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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16 (일) 10:45
분 류 고린도전서
첨부#1 2023년_부활절_제_2강-1(학사).hwp (124KB) (Down: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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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                                홍승재
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말씀 / 고린도전서 15:35-58
요절 / 고린도전서 15:51,52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는 지난 주 부활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도 부활할 것을 믿고 소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날마다 죽노라’ 외치는 바울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의 부활에 대해서 여전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입게 될 부활의 몸이 어떤 모습일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 모습과는 비교 할 수 없을만큼 영광스러운 모습인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홀연히 다 변화되는 소망가운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며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35-49)
  35절을 보십시오. 여전히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2가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느냐?’ 그리고 ‘부활이 있다면 어떤 몸으로 부활하느냐’입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들은 영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육체는 부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죽으면 썩어서 형체가 없어지거나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만 남게 되는데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 만약 부활한다면 그 몸은 태어날 때의 몸인가? 꽃보다 예쁘다는 이팔청춘의 몸인가? 아니면 죽기 직전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인가? 사고나 질병으로 수술을 하거나 장애가 된 성도들은 이전과 이후 언제의 모습으로 부활하는가?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사실 현재 자신의 형체에 만족하시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값비싼 다이어트 약이 불티나게 팔리고, 위험천만한 미용성형시술이 성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모습으로 부활한다면 아예 그냥 영원히 자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바울은 이런 의문을 갖는 사람들을 뭐라고 부릅니까? 어리석은 자여!
  바울은 자연의 법칙을 들어 부활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36,37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씨는 땅에 뿌려져 죽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몸도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죽음은 부활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또한 씨는 장래의 형체가 아니라 다만 알맹이일 뿐입니다. 씨만 보면 어떤 열매가 맺힐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씨를 땅에 뿌리면 아름다운 싹이나고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이 그 종류대로 각 종자에게 형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도 한 알의 씨와 같습니다. 장차 부활할 때의 육체는 지금의 육체와 완전히 다릅니다. 이는 우리가 어떤 몸으로 심든지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체라고해서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39절을 보십시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잘 적응하면서 살도록 사람과 짐승과 새와 물고기의 육체를 설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기에 공중의 새는 하늘을 날기에 적합한 날개를 가졌고, 물고기는 물에서 살기에 적합한 부레와 지느러미를 가졌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습니다. 그 형체들마다 각각의 영광이 있는데 그 영광이 다 다릅니다. 태양처럼 강렬하게 빛나는 영광이 있고, 달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영광도 있으며,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고 영롱하게 빛나는 별들의 영광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땅에서의 형체와 영광이 있는 것처럼, 부활의 때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기에 합당한 형제와 영광이 있습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이 땅에서의 모습과 비교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42-44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현재의 우리 몸은 썩으며 욕되며 약하고 육적인 몸입니다.
