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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6-07 (월) 13:29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_14-1.hwp (28KB) (Down: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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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요한복음제14강]한 알의 밀이 죽으면

2010년 요한복음 14강

한 알의 밀이 죽으면

말씀: 요한복음 12:20-36
요절: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말씀은 그 유명한 밀알의 진리에 관한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뿐인 인생에 많은 열매를 맺는 영광스런 인생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생을 마칠 때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부끄러운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밀알의 진리를 무시하고 자기 나름대로 인생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 말씀을 통하여 많은 열매 맺는 영광스러운 인생의 비밀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신 예수님(20-26)
  20절을 보십시오. 당시에 명절이 되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유대교로 개종한 헬라인 몇 사람도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고린도전서 1:22절을 보면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물질세계보다는 형이상학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자들로서 범사에 종교성도 많아 각종 신들을 만들어 이름을 붙여놓고 섬겼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헬라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특별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에 대해 알기를 원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의 소식은 이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이성의 세계를 뛰어 넘은 놀라운 믿음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 대해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헬라식 이름을 가진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였고, 빌립은 안드레와 동역하여 헬라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어떻게 맞이해주셨습니까? 23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 예수님은 헬라인들이 오는 것을 보시고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러나 실은 인간적으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가 왔으므로 마음이 슬프실 터인데 예수님은 오히려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얻을 때가 온 것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는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이 나아오는 것을 보시고는 때가 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완성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확신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부활의 영광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들의 열렬한 환영 가운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종교 지도자들도 이제 대세는 예수님께로 기울어졌다고 여기고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예수님의 인기는 대단하였습니다. 이때 헬라인들까지 예수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므로 예수님의 인기는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로 이때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셨고, 그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을 아셨습니다. 부활에 이르는 죽음은 결코 비참한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영광,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반드시 배워야 할 복음진리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수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을 비전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죽음은 자기 죄 값으로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죽음은 슬프고 욕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그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대속의 죽음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의미 있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유대인들 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한분의 죽으심으로 세상 만민이 구원받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당시 십자가는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도구였으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저주와 수치와 패배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죽으심의 비밀을 아는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죽으심이야말로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라고 자랑하였습니다.(고전1:24) 그는 자랑만 하고 있지 않고 이 십자가의 고난을 적극적으로 본받고자 하였습니다.(빌3:10)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의 죽으심의 의미를 몰랐을 때는 무조건 십자가를 배척하였지만 후에 그 의미를 깨달았을 때는 고난에 대한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한번은 사도들이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종교지도자들에게 붙들려 채찍질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슬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된 것을 기뻐하면서 공회를 떠났습니다.(행5:40,41)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고난이 없을 수 없습니다. 특히 신자들은 하늘나라와 이 땅의 이중 시민권자로서 더 많은 고난과 짐을 져야 합니다. 이때 십자가의 고난의 의미를 모르면 괴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고난 받느냐에 따라 그 고난이 영광스러울 수도 있고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고난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섬기느라 받는 고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받는 고난은 참으로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고난입니다. 나 한 사람의 희생으로 수많은 사람이 살아난다면 그 사람의 생애는 자기를 위해 아등바등 살다가 죄의 열매만 맺고 인생을 마치는 사람과 어찌 비교가 되겠습니까?
