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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5-14 (일) 10:59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0강-1.hwp (92KB) (Down: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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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2023년 사도행전 10강                                                        최동진

일어나 잡아먹어라
말씀 / 사도행전 9:32-11:18
요절 / 사도행전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복음이 유대 지역을 넘어서 전 세계로 뻗어나갈 시기에 하나님은 세계선교를 위해서 두 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교회를 잔멸하고자 날뛰던 사울을 사로잡아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둘째는 이방인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셔서 두 사람이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베드로와 유대인 신자들이 복음을 영접한 이방인들을 교회의 지체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세계선교를 가로막는 유다이즘의 장벽이 깨지고 본격적인 세계선교의 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유대 지역을 넘어 이방인 선교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우리도 만민구속역사 가운데 쓰임 받는 종들로 변화되고 준비되기를 기도합니다.

I. 베드로에게 임한 환상(9:32-10:16)
  32,3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사울의 회심으로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자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방으로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격려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 갔다가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애니아’란 이름은 ‘칭찬을 받는 자’란 뜻입니다. 그는 이름처럼 칭찬받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풍병에 걸려서 8년 동안 침상에 누워있었습니다.(34) 베드로는 예수의 이름 권세로 애니아를 치료해주었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르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룻다에서 약 20km 떨어진 욥바에 헬라식 이름으로는 도르가라고 불리는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여제자라고 기록된 사람은 다비다가 유일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처럼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열심을 가지고 따랐던 사람도 여제자라고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다비다에 대해서만 여제자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녀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늘 마음에 품고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어려운 많은 사람들을 위해 속옷과 겉옷을 지어주었고 많은 선행과 구제로 인해 사람들은 큰 힘과 위로를 받았습니다. 다비다는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3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병들어 죽으매 시체를 씻어 다락에 누이니라”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사람들은 매우 슬퍼하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아무리 슬퍼도 장사를 지내는 게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죽은 다비다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어찌하든지 그녀가 다시 살아나기를 간절히 바랬습니다. 베드로가 룻다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두 사람을 보내어 지체 없이 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베드로가 욥바에 이르러 다락방에 올라가니 모든 과부가 베드로 곁에 서서 슬피 울면서 다비다가 생전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보여주며 자신들에게 행한 선행과 구제를 말해주었습니다. 베드로는 슬피 우는 사람들을 다 내보낸 후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그 후에 돌이켜 시체를 행하여 외쳤습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 그러자 죽었던 다비다가 눈을 뜨고 일어나 앉았습니다. 베드로가 애니아를 일어나 걷게 한 것이나 죽은 다비다를 다시 살린 것은 자신의 능력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 안에 거하시는 예수님의 영, 곧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것이었습니다. 애니야를 일어나 걷게 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라고 말했고 죽은 다비다를 살릴 때에는 먼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2절은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의지하여 도전하는 자들을 통해 그 권능과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우리도 캠퍼스를 사방으로 두루 다니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양들을 돌아보고 일으켜 세우는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의 이름 권세를 의지하여 생명을 살리는 역사에 쓰임 받는 종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43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무니라” 무두장이는 죽은 짐승의 가죽을 가공하는 사람입니다. 무두장이는 조선시대 백정처럼 사회적으로 멸시를 당했습니다. 무두장이는 죽은 짐승을 손으로 만졌기 때문에 부정하다고 여겨져 성읍에서 격리되어 살아야 했습니다. 이런 무두장이의 집에 베드로가 여러 날 묵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유대인들이 혐오하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 수 있었던 것입니까? 그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신 예수님을 보고 배웠습니다. 예수님은 창기와 세리 같은 죄인들도 멸시하지 않으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자는 누구든지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제자로까지 받아주셨습니다. 베드로도 이런 예수님을 통해 어떤 죄인도 영접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관심과 사역의 범위는 여전히 유대 지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세계적인 복음의 일군으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그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유다이즘이 깨져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베드로를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10장 1절을 보십시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가이사랴는 욥바에서 북쪽으로 53km 떨어진 항구도시로서 극장, 원형경기장, 수로, 황제 예배의 대신전 등을 갖춘 전형적인 헬레니즘 도시였습니다. 헤롯대왕은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를 기념하여 그곳 이름을 가이사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그곳에는 유대지역을 통치하는 총독의 관저도 있었고 로마 소속 군대와 많은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이곳 가이사랴에 주둔하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은 100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지휘관입니다. 당시 백부장에게는 오늘날의 중대장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큰 권세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무자비하고 강포하여 식민지 백성들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습니다. 하지만 고넬료는 달랐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식민지 백성을 사랑하여 구제를 많이 하였습니다. 또 그는 항상 기도하는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22절에서 그의 하인들은 베드로에게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식탁에 함께 앉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 28절에 보면 베드로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고넬료를 이방인이라는 이유로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는 함께 할 수 없는 큰 장벽이 있었습니다. 이는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는데 큰 걸림돌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을 제거하고자 하셨습니다. 3-6절을 보십시오.