오늘날은 몸이 우상인 시대입니다. 그래서 외모를 가꾸는 데에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은 젊은 날의 육체도 세월이 지나면 결국 다 늙고 쇠하게 됩니다. 머리는 백발이 되고, 얼굴은 주름살이 깊어지고, 눈은 어둡고, 치아는 빠지고, 허리가 굽어 육신의 장막 집은 결국 무너지게 됩니다. 세상의 인기나 명예도 시간이 흐르면 다 썩어서 없어지고 맙니다. ‘욕되다’는 것은 불명예, 수치와 치욕을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선한 삶, 거룩한 삶을 원하지만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사로잡혀 원치않는 죄악된 삶, 수치스런 욕된 삶을 살아갑니다. 또한 한줌 흙으로 지음받은 우리 몸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태어나사 죽을 때까지 크고 작은 병치레를 달고 살아갑니다.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로 골절이 되기도하고, 심뇌혈관이 터지기도 하고 막히기도 하며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에 시달리기도합니다. 건강 100세를 소망하지만 늙고 병들어 각종 의료기기에 기대어 연명하는 삶은 육의 몸을 가진 인생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부활할 때는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영의 몸을 입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몸은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쇠하여지지도 아니하며 영원히 썩지 않는 강하고 신령한 몸입니다. 더 이상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지 못하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진리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거룩한 소원을 따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백성의 삶입니다. 한마디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살기에 최적화된 신령한 몸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3,4절은 말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러면 육의 몸과 신령한 몸은 어떻게 다를까요? 45-49절을  보십시오.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바울은 이 차이점을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 예수님을 대조하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심으로 생령(a living being)이 되었습니다(창2:7). 이 아담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로서 썩고, 욕되고, 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형상을 입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아담의 후손으로만 산다면 우리 인생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생 땀 흘리며 애쓰고 살지만 결국 죽어 흙으로 돌아가는 허무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은 생명을 살려주는 영(a life giving spirit)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도 하늘에 속한 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게 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을 갖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구주 예수님을 보내어주시고,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II.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50-58)
  그러면 왜 우리가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어야 합니까? 50절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사람이 죽으면 살과 뼈는 썩어져 없어집니다.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혈과 육의 몸으로는 달나라조차 가서 살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고, 영원한 삶을 유업으로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죽음의 과정을 거쳐 하나님 나라에 적합한 부활의 몸,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비밀스런 일은 언제 어떻게 일어납니까? 51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비밀이란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사실(fact)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믿는 성도들에게만 1급 비밀을 알려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비밀은 우리의 이성과 지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만이 깨달을 수 있는 영적 비밀입니다. 그 내용이 궁금하십니까?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재림을 알리는 천사장의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 ‘우리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됩니다. 개선장군처럼 예수님은 하늘의 형상을 입고 나팔수들과 천사들을 대동하고 구름타고 오십니다.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시고 가슴에는 커다란 금띠를 띠시고 그 오른 손에 일곱 별을 쥐고 해처럼 밝은 광채와 함께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의 이름을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 날에 자기 이름이 불려지는 사람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할 것입니다. 그 날에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서 하늘로 들려올라가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이름이 불려지지 않는 자는 슬피 울며 바깥 어두움에 쫓겨나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이 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우리가 이 비밀을 아는 자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요 특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비밀은 반드시 이뤄질 영광스럽고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53절을 보십시오. 이 말씀 앞에 각자 본인의 이름을 넣어서 읽어보겠습니다. (홍OO)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세상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지만, 부활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천국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나팔 소리와 함께 홀연히 다 변화될 것을 굳게 믿고, 오늘도 내일도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야겠습니다.
  그럼 부활의 때 어떤 말씀이 이루어집니까? 54절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이 말씀은 이사야서 25:8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말씀의 성취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지만 썩을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사망 권세’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삼켜 버림으로 사실상 이 세상에서 왕 노릇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막강한 권력이나 군사력을 가진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죽음 권세 앞에서는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결국은 죽음에 삼킨 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그 날에는 사망이 예수님에게 삼킨 바가 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사망을 삼켜버리십니다.  
