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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6-04 (일) 13:17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3강-1.hwp (86KB) (Down: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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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3강]환난과 하나님 나라
2023년 사도행전 제13강                                                              김반석
환난과 하나님 나라
말씀/ 사도행전 14:1-28
요절/ 사도행전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지난주에 배운 13장은 제1차 전도 여행의 전반부에 관한 말씀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먼저 구브로의 살라미와 바보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후 버가를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했는데, 박해를 받아 이고니온으로 갔습니다. 오늘 14장은 1차 전도 여행의 후반부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루스드라–더베에서 복음을 전한 후, 더베에서 유턴하여 오던 길을 따라 출발지인 안디옥 교회로 돌아와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그들은 전도 여행 기간 많은 박해와 고난을 받았지만, 낙심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헌신과 수고를 통해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역사를 이뤄주셨습니다. 이 시간 바울의 복음에 대한 열정과 도전하고 개척하는 믿음, 고난에 대한 가치관을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Ⅰ. 구원받을 만한 믿음(1~10)
 1절을 보십시오.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복음을 전했을 때, 수많은 유대인과 헬라인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순종하지 않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에게 악한 마음을 품게 하여 복음을 영접하지 못하도록 훼방하였습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복음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루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을 믿고 오랫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그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셔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은혜의 말씀임을 확증하여 주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고니온의 도시 사람들은 선동하는 유대인을 따르는 사람들과 두 사도를 따르는 사람들도 나뉘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거부하는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지도자들과 합세하여 두 사도를 모욕하고 돌로 쳐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사도들은 루가오니아 지방에 있는 루스드라와 더베와 그 근방으로 피해 갔습니다. 이는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직 하나님이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피하여 가면서도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루스드라는 이고니온에서 남쪽으로 3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로마 제국의 고참 직업 군인들과 그 가족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이며, 디모데의 고향입니다. 지금까지 두 사도는 이방 지역에 가면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이곳은 유대인이 소수였는지 회당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 한 사람이 바울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원문에는 ‘들었다’는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바울의 말을 한 번 듣고 끝나거나 건성으로 듣지 않고, 가난한 심령으로 초집중해서 계속해서 경청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씀을 듣는 이 사람의 자세를 주목하여 그에게 병 고침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명령했습니다.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그가 말씀을 경청하며 믿고 순종했을 때,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 자기 발로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말씀을 경청한 이 사람을 일어나 걷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과 말씀과의 관계에 대해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가진 사람의 내면에 역사하시고, 그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나온 사람들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그들의 믿음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에서 중풍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마9:2). 열두 해 동안 혈루증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시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마9:22) 또 두 맹인에게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물으시자, “예. 주님 우리가 믿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너희 믿음대로 되라”고 하시자 그들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마9:29)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금식하며,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믿음이 뚝 떨어질까요? 아닙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오래 한다고 자연스럽게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생깁니다. 로마서 10:17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본문의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처럼 가난한 마음으로 경청해야 합니다. 이때 영적인 깨달음이 있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뤄집니다. 하나님은 좋은 마음 밭이 되어 말씀을 경청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주목하여 보시고, 그 말씀대로 이뤄지는 은혜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런 자는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하게 됩니다.(마13:23) 그러나 똑같은 말씀을 들어도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의심하는 사람은 말씀대로 이뤄지는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난한 심령으로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하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Ⅱ.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11~18)
 루스드라 사람들은 선천성 하반신 장애인이 일어나 걷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놀라서 자신들도 모르게 모국어인 루가오니아 방언이 튀어나왔습니다.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그리고 바나바는 헬라 신화에서 모든 신들의 우두머리요 인간들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우스라 하고, 바울은 제우스의 아들이요 대변자로서 언어를 지배하는 신이라고 하는 헤르메스로 불렀습니다. 성 밖에 있는 제우스 신당의 제사장은 몇 마리의 황소와 화환들을 성문 앞에 가지고 와서 군중과 함께 사도들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처음에는 루스드라 사람들이 루가오니오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를 잡고, 제사상을 차리더니 두 사도 앞에 엎드려 절을 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두 사도는 놀라고 당황하여 다급한 심정으로 옷을 찢으며 군중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외쳤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런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함이라.” 여기서, ‘성정’이란 원어로 ‘동일한 본성’이란 뜻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이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 루스드라 사람들과 같은 인간적인 본성을 가진 사람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자신들을 신으로 알고 경배하는 것은 신성모독적인 행위이므로 당장 중단하라고 말렸습니다.
