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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휴화산
작성일 2023-09-03 (일) 10:54
분 류 사도행전
ㆍ추천: 0  ㆍ조회: 217      
IP: 211.xxx.102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                                                        최동진
로마의 셋집에서
말씀 / 사도행전 28:1-31
요절 / 사도행전 28: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마침내 로마에 입성합니다. 바울은 비록 죄수의 신분으로 재판받기 위해 왔지만 그의 관심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지만 그가 간직한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셋집에 감금된 상태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힘써 전파함으로 복음은 로마 사회로 급속하게 전파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에 있어서 그 무엇도 방해가 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열악한 환경에서 죄수의 신분도 아량곳 하지 않고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의 복음에 대한 믿음과 순수한 열정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1-20)
 1절을 보십시오. 바울 일행은 구조된 후에 그 섬이 멜리데임을 알았습니다. 멜리데 섬에 상륙한 것은 계획된 일은 아니었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방향을 잃고 바람에 떠밀려 가다가 한 섬 앞에서 난파를 당했는데 그 섬이 멜리데였습니다. 멜리데섬은 오늘날의 몰타로서 시칠리아 섬에서 남쪽으로 약 100km 떨어졌고 로마로부터는 510km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우연히 그곳에 상륙한 것처럼 보였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의 선택과 의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내가 바라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며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한 번도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그의 삶의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며 믿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재판 자리에 섰을 때도 복음을 전하고 난파선에서도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을 섬기며 목자의 직분을 감당했습니다. 바울과 함께 배에 있던 275명도 이런 바울을 마침내 깊이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멜리데섬의 원주민들은 난파선에서 살아난 바울 일행을 비가 오고 추운 날에 특별히 동정하여 따뜻하게 불을 피워 영접해 주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나무 한 묶음을 거두어 불에 넣었는데 그속에서 잠자던 독사 한 마리가 뜨거운 불에 깜짝 놀라 튀어나와 바울의 손을 물었습니다. 이를 본 원주민들은 바다에서 구출된 살인자를 공의의 신이 심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독사에 물렸으면 응급처치를 해주고 어떻게 하든지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들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곧 붓든지 쓰러져 죽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죽기는커녕 고통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독사를 그냥 불 속으로 툭 떨어버렸습니다. 바울에게는 로마에 갈 때까지 하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믿음대로 조금도 상함이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바울에게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바울을 신이라고 떠받들었습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보블리오가 바울 일행을 영접하고 사흘이나 친절하게 머물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보블리오의 부친은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워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선대한 보블리오에게 은혜를 갚고자 그의 부친에게 들어가서 기도하고 안수하여 치료해주었습니다. 이 소문은 온 섬에 퍼졌고 다른 병자들이 바울에게 몰려왔습니다. 바울은 의사인 누가와 함께 그들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난파선의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어디에서나 목자로서 사람들을 섬기고 돌봐주었습니다. 이런 바울 한 사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석 달 후에 즉 2월 중순에서 3월 중순 사이에 다시 운항이 재개되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 섬에서 겨울을 난 곡물 운송선인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 배의 머리에는 디오스구로 장식이 있었습니다. 당시 항해하는 사람들은 특정한 신들이 자신들의 수호자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디오스구로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이란 뜻으로서 제우스와 달의 여신 레다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 카스토로와 폴룩스를 가리킵니다. 이들의 이름을 딴 별자리인 쌍둥이자리는 항해하는 사람들에게는 행운의 징조로 여겼고 환난을 당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의 영적인 현주소였습니다. 배는 시칠리아의 수도인 수라구사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사흘을 있다가 거기서 둘러가서 레기온에 이르러 하루를 지낸 후 남풍을 타고 이튿날 보디올에 이르렀습니다. 보디올은 로마에서 남쪽으로 240km 떨어진 나폴리 만에 위치한 항구로서 알렉산드리아 밀 수송선이 입항하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그들의 청함을 받아 이레를 함께 머무니라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저자 누가는 로마에 도착한 순간을 감격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And so we came to Rome!)” “우리는 드디어 로마에 도착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서 흥왕한 말씀역사를 체험한 후 성령에 감동되어 “예루살렘에 갔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는 비전을 갖게 되었습니다.(행19:21) 로마서를 보면 바울이 로마에 가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며 길을 찾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롬1:10,11) 그러나 로마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갔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유대인들의 고소로 2년간 감금되어 지내야 했고 그러다가 죄수의 몸으로 겨우 로마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습니다. 강풍을 만나 여러 날을 해도 별도 보지 못하고 정처 없이 망망대해를 떠다니며 구원의 여망마저 가질 수 없는 처지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멜리데섬에 이르렀을 때 군인들에 의해 죽을뻔하였지만 백부장의 도움으로 겨우 죽음을 모면한 후 독사에 물려 또다시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로마의 땅을 밟게 되었을 때 그 벅차오르는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바울을 목적지인 로마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로마 선교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그 뜻 가운데 인도하시고 마침내 성취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인생에 많은 역경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망을 굳게 붙들고 분명한 목적과 방향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가기를 기도합니다.
