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6-25 (일) 14:49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6강-1.hwp (78KB) (Down:51)
ㆍ추천: 0  ㆍ조회: 255      
IP: 211.xxx.102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                                                        한아브라함

        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말씀: 사도행전 17장 1-34절
요절: 사도행전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오늘 말씀 사도행전 17장은 바울의 2차전도 여행 중에 마케도니아의 수도인 데살로니가, 베뢰아, 그리고 아가야 지역의 아덴을 개척하는 내용입니다. 각 지역마다 말씀을 듣는 자세도 달랐고, 말씀을 들은 후 의 반응도 달랐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영적 소원이 있었고 말씀에 대한 자세가 좋았습니다. 아덴 사람들은 똑똑 했지만 베뢰아와 반대로 영적 소원이 없었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딱 그 중간이었죠. 우리도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을 받아들임으로 상고함으로 성장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아덴 사람들같이 캠퍼스 양들 같이 까다로운 사람들을 어떻게 도와야할지 배우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그들’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저자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디모데는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이르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빌립보에서 160km 떨어진 거리였고, 마케도니아의 수도로서 정치, 무역, 교통의 중심지였습니다. 데살로니가는 빌립보와 달리 유대인 회당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관례대로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3주 동안 성경을 강론했습니다. 강론했다는 것은 질문하고 답변하는, 즉 대화와 토론 방식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증거 했습니다. 간증을 말 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을 바로 증거 했죠. 바울은 자기 고향 다소에서 있으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부활이 구약 성경에서 어떻게 계시 되었는가 연구하고 창세기 3장 15절부터 시작해서 시편, 예언서 등 성경적 근거를 찾았습니다. 그의 증거는 힘이 있었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나름 큰 역사가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의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이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랐습니다. 구약 성경을 전혀 접해 보지 못함으로 복음을 잘 믿을 것 같지 않던 헬라인과 귀부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반면에 구약성경을 잘 앎으로 잘 믿을 것 같던 유대인들이 시기와 분노가 가득 하여 바울을 대적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을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마음 밭이 딱딱하여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성경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말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고 은혜 받고 변화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곳으로 임합니다. 겸손한 심령에 깨달음의 은총이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확신 있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1장 5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말씀 전하는 자가 확신 있게 전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물건 파는 사람도 확신 있게 물건을 소개할 때 물건이 잘 팔립니다. 캠퍼스에서 복음 전하는 우리도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을 가지고 전할 때 양들이 귀를 기울이고,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변화될 것입니다.
  6-9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을 잡지 못하자 바울을 머물게 한 야손과 형제들을 잡아 읍장에게 끌고 갔습니다. 야손을 범인 은닉죄로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가이사의 명령을 거역하여 다른 임금 예수를 전하는 반역자라고 고소하였습니다. 그들의 고소는 엉터리였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가이사 로마 황제의 질서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세금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을 떼어 먹으라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세상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세상 질서를 초월하여 세상을 정화시킵니다. 무리와 읍장들은 이들의 고소를 숙고해 보았지만 바울 일행이 죄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야손과 형제들을 보석금만 받고 풀어 주었습니다. 야손은 예수 믿고 물질적인 손해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야손과 그의 형제들은 풀려나자마자 바울과 실라를 밤중에 급히 베뢰아로 피신시킵니다. 베뢰아는 데살로니가 남서쪽으로 80km 떨어진 곳입니다. 빠르게 이동했다면 3일 정도 걸렸을 것입니다. 바울은 핍박으로 데살로니가를 도망쳐 나왔지만, 새로 가게 된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회당으로 들어갔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데살로니가가 도시라면 뵈레아는 시골이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사람들답게 마음 밭이 순수하고 좋았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았습니다. 너그럽다는 말은 마음이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마음 밭이 좋았습니다.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들은 말씀이 그러한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습니다. 상고했다는 것은 깊이 묵상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생각을 하며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이 과연 진리인가? 스스로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이를 확인하였습니다. 학자적인 자세가 있었죠. 말씀을 전하는 자도 중요하지만 말씀을 듣는 자의 자세가 중요함을 배웁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받아들이는 자의 자세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말씀을 대하는 좋지 않은 두 가지 자세가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을 형식적으로 접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오래 하면 타성에 젖기 쉽습니다. 말씀을 다 안다 생각하고 형식적으로 대하기 쉽죠. 둘째는,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고 예배 때 설교를 듣습니다. 