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23 (일) 15:07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7강-1.hwp (92KB) (Down:63)
ㆍ추천: 0  ㆍ조회: 889      
IP: 211.xxx.102
[2023년 사도행전 제7강]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2023년 사도행전 제7강                                                        이 인구
          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말씀/ 사도행전 6;8-7;60
요절/ 사도행전 7;59,60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서 하고 무릎을 끓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오늘 말씀은 스데반의 순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스데반은 초대 교회 첫 순교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전하다 순교하면서 예수님처럼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그를 통해 복음은 예루살렘을 넘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되어 수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렸습니다. 또한 사울의 회심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오늘 스데반의 메시지를 통해 그의 복음신앙과 순교신앙을 배울 수 있길 기도합니다.

스데반은 사도들을 대신하여 구제하는 일을 섬기도록 세움 받은 일곱 집사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그를 통해 큰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자유민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스데반과 논쟁하게 됐습니다. 자유민들은 원래 로마군(폼페이우스)에게 잡혀서 노예가 되었다가 해방된 유대인들의 자손입니다. 그들은 이방 땅에서 살다가 예루살렘 성전 중심의 신앙생활을 하고자 예루살렘에 온 자들로 대부분이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스데반도 헬라파 유대인으로서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자 어떤 자들이 스데반과 논쟁하게 된 것입니다. 더 이상 성전과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스데반의 메시지가 성전을 찾아 돌아온 자유민들에게 거슬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명이 눈을 부릅뜨고 열을 내어 목소리를 높여도 스데반의 탁월한 지혜와 변론에 도저히 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성경말씀에 기초해 보면 그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자요(5)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8) 지혜와 성령의 사람입니다. (10) 즉 그는 예수님께 받은 은혜가 충만하여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견고했기 때문에 성령 충만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지혜와 권능이 충만한 자였습니다. 그의 지혜와 능력의 근원은 성령 충만 입니다. 성령과 지혜와 권능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닙니다. 성령 충만할 때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한다고 언제든 성령 충만할 수는 없습니다. 나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의 은혜와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을 때 성령 충만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령 충만한 스데반을 당해낼 수 없자 반칙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거짓증인들을 매수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스데반을 공회까지 끌고 와 심문받게 했습니다.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13,14) 성전예배와 율법은 유대교를 떠 바치고 있는 두 기둥입니다. 성전을 헐고 율법을 고치는 것은 유대인들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하심으로 자신이 옛 성전을 대신할 새로운 성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의 거짓 고소는 얼마 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꾸몄던 그 고소였습니다. 예수님을 시기해서 죽이는데 성공했던 종교지도자들은 이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증거하는 스데반까지 죽이고자 했습니다. 살기로 가득한 거짓고소를 받고난 후 스데반의 얼굴은 뜻밖에도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천사의 얼굴은 어떤 얼굴입니까? 한 젊은 화가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얼굴, 천사의 얼굴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화가는 어머니 품에서 자고 있는 아기를 보았습니다. 아기의 얼굴에는 순수함과 평화가 가득했고 화가는 ‘루퍼트’라는 아기의 얼굴을 모델로 만족스러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나이든 화가는 이번에는 천사의 얼굴과는 정반대의 그림을 그려 악마 같은 인간의 공포를 알리고 싶었습니다. 화가는 감옥을 찾아갔고 사형수가 갇힌 독방에서 핏발이 서있는 눈에 얼굴은 흉터가 무성한 섬뜩한 몰골의 한 늙은이를 보았습니다. 화가는 사형수를 모델로 그림을 완성하고 마지막으로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는 탁한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루퍼트!” 세상의 많은 사형수들도 아기 때는 어머니 품에서 천사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천사의 얼굴은 아직 죄를 몰라 죄가 없는 순수한 얼굴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기쁨과 평안과 생명력이 가득한 얼굴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충만해 성령 충만 할 때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모세가 시내산 정상에서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 얼굴에서 광채가 났던 것처럼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천사의 얼굴처럼 빛이 났습니다. 볼품없는 얼굴이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할 때 얼굴이 밝아지고 생기가 넘쳐서 천사의 얼굴이 됩니다.