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이르되 고넬료야 하니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이르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이르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 고넬료는 할례 받지 않은 이방인이었지만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제 구 시(오후3시)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환상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놀라운 소식을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와 구제를 받으시고 그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욥바에 사람을 보내어 성경선생인 시몬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말하던 천사가 떠나자 고넬료는 즉시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베드로가 있는 욥바로 보냈습니다. 이튿날 그들이 욥바 성에 가까이 갔을 때에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때는 제 6시 즉 정오였습니다. 식사 시간이 다 되어 주방에서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냄새가 배고픈 베드로의 후각을 자극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비몽사몽간에 자꾸 먹을 것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그러다가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환상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보자기를 풀고 보자 그 안에는 구약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한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가득 들어있었습니다. 돼지, 쪽제비, 쥐, 도마뱀, 부엉이, 박쥐, 까마귀와 같은 것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섬뜩했을 것입니다. 이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으라 하거늘” 베드로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14) 베드로는 지금까지 절대로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세상 만민 중에 구별하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택하셨습니다. 레위기의 주제는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하셨습니다(레11:45,46). 거룩한 삶이란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방인들과는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음식, 의식, 풍습, 종교적인 행위까지 모든 삶에 있어서 이방인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레위기11장에는 어떤 음식을 먹을 수 있는지 또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한 짐승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부터 예수님 때까지 1500년 동안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도 이방 신전에 바쳐진 음식은 부정하게 여겨서 먹지 않았습니다. 이방인들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부정한 것으로 규정하여 금지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선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 처음부터 이방 신전에 바쳐진 음식을 절대로 먹지 않고자 결심하고 선민으로서 정체성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세상 만민 중에 구별하사 거룩한 백성이요 제사장 나라로 택하신 이유는 그들을 통해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 만민을 품고 기도해 주고 말씀을 가르치며 겸손히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선민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에 교만해져서 배타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유대인만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드로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유대의 전통과 율법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이 부정하게 여기는 무두장이의 집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율법대로 살도록 교육을 받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뼈 속 깊이 박혀있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두 번째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율법에 부정하다고 규정된 짐승들을 하나님께서는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5장 11절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율법에 부정하다고 규정된 짐승을 잡아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부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율법을 주신 예수님께서 음식법에 관한 율법을 새롭게 제정하시고 해석해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8장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도 음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먹어도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식이나 의복이나 풍습이나 외적인 행동을 구별한다고 해서 내면이 거룩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리새인들처럼 외식하게 만듭니다. 참된 거룩함은 외적인 구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회개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악됨을 깊이 인정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을 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심으로 이방인 선교의 걸림돌이 되는 유다이즘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려져갔습니다. 세 번이나 반복한 것은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를 그만큼 애타게 바라고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베드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도이며 능력있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유다이즘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유대인의 선민의식과 이방인들에 대한 편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복음이 유대를 넘어 온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장벽들은 모두 없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속되다고 생각하고 차별하면 안됩니다. 흑인들에 대한 백인들의 차별과 편견은 오랜 기간 지속되었습니다.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조차 흑인들을 함의 후손이라고 무시하고 배척했습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도 신분차별 때문에 천민들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차별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금산 지방의 가장 큰 부자였던 조덕삼과 그 집의 머슴 이자익의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줍니다. 1892년 미국 남장로교에서 파송된 데이트목사는 전주에 선교본부를 두고 사역을 했습니다. 조덕삼은 살기 좋은 자기 나라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가난한 조선 땅에서 헌신의 삶을 사는 데이트선교사의 삶에 은혜를 받고 자기 집 사랑채를 예배장소로 제공하였습니다. 이것이 금산교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조덕삼은 머슴 이자익과 같은 날 세례를 받고 함께 집사로 임명되었습니다. 교회가 성장하여 교인이 50명쯤 되었을 때 조덕삼과 이자익은 함께 장로 후보가 되었습니다. 당시 장로는 설교도 하고 교회를 이끌어가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덕삼이 장로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머슴 이자익이 가장 많은 표를 얻음으로 장로로 선출되었습니다. 이는 상전인 조덕삼이 머슴 이자익의 설교를 들어야 하고 이자익을 따르며 일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한국교회들 중에는 천민 출신이 장로로 선출되면 양반 신자들이 이탈하여 따로 교회를 설립하는 일들이 종종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하나님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자익을 장로로 인정했습니다. 조덕삼은 반년 후 2대 장로가 되었고 이자익이 신학교에 입학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자익을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하여 받들어 섬겼습니다. 이 일은 세계 교회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후에 이자익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3번씩이나 역임하면서 장로교의 개혁헌법의 기초를 놓은 입지전적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외모나 조건을 보지 않으십니다.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12:3b)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28:19) 명령하셨습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데에 방해가 되는 편견과 선입관과 모든 유다이즘적인 요소들을 회개하고 넓은 마음으로 누구든지 영접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베드로 (10:17-11:18)
