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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30 (일) 11:05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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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학기특강]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2012년 가을학기 특강                                                                  김피터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 / 마가복음 5:21-43
요절 / 마가복음 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함께 읽은 본문의 두 사람의 좋은 예를 통하여 하나님께 응답받는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며 우리의 삶을 조여오는 질병과 운명의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이시간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음으로 저희들 가운데 충만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 드립니다.
1.  혈루병 앓는 한 여인(25-34)
25, 26절을 보십시오.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혈루증이란 무슨 병입니까?  이는 여성병으로서 만성적으로 피가 흐르는 병이었습니다.  쉼없이 하혈을 하니 이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하였겠습니까?  이 여인은 이 병이 걸린 후 웬만큼  유명하다는 의사들, 병원들은  다 찾아 가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국  돈만 낭비하고 아무런 효험도 보질 못하였습니다. 누가복음 8장 43절에 보면 의사였던 누가도 혈루병 앓는 이 여인이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했다고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12년째 된 이 병이 이미 치유될 수 없는 만성병이자  불치병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이제, 치료에 대한 소망을 잃고 자포자기의 상태가 되었을 것입니다. 병의 부정함 때문에 사람들과 사회로부터 소외 당하는 처지에 있었을 것이고(레 15:25) 아마,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으로부터도 버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여성으로서 삶의 존재의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린 이 여인은 인간 최악의 한계 상황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과학기술, 의료기술 그리고 복지가 꽃을 피워서 이러한 문명의 이기들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의 이 여인을 통하여서도 불치의 병이라는 한계 상황 앞에서 낙담하고 절망할 수 밖에 없는 현대인의 실존을 또한 보게 됩니다.  그 어떤 의술과 과학도 그리고 인간적인 모든 수고를 통한 노력도 결국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그녀가 일생 의지하고 살았던 이 세상 그 어디에도 그녀를 절박한 이 인생 문제에서 구원할 진정한 해답이 없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의 보이는 것이 전부인양 그것들을 붙잡고  의지하고 살다가 결국 끝없는 불안과 허무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이는 세계만이 전부라면 우리 또한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고 이 모든 것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보이는 세계가 있듯이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4장 1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히브리서 11장 1-3절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바로 바라는 것들을 믿음으로 눈앞에 보는 실상처럼  보고(인식하고) 살았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을 이미 확실한 증거를 얻은 것처럼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믿음의 세계를 인정하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았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여인 또한 눈으로 보여지는 인생의 한계와 절망 앞에서 새로운 믿음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27, 28절을 보십시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아마 이 여인은 예수님의 치유와 구원의 권능에 대해서 소문으로 들었지만 그 마음에 인생문제 해결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입니까?
첫째, ' Just touch Jesus' 신앙 (If I just touch his clothes, I will be healed.)  놀랍게도 이 여인의 믿음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자신의 병이 치유 될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다소 미신적으로 들리지만 옷에만 손을 대어도 하는 행위보다는 그녀의 주님의 권능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확신을 주목해야 합니다. 용하다는 수많은 의사들에게서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한 그녀로서는 의사 출신도 아닌 더구나 시골 목수 출신인 예수님으로서 별수 있겠는가?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공중앞에 나설 수 없는 부정한 병을 가지고 있던차라 사회적 종교적 장애물를 극복하고 예수님께 나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담대한 확신, 'If I just touch Jesus, 나는 구원을 얻는다.  나는 치유함을 받는다. 나는 자유함을 얻는다.  이러한  절대적인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각자와 세계는 정말로 예수님과의 만남을 필요로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은 몸고생 시대에서 맘고생이 더 큰 그야말로 진짜 고생의 시대로 접어 들었습니다.  또한 Hungry society에서 배부른 사회로 그리고 이제는 Angry society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을 중시하는 단계에서 타인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끊임없이 친절과 미소를 보여 주어야 하는 감정 노동이 더욱더 요구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열심히 살면 언젠가 나의 꿈과 행복은 이루어질거야'라는 early bird society(mentality)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나의 꿈, 나의 행복은 이루어질 수 없게 돼있어' 체념하며 분노하는 angry bird society(mentality)로 나가고 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조차도 체념과 분노로 마음의 병, 나가서 영혼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사실 국제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북, 한국과 일본, 일본과 중국 우리의 주변만 둘러보아도 그렇지 않습니까? 건드리면 쏜다. 일촉즉발입니다. 미국은 미국대로 유럽은 유럽대로 분노 지수가 높아만 가고 있고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방에서는 극도의 분노가 서로를 향해 무차별 살상하는 참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나 내적으로는 분노와 미움이라는 중병에 빠져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세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러한 중병에 빠진 인생들과 세계를 포용하고 용서와 화해와 소통을 이야기하며 치유와 희망과 꿈을 줄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혈루병 앓는 한 여인의 치유사건을 통하여 배우게 되지 않습니까?  실제 이 여인은 피해의식과 억울함 그리고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angry bird의 인생으로 갈 수 밖에 없는 필요충분 조건을 완벽하게 다 갖추었습니다. '나는 한마리 angry bird'를 노래하며 수많은 주위 사람들을 분노의 부리와 발톱으로 쪼아대고 할퀴어대는 삶을 살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위대함과 지혜는 결국 문제 해결의 궁극적인 답을 이러한 angry bird life style에서 찾지 않고 예수님과의 만남, 즉, 신앙적 삶의 스타일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녀의 신앙적 삶의 스타일은 결국  어떤 놀라운 응답을 얻게 되었습니까?  29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이 여인의 절대적인 믿음과 기도대로 그녀의 불치병은 치유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에게서 궁극적 해결(Solution)과 대답(Answer)을 찾은 그녀의 Just touch Jesus신앙은 지난 12년간 그녀를 그토록 절망케 하던 질병문제와 인생문제로부터 완전한 치유와 구원을 얻게 한 것입니다.