7장 1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이 내면의 거짓과 탐욕을 화려한 제사장옷으로 감추고 경건하고 근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은 살벌한 공회에서 천사의 얼굴로 그의 마지막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교회 예배시간 신자들앞에서 전파한 설교가 아니라 공회(법정)에서 어떻게든 말꼬리 잡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 목숨 걸고 한 최후의 변론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거짓증인을 세워 스데반을 공격했지만 스데반은 더 위대한 증인들 구약의 아브라함, 요셉, 모세를 세워 이스라엘의 역사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뜻을 거침없이 증거하였습니다.(역사를 통한 변증)

첫째, 율법에 대한 변증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자들을 약속의 말씀으로 만나주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역사의 주인공들에게 나타나는 3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고, 둘째, 약속의 말씀을 믿었고, 셋째, 그 말씀에 순종해 살았습니다. 믿음의 삶은 ‘현금’을 쥐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어음’을 받아 사는 삶입니다.(이재철목사) 당장 쓸 수 있는 현금이 아니라 어음을 발행한 주체를 신뢰하여 나중에 필요할 때 현금으로 바꾸어 사용할 수 있는 ‘약속어음’과 같은 것이 믿음입니다. 약속어음을 발행하신분이 하나님이시기에 믿음만 있다면 부도날 위험이 전혀 없는 확실한 어음입니다.

스데반은 먼저 이스라엘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메소보다미아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땅과 많은 자손을 약속하셨습니다.(창12:1-2)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에 왔을 때 하나님은 아직 발 붙일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이 다른 땅(애굽)에 나그네 되어 400년 동안 종으로 살다가 다시 약속의 땅에 돌아와 하나님을 섬기게 되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믿는 믿음의 증표로 할례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곧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유한 백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일생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약속의 땅에서 살았지만 그 당시에는 이삭 한명과 매장지로 산 막벨라 굴을 소유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대로 자식의 소망이 끊어졌던 아브라함을 통해 큰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셨습니다. 또한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에 기초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과 후손은 ‘지금 여기’에 보장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장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이루어질 약속을 믿고 현재를 사는 삶은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분명한 차이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서 떠난다면 그들은 택한 백성의 특권과 소망과 축복도 다 잃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 다음으로 요셉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그는 요셉의 일생을 통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신(섭리)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어릴 때 꿈을 통해 약속을 보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애굽의 노예로 팔면서 약속의 성취가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주신 하나님은 항상 요셉과 함께 하셔서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시고 애굽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심으로 애굽의 총리(통치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온 땅의 흉년의 때에 야곱과 가족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서 그 집을 살리시고 형들을 용서하여 구원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애굽으로 온 야곱의 가족 75명은 요셉의 영향력아래 400년 동안 장정만 60만 명(전체 약200만 명)이나 되는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꿈) 때문에 가족들에게 배신당한 것은 인간적으로 가장 큰 비극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어리고 연약한 요셉을 모든 인간군집이 뒤엉켜 사는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훈련하셨고 또 죄악된 형들을 용서하고 12지파의 조상을 세우는 목자로 연단하셨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불행한 일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안에서 오히려 은혜의 기회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약속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믿을 때 어떤 운명이나 절망적 환경에서도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스데반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모세의 생애를 증거했습니다. 유명한 전도자인 '디엘 무디'는 모세의 일생을 3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처음 40년, 애굽의 궁중에서 왕자로 있을 때를 "I am somebody"시대 즉 ‘나는 대단한 사람’ ‘나는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청년의 시기입니다. 두 번째 40년은 광야에서 이름 없는 목동으로 쓸쓸히 살아가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I am nobody" 시대 즉 하나님 앞에서 비천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은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위대한 출애굽의 역사에 쓰임 받는 노년의 모세로 “I am God’s body"시대입니다. 사실 모세의 일생을 3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스데반이 원조입니다. 모세는 태어나자마자 곧 죽을 목숨이었지만 부모는 믿음으로 나일 강에 떠내려 보냈고 바로의 딸이 그를 발견하면서 롤러코스트 같은 그의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웠지만 나이 40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이 생겼습니다. 학대당하는 동족을 위해 애굽 병사를 죽이고, 또 싸우는 동족을 위해 중재에 나섰지만 이스라엘백성들은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하며 그를 배척하였고 그는 도주하여 40년의 광야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 살면서 궁중에서 배웠던 모든 지식과 학문도 잊어버리고 지도자로써의 소원도 열정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절망의 때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때입니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전도서3;1,2, 11a)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가운데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말이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세웠느냐 하며 거절하던 그 모세를 하나님은 가시나무 떨기 가운데서 보이던 천사의 손으로 관리와 속량하는 자로서 보내셨으니”(35) 40년 전 모세는 노예백성들의 죄를 판단하는 재판장으로 폼 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40년 광야훈련 후 모세를 노예백성들의 불신과 불순종의 죄를 속량하는 지도자, 섬기고 감당하는 ‘목자 지도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출애굽 후 40년 동안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는 광야교회를 섬기도록 하셨고 무엇보다 모세를 통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주셨습니다. 과거 소수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들에게만 임했던 약속의 말씀이 이제 택함 받은 모든 백성들에게 율법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19;5,6)