그런데 부담스러운 말씀은 패스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받아들입니다. 그러면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뢰아 사람들은 부담스러운 말씀이라도 말씀이 정말 그러한가? 묵상하고 또 묵상하고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는 매주 귀한 말씀을 배웁니다. 소감을 쓰면서 깊이 묵상하고 자기에게 적용하면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부흥하게 됩니다. 백 배 결실을 하게 되죠.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뜻이 무엇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가슴에 새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 금상첨화, 말씀이 골수에 새겨집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복음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도 적지 않게 믿었습니다. 13, 14 절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시기심이 가득하여 베뢰아로 내려옵니다.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했습니다. 자기들은 앞에 나서지 않고 무리를 충동질 했습니다. 마귀적이죠. 그러자 형제들이 바울만 먼저 배로 아덴으로 피신시켰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베뢰아에 좀 더 머물렀다면 더 큰 역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핍박을 피해 배를 타고 아덴으로 피신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인도해주는 사람들에게 실라와 디모데를 아덴으로 속히 오도록 부탁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 역사는 혼자서 하는 역사가 아니라 합심동역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바울이 훌륭하지만 동역자들과 합심 동역할 때 더욱 힘 있게 은혜의 역사를 섬길 수 있었습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아덴으로 피신 온 것은 계획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핍박을 피해 급히 피신한 것이죠. 실라와 디모데를 만날 때까지 잠시 그곳에 머물고자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필 헬레니즘의 심장부로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아덴은 로마와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세계 3대 도시 중 하나였고, 철학과 문학과 예술의 중심지였습니다. 세계 문명의 발상지였죠. 바울은 조용히 쉬면서 동역자들을 기다려도 됐습니다. 그러나 잠시 쉴 틈도 없이 그 성을 돌아보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 한 것을 보았습니다.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전에 제가 아테네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볼거리가 참으로 많았습니다. 아테네는 휘황찬란한 문명을 이룬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관광객들처럼 볼거리에 감탄하지 않고 왜 분노했을까요? 이 도시 전체가 사단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에 분노한 것입니다. 아덴은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서 헬라인에게 아덴은 최고의 지성과 문화를 꽃피운 자랑스러운 곳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고향,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의 활동 무대였죠. 아덴에는 온 성에 우상이 가득 했습니다. 그곳의 시민들의 수보다 우상의 수가 더 많았죠. 바울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는 그곳에 우상이 가득 한 것을 보자 마음이 격분했습니다. 영적인 분노를 한 것이죠. 요즘은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신경질 부리는 사람은 많지만, 영적으로 분노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진리의 기초위에 사는 사람만이 영적인 분노를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분하여 견딜 수가 없어서 회당과 시장에서 날마다 강론했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아덴에는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로스학파와 금욕주의자들인 스토아학파가 있었습니다. 에피쿠로스학파는 사람이 죽으면 그 뿐이다 몸과 영이 모두 분해되어 원자로 돌아간다고 여겼기에 부활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스토아학파는 죽음은 저급한 몸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최상의 자유에 도달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또한 몸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유물론적인 사상은 헬라철학에서 유래한 것이죠. 바울은 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했습니다. 바울은 이 두 학파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효과적인 쟁론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바울이 전한 십자가 부활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고 말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바울이 전한 말씀을 더 듣고 싶어서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갑니다.(19,20) 언덕 위에 있는 평편한 바위 광장으로 공개 강연이나 재판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공적인 자리에서 많은 아덴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자 했던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진리에 대해 논하지만 논쟁을 즐기는 것이지, 진리를 받아들이거나 진리를 좇을 마음은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배울 때 진리를 받아들이고 따르고자 해야지 새로운 것을 아는 것에 만족하고 이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22,2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유명한 아레오바고에서의 설교를 합니다. 바울이 했던 다른 설교와 다른 점은 삼라만상에 깃들인 하나님의 창조 발자취를 증거합니다. 일단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너희가 범사에 종교성이 많구나.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새긴 단도 보았는데, 너희가 지금까지 몰랐던 참 하나님을 내가 너희에게 밝히 알려 주겠다 라고 시작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들에 맞게 말씀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24, 25절 보십시오. 바울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너희가 그토록 찾고자 했었던 참 신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와 천지 만물을 지으신 분이요, 천지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는 거하지 않으시고 무엇이 부족해서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자기들 손안에 두지만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주시요 구원자시요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요 나의 사랑과 진심과 경배를 받으실 분이십니다.