  보디올에서 로마까지는 도보로 10일 정도 걸리는데 백부장 율리오는 충분한 휴식을 하도록 시간을 주었습니다. 바울일행은 그리스도인 형제들을 만나서 그들과 함께 이레를 머물렀습니다. 그들은 오순절 사건 때 사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개종한 후 로마로 온 사람들이거나, 바울이 써서 보낸 로마서를 읽고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된 사람들로 추측됩니다. 이방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구별된 삶을 사느라 외롭고 힘들게 살던 그들은 소문으로만 듣던 바울을 직접 만났을 때 너무나 기뻤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함께 교제하고 풍성한 복음을 들음으로 큰 힘과 위로를 덧입었습니다. 그 후 바울은 다시 로마를 향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 곳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은 바울이 곧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압비오 광장과 트레이스 타베르네까지 맞으러 나왔습니다. 압비오 광장은 로마에서 남쪽을 7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B.C.312년 로마의 감찰관 압비우스 크라우디우스가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이 도로는 로마로 향하는 길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완벽한 도로로서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들이 전쟁포로들과 전리품을 끌고 로마까지 개선행진을 했습니다. 이는 바울이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왔지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개선장군으로 로마에 입성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로마에서 56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트레이스 타베르네는 세 여관이란 뜻으로서 여행자들을 위한 휴식과 숙박을 제공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 형제들은 하룻길 이상을 걸어와 바울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이는 로마 성도들이 바울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했는지를 나타냅니다. 그들은 죄수의 몸으로 쇠사슬에 묶여서 가고 있는 바울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 오기까지 바울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사랑하는 로마 성도들이 베풀어준 따듯한 환영과 섬김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큰 위로와 힘을 덧입을 수 있었습니다. 험한 불신 세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때로는 생각이 서로 달라 티격태격 할 때도 있지만 같은 믿음과 소망을 가진 믿음의 형제자매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귀한 전우라 할 수 있습니다.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믿음의 동역자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려드립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고 서로 힘을 얻고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When we got to Rome)’ 마침내 바울은 당시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 입성함으로 그의 간절한 열망이 이루어졌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죄수 한 사람이 로마에 도착한 평범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그의 입성은 세계선교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도록 약간의 자유를 허락받았습니다. 가택연금 상태에서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고 복음을 전할 수만 있다면 감옥이나 셋집이나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양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도울 수 있다는 자체가 큰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로마에 오게 되었는가 설명하였습니다. 바울은 아무 죄가 없지만 유대인들이 자신을 죽이고자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이사에게 상소를 하여 로마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 온 진짜 이유는 무엇입니까? 20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바울이 로마에 온 진짜 이유는 이스라엘의 소망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 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랫동안 약속된 메시야를 기다려왔습니다.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롬15:12)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면 모든 불의한 세력들을 멸망시키시고 다윗 왕국과 같은 강대한 나라를 이루실 것을 소망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소망 때문에 온갖 고난을 견디며 살았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바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학생 때에는 좋은 학점을 바라고 졸업하면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결혼을 하여 훌륭한 평신도 목자 가정을 이루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안에서 이스라엘의 진정한 소망은 ‘죽은 자의 부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23:6; 24:15, 26:6,7) 하나님의 소망은 죄로 인해 멸망과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다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로 들이시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자체에 진정한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공부가 우리를 얽어매고 때로는 가정이 때로는 직장이 때로는 물질이 때로는 부모님이나 자녀나 친구가 우리를 얽어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가 마침내 이 땅에 오셨다는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 쇠사슬에 매인 채로 로마에 왔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로서 특권을 누리면서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인생을 즐기며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불편한 삶, 쇠사슬에 매인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의 사슬에 매여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 받을 인생들에게 유일한 참 소망이 되시며 전부가 되십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소망인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자기가 가진 모든 특권을 포기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소망 또한 부활의 소망이요 영생의 소망임을 믿습니다. 이를 위해 세상 영광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심지어는 세상에서 안락하고 안정된 삶도 포기하고 복음전파에 온 인생을 바치는 삶을 자랑이요 특권으로 여기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귀히 여기며 주님 다시 오실 그 날까지 참소망되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에 온전히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II. 셋 집에서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21-31)
  유대인들이 바울의 사상을 듣고자 듣고자 하는 이유가 무엇입나까? 21,22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유대인 지도자들은 바울과 그의 소송에 관한 구체적인 진술들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라 불리는 인물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파에 대해 끊임없이 들려오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특히 로마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로마 제국의 체제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반대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는 내용에 대해 큰 흥미를 가졌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많은 유대인들이 날짜를 정하여 바울이 유숙하고 있는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전해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은 구약성경을 가리킵니다. 구약성경 안에서 메시야에 관해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죽으심과 부활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온 힘을 다해 복음의 핵심을 증거했습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 말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고 흩어졌습니다. 이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바울은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사야서 6:9,10절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이는 본래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할 위기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를 통해 주신 경고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고 바벨론에 의해 비참하게 멸망당했습니다. 본문의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당시의 사람들과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먼저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지나친 선민의식과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다는 교만과 완악함 때문에 복음을 배척하고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것도 죄수의 몸으로 이곳까지 왔는가? 힘이 빠지고 허탈하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방향을 바꾸어 이방인들에게 향했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로써 구원의 선물이 이방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반응에 관계없이 자신을 위해서 택한 백성들을 불러 모으셔서 구원 역사를 이루십니다.
