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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02 (일) 10:47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6강-1.hwp (82KB) (Down: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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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2023년 사도행전 제6강                                                     고 영훈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말씀/ 사도행전 5:17-6:7
요절/ 사도행전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하나님은 택하신 종들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을 모든 족속들에게 전파하기를 원하십니다. 반면에 사탄은 이를 몹시 싫어하여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훼방합니다. 초대 교회는 끊임없이 발생하는 외적 박해와 교회 내부의 문제들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해결해 나가면서 견고해지고 성장해 나갑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복음 역사 현장에서 받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과 본질적인 사명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5:17-42)
  17,18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에는 권세가 있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한번에 3천명, 5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니 대제사장과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사도들이 옥에 갇히자 교회는 불같이 타오르던 복음 역사가 큰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멈추어지지 않습니다. 사도들이 옥에 갇혀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사도들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종들을 눈동자 같이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종들과 항상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사람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들이 사명을 완수할 때 까지 생명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간절히 원하시는 것은 생명의 말씀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주의 천사가 옥에 갇힌 사도들을 세 번씩이나 옥문을 열어서 구해줍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까지 죽이고자 옥에 가두었을 때 옥문을 열어 풀어 줍니다(12:7-10). 빌립보에서 바울과 실라가 옥에 갇혀서 기도하고 찬송할 때 큰 지진이 나서 옥 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열렸습니다(16:23-26). 하나님께서 주의 천사들을 통해서 이런 역사를 이루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생명의 말씀이 온 백성들에게 전파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전파를 통해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의 천사는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낸 다음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생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실로 절박한 문제입니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영적으로 응급환자와 같습니다. 응급환자는 우선적으로 생명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고 듣지 않으면 죽게 되는 생사가 달린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침묵하지 말고 생명의 말씀을 이 시대의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다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할 때였습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방해를 하자 그의 내면에 두려움이 생겨 더 이상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때 주께서 환상가운데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행 18:9,10) 사도 바울이 이 말씀에 순종하여 1년 6개월 동안 힘써 생명의 말씀을 전파했을 때 개척하기가 어렵고 힘들었던 항구 도시 고린도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비로소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회개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로마서 10:13-15절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신앙생활은 말씀, 기도, 전도, 교제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열심히 전도할 때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생동감이 있고 활기가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종들을 통해서 복음을 알지 못한 채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다 전해주기를 원하십니다.
  2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옥에서 풀려난 사도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즉시로 성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사이에 산헤드린 공회원과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원로들이 소집되었습니다. 점점 더 박해하려는 모임의 규모가 커지고 그 만큼 박해의 강도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22-26절을 보십시오. 공회가 사도들을 심문하고 재판하기 위해서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부하들이 가서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겨 있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정말 놀라고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소식을 듣고 당혹해 하고 있을 때, 사람이 와서 옥에 가두었던 사도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다고 전해주었습니다. 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사도들을 잡아왔지만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폭력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니 대제사장이 물어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 사도들은 끌려와서 공회 앞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우리가 예수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는데 너희는 어찌하여 계속해서 가르치느냐?” 따져 물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들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사도들은 유대인들과 관리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여러 차례 언급하였습니다(3:14,15,17; 4:10). 대제사장의 심문에 사도들은 무엇이라고 대답합니까? 29-31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 “하나님이 다시 살리신 예수”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2장부터 5장에 걸쳐서 매 장마다 반복되는 사도 베드로의 메시지입니다.(2:23,24,38; 3:14,15,19; 4:10; 5:30,31) 사도들은 반복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인과 종교지도자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이를 볼 때 사도들이 권력자들 앞에서 심문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도 사도들이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하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권력자들의 훼방하는 역사 속에서 사도들을 담대한 복음의 종들로 키우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바로 왕이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을 것을 잘 아셨지만 계속해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어서 “내 백성을 보내라”는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을 반복하여 전하게 하셨습니다. 열 번씩이나 바로에게 보내신 것은 모세를 담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는 모세가 바로를 두려워했지만 나중에는 모세가 바로에게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권력자들 앞에서, 직장 상사나 교수나 가족들 앞에서 용기를 내어 신앙을 드러내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전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담대한 복음의 증인들로 키우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3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이제는 박해를 넘어 사도들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던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사도들까지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이런 위기의 때 하나님은 사도들을 어떻게 도우십니까? 34,35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그 때 가말리엘이라는 율법교사가 나섰습니다. 그는 위대한 힐렐 학파의 창시자 힐렐의 손자이고 당대 최고의 랍비였으며 사도 바울의 스승이고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종교지도자들의 위협에서 사도들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는 드다와 갈릴리 유다를 예로 들면서 이 사상과 소행이 사람에게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아무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가말리엘의 말을 옳게 여기고 사도들을 불러서 채찍질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도록 하고 놓아주었습니다. 그들의 세력은 엄청 커 보이지만 하나님 앞에서 종이호랑이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바리새인 가말리엘을 쓰셔서 사도들의 생명을 친히 보호해 주셨습니다.
