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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07-02 (일) 10:50
분 류 사도행전
첨부#1 2023년_사도행전_제17강-1.hwp (88KB) (Down: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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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도행전 제17강]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2023년 사도행전 제17강                                                       최동진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말씀 / 사도행전 18:1-23
요절 / 사도행전 18:9 “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

  오늘 말씀은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아가야의 수도인 고린도 개척에 관한 말씀입니다. 아덴이 학문과 예술의 도시라면 고린도는 상업과 향락의 도시였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앙시장이 있어서 물자가 풍부하고 부유했습니다. 당시 이곳에는 일반 시민 30만명, 노예 46만 명 등 76만명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거대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사랑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고 그곳에는 매춘부들이 천명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고린도는 성적으로 부도덕하기로 유명하여 ‘고린도와 같다(Corinthianize)’라는 말은 ‘성적인 부정을 저지르다’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곳에서 영적 부흥을 기대한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린도를 세계선교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생각했습니다. 무역이 활발한 고린도를 개척하면 이곳을 통해서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다는 비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1년 반 동안 머물면서 힘써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이 고린도 개척 역사를 성공적으로 이룰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배우기를 기도합니다.

I.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복음을 전하는 바울 (1-8)
  1,2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덴에서 떠나 홀로 고린도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로마에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났습니다. 당시 로마에는 유대인들과 복음을 영접한 유대인 크리스찬들 사이에 다툼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로마 도시가 소란스러워지자 A.D.45년 글라우디오황제는 유대인들 모두를 로마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이때 약 3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로마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습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도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와서 살다가 바울을 만났습니다. 신약성경에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이름이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행18:2,18,19,26; 롬16:3; 고전16:19; 딤후4:19) 이는 그들이 복음 역사에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이었는가를 말해줍니다. 이들 두 사람의 이름은 항상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복음역사를 섬김에 있어서 늘 동행하면서 아름다운 동역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또 두 사람은 당시 바울과 견줄만한 실력있는 성경선생이었던 아볼로를 데려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풀어서 가르쳐줄 정도로 실력 있는 평신도 성경선생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복음 역사에 헌신된 사람들로서 바울을 만난 후부터 동역의 그릇을 이루어 바울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바울은 이들 부부로 인해 큰 힘과 위로를 덧입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16:3,4)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통해 이상적인 가정교회의 모습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에도 이들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들이 계속해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생업이 같으므로 함께 살며 일을 하니 그 생업은 천막을 만드는 것이더라” 이들 부부는 바울과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천막을 만들며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부터 유대 랍비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일 이외에도 물질자립을 위해 한 가지 기술을 습득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전통 속에서 염소 털로 짠 옷감을 자르고 꿰매 천막을 만드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바울은 평일에는 틈틈이 천막을 만들어 팔아 물질자립하면서 복음 역사를 섬겼고 안식일에는 회당에 나가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며 전적으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강론(reason)은 영적으로 무지한 자를 깨우치는 일이고 권면(persuade)은 개인적으로 영접하고 믿음을 갖도록 설득하며 돕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온전한 믿음을 심기 위해서는 강론과 권면을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내면의 죄와 씨름해야 하고 여기에는 깊은 영적 사랑과 인내와 수고가 필요합니다. 바울의 삶은 자비량선교의 이상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살전2:9) 우리 모임은 이미 일찍부터 전문인 자비량 선교사들을 통한 세계선교역사를 이루어왔습니다. 현재 세계 90개국에 15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2041년까지 10만 선교사 파송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는 교회의 물질적 부담도 덜어주고 선교가 금지된 국가에서도 은밀히 사역할 수 있어 오늘날 가장 적합한 선교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임 가운데 많은 자비량 선교사들을 세워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세계 선교의 주역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자비량 평신도로서 사도바울과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를 잘 배워서 직장과 학교에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동시에 빼어난 성경선생이요 양들을 먹이는 목자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캠퍼스 사명에 충성하며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에서 내려왔습니다. 실라와 디모데가 오기 전 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함으로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라는 빌립보에서, 디모데는 데살로니가에서 와서 빌립보와 데살로니가의 형제들이 환난 가운데 믿음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특히 실라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마련한 헌금을 가지고 왔고 이 헌금은 고린도 선교에 매우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빌4:15) 이때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혔다’는 것은 주의 말씀을 전파하는 데에 온전히 헌신했다는 의미입니다.