 사람에게는 인정과 칭찬받고 싶은 강한 욕구가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해도 이고니온에서는 돌에 맞아 죽을 뻔했는데, 여기서는 신으로 받들어 주니 얼마나 힘이 나겠습니까?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때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고, 섬김받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했습니다. 12장에서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람들이 자기를 가리켜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는 칭찬의 소리에 마치 자기가 신이라도 된 듯 착각하고 즐겼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칭찬에 교만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행12:21~23) 하지만 바울과 바나바는 자기 분수를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박해와 고난 등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을 때 교만해지는 마음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실패의 때보다 오히려 성공의 때입니다. 누가 나를 높이려 할 때 그것을 즐기려는 마음을 부인해야 합니다. 큰 업적과 열매를 남겼다고 할지라도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로만 돌려야 합니다. 영광이 나에게 오는 것을 즐기려는 마음은 나를 파멸로 이끄는 무서운 마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하나님처럼 의지하지도 말고, 나를 우상화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나무나 돌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도 복음 역사를 섬기면서 수고하고 헌신한 일에 대한 보상심리로 제사 받고 싶은 마음, 인정과 칭찬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부인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눅17:10절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말씀처럼, 무익한 종의 자세를 가지고 묵묵히 하나님 앞에서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람들의 모든 시선이 자신들에게 집중되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관해서 증언했습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여기서, ‘방임하셨다’는 것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일은 정죄되어야 마땅하지만, 하나님은 끈질긴 인내로 참아 오셨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하나님은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지금도 자연 현상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심으로써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자연 계시를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증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렇게 말하여 겨우 군중들을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8) 루스드라 사람들의 영적 상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헛된 일을 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섬기거나 사람이 필요에 따라 만든 신들을 섬깁니다. 첨단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한 이 시대에도 여전히 돼지머리에 절을 하며 복을 빌고, 점괘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깁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한 이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전해서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의 주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Ⅲ.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19~28)
 19절을 보십시오. 두 사도가 큰 유혹을 극복하였는데, 이번에는 큰 환난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를 죽이려다가 실패했던 유대인들이 이곳까지 찾아와 다시 군중들을 충동했습니다. 그러자 군중들이 돌변하여 돌로 바울을 쳤고, 그들은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끌어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까? 20, 21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둘러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그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은 바울의 주변에 둘러서서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를 치르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났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활의 주님께서 죽은 자와 같던 바울에게 부활의 생명을 공급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바울이 일어나자마자 옷을 툭툭 털더니 자신을 돌로 쳤던 그 성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돌에 맞더니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더 맞아야 정신을 차리려나?” 하며 말렸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혀 빨리 도망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피투성이가 되고, 돌에 맞아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왜 다시 그 성으로 들어갔을까요? 그 성에는 아직 말씀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영적 무지와 우상숭배로 죽어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는 돌이 무서워 뒤로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과 믿음으로 일어나 도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에게 믿음과 용기와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혀 주시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바울은 이튿날 상한 몸을 이끌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그 성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았습니다.

 그 후에 두 사도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되돌아갔습니다. 다시 말하면 더베에서 유턴하여 오던 길로 되돌아가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사실 더베에서 동쪽으로 200km 정도 가면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있습니다. 그동안 큰 역사를 이루었으니 고향으로 가서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친 심신을 회복한 후에 출발지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턴하여 다시 간다는 것은 거리상으로나 신변의 안전상 정말 위험천만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자신들을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로 득실거렸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코스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군대에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전역할 때 근무했던 부대쪽을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바나바는 왜 이처럼 어리석고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했을까요? 22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첫째, 제자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바울이 당한 고난을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돌에 맞아 쓰러져 피 흘리는 모습을 볼 때 큰 슬픔과 두려움으로 신앙생활에 대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생각을 하기 쉬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나도 박해받고, 돌에 맞아 죽으면 어떡하지?”, “하나님은 왜 성도들을 보호해 주지 않으시지?” 바울은 이런 연약한 제자들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후 제자들도 박해받게 될 것입니다. 이때 구원자이신 예수님 안에 거하면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고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의 최종 목적지를 몰라 방황합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자기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히9:27)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예외 없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자기가 행한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게 됩니다.