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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3-11-05 (일) 16:10
분 류 에스라
첨부#1 2023년_가을_에스라_제5강-1.hwp (84KB) (Down:41)
ㆍ추천: 0  ㆍ조회: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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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에스라 5강]울며 기도하여 자복할 때에
2023년 에스라 5강                                         최바울
울며 기도하여 자복할 때에
말씀/ 에스라 9장,10장
요절/ 에스라 10: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으로 드디어 재건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동안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위기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종 에스라가 울며 기도하여 자복하면서 백성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돕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백성들의 죄 문제를 들고 나아가 울며 기도하는 에스라의 목자의 심정과 한 사람의 진실된 회개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에스라의 기도(9장)
1,2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1절에서 ‘이 일’이란 앞의 8장 내용을 가리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손의 도우심으로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하여 바벨론에서 가져온 예물들을 성전 제사장에게 인계하고 하나님께 번제로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전도 완공되고 제사의 실무를 감당할 레위지파 사람들도 충원되었습니다. 제사에 사용될 집기들까지 구비되었습니다. 호의적인 왕의 조서가 총독들에게 전달되자 주변의 권력자들의 훼방마저 잠잠해 졌습니다.(8장) 이제 외적인 환경은 나무랄 데 없이 갖추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때 방백들이 에스라에게 현재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충격적인 일들에 대하여 고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하는 것 곧 이방인들과의 통혼 문제였습니다. 방백들은 이 일을 “가증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 ‘가증’이란 말이 우상숭배와 관련해서 쓰이는 것을 감안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통혼을 하면서 그들의 우상까지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가물면 바알신에게 비를 내려 달라고 기우제를 올렸고 가정을 이룰 때에는 아세라신에게 자식 많이 낳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 가정에 아내와 며느리로 들어오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겠습니까? 제가 학생시절에 지금의 토요미팅과 같은 모임에서 노테일러 목자님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절벽 위에 있는 사람과 절벽 아래에 있는 사람이 서로 줄을 잡아당기는 것과 같고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절벽 위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바알의 딸이라고 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자 온 나라가 바알 숭배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아합이니까 그랬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혜의 왕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다가 성전 마당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모세는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7:16) 가르치며 거룩한 자손으로 하여금 그 지방 사람과 섞이게 하는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했습니다. 2절의 ‘거룩한 자손’은 원어로 ‘거룩한 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따로 구별하여 가나안 땅에 뿌리고 심으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씨’를 통해 척박한 가나안 땅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열매로 맺기 원하셨습니다. 거룩한 자손끼리 행복한 가정교회를 이루어서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한마음으로 양들을 섬기며 한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가정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씨가 변질되면서 더 이상 거룩한 자손을 기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일에 방백들과 고관들이 더욱 으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해들은 에스라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3) 에스라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고 큰 슬픔과 분노에 빠진 채 넋이 나가 주저앉았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에스라가 슬퍼하고 분노하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범죄한 것으로 인해 두려워 떠는 자들이 그에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라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6-15절까지는 에스라가 근심 중에 드린 기도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인들과 결혼한 것은 사실 에스라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부끄러워 낯을 들지 못해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기의 죄요 자기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이 먼저 죄를 깊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우상숭배의 죄악 때문에 불과 얼마 전까지 수많은 곤욕과 수치를 겪었으면서도 오늘날 같은 죄를 다시 짓고 있다고 한탄했습니다.(7) 그러나 에스라는 한탄만 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붙들었습니다. 8,9절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에스라는 이스라엘의 반복된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신 은혜가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셨습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온 소수의 믿음의 사람들을 거룩한 처소 곧 하나님이 거하시는 장막을 지탱하는 말뚝으로 쓰셨습니다.(8) 그리고 성전을 지어서 그 성전을 이방인들과 구별되게 하는 ‘울타리’로 쓰도록 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범죄하는 이스라엘도 길이 참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의 이스라엘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그는 이렇게까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는데 다시 주의 계명을 저버린 죄인들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고 고백하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긍휼을 구했습니다.