  30,31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로마에 도착했지만 고소인들이 오지 않아 재판이 열리지 못하고 2년동안이나 가택연금된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애당초 바울이 죄를 지어서 고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산이 없는 재판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 시간을 허송세월하지 않았습니다.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자기 셋집(his own rented house)’은 자기가 세를 주고 얻은 집을 가리킵니다. 화려한 로마제국 안에서 바울의 셋집은 너무나 작고 초라해 보였습니다. 이런 곳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듭니다. 큰 역사를 이루려면 우선 건물이 크고 사람이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크다고 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신앙이 살아있는 교회가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작은 셋집이라도 예수그리스도께서 그곳에 계셔서 일하실 때 영향력이 나타나게 되고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2년의 기간동안 자기에게 찾아오는 사람들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쳤습니다. 바울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모두 복음을 듣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 중에는 바울을 지키는 군인들도 있었고 심방오는 사람, 위로 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 인생문제를 안고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선생이요 목자요 선교사인 바울은  이들을 모두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양으로 영접하고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상황이 좋든지 나쁘든지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에게 양들을 끊임없이 보내주셨습니다. 바울의 곁에는 항상 군인 한 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외출이 금지된 채 감시하는 군인과 사슬로 연결되어 지냈습니다.(20) 그들은 궁궐 시위대에 속한 군인들로서 하루 네 시간씩 근무를 했고 매일 6명의 군인들이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에게 매일 성경을 가르쳤을 것이고 군인들은 좋든 싫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2년 동안 로마의 셋집에 머무르면서 그들과 꾸준히 성경공부를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로마정부가 바울에게 붙여준 도망가지 않는 양들이었습니다. 감옥은 1대1 말씀공부 하기 가장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힘써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시위대 안에 예수님을 주로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빌립보서 1:12-14) 바울 한 사람이 하나님의 소망을 붙들고 자기의 삶을 드리고 생명을 바쳤을 때 이것이 후에 로마가 복음으로 정복되는 기초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전파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 셋집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1대1 말씀으로 도와서 주님의 제자로 키웠고 그들은 또 다른 제자들을 키웠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궁 안에도, 시위대 안에도, 로마 법정 안에도, 보통 시민들 가운데에도 헌신된 주님의 제자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사도 바울을 history maker로 쓰셔서 ‘성서 로마’ ‘세계선교’를 이루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과거 세상에 소망을 두고 소시민적인 삶을 살던 자를 구원하시고 하나님 나라 소망을 주시고 캠퍼스에 복음을 전파하며 생명의 열매 맺는 삶을 살게 하셨습니다. 이 삶이야 말로 가장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따고 복음역사를 더 잘 섬기기 위해 센타와 캠퍼스에서 가까운 곳에 개업을 했지만 병원 경영의 어려움으로 세 번이나 지역을 옮겨야 했고 물질적으로 많은 손해를 봤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상으로 향해있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나라 소망을 더욱 굳게 붙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마다 은혜를 넘치게 부어주심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갈수록 기독교에 대한 배척은 심해지고 말씀을 들으려 하는 양들을 만나는 것이 힘든 현실을 생각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더 없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센타 주변에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들을 보면서 사명을 감당하느라 아등바등 사는 나의 삶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좀 여유있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잃어버리고 눈에 보이는 세상의 헛된 소망에 마음을 빼앗겨 잠시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개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이태동안 감옥에서 1대1 말씀전파 사명을 힘써 감당한 바울을 통해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재판을 기다리면서 이태 동안의 기간이 주어졌던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가기까지 주어진 기간이 있습니다. 제가 이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소망을 붙들고 흔들림 없이 복음전파 사명에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부족한 저희를 캠퍼스 복음의 일꾼으로 택하시고 부활의 증인으로 사용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담대하게 거침없이 1대1 복음전파 사명을 힘써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를 통해 캠퍼스가 복음으로 정복되고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역사에  History maker로 쓰임 받는 영광스러운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사도행전의 전체 요절은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을 때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는 능력있는 종으로 변화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영적 무지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던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에 사로잡혔을 때 위대한 복음전도자요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아시아와 그리스 지역을 넘어 로마에까지 복음이 전파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계속 퍼져나갔습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로마의 셋집에서 사람들에게 담대하게 거침없이 복음을 전하는 모습으로 끝이 납니다.  사도행전에는 결말이 없습니다.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복음역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택하신 종들을 통해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행전 역사를 이루고 계십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이 역사의 주인공은 바울처럼 복음 역사에 헌신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고 있는 1대1 성경공부를 통해 복음은 세상으로 점점 더 멀리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들은 모두 구원받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부족하고 연약한 저희들을 이 시대 사도행전의 역사에 주인공으로 불러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여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저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덧입고 캠퍼스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를 기도합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며 계속해서 사도행전 29장의 역사를 써나갈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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