살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6절을 보십시오.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을 알리라.”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마른 뼈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생기를 두어 살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에스겔은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그대로 대언했습니다. 그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이에 내가 명령을 따라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 뼈들이 서로 연결되더라” 수년 동안 죽음의 침묵을 이어왔던 뼈들이 오랜 잠에서 기지개를 켜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부스락 거리는 소리, 꿈틀꿈틀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널려있던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뼈는 나의 뼈, 저 뼈는 너의 뼈하면서 제가 붙어 있었던 위치를 찾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습니다. 다리뼈가 움직이더니 골반 뼈에 ‘탁’ 하고 붙었습니다. 그 뒤를 따라온 정강이뼈가 ‘턱’ 하고 붙자 발가락뼈가 잽싸게 ‘착’ 하고 붙었습니다. 이에 뒤질세라 척추 뼈가 ‘탁’하고 붙자 가슴뼈가 ‘턱’ 하고 붙었고 해골이 ‘척’하고 붙었습니다. 팔뼈가 ‘탁’ 하고 붙자 손가락뼈가 ‘차차착’붙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뼈들이 곳곳에서 탁, 턱, 척, 착 하는 소리를 내면서 순식간에 모든 뼈들이 정확하게 자기자리에 가서 붙었습니다. 에스겔이 또 보니 들어맞고 연결된 뼈들에서 힘줄이 솟아나고 그 위에 가죽이 덮였습니다.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피부가 덮임으로써 완전한 사람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는 아직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넣기 이전의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에스겔에게 생기에 대하여 대언하라 하셨습니다. 바싹 말랐던 뼈가 사람의 모습으로 회복된 것을 본 에스겔은 희망에 차 힘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러자 사방에서 생기가 바람처럼 불어왔습니다. ‘쉬이익, 쉬이익, 쉬이익’ 생기가 사람에게 들어가기 시작하자 그들이 숨을 쉬고 눈을 뜨고 누웠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이제 막 병마에서 일어난 비리비리한 사람이 아니라 극히 큰 군대였습니다. 어느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여호와의 군대였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의 대언사역을 통해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 극히 군대가 되어 일어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능력과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의 중요성을 배우게 됩니다. 죄로 죽은 영혼을 일깨우고 변화시키는 일보다 어려운 일은 없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변화시키고자 훈계를 하고 채찍질을 해도 좀 체로 변화되지 않는 것이 사람입니다. 죄인들을 감옥에 가두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새해에는 새사람이 되고자 결심을 해도 작심삼일입니다. 저는 이번에 그동안 비상사태에서나 할까 말까했던 새벽기도를 하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신실하게 기도하는 동역자에게 월요일부터 3일 동안 깨워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3일내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뼈골이 쑤시고 관절이 굳고 힘줄이 말라 좀처럼 일어나고 싶은 의지가 안 생겼습니다. 그러자 4일째부터는 기도의 소원마저 바짝 말라버렸습니다. 정말 저는 스스로 변화되기 힘든 마른 뼈와 같은 자였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의지는 연약하고 악해서 오랫동안 누웠던 무덤가에서 스스로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죄의 세력은 강하고 질겨서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끊겨 지지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관절과 골수’ 이거 다 뼈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뼛속까지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들을 때 영혼이 소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죄로부터 자유케 되고 허무와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내면에서부터 각성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들어야 뼈가 움직이고 살이 오르고 생기가 넘치는 변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영혼이 깨어나고 회복되는 위대한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일어나게 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대언하는 종들이 있어야 합니다. 힘 있게 진리를 가르치는 성경선생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에서 2년간 성경을 강론하고 말씀을 대언하였을 때 마술이 흥행하는 그곳에 회개와 영적각성이 일어나 마술사들까지도 회개하고 은 오만어치의 마술 책을 불태우는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한마디 말씀에 감동된 루터는 천년의 종교 암흑기를 뒤집는 새로운 믿음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영적각성과 회복의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믿고 말씀으로 도전한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스패너, 진젠도르프 같은 말씀의 종들을 통해서 17세기 타성에 젖은 독일 영혼을 깨우셨습니다. 18세기 미국이 청교도 정신을 잃고 영적 안일에 빠졌을 때 하나님은 조지 휘트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같은 위대한 말씀의 종들을 통해 대각성운동이 일어나게 했습니다.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 사라배리 선교사님과 같은 열정적인 말씀의 종들을 통해 지난 50년간 하나님은 한국과 전 세계 캠퍼스영혼들이 살아나 성경선생이요 목자요 선교사로 변화되고 쓰임 받는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처럼 어느 시대에나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칠 때 놀라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이 역사하면 마른 뼈가 살아납니다. 