(고후5:10)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주님과 함께 영생하지만, 믿지 않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계21:8) 우리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이 땅에서 겪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22b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환난을 겪어야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까지 많은 환난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비판하고 따돌리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주와 복음 역사를 대적하고 훼방합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당할 때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요일3:13) 오히려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환난을 통해 인내의 열매를 맺고, 믿음과 인격이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롬5:3,4)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환난을 겪었습니다. 제1차 전도 여행의 이동 거리는 2,200km 이상입니다. 50대의 나이에 2년여 동안 그것도 주로 도보로 이동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여러 번의 전도 여행 중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겪어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고후1:8,9) 옥에 갇히고, 매도 수없이 맞았는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이나 맞았으며, 세 번 파선하고, 각종 위험으로 여러 번 죽을 뻔했습니다.(고후11:23~27) 그런데도 바울이 환난을 피하지 않은 것은 부활의 소망,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어떤 환난 가운데서도 낙심치 않았습니다. 그는 로마서 8:18절에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에게는 고난에 대한 분명한 철학이 있었습니다. 그는 고난이 무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을 순수하게 하고, 강하게 하며, 한 차원 더 높은 믿음의 세계로 이끌어주는 촉진제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환난의 때에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거나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난을 감당하였습니다. 본래 ‘환난’은 헬라어로 ‘뜰립시스(thlipsis)’라고 하는데, '곡식에서 알곡을 얻기 위해 겨를 분리하는 고대의 탈곡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곳간에 들어가려면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마3:12) 알곡이 되려면 ‘환난’이라는 영적인 탈곡기를 거쳐야 합니다. 곡식이 탈곡기를 거치지 않으면 결코 알곡을 얻어낼 수 없듯이 신앙생활도 환난이라는 시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결코 순수한 믿음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가능하면 고난 없이 평탄하게 신앙 생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면 별 상급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주님을 뵐 면목이 없습니다. 고통(고난) 총량의 법칙이라고 들어보셨죠? 우리가 일생 받는 고통의 총량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차피 받아야 할 고난을 건강하고 젊을 때 적극적으로 받는 게 좋지 않을까요? 젊을 때 고난을 받기 싫어서 “고난이여 가라!”하고 회피하면 그때는 편할지 모르지만, 나이 들어서 연약할 때 남은 고난을 몰아서 받게 되어 훨씬 더 힘이 듭니다. 우리가 이왕 신앙생활 할 바에는 사도 바울처럼 부활 신앙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적극적인 자세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세상과 양다리 걸치며 적당히 신앙 생활하고자 할 때는 고난이나 핍박이 별로 없지만, 절대적인 믿음으로 진리의 말씀을 좇아 살고자 하면 반드시 크고 작은 고난을 받게 됩니다. 이런 외적인 고난뿐만 아니라 주님을 섬기기 때문에 받는 모든 희생, 손해, 심적 고통도 감당해야 합니다. 자녀 양육하며 직장 생활하는 고난, 전도할 때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며 무시당하는 고난도 따릅니다. 이때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때 어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의 중심을 지킬 수 있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고난은 변장하고 찾아오는 축복의 통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의 의미를 알고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길 때 받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며 바울의 복음 전파에 대한 열정과 믿음의 용기, 고난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인생의 반환점을 돌며 나름대로 수고하고 헌신했다는 생각으로 이제 좀 쉬엄쉬엄하고자 했던 자세를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인생 요절인 행20:24절,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말씀에 기초하여 다시금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사명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는 데 동반되는 고난을 기쁨으로 감당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생명을 낳고 키우는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역사에 쓰임 받는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23~28절을 보십시오. 바울과 바나바는 교회를 조직하고 견고하게 하고자 각 교회에 장로들을 세우고, 금식 기도하며 그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주님께 부탁하였습니다.(23) 그 후 버가에서 말씀을 전한 후 파송되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을 모아 선교 보고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들은 선교 여행 기간 놀라운 구원 역사를 이뤘지만,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행하신 일들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두 사도는 여기서 1년 정도의 안식년을 가지며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여 하나님의 일꾼들이 되게 했습니다.

 결론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 기간 중 많은 환난을 겪었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 가운데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때 많은 이방인이 구원받고 세계 선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와 복음 역사를 섬기면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됩니다. 이때 고난 없이 적당히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부인하고, “고난이여 오라!”고 외치며, 기꺼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연단된 믿음의 종으로 빚어져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고, 장차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받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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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367
34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352
33 누가복음 [2023년 누가복음 제38강]아버지의 원대로 관리자 2023-01-15 343
32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330
3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5강]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23-06-18 329
3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303
2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298
2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295
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관리자 2023-05-21 283
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관리자 2023-05-14 276
25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273
24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270
2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255
2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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