30절에서 34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혈루증에서 나음을 받은 여인은 그 기쁨과 감격을 혼자만 간직한 채 조용히 자기집으로 가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예수께서는 자기 몸에서 능력이 나간 것을 느끼시고 무리를 향하여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30b)' 물었습니다.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예수님께 나아와 엎드려서 사실대로 다 말했습니다(33).  그때 예수님은 무슨 놀라운 은혜를 선포 하셨습니까?  34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  우리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열정 그리고 기도를 받으시고 완전한 치유와 영원한 구원을 주시는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2.  야이로의 믿음(5:21-24, 35-43)
혈루병 앓는 여인을 통하여 인간의 질병 문제를 다루었다면 5장 21절에서 24절 그리고 35절에서 43절에서는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이야기를 통하여 인간에게 치명적으로 드리워진 죽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야이로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21절과 22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그는 당시 아마 가버나움에 있는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중 하나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교가 지배하는 유대 사회의 핵심인물중의 하나라 할 수 있는 그가 왜 예수님께  나아와 많이 간구하고 있는 것일까요?  '많이 간구 하였다'는 것은 마치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처럼 필사적으로 반복해서 예수님께 매달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23절을 보십시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이는 그의 어린 딸이 죽게 된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죽게 되었다는 것'은 그 딸의 병세가 최악의 상태에 있음을 보여 줍니다.  42절에 보면  그 딸의 나이가 12살이었습니다. 이제 막 피어나는 눈에 넣어도 아플것 같지 않은 12살 난 어린 딸, 이 어린 딸이 신음하며 죽어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의 회당장으로서의 지위나 명성 그리고 종교적인 학식과 지식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죽음의 병을 앓고 있는 그의 딸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이 너무나 한스럽지 않았을까요?  마침내 이 절박한 순간에 그 또한 예수님만이 죽어가는 딸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믿고 한걸음으로 달려 나온 것입니다.  그는 모든 체면과 권위를 벗어던지고 주님께 필사적으로 간구 하였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23)'. '손을 얹으사' - 이는 안수 행위로서 예수님의 능력과 권능을 온전히 인정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에게는 딸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소망으로 예수님께 대한 구체적이고도 확신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그런데 그의 간구와는 달리 이런 절박한 순간에 어떤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까?