마른 가지요 마른 뼈와 같았던 제가 그 증거요 우리 모두가 그 증인들입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가지시고 우리에게 대언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큰 영광을 주셨습니다.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치는 대언자의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할 때 캠퍼스의 마른 뼈들이 일어나는 큰 군대가 되는 생명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골짜기 마른 뼈가 살아나는 환상의 의미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14절에는 “내가 또 내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무덤과도 같은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구출해 내겠다고 하십니다. 그 옛날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구출해내셨듯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을 구출해내는 제2의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 속에 여호와의 영을 두어 그들을 영적으로 살아나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여호와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여 여호와를 향한 열심히 불타오르게 하셔서 여호와신앙을 부흥하는 재건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믿기지 않는 기적의 역사를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오,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될 것입니다. 6b 절에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13b절에도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14b 절에도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희망의 역사를 이루시는 목적은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지식적으로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져들고 그리하여 바벨론 포로가 된 것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역사를 이루심으로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시고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역사가 있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는 이 기적의 역사를 가리켜 ‘제2출애굽’ 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바벨론의 압제받는 삶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바벨론 우상종교에서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역사인 것입니다. 첫 출애굽 때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들이 파지 아니한 우물물을 마시며 짓지 아니한 집에 거하며 잘 먹고 잘 살게 되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랬을 때 가나안의 우상종교에 빠져들어 결국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것입니다. 이런 그들이 ‘제2출애굽’을 경험하며 바벨론에서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왔더라도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지 못한다면 영적으로 또 죽게 되어 마른 뼈처럼 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바벨론에서 건져내시는 그들의 하나님의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배우고 경험하고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것이 마른 뼈가 살아나는 진정한 목적입니다.
 
  하나님은 유럽수양회를 참석하면서 광주2부 박요한 목자님이 한국어로 전한 오늘 말씀에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정욕과 교만과 무의미와 무기력으로 마른 가지요, 마른 뼈와 같았던 죄인을 생명의 말씀으로 살리실뿐만 아니라 저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려내는 거룩한 성경선생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세월의 풍상을 겪으면서 빠져가는 머리카락과 함께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거룩한 직분에 대한 소명의식이 마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적소원이 말라가는 캠퍼스를 점점 외면하고 일신의 안위에 자족하므로 삶의 무게와 시름을 덜고자 하였습니다. 올여름에는 아이들과 함께 구천동 심산유곡에 발 담그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강권하심에 압도되어 수양회에 참석하는 가운데 하나님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되자 영적인 각성과 소망의 불씨가 심령에서 지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잊고 인본적 소시민적 세속주의의 무덤 속에 갇혀 그럭저럭 안주하고 살아서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임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하나 제대로 감당치 않는 연약하고 악하고 마른 자이지만 마른 뼈도 살리시는 소망의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마른 뼈도 큰 군대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겸손하고 신실하게 말씀을 듣고 새벽을 깨워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 되기를 기도합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물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영접하고 가을학기 캠퍼스 영혼들을 향한 중보기도와 말씀대언의 사명을 힘 있게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살리시는 소망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물질주의, 인본주의, 육신주의의 무덤에 갇혀 마른 뼈가 되어가는 이 시대와 캠퍼스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생명의 말씀을 힘 있게 대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기 위해 먼저 우리자신들이 새벽을 깨워 기도합시다. 우리 자신이 먼저 말씀의 생기를 충만히 받으므로 가을학기 300팀의 1:1을 정복하는 여호와의 큰 군대로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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