  예수님은 헬라인들에게 자신의 죽음이 왜 영광스러운가를 한 알의 밀의 비유를 통해 알기 쉽게 가르쳐주셨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한 알의 밀알은 그 자체로는 지극히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 밀알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력이 있어서 수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농부는 밀알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알기 때문에 장롱 속에 두지 않고 땅에 뿌립니다. 뿌려진 밀알은 얼마 후에는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한 알의 밀에서 열매를 맺는 데는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씨는 땅에 떨어져 묻혀야 합니다. 이 씨는 뿌리를 내리게 되고 동시에 씨에 있는 영양분이 분해되어 싹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 후에는 싹이 햇빛을 받아 성장하여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씨가 싹이 나서 자립적으로 자라기까지 영양분을 공급하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일컬어 밀이 죽는다고 말합니다. 죽는 과정은 땅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이 과정이 없이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자기희생이 있어야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죽는 것은 없어지는 손해가 아니라 새 생명을 위한 투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알의 밀은 4개월 후에 100-120개의 새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을 다시 종자로 사용하면 5년 뒤에는 100-120억 개의 엄청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는 17000가마니에 해당하는 양이요, 200명 장정이 34년간 먹을 수 있는 식량에 해당합니다. 죽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은 엄청난 열매로 보상해줍니다. 그러나 밀알이 죽지 않고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5년이 지난 후에는 그 한 알마저도 생명력을 잃고 이미 죽었을 것입니다. 이 밀알의 비유는 진실한 자연현상입니다. 자연 속에 생명법칙은 결코 거짓말하지 않고 속이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땀 흘린 만큼 질 좋은 열매를 보상해줍니다.
  우리 인생은 한 알의 밀알과 같습니다. 40억의 인구 속에 나 한 사람은 한 알의 밀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각자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기 때문에 무한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이 생명을 바치느냐에 따라 영광스러운 삶이 결정됩니다. 열매 맺는 데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세월이 흐른다고 저절로 맺혀지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6:7-9절은 말씀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한 곳에 뿌리를 내리고 죽는 희생하는 삶에는 반드시 열매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수십 년간 선교사역을 했지만 겨우 한 사람만을 전도하여 세례를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더욱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 집에서 일하던 가정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선교사역을 실패한 사역이라고 단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사역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 그 가정부의 아들은 일본 신학교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목회자들을 길러내었습니다. 복음역사를 위해 희생한 것은 이렇게 반드시 많은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 곳에 뿌리내려 자기를 희생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철새와 같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랑과 섬김과 은혜 받을 곳만 찾아다닙니다. 막상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자신을 투자해야 할 때 손해 볼까봐 두려워서 자리를 옮겨버립니다. 그러나 이런 자는 늘 남다른 투쟁과 수고를 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뿌려진 씨가 없으니 당연히 열매도 없습니다. 또 사람들은 희생 없이도 열매를 맺을 길이 없을까 연구합니다. 그러나 그런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히 밀알의 진리를 실천한 생애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시며 날마다 죽는 생활을 하셨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그 귀한 목숨을 죄인들을 위해 희생제물로 바치시므로 수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실제적으로 땅에 떨어져 죽는 밀알의 삶을 살 수 있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우리가 영광스러운 삶을 원하면서도 희생하기 싫어하는 것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기 생명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오히려 잃는다고 하십니다. 자기 생명은 육신의 본성에 기초한 자아입니다. 육신의 본성은 늘 자기만을 생각하게 하고 육신의 소욕과 감정, 육신의 속성을 따라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생명을 사랑하면 점점 더 인간적인 소욕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무엇이든지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에게 유익하면 하고, 손해 볼 것 같으면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유익과 자기만족을 위해 살면 행복할 줄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자는 자기를 지키느라 두려움과 염려와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런 인생을 결산해보면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후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어떻게 됩니까? 자기 생명을 미워한다는 것은 진리를 위해 살지 못하게 하는 죄악된 자기를 미워하고, 부인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 산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유익보다 주님께 영광 돌리는 길을 택합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일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섬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가 자기를 돌보지 않고 주님만을 위해 살면 자기만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의 잠간 동안의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투자하기 때문에 많은 열매를 맺고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 지혜로운 자입니다. 세상에서 좋아 보이는 것들이 우리의 영안을 흐려놓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화려한 것들은 모두 회전하는 그림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이는 신실하신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영생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 있게 주와 복음을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헌신할 수 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왜 우리가 자기 생명을 미워하고자 합니까? 예수님을 섬기기 위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을 섬기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섬기되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뜻과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는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과 같이 한 알의 썩는 밀알의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귀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귀히 여기시는 인생이야말로 가장 영광스러운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바로 생명의 길이요 영광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Ⅱ.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27-36)
