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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4-30 (일) 10:57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8강-1.hwp (89KB) (Down: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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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8강]전도자 빌립
2023년 사도행전 제8강                                                                    한아브라함

                 전도자 빌립
말씀 사도행전 8장 1절-40절
요절 사도행전 8장 5,6절;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사도행전 1장 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네 증인이 되리라. 사도행전 1장부터 7장까지는 복음 역사가 예루살렘 에만 머물러 있음을 보여줍니다. 8장에서 12장 까지는 핍박이 일어나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로 퍼져 나갔습니다. 13장부터 끝까지는 복음이 땅 끝까지 퍼져나가는 역사입니다. 유대인 중심에서 이방인 중심으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역사에 세 사람을 쓰셨습니다. 스데반과 빌립과 바울입니다. 스데반은 순교를 통하여 빌립은 전도를 통하여 쓰셨습니다. 오늘 사도행전 8장 말씀은 전도자 빌립을 통해서 사마리아 땅과 에디오피아 간다게 여왕의 내시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내용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령께서 전도자 빌립을 어떻게 쓰시는가 배울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빌립의 도전적인 신앙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복음이 사마리아를 넘어 (1-25)
1절을 보십시오.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반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겼습니다. 여기서 사울이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합니다. 사울은 앞으로 세계 선교의 주역이 될 바울의 변화되기 옛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이 순교할 때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며 눈을 감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흡사한 스데반의 죽음이 너무나 강렬했지만, 사울은 그의 소신을 꺾을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스데반이 죽는 것은 마땅해’ 애써 자위하며 교회 박해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날에’ 그날은 스데반이 순교한 날입니다. 스테반이 순교하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습니다.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 떼들이 우르르 먹잇감에게 달려들듯이, 스데반의 죽음을 본 사울과 핍박 자들은 본격적으로 교회를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도들은 왜 예루살렘에 남았을까요? 베드로 사도가 한번의 설교에 5천 명, 3천 명씩 회심했던 이곳, 무엇보다 서로 사랑하고 필요에 따라 물건을 나누었던 곳, 말씀 역사 치유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던 곳, 교회 역사상 최고의 교회 배우고 본받아야 할 본이 되는 교회, 예루살렘 교회였습니다. 사도들은 결코 이곳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죠. 그래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순교를 각오하고 이곳에 남았습니다. 한편 대부분의 성도들은 강한 핍박으로 흩어졌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크게 울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스데반을 본보기로 죽이면 그 세력이 주춤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성도들이 스데반처럼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고 복음을 증거 하기 시작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오히려 부흥의 불씨가 되었던 것입니다. 3절을 보십시오. ‘사울이 교회를 잔멸 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긴 지라’ 사울일당은 교회를 잔멸 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잔멸 하다라는 뜻은 사나운 들짐승이 먹이의 몸을 물어뜯어 죽이는 행동을 의미합니다. 산헤드린 공회에서 체포 영장을 받아서 가가호호 방문하며, 크리스챤 남녀 모두 다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핍박의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 도망가고 교회가 위축되었나요? 아닙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지금 까지는 예루살렘 에만 머물러 있던 복음이 흩어진 성도들을 통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까지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 지게 되었습니다. 부흥이 일어날 때 사단은 결코 이를 좌시하지 않습니다. 사단은 복음의 불씨를 짓밟아 버렸지만, 오히려 복음의 불씨는 성령의 바람을 타고 더욱 크게 번져 나갔습니다. 핍박이 성령의 바람을 타고 더 큰 부흥으로 연결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은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도 전파되길 원했습니다. 그런데 은혜가 풍성하고 사랑이 풍성한 이 예루살렘 교회를 떠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럴 때 성령께서 핍박을 쓰셔서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마치 과거 우리나라의 평양 대 부흥으로 평양이 동양의 예루살렘이라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평양에만 머물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6.25 전쟁이 일어났고, 평양의 신자들 목회자들이 남한 전국으로 퍼져나가 교회를 세웠습니다. IMF 때 실직한 사람들이 job을 얻으러 외국으로 나갔는데 자동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받으면 가짜는 떨어져 나갑니다. 진짜만 남습니다. 쭉정이는 떨어져 나갑니다. 알곡만 남습니다. 알곡들이 흩어진 곳에서 다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박해를 피해 사마리아 땅으로 내려간 사람 중에 빌립이 있었습니다. 빌립은 스데반처럼 구제를 위해서 택함을 받았던 일곱 집사 중 한 명이었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빌립을 쓰셔서 그들에게도 큰 부흥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사마리아인들은 무시 받고 멸시 천대 받으며 힘들게 살아왔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므로 암흑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아무도 어느 누구도 사마리아 땅에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핍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마리아 땅에도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은 민족 간, 인종 간 장벽을 허물어뜨립니다.