(Paul devoted himself exclusively to preaching, NIV)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1,2)” 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담대히 증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고린도의 물질주의, 육신주의와 하나님을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거짓된 이론들, 모든 생각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되었습니다.(고후10:5) 우리는 사도 바울을 통해 복음을 맡은 자가 어떤 자세로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지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양들이 옛날과 달리 너무 영적 소원이 없다며 양 탓, 시대 탓을 하며 복음 역사가 힘들다고 한탄하며 좋은 시대, 좋은 양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복음을 전해야 할 성경선생들이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과 믿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히기보다 유튜브에 사로잡혀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저는 결혼 초기부터 영적 생활에 방해가 되는 TV를 없애고 지금까지 집에 TV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한 때는 틈만 나면 성경다독과 성경필사를 하면서 말씀에 붙잡힌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손에 늘 핸드폰을 들고 다니면서 틈만 나면 인터넷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TV를 없앤 것이 무색해졌습니다. 그러나 신명기17장 18,19절은 말합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거든 이 율법서의 등사본을 레위 사람 제사장 앞에서 책에 기록하여 평생에 자기 옆에 두고 읽어 그의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이 율법의 모든 말과 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라” 우리는 이 시대 왕같은 제사장으로 부르심 받은 자들로서 늘 성경을 옆에 두고 읽으며 말씀에 붙잡힌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을 회복하고 말씀에 붙잡혀 말씀연구와 말씀 전파하는 일에 온힘과 믿음을 드리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힘써 전파했을 때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그들이 복음을 영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강론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대적하여 비방했습니다.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이는 바울이 에스겔서 말씀을 인용하여 새 언약의 파수꾼으로서 자신의 사명을 다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유대인들에게 있다는 선언입니다.(겔3:16-21; 33:2-4) 우리는 바울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안 받아들이고 반발하는 양들을 보면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말씀에 은혜 받고 옷을 털면서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하면 안됩니다.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인내하며 중보기도하며 섬겨야 하겠습니다. 동족들이 끝까지 복음을 영접하지 않자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는 회당 옆에 있는 디도 유스도라 하는 사람의 집으로 옮겼습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집을 센타로 삼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회당에서 말씀을 듣던 회당장 그리스보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온 집안과 더불어 주를 믿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수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덩달아 복음을 영접하고 세례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친히 이루신 역사입니다. 말씀에는 죄를 깨닫게 하고 어떤 죄인도 구원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무리 우상숭배와 향락문화가 만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고린도라 할지라도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전파될 때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고린도와 같은 곳일수록 더욱 강력한 복음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리시며 고통하시는 예수님의 고통이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게 복음을 전할 때 말씀이 역사하여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회개하고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여름 수양회 가운데 십자가의 복음이 강력하게 역사함으로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변화되는 생명 구원의 역사가 넘치도록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II.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9-23)
  9절을 보십시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유대인들의 계속적인 대적과 비방으로 인해 바울의 마음에 두려움이 들어온 것 같습니다. 1차 전도여행 중 바울은 루스드라에서는 유대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오히려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믿음을 심으며 불사조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행15:22) 그런데 지금의 바울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3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말하였습니다. 무엇이 바울을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까? 바울의 내면에 어떤 두려움이 생긴 것입니까? 바울이 볼 때 고린도에는 자기편은 없고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해롭게 하는 대적들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10). 복음의 원수들로 가득 찬 이런 곳에서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아무도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런 곳에 교회를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특히 회당장 그리스보의 회심은 유대사회에 큰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17절에서 그리스보를 이어 회당장이 된 소스데네도 후에 바울을 따르게 됩니다(고전1:1) 회당장들이 중심을 지키지 못하고 연달아서 기독교로 개종하자 유대인들은 바울을 더 이상 그냥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박해는 더욱 거세졌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돌에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잘 견뎌왔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힘들게 복음역사를 섬겨야 하나 생각하니 복음 사역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맘고생 하며 시간낭비하기보다 일찌감치 신발에 먼지를 떨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어떤 방향을 주셨습니까? 9절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Do not be afraid; 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첫째, 두려워하지 말라(Do not be afraid)