스데반이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 요셉, 모세의 삶을 장황하게 증거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으로 이루어 진 것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자식의 소망이 끊어진 아브라함을 통해 민족을 시작하셨고 또 흉년으로 사라질 야곱가문을 요셉을 통해 구원하고 번성하게 하셨고 또 나일강에서 빠져죽을 모세를 구원하고 연단하여 이스라엘의 출애굽지도자로 세우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어떤 세상의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이뤄나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나타내는 증거요 기록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또 현재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듣고 믿고 또 순종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아무리 어둡고 혼돈스러운 세상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대로 택한 우리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 12지파의 조상인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판 것처럼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세우신 모세를 배척하고 불순종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요셉과 모세를 거부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불신하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출애굽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시로 애굽에서의 바로의 노예의 삶을 그리워했고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갈 때에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은 심지어 약속의 땅에서 살면서도 이방인들처럼 ‘하늘의 군대’ 즉 해와 달, 별 같은 천체행성을 섬겼고 심지어 어린아이들을 희생재물로 바치는 암몬족속의 우상 몰렉까지 섬기며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다 결국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는 온갖 모욕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악과 배반에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마침내 약속의 말씀대로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구약시대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이 이제 예수님의 복음으로 모든 신자에게 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까지 거부하며 십자가에 죽였고 이제 예수님을 증거하는 스데반까지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둘째, 성전에 대한 변증

율법을 거부한 조상들의 죄를 지적한 스데반은 이제 성전의 역사를 증거했습니다. 광야생활 할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전의 원형으로 ‘증거의 장막’이란 성막을 보여주시며 만들도록 하셨습니다. ‘증거의 장막’이라고 한 것은 성막 안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의 약속(십계명)이 담긴 언약궤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과 만나는 곳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고 말씀을 기초로 기도하는 곳입니다. ‘증거의 장막’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여호수아가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성전의 원형으로 쓰임 받게 됐습니다. 다윗은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룬 후 자신은 백향목 궁에 거주하는데 하나님의 언약궤는 성막에 있는 것이 안타까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크고 아름다운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전쟁을 하면서 많은 피를 흘린 다윗의 손으로 거룩한 성전을 짓는 것을 원치 않아 결국 솔로몬이 당시 최고의 재료와 인력으로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건축하게 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디에 있든지 기도할 때 성전을 향해 한 것처럼 성전을 자신들의 자랑이요 존재의미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보좌요 땅이 발등상인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만든 성전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시간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역사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이방 땅인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 그에게 나타나셨고 요셉이 애굽에서 종노릇 할 때도 그와 함께 계셨고 모세가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에도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성전의 건축물이 있는 이스라엘 땅이 거룩한 땅이 아니라 세상 어디든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이 거룩한 성전이 되고 거룩한 땅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만나는 성전이 되시고(요2;19)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성령 받은 모든 신자가 성전이 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린도전서6;19,20)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 성전되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죽였습니다. 또한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의인이 오시리라 예언한 자들을 죽였습니다.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스데반이 성전을 무너뜨리고 율법을 거스린다고 하지만 진실은 종교지도자들이 성전으로 자기들의 권위를 내세우고 탐욕을 채우는 도구로 이용하고, 율법으로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이용하였습니다.

51절을 보십시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스데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서 성전과 율법을 끊임없이 불순종한 조상들을 언급한 후 이제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들의 죄를 깨우치고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 조상들의 죄를 알고 있음에도 진정한 율법이요 성전이신 구원자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인 더 큰 죄를 회개하도록 도전하였습니다. 스데반의 강렬하고 단호한 메시지는 유대인들의 가슴과 영혼을 찔렀습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마음에 찔리자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묻고 회개함으로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스데반을 고소하고 재판하는 유대인들은 오히려 분노하면서 이를 갈았습니다. 이때 스데반이 더욱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님께서 하나님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이 말에 더욱 분노한 무리들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달려들어 스데반을 성 밖으로 내치고 돌을 던졌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이지 마옵소서”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교하였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모습은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못 박은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인간의 감정과 의지로 자신을 모욕하고 죽이는 자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내면에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스데반은 복음을 영접한지 얼마되지 않아 젊은 나이에 순교했지만 그의 죽음은 기독교(복음)역사의 큰 변곡점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이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대대적인 핍박이 가해졌고 많은 성도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천사의 얼굴로 예수님을 증거하면서 순교한 스데반의 모습은 모든 성도들의 심장에 새겨져 그들 또한 순교신앙으로 예수님을 전함으로 복음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또 안디옥 교회가 개척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1;19) 뿐만 아니라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했던 사울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가 후에 바울로 거듭나는데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베드로의 설교의 연속으로 바울의 가르침과도 상통합니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했지만 스데반은 헬라파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이방인의 사도인 사도바울이 서는데 중간다리(교두보) 역할을 하였습니다.