  41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사도들은 심한 고문을 당했지만 마음이 움츠러들지 않았습니다. 슬픈 생각에 빠지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갔습니다. 과거 그들은 예수님께서 군병들에게 체포되시자 고난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쳤습니다. 이런 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자 심령이 새로워지고 삶의 자세가 달라졌습니다. 생명의 복음전파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난을 감당하고자 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육체적으로도 많은 고통을 받고, 생명의 위협을 받았는데도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때문에 당한 고난은 신실한 주님의 제자들이 되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주와 복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을 싫어하고 수고하는 일로 인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의 참된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흔적(the marks of Jesus)’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의 흔적입니다. 사도들의 등과 온 몸이 채찍에 맞아서 찢겨지고 상한 상처들이 모두 예수의 흔적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통해서 몸에 예수의 흔적이 새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어떤 예수의 흔적이 있습니까?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해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고난이 없는 신앙생활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이 고난은 피하고 은혜와 축복만 받고자 하는 마음이 많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고난 받고자 하지 않을 때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4장 13절에서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말씀합니다. 수고와 고난이 없이는 생명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no cross, no crown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위해서 수고하고 고난 받는 것을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많은 십자가가 주어졌다고 불평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 인정받는 자가 되고자 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 몸에 예수의 흔적이 새겨지게 합시다. 그러할 때 많은 죽어가는 영혼들이 새 생명을 얻게 되고 우리 신앙생활도 예수님으로 인해서 더욱더 기쁨이 충만한 삶이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II.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6:1-7)
  1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사도들이 극심한 박해가운데서도 쉬지 않고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제자의 수가 갈수록 더 많아졌습니다. 제자의 수가 많아지자 교회 내부적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아람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헬라어를 사용하는 헬라파 유대인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전체 중 80-90%가 히브리파 유대인이었고 헬라파 유대인은 10-20%에 불과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은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서 살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서 인생의 말년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보내고자 이주해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언어가 달랐기 때문에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신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없어서 따로 모임을 가졌습니다. 히브리파 유대인들은 보수적이고 헬라파 유대인들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배타적이어서 초대 교회의 사랑의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다가 헬라파 유대인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대상에서 제외되었으니 얼마나 서글펐겠습니까? 이 구제 문제로 인해서 한 마음 한 뜻을 이루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이 때 사도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2-4절을 보십시오.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사도들은 회개하고 더 힘써 과부들을 섬기고자 방향을 잡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도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옳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제하는 일도 잘 감당해야 하므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믿음의 영향력이 좋은 자 일곱을 택하여 그들에게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고자 결단하였습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도와 말씀임을 알고 이 일에 전력투구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은 복음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그 어떤 것보다도 말씀과 기도를 통한 영혼 구원역사에 최고의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사업적이 되고 일 중심으로 흐르기 쉬운 때에 기도와 말씀 중심의 분명한 영적 방향을 잡았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온 무리가 사도들의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일곱 사람을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고 사도들은 이들을 위해 안수하여 직분을 맡겼습니다. 사도들은 사명을 감당할 사람들을 세울 때 인간적인 능력이나 지위를 보지 않고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을 세우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입니다. 사도들이 구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영적 방향을 잘 잡았을 때 예루살렘 복음 역사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사도들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사도들을 배척하고 죽이려 했던 제사장들 중에서 믿게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상에서 예루살렘 복음 역사를 살펴 볼 때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 역사임을 보게 됩니다. 사도들은 외적으로 심한 박해를 받을 때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쉬지 않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또 역사가 커짐에 따라 내부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기도와 말씀 사역에 힘쓰고자 방향을 잡았습니다. 사도들이 외적, 내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말씀을 놓치지 않고 말씀 전파에 힘썼을 때 그들은 역경 가운데서도 더 승리하고 교회도 부흥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 전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쉼 없이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구원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지식의 홍수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는 지식은 없습니다. 세상 지식은 오히려 우리를 복잡하게 하고 근심케 하고 교만하게 하고 두렵게 합니다. 또 어떤 지식은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킵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참 생명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고 참 만족과 기쁨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어 어떤 역경 가운데서도 승리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사람들은 노아시대와 같이 육신의 감정대로 살게 되고 사사 시대와 같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을 때 인간은 자연히 육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고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의미와 목적과 사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하는 절대적인 가치관을 확립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 전파의 사명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전파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영적 무지 가운데서 그대로 죽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우리에게 명하십니다.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저도 과거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불신자였는데 캠퍼스에서 목자님들이 전해준 생명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꾸준한 일대일 말씀공부와 때마다 주시는 제자 훈련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고 저도 캠퍼스 목자로 살고자 결단하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난 다음부터는 부부가 합심하여 말씀을 전파하였고, 이제는 자녀들까지 말씀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갈수록 캠퍼스 양들과 세대 차이가 나고 학사 목자의 여러 한계적인 생각으로 생명의 말씀을 잘 전파하지 못하였음을 회개합니다. 제가 본질적인 사명인 기도와 말씀에 더욱더 힘을 쏟고, 또한 시니어 목자님들과 합심하여 전체 역사에 적극 동참하여 하나님의 복음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지난 60년간 UBF 모임이 성서 한국과 세계 선교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도하는 일과 일대일 성경 공부에 전심전력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힘들다고 하더라도 전심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한 영혼 한 영혼에게 가르치고 믿음을 심어갈 때 왕성한 제자 양성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계속하여 우리 모임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전파의 영적 방향을 굳게 붙들고 캠퍼스 복음 역사를 잘 섬겨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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