35절을 보십시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  혈루증 앓는 여인을 고치고자 예수님께서 시간을 지체하시는 도중 야이로의 집에서 비극적인 전갈이 왔습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이미 상황이 비극적으로 종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무엇때문에 더이상 예수께 매달릴 필요가 있으며 또한  그를 성가시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이미 죽었다. 상황 끝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미련을 두지 마세요'.  그렇습니다.  이것이 능력있고 화려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 세상이 줄수 있는 마지막 한마디 위로입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결국 이 한마디로 귀결이 됩니다.  '죽었다. 상황 끝이다'.  죽음이라는 선언과 함께 주어지는 영원한 단절의 선언, 여기에 바로 인간의 한계와 끝없는 고민이 있습니다.  인간이 이루어 놓은 실용주의와 과학주의 그리고 인본주의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리니 화끈하게 일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자!' 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니 운명으로 받아들이세요 하는 허무주의나 '정숙해 보이지만 놀땐 노는 여자, 이때다 싶으면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그런 감각적인 여자~~~' 아무리 폼나는 가치관과 사생관을 가지고 우리를 미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러한 미혹을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여기까지가 바로 보이는 세계가 전부인양 살아가는 인생들의 한계요 절규인 것을 알고 우리는 좀더 높고 넒은 영적인 세계, 즉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한 신앙의 세계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야이로에게 원하셨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일까요?  36절을 다함께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Don't be afriad, Just believe!'  어떻게 그토록 사랑하던 딸이 마침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두려워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는 불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세상적 관점이나 인본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요구는 있을 수 없는 요구입니다.  바로 '비극적인 종결과 절망'을 선언하는 것이 차라리 인간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의 소식 자체를 무시하고 바로 야이로에게 소망의 메시지로 격려 하십니다.  예수님은 2중 명령형으로  엄히 명령 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믿기만 하라.' 바로 이점에서 우리 신앙인들은 세상의 불신자들과 구별됩니다. 사단은 얼마나 많은 운명적인 사건과 소식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하고 두렵고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차게 하여 더 이상 속수무책인 것처럼 속여서 마침내  죄와 죽음과 두려움의 종노릇 하도록 집요하게 공격합니까?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이러한 세력을 허용하는 것은  신앙인들의 올바른 삶의 스타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수님 안에 대책은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10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는 우리 주님의 구원사역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굳게 믿고 붙들어야 합니다. 끝내 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시며 마침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굳게 믿고 불신과 의심, 두려움의 온갖 죄의 쓰레기통을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들고 나와 보혈의 피로 씻고 역사하시는 성령의 불로 태워버리며 무너지는 마음을 단호히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상황이 아무리 어려운 분이 있다 할지라도 지금 처해 있는 야이로의 상황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분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딸의 죽음의 소식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의 사랑과 권능에 대한 믿음과 확신에서 흔들리지 말도록 주님은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세우실때부터 원하셨습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서 24절은 이 사실에 대해서 분명히 증거하여 주고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 우리가 아브라함, 그리고 본문의 혈루증 앓던 여인 및 야이로와 같은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서 모든 삶의 두려움과 불신을 지워버리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두려움 없이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캠퍼스  제자양성 및  세계 선교 역사를 섬겨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믿음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 하였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훤화함과 사람들의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  한마디로 완전히 초상집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없이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망권세는 절대적입니다.  죽음앞에 서서 아무런 대책이 없는 속수무책입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신앙인들에게는 비록 죽음이라 할지라도 어떠한  확실한 대책이 서있는 것입니까? 39절, 40절을 보십시오. '들어가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훤화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다 내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 야이로의 집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그 아이가 죽었는가 자고 있는가도 구별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 안에서 다시 살자는 죽었으나 실상은 자는 자들입니다.(고전 15:51)
그러면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을 어떻게 살리셨습니까?  41-43절을 보십시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 두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