오늘날도 캠퍼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와 위협을 받습니다. 사모님들이 캠퍼스에 올라가 피싱을 하면 거친 말을 하며 신고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이런 시대에 영혼구원역사를 섬기기 위해서는 우리도 스데반 같은 순교신앙이 필요합니다. 순교신앙은 예수님을 위해 피를 흘리는 것뿐 아니라 평소 어떤 어려움과 환란이 있어도 믿음을 지키고 복음을 전파하는 신앙입니다. 순교신앙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 위해 일생 자기 생명을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고 또 나의 육신과 인생을 예수님을 증거하는 성전으로 드리는 삶입니다. 순교신앙은 약속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지키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는 것이고 또 사도바울처럼 날마다 죽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지금은 은혜의 시대인데 왜 바리새인처럼 말씀을 절대적으로 지키라고 율법적인 말을 하는가! 어차피 완벽하게 지키지도 못하지 않은가!” 반발합니다. 물론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100% 말씀에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하려는 치열하고 간절한 노력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수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 알지 못하고 예수님의 죄 사함의 은혜도 깨닫지 못합니다.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유혹에 맞서 싸워 본 사람만이 유혹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압니다. 악한 사람은 늘 악에 굴복하여 살기 때문에 실상은 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말씀을 믿고 순종하기 위해 순교신앙으로 힘쓸 때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함께 하신 예수님을 체험하며 성령 충만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은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는 삶입니다. 성령 충만할 때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실 때 예수님은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로 나를 통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예수님을 따르고 닮기 위해 힘쓰므로 스데반같이 순교신앙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이 되길 기도합니다.

얼마 전부터 치대동기와 동문 카톡에서 여러 동기들의 근황을 보게 됐습니다. 많은 동기들이 치과협회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많은 물질을 모았고 또 자녀를 의대와 치대로 보낸 이들의 자랑이 올라왔습니다. 카톡을 보면서 비교의식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메시지를 감당하면서 제가 유대인들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율법이나 성전에 집착하는 모습을 깨닫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은혜로 존재하고 번성하게 된 유대인들처럼 저도 오직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교통사고의 죽음에서 구원받고 부르심의 은혜로 약속의 말씀을 받아 지금까지 인도함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첫 구원 때 저에게 출애굽기의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출19;5.6)의 약속의 말씀을 주심으로 사고로 죽을 죄인을 구원해주시고 약속의 말씀대로 제가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백성이요 다른 이들을 인도하는 제사장 나라로 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오랫동안 말씀과 관계없이 세상을 두려워하며 억매이며 살았지만 하나님은 때마다 약속의 말씀으로 한걸음씩 저를 인도하시며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최근 베드로전서의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의 말씀을 주심으로 세상가운데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목자로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하나님영광을 위해 살도록 도우셨고 또 그럴 때 치과의사로서도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고 얽매이는 자녀문제도 해결 받게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일생 순교신앙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스데반의 순교는 복음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생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스데반의 순교신앙을 본받아 일생 약속의 말씀을 좇아 살면서 복음 전파에 생명을 드려 많은 생명을 구원하는데 쓰임 받는 인생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70 마태복음 [2021년 성탄 제1강]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관리자 2021-12-11 922
69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15강]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관리자 2022-06-19 906
6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강]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관리자 2023-02-26 891
6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1강]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가졌으니 관리자 2023-08-13 889
6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7강]예수님을 따라 순교한 스데반 관리자 2023-04-23 889
6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3강]환난과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23-06-04 881
6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9강]택한 나의 그릇이라 관리자 2023-05-07 871
63 누가복음 [2023년 누가복음 제38강]아버지의 원대로 관리자 2023-01-15 866
62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828
6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관리자 2023-05-21 822
60 에스라 [2023년 에스라 5강]울며 기도하여 자복할 때에 관리자 2023-11-05 809
59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802
5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8강]전도자 빌립 관리자 2023-04-30 774
5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5강]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23-06-18 771
56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764
5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731
54 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제31강]영생을 얻는 길 관리자 2022-10-16 726
53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702
5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관리자 2023-05-14 657
5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8강]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관리자 2023-07-09 651
1,,,41424344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