  이어 바울은 호세아 13:14절을 인용하여 죽음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노래합니다. 55,56절을 보십시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부활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사망은 완전하게 패배합니다. 죽음이 쏘는 독화살에 맞으면 율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됩니다. 율법은 그를 죄인으로 정죄하고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율법도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몸으로 부활할 때에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을 터이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도 필요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대신 사탄과 피 흘리기까지 싸워주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57)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최후 승리를 주시는 우리 주 예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자 이제 그러면 부활신앙을 가진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58절을 보십시오. 부활장 마지막 구절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첫째,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먼저 부활이 없다는 자들의 거짓말에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이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을 인정하고 환영하고 지지해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도리어 믿음에서 떠나도록 유혹하고 핍박하고 두려움을 심습니다.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들은 말씀으로 사는 것이 정답이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다가는 경쟁사회에서 낙오되고 탈탈 털리고 말 것 같은 두려움에 믿음이 흔들립니다. 신앙생활만으로 한세대를 넘기신 베테랑 목자님들도 문득 내 신앙의 열매가 무엇인가 생각할 때면 낙심이 되고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신앙에 인생의 뿌리를 견고하게 내리고, 부활의 믿음과 소망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날에 우리도 홀연히 다 변화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광의 하나님을 뵐 것을 굳게 믿고 끝까지 믿음의 중심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둘째,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기 기업을 세우기 위해 전 인생을 투자합니다. 그러나 세상 일들은 지내놓고 보면 허무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소망은 장차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으로 사는 자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일이란 주님의 뜻을 섬기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사탄에게 종노릇하며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더 시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있을까요? 실제로 우리 목자님들은 주의 일을 섬기느라 많은 수고와 아픔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사모님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미세먼지가 아무리 심각해도 개의치 않고 복음을 들고 캠퍼스에 올라갑니다. 그렇게 지극정성으로 섬겨도 변화될 줄 모르고 떠나가는 양들을 볼 때 내가 드린 모든 시간과 물질과 수고가 헛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혹시 우리의 수고가 헛되다고 느끼십니까? 물론 세상 일은 헛된 일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주 안에서 하는 일은 헛된 일이 없습니다. 이미 우리는 이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일본에서 수십 년간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겨우 한 사람만을 전도하여 세례를 주었을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 집에 있던 일본인 가정부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선교사역을 실패한 사역이라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임무를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간 후 그 가정부의 아들은 일본 신학교의 학장이 되어 수많은 목회자를 길러내었습니다. 사람들은 나무에 달린 사과의 수를 헤아리지만, 하나님은 씨앗 속에 있는 사과의 수를 헤아리십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앞에 설 때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세상 열매보다 주님을 위해 산 영적 열매를 보십니다. 주 안에서 수고한 자에게는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3) 칭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모든 헌신과 수고를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으시고 다 열납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에 차곡차곡 쌓아 두십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더 좋은 것으로 다 갚아주십니다. 이 땅에 사는 날 동안에도 생명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믿음으로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저는 이번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는 과연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가? 그리고, 이 땅에서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소망하는 부활의 몸은 대단히 거창한 영광스런 몸이 아니라, 비문증없이 잘 보이는 눈을 가진 몸, 이명의 고통없이 잠잘 수 있는 몸, 심장병으로 가슴 졸이며 살지 않아도 되는 몸입니다. 해가 갈수록 하나둘씩 늘어가는 약봉투를 바라볼 때면 정말 육신의 몸은 쇠하고, 약하고, 욕되고, 썩어가는 몸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코로나 이후에 거의 매일같이 날아오는 부고장을 받아 볼 때면 세상 정욕과 욕심에 빠져 죽을 종을 구원하시고 부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신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영광스러운 강한 몸,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게 하실 그 크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종이 만입이 있어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은혜에 기초해서 이 땅에서 남은 인생을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반백년을 살면서 세상 일을 원 없이 해보았지만 그 속에서 남은 것은 각종 갈등과 송사와 질병뿐인 것을 고백합니다. 오직 말씀을 배우고 전했던 날들, 동역자들과 함께 양들을 섬기면서 느꼈던 생명 구원의 기쁨과 감동만이 가장 귀한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베드로의 고백처럼 오직 생명의 복음만이 영원함을 깨닫게 됩니다. 종이 헛된 세상일을 할례하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땅에서 예비해두신 생명의 열매, 장차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갈 부활의 열매를 소망하면서,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에 더욱 힘써 섬기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모두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합니다. 이 부활의 믿음과 소망가운데 ‘날마다 죽는 삶’ ‘세상에 속지 않는 삶’ ‘깨어 의를 행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더 나아가 마지막 부활의 날에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신령한 영의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을 믿고 오늘도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영광스러운 부활의 소망과 승리의 확신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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