'달리다굼,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달리다굼'은 당시 엄마가 아침에 아이를 깨울때 쓰던 평범한 용어였습니다.  주님은 아침 잠을 깨우는 어머니와 같이 그 죽은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 하시므로 이 소녀를 죽음에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러자 12살된 소녀가 죽음에서 일어나 가볍고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춤추는 듯이 걸었습니다.  이를 본 소녀의 부모들과 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놀라와 하며 기뻐 했겠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임이 드러났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죽은자도 다시 살리시는 부활의 능력자요 생명의 주가 되심을 증명했습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서 사는동안 '달리다굼'의 역사를 체험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달리다굼'-'내 사랑하는 자녀들아, 모두 일어나라'. 이 신비스럽고 놀라운 영원한 부활과 생명의 잔치에 참여하는 자들입니다. 이시간 부활의 주,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성장 하였습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도시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어 도피하듯 군대에 갔습니다.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해결되지 않는 삶의 의미 문제로 허무와 정욕 그리고 세상 두려움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복학후 UBF 성경공부에 초대받아 말씀을 공부하던중 베드로 전서 1장 3,4절 ‘산소망’의 말씀으로 거듭남의 역사를 체험 하였습니다. 영눤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로운 그 이름이 저의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이후 열정적인 목자생활을 하며 요한복음 21장 15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사람들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느냐’ 말씀을 통하여 세계 선교를 영접하고 선교사로 가고자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선교를 위하여 기도하던 김 사라 동역자와 가정 교회를 이루고 열심히 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러시아를 비롯한 북방의 문을 여시고 저의 가정을 1990년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  선교사로 부르셨습니다.  ‘과거 구 소련은 냉전시대 냉전의 한축으로서 공산주의의 종주국 이었고 서방세계에 의해 ‘철의 장막’, ‘악의 제국’으로 불리어졌습니다. 러시아의 저명한 노벨 문학상 수상가인 솔제니친에 의해 ‘수용소 군도’로 명명될 말큼 70여년이라는 오랜세월 공산주의하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단의 놀이터가 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은 1990년 미하일 고르바초프라는 당시 소련 대통령을 사용 하셔서 구 소련 땅 가운데 개방과 선교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여기계신 한 아브라함, 한 사라 목자님 및 많은 주의 종들이 아낌없이 자신의 안정된 직장과 커리어를 포기하고 미지의 땅 구 소련 선교에 자신의 삶을 드렸습니다. Dr. 지바고’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러시아 및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정말 눈이 많이 오고 추운 나라였습니다. 그러한 곳에서 러시아도 전혀 모르던 저희가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며 선교하고자 하니 참으로 많은 고난과 말못할 사연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말못할 사연들 조차도 다 귀하게 오병이어로 받으셨습니다.물론, 악의 제국이라 불리어질 정도로 사단의 역사가 강한 구 소련 땅에서 영적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 우리 선교사님들 및 저희 가정에 어찌 어려움이 없지 않았겠습니까?  장대한 아낙 자손과 같고 철병거의 세력이 진치고 있으며 온갖 거민을 삼키고 있는 듯한 거대한 땅인 그곳에서 어학도 안되고 물질 자립기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처럼 외모가 멋지게 생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한마디로 게임이 되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희 선교사님들의 단순하고 용감한 오병이어의 믿음을 사용 하셨습니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열심히 일대일 성경공부를 하며 기도의 단을 쌓았습니다.  실력이 너무 없으므로 자꾸 오그라 들면 ‘언제는 우리가 실력으로 살았냐! 믿음으로 살았지!’를 외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합심으로 동역의 역사를 섬겼습니다.  멘탈이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듯한 사회에서 약속의 땅을 향한 언약의 말씀과 사랑과 기도의 무기를 가지고 도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식이라는 한계적인 생각도 들곤 하였습니다.  ‘힘센 놈이 누구냐, 알통 큰 놈이 누구냐?” Power의 논리가 지배하는 러시아 및 CIS라는 구 소련 제국의 세력에 도전하는 소총수와도 같은 우리 선교사님들의 ‘제사장적 영적전쟁’에서  많은 아픔과 부상과 피흘림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의 가정도 예외가 아니어서 저의 동역자인 김 사라 선교사님이 많은 피를 흘렸습니다.  체르노빌 핵 폭발사고의 진원지인 우크라이나에서 끊임없는 두통과 신장염을 앓으며 둘째 딸을 얻기까지 3번의 유산을 하며 영,육간의 아픔을 홀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이런저런 아픔들이 겹치자 피차간에 눈물 보이는 것도 좀 민망하고 그래서 주로 화장실에 차례로 들어가서 눈물을 흘리곤 하였습니다. 사라 동역자는 초기 7-8년을 병원에 자주 입원했는데 우크라이나의 당시 병원시설과 의사들은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잘못된 처방 때문에 오히려 병원에서 정신을 잃기도 하고 입원하고 나오면 몸서리를 치고 오히려 몸의 상태가 더욱 심하여지기 일쑤였습니다. 감사하게도 여러 선교사님들이 이러한 저희 가정을 돕겠다고 오셨지만  여러 어려움으로 말미암아 중간에 철수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러다가 ‘공주의 공주였던 아내가 이러한 모습으로 자칫하면 잘못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운 생각과 함께 온갖 회의적인 생각과 쓴뿌리가 몰려 왔습니다.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무리한 일을 시도했다는 무력감이 압도하며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두려움의 세력을 허용하자 이러한 상황에서 사역을 더 이상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계속하고 싶지만 동역자인 아내를 살리기 위하여 우크라이나에서의 선교사역을 중단하기로 내심 결정 하였습니다. 