  17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본 환상에 대해서 생각할 때에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이 유숙하고 있는 집에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았습니다. 성령께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는 시간에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셔서 그들을 영접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53 km나 되는 먼 길을 세 사람의 이방인과 일곱 명의 유대인이 한 무리가 되어서 걸어가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이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성령께서 기획하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루어진 역사였습니다. 24, 25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베드로가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로써 유대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의 역사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그는 선진국 백성이요, 지배국의 지도자이지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베드로를 하나님의 종으로 뜨겁게 영접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하나님의 종을 맞이하는 태도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라 하며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들은 서로 성령께서 어떻게 인도하셨는가를 이야기했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간 것 자체가 위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말씀하셨기 때문에 부름을 사양하지 않고 왔노라 말하였습니다. 유대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의 만남은 민족의 장벽, 신분의 장벽, 문화의 장벽, 율법의 장벽을 뛰어넘는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복음은 유대인과 헬라인, 할례자와 무할례자 사이에 있는 높은 담을 헐고 하나가 되게 합니다.
  고넬료는 자신이 베드로를 부른 경위에 대해 설명한 후 말하였습니다. 33b.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그는 복음에 대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들을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는 하나님과 복음에 대해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34,3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나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또 유대인의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하나님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유다이즘에 깊이 젖어 있던 베드로가 이를 깨달은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36-43절은 베드로가 모인 사람들에게 전한 메시지입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의 아름다운 생애를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후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에 두루 다니시며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착한 일을 하시고 마귀의 권세에 눌려 신음하는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미리 택하신 제자들에게 나타나사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가 증언한 바와 같이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은 자들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와 이방인들에게 전한 메시지의 내용은 이전에 유대인들에게 전했던 것과 동일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복음만이 온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44-4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자 오순절에 120명의 제자들에게 성령이 임했던 것처럼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똑같이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이방인의 오순절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베드로는 메시지를 전하면서도 이방인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실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심으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을 부인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즉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그들을 기독교 공동체의 지체로 받아들인다는 의미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장벽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세계선교를 이루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유다이즘이 제거됨으로 이제 복음은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이방세계를 향하여 힘차게 뻗어나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게 됩니다. 또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복음을 통해서만이 구원받는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모든 영혼들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이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함으로 캠퍼스 복음화와 세계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11:1-18 절에는 유대 크리스챤들이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성령의 역사를 영접하는 역사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은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할례자들이 베드로가 이방인과 교제한 것을 신랄하게 비난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감정적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그동안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행하신 일들을 차근차근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속되다 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함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말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그러자 그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18) 하며 믿음으로 소감발표 하였습니다. 이로써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들도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이 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함으로 본격적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글로벌 시대로서 전 세계가 지구촌이 되어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 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벽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지역간에 갈등, 이념 갈등, 직역간의 갈등, 문화의 갈등 등 복잡해지는 사회 구조 속에서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인정하는 것이 힘들고 갈등의 골은 더 깊어져가고 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받아온 영적인 복음정신과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세대 간의 갈등도 많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 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저에게도 예절과 도리를 따지는 뿌리 깊은 Koreanism이 저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나와 다른 족속의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입니다. 제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일어나 잡아먹어라’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 안에 있는 모든 편견과 선입관과 인간적인 생각,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극복하고 나와 다른 모습의 사람도 영접하고 섬김으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생명이 살아나는 구원 역사에 쓰임 받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큰 뜻을 두시고 세계 선교를 섬기는 종으로 쓰시고자 유다이즘을 깨도록,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명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000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시며 내 속에 있는 유다이즘을 극복하고 다양한 양들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이를 위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또한 기도 가운데 주의 뜻을 보이시는 성령의 역사를 섬길 수 있도록 기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현재 누구나 내가 가진 율법이나 고정된 생각, 자기만의 스타일로 다른 사람을 영접하기 힘든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우리가 양을 섬기는 목자가 되기 위해 자기를 비우고 주의 은혜와 주님의 마음으로 채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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