  바울은 처처에 도사리고 있는 어려움들로 인해 늘 위협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어려운 상황 가운데에서 느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음전파자들에게 생기는 두려움은 복음전파를 가장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사탄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손발이 마비되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입이 뻣뻣해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엘리야는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스다롯 선지자 850명과 큰 싸움을 벌인 후에 승리했습니다. 그런데 승리한 후에 이세벨이 사신을 보내어 “내일 이맘 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말하자 낙심이 되었습니다. 승리했지만 여전히 이세벨이라는 강력한 원수가 버티고 서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이세벨에게 잡혀서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낙심 때문에 남쪽 끝까지 도망쳐서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서 죽기를 바랐습니다. 이처럼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한 순간에 마음에 회의와 두려움이 찾아오면 무기력해지고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심는 것으로서 복음 역사를 방해하는 가장 강력한 사탄의 무기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로서 거기에는 뱃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뱃사람들은 말이 억세고 행동이 거칩니다. 이런 거친 사람들이 생선 잡는 칼을 들고 위협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사탄은 바울의 마음에 두려움을 심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바울의 마음을 잘 아시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까? 디모데후서 1장7절은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우리가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어야 합니다. 기도는 사탄의 공격에서 막아주는 방어무기이면서 동시에 사탄에게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공격무기이기도 합니다. 기도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친히 싸워주십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담대하게 영적 싸움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둘째,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keep on speaking, do not be silent)
  바울은 특유의 열심으로 복음전파 사역에 헌신했지만 힘든 현실의 장벽에 부딪히자 두려움이 들고 말하기가 부담스러워졌습니다. 그런데 입을 열어 말하기를 계속하라고 하십니다. 복음전도자가 말을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아무런 역사도 안 일어나게 됩니다. 구원역사는 말씀을 전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우리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구원역사도 두려움을 극복하고 1대1 말씀전파를 통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제가 구원 받은 것도 캠퍼스 시절 저에게 말씀을 들려준 목자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전반적으로 전도에 대한 열정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근 목회 데이터 연구소 통계자료에 의하면 기독 학생 중에서 지난 1년간 전도하여 교회나 선교단체로 인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2012년에 20.6%였던 것이 2022년 에는 8.1%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반면 이단의 포교를 받은 경험이 있는 청년들이 50%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침묵하면 각종 이단의 소리, 거짓 사상의 소리, 선배들과 친구들의 세상적인 소리, 사탄의 속삭이는 소리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캠퍼스 양들을 미혹하여 구원에서 더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복음전파는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명하십니다. 세상의 소리를 이기기 위해서는 입을 열어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주신 후에 혼자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사명을 주신 후에는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어떤 사람도 대적하여 해롭게 할 수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선교사명을 주실 때에도 제자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그러므로 나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침묵하지 말고 복음을 다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이 성중에 하나님의 백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고린도 성 중에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사람들이 많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누구인지 알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에 하나님의 백성이란 표시가 그려져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 어디에도 그런 표시는 없습니다. 복음을 전했을 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받아들일 것이요, 택함 받지 못한 사람은 배척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누구에게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캠퍼스에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힘써 감당함으로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더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확신을 덧입은 바울은 일 년 육 개월을 머물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쳤습니다. 이로 인해서 세속적인 고린도에 많은 제자들이 세워졌습니다. 또한 이 기간 동안에 아가야 지방의 다른 곳에도 복음을 전했고(고후1:1)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 두 편의 서신을 집필했습니다. 나중에 고린도를 떠날 때에 일찍이 서원한 것이 있어서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한 것을 보면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고린도 역사를 섬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실인은 일정 기간 또는 일생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 서원 중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끊고 머리털을 자르지 않으며 시체에 접촉하지 않고 신성함을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바울이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했을 때 타락한 고린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서게 되었습니다.(고전15:1) 우리는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지난 한 학기 동안 열심히 말씀의 씨를 뿌렸습니다. 학생목자들은 자발적으로 캠퍼스에서 부스피싱을 하고 창세기말씀노트를 만들며 성경선생으로서의 기초를 놓고 있습니다. 이제 여름수양회를 앞두고 진짜 실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습니다. 