  26, 27절 보십시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즉 하나님은 모든 족속을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만드셨습니다.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은 온 땅에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고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즉 각 민족이 함께 어울리며 조화로운 삶을 살도록 기간과 국경을 정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나라의 흥망성쇠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목적은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아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면밀히 분석해 보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가 살아 있음을 발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와 함께 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믿는 자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십니다. 28, 29절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멀리 떠나 계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힘입어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상이나 이념은 망하는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부하는 공산주의는 망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는 어떠한 종교도 망하는 길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즉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헬라의 시인 아라투스는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의 시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시대에는 하나님이 그들의 죄를 간과하셨습니다. 즉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구원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부활의 수많은 증거를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더 이상 핑계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모두 다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을 회개해야 합니다. 만일 회개치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심판하실 날이 마지막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을 피할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믿읍시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합시다. 부활의 수많은 증거는 이미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우리도 장차 부활의 주님을 따라 부활하게 됩니다.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믿고 전파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2절을 보십시오. 그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부활의 복음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을 했습니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느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또 어떤 사람은 부활의 말씀을 다시 듣겠다며 호기심을 표시했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덴을 떠났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덴에서의 사역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지만 아덴에서는 교회가 세워 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패는 아니었습니다. 우상이 가득 하고 잡다한 철학으로 무장한 아덴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십자가와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니시오와 다마리라는 여자였습니다. 아덴에서의 부진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아덴 사람들의 마음 밭이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덴은 철옹성 같이 선교가 불가능해 보입니다. 사도 바울 같은 종이 고전을 했으니까요. 아덴은 캠퍼스 선교와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대학생들은 주관이 뚜렷하고 겉보기에 똑똑하고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 학문이나 세상 지식을 많이 아는 것이지 정작 중요한 구원에 관한 지식은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평신도 목자 수양회에서 특강강사인 지원근 목회 데이터 연구소 소장은 청년들의 관심은 오로지 돈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불확실한 장래 돈을 벌기 원하지만 벌기 힘든 환경 가운데서 절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예수님이 필요하고 복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것, 회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캠퍼스영혼 한사람에게 마음을 터놓고 의지할 수 있는 이웃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확신있게 열정적으로 전할 때 캠퍼스에도 구원 역사가 흥왕이 일어날 것입니다. 여름바이블 캠프에서 회개의 역사 구원의 역사 성령의 역사가 충만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최근에 여름수양회 말씀 준비하랴 주일 메시지 준비하랴 많이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많은 것 같아 부담스러웠지만 말씀을 준비하다보니 제가 먼저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제가 베뢰아 사람처럼 말씀을 받고 아덴사람처럼 예수님을 모르고 복음진리를 모르는 캠퍼스 영혼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자 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유대인과 경건한 헬라인에게 메시지를 전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증거 했습니다. 성경과 여호와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들에게는 창세기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항상 메시지의 결론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우리도 베뢰아 사람처럼 영적소원을 갖고 좋은 마음 밭을 갖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익혀 바울과 같이 빼어난 성경 선생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덴 사람들같이 까다로운 캠퍼스 양들에게는 포기치 않는 믿음으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합시다. 회개의 복음을 전합시다. 한 사람의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이 됩시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4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8강]전도자 빌립 관리자 2023-04-30 428
4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4강]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관리자 2023-03-19 428
3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9강]택한 나의 그릇이라 관리자 2023-05-07 405
3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강]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관리자 2023-02-26 398
3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3강]환난과 하나님 나라 관리자 2023-06-04 391
3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6강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말하라 관리자 2023-04-02 387
35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5강]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관리자 2023-03-26 367
34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2강(학사)]홀연히 다 변화되리라 관리자 2023-04-16 351
33 누가복음 [2023년 누가복음 제38강]아버지의 원대로 관리자 2023-01-15 343
32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말씀 제1강(학생팀)]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330
3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5강]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관리자 2023-06-18 329
30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9강]바울의 밀레도 고별 메시지 관리자 2023-07-16 303
29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298
28 고린도전서 [2023년 부활절 제 1강]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관리자 2023-04-09 295
2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1강] 안디옥 교회 관리자 2023-05-21 283
2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0강]일어나 잡아먹어라 관리자 2023-05-14 276
25 요한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특강]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관리자 2023-07-30 273
24 누가복음 [2023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말씀대로 살아나신 예수님 관리자 2023-07-23 270
2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255
2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253
1,,,414243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