6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사람들이 빌립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의 말을 따랐습니다. 7,8 절을 보십시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성령께서 역사하시자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 지르며 떠났습니다. 많은 중풍 병자와 못 걷던 사람들이 나았습니다. 더러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더럽습니다. 말이 더럽고 삶이 더럽고 생각하는 것이 음란합니다. 말씀을 영접하면 귀신이 떠나갑니다. 또한 질병이 떠나갔습니다. 요즘은 병원에서 질병을 고쳐 주지만, 당시의 의료 환경이 열악했을 때에는 성령께서 질병을 직접 치료해 주셨습니다. 성령에게 붙잡히지 않으면 우리도 귀신의 세력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성령에게 붙잡히면 귀신도 떠나가고 질병도 낳습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예수님의 제자가 행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8절을 다시 보십시오. 사마리아 성에 큰 기쁨이 임했습니다. 사마리아 땅에 큰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 결과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큰 기쁨, 진짜 행복은 어디서 옵니까? 큰 기쁨, 진짜 행복은 하나님을 만난 후 얻게 되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비교가 안 되는 큰 기쁨, 진짜 행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즐거움과 기쁨을 찾아 헤맵니다. 돈을 많이 벌고 돈으로 기쁨과 행복을 사려 하지만 살 수 없습니다. 철학이나 사상 다른 종교도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마침내 쾌락을 추구하고 술 마약에 중독되지만 기쁨은커녕 비참함과 더 큰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큰 기쁨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성을 맺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죠. 사마리아 성에는 지금까지 이런 기쁨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사마리아는 죽음과 마귀가 역사하는 소망이 없는 땅이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의 땅이었죠. 그런데 빌립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을 때 비로소 그 성에 큰 기쁨이 임했던 것입니다.
9-11 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 성에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을 행하여 백성들을 놀라게 하였죠. 자칭 큰 자라고 하였습니다. 가짜는 스스로 큰 자 인척 합니다. 진짜 큰 자는 스스로 작게 여기는 겸손한 자이죠.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귀신의 능력을 덧입어서 기이한 일을 행했던 것입니다. 낮은 사람으로부터 높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 시몬을 따랐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를 큰 자로 여기는 이유는 그가 마술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JMS에 왜 지성인들이 빠졌나요? 그가 기적 비슷한 일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큰 자다. 재림 예수다 말할 때에 엉터리인 줄 알아봤어야 합니다. 복음을 외면한 세계는 결국 악령의 지배를 받아 사단의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암흑의 땅 사마리아에 드디어 빌립을 통해 복음이 선포되었을 때 사마리아는 어둠에서 해방되었습니다. 12, 13 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을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전했습니다. 그가 복음의 핵심을 전했을 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시몬도 빌립이 전하는 복음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빌립을 따라다니며 빌립을 통하여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짜라는 것을 잘 알았습니다. 이제 진짜가 나타나니까 진짜를 따라다니며 배우려 했죠. 그가 했던 것은 눈속임 수준 이었지만 성령의 역사는 근본적으로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는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14-16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보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땅에 도착해 보니 아직까지 한 사람도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두 사도는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였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곳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하여 사마리아 땅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빌립이 아니고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통해서 성령이 임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유대인들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오랫동안 반목하던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이 주 안에서 화합하고 하나의 그리스도 공동체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땅에도 오순절 성령강림 같이 감격적인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18, 19절 보십시오. 시몬은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빌립도 놀라운데 두 사도들이 성령 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습니다. 자기도 너무나 이렇게 되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돈을 주고 능력을 사려했습니다. 