당시 저의 내면은 최악이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고 Dr. 이사무엘 선교사님과 몇몇 주의 종들을 통하여 저의 믿음과 연약해진 마음을 도와 주셨습니다.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저를 위하여 노심초사 하시고 기도해 주시며1달여 남은 MSU 국제 수양회에 어찌하든지 참석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주제강의 말씀을 섬기도록 장문의 편지를 보내 오셨습니다. 저의 마음에 이 구석에 쳐박혀 있는 우리 가정 같은 사람도 알아주는 분이 다 계시구나 하는 생각과 그분의 ‘함께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합시다’라는 진정성 있는 말씀이 깊이 와 닿았습니다.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은 제가 회개하고 이 수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전하며 믿음이 회복되자 얼마나 기쁘셨던지 이후 미국 국제 수양회에서 2번씩이나 말씀을 더 전하도록 하시며 제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 서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저희 가정은 오직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체르노빌 뿐인 비천하고 비루한 땅에서 외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정적인 위기의 때에 고 이 사무엘 선교사님과 몇몇 주님의 종들을 쓰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깊이 영접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저희 가정은  요한복음 10장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말씀을 새롭게 받고 망할 것 같은 내면의 두려움과 선교지를 사랑하지 못한 마음을 회개하였습니다.  저희 가정의 장래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흥하던지 망하던지, 건강하던지 아프던지 주와 복음을 위하여 주신 제자양성 및 세계선교 사명에 헌신하고자 뜻을 정하였습니다. 이후 하나님은 저희 가정과 새롭게 합류한 김 마가 선교사님 가정 그리고 최 한나 선교사님이 아름다운 성령의 그릇을 이루며 성령충만한 모임을 이루도록 여러모로 축복 하시었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는 정신’으로 오병이어를 찾아 주님께 드리며 줄기차게 말씀공부 역사를 이루고 밤이 맞도록 ‘우크라이나-목자의 나라,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기도제목을 붙들고 그 땅의 영적부흥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저희들을 산제사로 받으시고 지난 20년간의 줄기찬 사역을 통하여 선교사로 나간 가정을 포함하여 15팀의 가졍교회를 세우시고  미국의 뉴저지와 시카고 및  터키의 이스탄불,  이태리의 밀라노와 그리고 저의 가정의 첫째 아들인 요셉 목자를 사이프러스에 피송케 하셨습니다. 우리의 장막을 우크라이나에서 터키 및 사이프러스 모슬렘권으로  넓히게 하시었습니다. 받는 생활에 익숙해 있던 우크라이나 형제 자매들로 헌신케 하시고 드리는 기쁨을 알게 하시어 3년간에 걸쳐 큰 센타 건물도 건축케 하셨습니다. 장차 우크라이나 24개 주 개척 역사 및 모슬렘권 선교의 전진기지로 쓰임 받을 수 있는 복음 신앙과  선교 정신이 충만한 신앙 공동체, 선교 공동체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의 세(3) 자녀들도 복음적 신앙과 인격속에서 자라나도록 친히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특히나 첫째 요셉은 태어날때부터 체중이 너무 작아 잉큐베이터에서 자라나는 등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함께 고난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들을 통하여 그로 하여금 어리지만 고난에 대한 자세와 약한 자들에 대한 동정 그리고 어떤 상황속에서도 적응하여 성취해내는 기본자세를 훈련 시켜 주셨습니다. 그가 중동의 MIT라 불리우는 중동공대에 학생 선교사로 나간뒤 가끔씩 그로부터 그곳의 대학생활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하여 듣곤 하였지만 이슬람 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부모님 위로하는 말들이겠지 하고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6월에 가족들 비자 갱신 문제로 중동공대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놀라운 것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법을 배우며 무엇보다도 성경의 참된 가치에 눈을 뜨고 성경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슬람 학생들도 받지 못한 좋은 Room을 기독 학생들의 모임용으로 인가 받아 사용하고 있었고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온 국제 학생들이지만 매주 10명에서 때로는 17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기도 모임을 정기적으로 이루며 말씀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방학중 남아있는 10여명의 바이블 모임 학생들과 대화하여보니 그들은 한결같이 이 기도모임이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이블 스터디 모임에 감동하여 사이프러스에 있는 미국 대사관의 현직 외교관이 영육간에 또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번에 모스크바의 Jr. 송 아브라함이 중동공대의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고 요셉 목자와 함께 사역팀을 이루게 되어 중동공대 역사는 2세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독특한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더욱더 많은 기도지원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두 형제의 오병이어의 기도와 믿음을 받으시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담대한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귀하게 사용하여 주시길 간절히 기도 드립니다.  우리 2세들에 의한 중동공대 개척역사는 UBF 선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계속하여 동역자님들의 기도를 부탁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의 혈루증 않던 여인과 야이로의 예에서 그리고 우리 삶의 크고 작은 예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모든 운명을 이긴다' 는 단순하고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새기게 됩니다. 우리가 이러한 담대한 믿음으로 주님께 나갈때 삶의 모든 운명적인 문제가 이미 해결 된 것임을 굳게 믿으시길 기도 드립니다. 나가서 우리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제자양성, 세계선교라는 꿈과 비전을 향하여 힘차게 달려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열매들이 가득히 맺히어지는 복된 인생들 다 되게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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