2. 에스라와 이스라엘의 회개(10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레위기에 따르면 대제사장은 부모의 죽음 앞에서도 슬픔을 절제하도록 했습니다.(레21:11) 그런데 지금 에스라는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 에스라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첫째, 에스라의 목자의 심정을 배울 수 있습니다. 에스라의 모습에서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 중보자로 서 있는 제사장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에스라는 백성들의 죄 문제를 그들의 탓으로여기고 그들의 죄를 자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들에 대해 아비의 심정,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중보기도했습니다. 죄지은 자식을 대신해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부모처럼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과거 모세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서 뛰노는 철없는 백성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매체에서 요즘 청년들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합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위로하는 척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자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 역시 많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예수님처럼, 모세처럼, 에스라처럼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이 시대 양 무리들의 죄 문제를 내 문제로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부모가 자식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듯이 저희들도 아비 어미의 심정으로 캠퍼스 영혼들의 문제를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둘째, 에스라는 죄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에스라는 1차 포로귀환부터 현재까지 약 80년간 이스라엘이 누리고 있는 은혜가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시는 은혜임을 알았습니다.(9:8)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소수의 남은 자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으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생명구원역사를 지탱하고 지지하는 말뚝으로 사용하고자 하셨습니다. 게다가 이방문화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 구별시키기 위해 성전을 울타리로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볼 때 현재 이스라엘이 저지르고 있는 죄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잠시 베푸신 은혜’를 거두어 가시게 할 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이방인과의 통혼은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해서 결국 장막 전체를 무너지게 하는 심각한 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과 구별되라고 세워주신 울타리를 무너뜨리는 죄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종교가 다른 게 뭐 그리 대수인가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예루살렘에 자매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합리화했을지도 모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지 않느냐며 억울해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 문제를 죄 문제로 여기지 않고 상황 탓 조건 탓 자식 탓을 하면서 시대의 흐름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순수복음신앙을 위협하는 혼합주의, 인본주의의 죄 문제로 여겼습니다. 이 문제를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신 은혜를 거두시고 다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고 심판하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울며 자복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깨달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동안 온갖 우상들을 섬겨왔습니다. 보름달이 뜨면 정한수를 떠 놓고 빌었고 큰 나무를 보면 그 앞에 산당을 만들어 놓고 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무지한 백성들에게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의 선교사들을 보내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습니다. 이후 일제 강점기 수탈과 한국전쟁의 아픔을 겪고도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로 급속히 신앙적으로 경제적으로 부흥하고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반만년 역사상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잠시 베푸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어느덧 교회가 세속화되고 신자들마저 물질과 쾌락을 우상으로 섬기기 시작하면서 순수복음신앙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교회마다 젊은이들이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 조상들의 헌신과 열정과 믿음을 기뻐하시고 캠퍼스 지성인 복음사역에 있어서 우리 모임을 말뚝과 울타리로 쓰셨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침체를 겪다가 코로나로 결정타를 맞고 이제 더 이상 캠퍼스 복음사역은 어렵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 소수의 남은 자들을 허락하시고 복음역사가 조금 소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신 은혜의 때 우리가 인본주의 물질주의 혼합주의의 죄 문제를 용납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들이 하나 둘 뽑혀 나가고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울타리들이 무너지면서 순식간에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베푸신 은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은혜로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 한 사람이 먼저 회개하면 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기도했던 에스라처럼 우리 모두의 죄를 자기 죄로 영접하고 엎드려 울며 기도하고 회개하면 됩니다. 하나님은 애통히 회개하며 긍휼을 구하는 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시편 51:17절을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저희들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죄, 이 시대 캠퍼스 양들의 죄를 가슴에 품고 나부터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모임과 우리 민족에게 다시 잠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다시금 우리를 귀하게 쓰실 것을 믿습니다.

에스라가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하자 백성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b절을 보십시오.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였고,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였습니다. 평소 선비처럼 말없이 성경만 읽던 에스라가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성전 마당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하자 백성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중에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러 죄를 고백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그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다”고 말하며 죄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에스라에게 그래도 우리에게 아직 소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지금의 영적인 위기에도 소망이 보인다고 한 것은 이스라엘이 비록 큰 죄를 저질렀지만 진정으로 회개하고 그 죄에서 돌이키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사죄의 은총을 베푸실 것이며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오히려 죄의 누룩을 제거하고 영적인 갱신을 이룰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있는데 아무 문제가 없는 듯이 조용히 덮이는 순간 소망도 사라지게 됩니다. 아픔이 있더라도 문제가 드러나면 아직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엎드려 울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직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죄를 자복하고 진실 되게 회개하는 한 사람이 있으면 아직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직 소망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스가냐는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이방여인들과 그 소생들을 다 내어보내고 하나님과 새롭게 언약을 세우자고 제안했습니다. 이미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식까지 낳았는데, 이들을 내어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지도자들이 이 일에 앞장을 섰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미 결혼한 사람들은 봐주고 다음부터 잘 하자고 타협하기 쉬웠습니다. 