  27절을 보십시오.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예수님은 마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견딜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troubled)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도 막상 십자가를 지고자 하실 때 고뇌에 찬 탄식을 하셨습니다. 이 고통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겪어야 하는 단순한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온 인류의 죄의 짐을 지시고, 사람들과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아픔이었습니다. 예수님도 할 수만 있으면 십자가에 못 박히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곧 자기를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도의 투쟁을 통해 자기를 부인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기 위한 영적 투쟁이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소욕은 십자가를 거절합니다. 이때 주님처럼 기도의 투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미워하시고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므로 어떤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28) 하나님은 예수님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을 뿐 이니라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도 영광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하늘에서 이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소리가 난 것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듣는 무리들을 위한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30)
둘째로, 이 세상의 임금 곧 사탄이 쫓겨나고 온전한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31-32)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은 수치요 패배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발꿈치만 상했을 뿐 이로 인해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습니다. 지금까지 사탄은 인생들 위에 군림하여 왕노릇 하고 사람들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이 세상일에 머물게 하였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살기보다 당장의 유익을 위해 이 세상일에 얽매이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이런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시고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하사 성결과 의로 두려움 없이 종신토록 하나님 한 분을 섬기게 하셨습니다.(눅1:75) 32절을 보십시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 돌아가시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죽음은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입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가슴을 치고 고개를 흔들며 못 볼 것을 보는 것처럼 희롱하고 저주하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며 운명하시자 이를 지켜보던 로마 백부장,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마음을 돌이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들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의 열매요 또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을 얻는 영광스러운 열매가 맺힐 것입니다. 지난 호 일용할 양식 책자에 안젤라 선교사님을 통한 홍콩 선교보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그는 뇌수종으로 세 번이나 뇌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가 고백하기를 머리가 전기밥솥도 아닌데 세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해야 했을 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가는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했지만 그의 병은 낫지 않아 밥보다 더 많은 약을 먹어야 했기에 기억력이 떨어지고 힘은 소진하고 고통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그가 고통 중에 있는데도 장막생활 하던 홍콩대 양들은 기도모임도 하지 않고 밤늦게까지 돌아다니며 방황하는 것이었습니다. 안젤라 선교사님은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복음역사를 위해 살 것이요 죽으면 죽으리라 결단하고 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새벽에 캠퍼스에 올라가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장막의 양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모두 다 나와서 새벽에 캠퍼스에 올라가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대일 역사가 크게 일어나 장막을 배로 늘려야 했고 안젤라 선교사님의 건강도 좋아져서 15팀의 일대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홍콩 UBF는 주일 예배가 130명으로 성장하였고 중국 본토 학생들이 변화하여 본토 선교사로 나가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젤라 선교사님 한 사람이 복음역사를 위해 온전히 죽었을 때 자신의 병을 극복하고 많은 제자들이 굳게 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 일어날 신비스러운 구원의 역사를 말씀하셨지만 무리들은 믿을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하며 따져 물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만 바랐기 때문에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한 부활의 영광은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빛을 믿고 구원받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셨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어둠에 붙잡혀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죄를 지으면서도 그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모릅니다. 어두움에 갇혀 있는 사람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참 빛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빛으로 초대하시며 제발 어둠의 세력에서 벗어나 빛의 자녀들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구원의 기회는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시며 동시에 경고를 주신 것입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36) 이는 예수님의 간절한 초청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이 땅에 한 알의 밀알로 오셔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시므로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밀알의 진리를 실천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 인생들에게 그렇게 살도록 가르치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단 한번 뿐으로서 시행착오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생애를 본받아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아 많은 생명의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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