수양회까지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사도바울과 같이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전하겠다는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온 힘을 다해 역사를 섬기기를 기도합니다. 기필코 한 양을 데려가겠다는 각오와 결단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의 전에 나와 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고 입을 열어 말씀을 전하며 초청역사를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이번 수양회에 그동안 섬기던 양들과 새 양들이 다 나와 말씀을 듣고 변화되는 구원의 기쁨이 충만한 생명구원 잔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것을 유대인들이 가만히 앉아서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넘어뜨릴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으로 부임하자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고소하였습니다. 갈리오는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BC4~AD65)의 형제로서 매우 선량하고 친절하며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의 친절을 이용하여 바울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그들은 갈리오가 자기들의 요구를 잘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고소 내용은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사람들을 권한다는 것이었습니다.(13) 하지만 율법은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문제이지만 로마 사람들이 볼 때에는 전혀 흥밋거리가 되지 못했습니다. 갈리오는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옳지만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유대인들의 법에 관한 것이라면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라며 그들의 고소를 기각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러한 일에 재판장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그들을 법정에서 쫓아냈습니다. 갈리오 총독의 판결은 복음이 로마세계에 전파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 판결은 아가야 지방뿐만 아니라 다른 지방에도 선례가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의 형 세네카는 로마 제국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갈리오 총독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간주했고 이로 인해 기독교는 유대교라는 우산 아래에서 로마 당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종교생활을 보장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성도들은 유대교와 같이 시민들에게 요구되었던 황제숭배의 의무에서 면제받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무리들은 격분하여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법정 앞에서 때렸습니다. 이는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총독 갈리오를 이 사건에 끌어들이려는 의도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리오는 이 일에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고소를 기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갈리오를 쓰셔서 로마의 법으로 바울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소스데네는 후에 그리스도인이 되어 고린도전서를 대필할 정도로 소중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고전1:1)
  18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여러 날을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를 타고 수리아로 떠났습니다. 이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서원한 바가 있어서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머리를 깎는 것은 서원 기간이 끝났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행위입니다(민6:18,19). 이는 바울이 유대인의 관습을 따른 것으로서 율법을 거슬러 행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 것입니다.(행18:12,13) 그 후 에베소에 들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그곳에 남겨두고 안디옥으로 돌아왔습니다. 에베소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도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들은 유대인 여러 사람들이 더 오래 있기를 청했으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이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에베소를 떠났습니다. 가이사랴에 상륙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여 안부를 물은 후 안디옥으로 내려갔습니다. 이로써 2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에 얼마간 머물면서 휴식을 취한 후 3차 전도여행을 다시 시작합니다. 이때 바울은 1차 전도여행 때 개척했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들의 신앙을 굳건하게 합니다. 바울은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면서도 기존의 양들을 돕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에게도 하나님의 역사를 섬기는 데에 있어서 두려움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나이가 6살만 차이가 나도 세대 차이를 느낀다는데 영적인 것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캠퍼스 양들과 관계성을 맺고 말씀을 가르치기에 내 나이가 너무 많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힘들어하는 양들을 보면 내가 잘 못 도와서 그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 양들을 섬기는 것이 두려워졌습니다.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전면에서 역사를 섬기고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역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세상의 여러 가지 일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 역사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름수양회까지 남은 기간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말씀에 붙잡혀 시간과 진심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 역사에 충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전에 나와 기도하며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고 주님께서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영혼들을 여름수양회에 초청하여 생명이 살아나는 기쁨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고린도와 흡사합니다.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쾌락주의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캠퍼스 영적환경은 복음 역사를 섬기기에 점점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통해 구원 역사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며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이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서 말씀을 가르치고 전파하기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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