시몬은 그동안 마술을 통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이제 마술과는 비교할 수 없게 뛰어난 성령을 받아서 또 성령세례를 주는 자가 되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20-21 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오자 시몬의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베드로에게 돈을 주고 능력을 사려고 했죠. 이 사람은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훔쳐 가고자 믿는 척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이 사람이 사단의 하수인임을 파악하고 베드로는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은사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 돈으로 사고 파는 것이 아니죠.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성령을 은사를 값없이 주십니다. 왜냐하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이기 때문에 최고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공기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무료인 것처럼 말이죠. 22-2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는 시몬을 저주하면서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합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진실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내가 보니’, 즉 베드로는 시몬의 영적 상태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제대로 책망했습니다. 시몬이 베드로의 무서운 책망을 듣고 자신이 망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고백하고 회개하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진실 되게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 문헌에 보면 훗날 시몬이 교회를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왜 이렇게 불같이 화내며 저주한 것일까요? 초신 자인데 잘 가르쳐 주고 바로 잡아 주면 되지 않을까요? 베드로가 사단의 역사임을 간파한 것이죠. 시몬 같은 사람을 통해서 복음의 본질을 흐리려는 사단의 역사였던 것이죠. 그는 돈을 주고 성령 받기를 사모했습니다. 그는 돈을 가지고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귀신이 하는 행태입니다. 성령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사도를 이곳에 보낸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몬 같은 이단을 배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인본주의 세력 이단의 세력을 밝히고 잘라냄으로써 현재 일어나고 있는 성령의 역사에 불을 붙였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 내에 시몬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교회 내 에서도 돈이 있어야 대접을 받는다 생각합니다. 돈을 하나님보다 위에 두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을 내 마음 중심에 두기 싫어하면서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은사는 받고 싶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고 싶어 합니다. 이는 악한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이 있으면 진실 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의 첫 자리에 모셔야 합니다. 이제 사마리아 땅에도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은 사마리아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제 2장, 복음이 아프리카까지 (26-40)
2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돌아간 후에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고 하셨습니다. 가사는 요사이 뉴스에 자주 나오는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가자지구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광야 길이었습니다. 성령의 방향에 빌립이 순종하기 쉬웠을까요? 빌립도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체험했고 계속해서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는 돌아가고 양떼들은 평신도인 빌립을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가라고 하십니다. 성령은 사마리아 땅의 유일한 준비된 성경 선생, 빌립에게 저 멀리 130KM 광야 길, 아프리카 관문 인 가사로 내려가라니 이해하기 힘든 방향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빌립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즉각 순종하여 가사로 내려갔습니다. 27-28절을 보십시오. 원문에는 ‘일어나 가서 보니’ 다음에 보라! 즉 behold! 라는 감탄사가 나옵니다. 인적이 드문 광야 길에서 사람 자체를 만나기도 힘든 일인데, 성경을 읽고 있는 사람을 만나다니 이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라는 뜻이죠. 빌립이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즉 오늘날로 말하면 재무장관격인 내시가 수레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에디오피아 여왕의 오른팔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긴 여행길을 여왕이 허락할 만큼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와 명예와 권세 등 모든 것을 다 가졌던 사람이었습니다. 다 가져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만으로 채울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빈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교로 개종했습니다. 예루살렘에까지 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귀한 성경 사본을 구입했습니다. 왜 돌아가는 길을 광야 길로 택했을까요? 수레를 타고 여행하는 기간 성경을 읽고자 한 것이죠. 돌아가는 길에 성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깨달음은 없었고 영적 만족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를 위해 성경선생 빌립을 보내셨습니다.