전체 인원에 비해서 그 수가 적으니 좀 더 지켜보자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가냐는 단호하게 이방여인들과 그 자녀들을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다 쫓아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스가냐의 제안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스가냐의 말대로 맹세하게 하자 백성들이 맹세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백성들이 순순히 맹세했다고 안심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6) 이 사건을 통해 사단이 역사하지 않고 오히려 이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정체성을 회복하고 순수복음신앙을 회복하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공포했습니다. 7,8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예루살렘으로 모이라. 누구든지 방백들과 장로들의 훈시를 따라 삼일 내에 오지 아니하면 그의 재산을 적몰하고 사로잡혔던 자의 모임에서 쫓아내리라.” 안 오면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하자 평소 모이라고 할 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빠지길 잘하던 백성들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큰비가 쏟아졌습니다. 당시는 시기적으로 우기였기 때문에 비가 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우기에 쏟아지는 비를 하나님의 진노로 여기고 떨었습니다. 이때 제사장 에스라가 이들에게 무엇을 촉구했습니까? 10,11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나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여 그 지방 사람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하니”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단호하게 도전했습니다. 에스라는 공동체에서 죄의 뿌리를 뽑아내고자 했습니다. 에스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백성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모든 회중이 큰 소리로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 그런데 백성의 수가 너무 많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제안하여 에스라는 그 종족을 따라 각기 지명된 족장 몇 사람을 세워 3개월에 걸쳐 상황을 조사를 하게 하였습니다. 오랜 시간 철저하게 조사했지만 적발된 인원은 110명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생각보다 적다고 안심하지 않고 언제라도 전체를 집어 삼킬 수 있는 누룩으로 여기고 이방 여인과 자식들을 내어보내는 실제적인 회개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18-44절에는 이방 여인을 취했던 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것을 다 공개했습니다. 제사장 무리 중에 이 죄를 범한 사람, 레위인 중에서 범한 사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중에 누가 그랬는지 일일이 다 기록했습니다. 이는 이들이 저질렀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 것인가를 후손들에게 역사적 교훈으로 가르치고자 함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명단 말미에 “그 중에는 자녀를 낳은 여인도 있었더라” 가슴 아픈 코멘트를 남기며 죄는 반드시 고통을 남기고 뼈아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교훈을 주면서 에스라서를 마무리 합니다.
결혼은 축복이고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보시기에 잘못된 결혼은 서로를 불행하게 합니다. 모임과 사회를 불행하게 합니다. 오늘날 육신주의 물질주의 가치관이 우리들의 믿음을 흔들고 신앙을 혼탁하게 합니다. 특히 매스 미디어는 능력 있는 남자, 예쁜 여자를 만나야 행복할 것이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 댑니다.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행복할까요? 잠언 31:30절은 말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 믿음의 가정을 이루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이방 여인을 끊어버리고 내어 쫓은 이스라엘처럼 내 마음 가운데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을 뿌리 뽑고 믿음의 가치관을 갖고 믿음으로 결혼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에스라의 목자의 심정과 죄에 대한 자세를 배우게 하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군대광야기간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칠 정도였던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사단의 노예로 살던 데서 요8: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말씀을 통해 회개하게 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사명인의 삶을 살도록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부족한 자를 팀장으로 삼아주셔서 다른 팀장 목자님들과 더불어 거룩한 처소의 못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하셨습니다. 요새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시는 은혜로 저의 인생이 조금 소생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동역자의 건강이 회복되고 방황하던 자녀들도 안정을 찾으며 열심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다. 요회에서는 조성은 자매님이 목자님들의 사랑과 말씀의 꼴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마음에 혼합주의 인본주의 물질주의의 가증한 누룩이 자라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누룩이 작아 보인다고 타협하고 용인한다면 결국 하나님께서 잠시 베푸신 은혜를 거두시고 거룩한 처소를 지탱하는 못의 직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의 직분 역시 거두어 가실 것입니다. 제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즐겼던 교만과 무지를 회개하고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는 자가 되겠습니다. 저에게는 금요일 저녁 시간을 나만의 시간으로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제가 세상 사람들의 불금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으뜸이 되었던 것을 회개하고 금요일 저녁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엎드려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에스라처럼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고 가르치고 기도하는 가운데 거룩한 처소의 못과 울타리 역할을 감당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로인해 망하게 되었을 때 에스라를 택하시고 보내셨습니다. 에스라는 성경선생으로서 백성들의 죄문제를 감당하면서 그들이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도왔습니다. 이 시대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에스라와 같은 사람으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자요, 양들의 죄 문제에 도전하고 싸우고 기도하는 사람으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한마디로 빼어난 성경선생이요 심정 있는 목자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저희가 이를 감사함으로 깊이 영접하고 에스라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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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룻기 [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관리자 2023-09-17 289
23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1강]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관리자 2023-10-09 282
22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2강]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관리자 2023-11-26 272
2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관리자 2023-08-06 272
20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3강]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랐으므로 관리자 2023-10-22 254
19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252
18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3강]로마로 가는 길에서 관리자 2023-08-27 243
17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4강]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관리자 2023-12-10 238
16 룻기 [2023년 룻기 제1강]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관리자 2023-09-10 238
15 룻기 [2023년 룻기 제4강]생명의 회복자 관리자 2023-10-01 232
1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4강]로마의 셋집에서 휴화산 2023-09-03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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