29-31 절을 보십시오. 성령께서 빌립에게 수레로 가까이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나를 보내시어 꼭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빌립은 ‘읽는 것을 깨닫느냐’ 묻자 내시는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 대답하였습니다. 그에게서 깊은 절망감이 느껴지죠. 빌립에게 수레에 올라 앉으라 청했습니다. 수레에 올라 일 대 일 말씀 공부를 하였습니다. 전도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십니다. 만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할 말을 하게 하십니다. 선교지로 나가 보면 어눌한 외국어라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반드시 있습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가 하필 이사야서 53장 7, 8절을 읽고 있었습니다. 고난 받는 종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내시의 의문은 도살자에게로 끌려가면서도 입을 열지 않고 잠잠했던 어린양이 누구냐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자신이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냐 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다윗 왕 같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야 하는 죄 없으신 어린양이신 것입니다. 빌립은 이 말씀을 풀어 설명해 주고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 다 설명해 주었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빌립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습니다. 깊이 있는 일대일을 했습니다. 간다게 내시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 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너와 네 집과 네 나라가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간다게 내시는 드디어 사랑과 자비와 긍휼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36-38 절을 보십시오. 에디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영접했고 물이 있는 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는 예수를 믿고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내면의 참 자유와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39-40절을 보십시오. 둘이 물에서 올라올 때 성령께서 빌립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내시는 기쁘게 자기 길을 갔습니다. 에디오피아는 내시 때문에 영적 부흥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지금도 에디오피아를 위시한 아프리카에는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의미 있는 만남, 열매 맺는 만남이 되었습니다. 빌립은 에디오피아에 국빈 방문차 다녀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복음화는 내시에게 맡기고, 여러 성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서 머무르며 사역을 섬겼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배웁니다. 성령 충만한 것도 중요 하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함을 배웁니다. 성령께서 빌립처럼 우리도 인도하실까요?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부모의 보호와 부모의 손길이 절대적이듯이 성령의 보호하심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베스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나의 생각과 뜻을 부인하고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 뜻대로 따르겠습니다.’라는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며 주께서 가라 하면 가고 말하라 하면 말하는 자가 되어야하겠습니다. 또한 1대 1 성경공부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에디오피아 내시 한 사람을 돕는 것이 이 시점에서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교회를 지원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이 한 사람 간다게 여왕의 내시를 진심으로 돌보았을 때 에티오피아 아프리카에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한 사람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누구를 만나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만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인지,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준비된 1대1 성경 선생이 얼마나 필요한 것입니까? 우리는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말씀을 가르쳐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성경 선생이 되어야 하죠. 토요미팅에 학생 동역자들이 창세기 그룹 바이블 스터디를 통해서 창세기 노트를 만들고자 한다는 소식을 듣고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이분들이 준비된 일대일 성경 선생, 제 2의 빌립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빌립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빌립은 복음 전도자요 준비된 성경 선생이었습니다. 성령이 가라 하면 가고 전하라 하면 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늦은 나이에 이 부족한 자를 말씀 전하는 자로 쓰시는가? 처음에는 의아 했습니다. 저는 신앙 서적 읽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그동안 책을 조금 읽었습니다. 이것이 말씀 전하는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께서 가라 하면 가고 전하라 하면 전하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오늘날은 복음의 야성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핍박도 없지만 복음 전파의 열정도 없는 시대죠. 빌립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에 빌립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빌립이 되게 하소서. 세상에 나아가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한 사람을 말씀으로 깊이 있게 섬기게 하소서. 기도하고 도전하는 종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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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270
2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254
2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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