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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3-10 (일) 10:46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1강-1.hwp (92KB) (Down: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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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2024년 마가복음 제1강                                               김베드로선교사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말씀/ 마가복음 1:1-15
요절/ 마가복음 1: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마가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영적 아들(벧전 5:13)이었던 마가가 평소 베드로의 증언을 토대로 기록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은 4 복음서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원복음서)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순교 직후(AD 64)인 주후 65년에서 70년 사이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핍박 가운데 있던 성도들을 대상으로 로마에서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보다는 행적과 섬김의 삶을 중심으로 기록 되었기 때문에 “행동의 복음서” 또는 “섬김 행전”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마가는 예수님이 체포 당할시 벗은 몸으로 도주한 경력이 있습니다.(막 14:51,52) 바울과 바나바의 1차 선교 여행에 동행 했다가 견디지 못하고 선교팀에서 이탈한 경력도 있습니다.(행 15:38) 어찌보면 마가는 “도망 전문가”였습니다. 이런 두려움 많고 연약하던 그가 변화되어 가장 먼저 마가복음을 기록한 것은 복음의 온전한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을 중심으로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구원자)가 되시며 기쁨의 좋은 소식(복음)이 되시는 분인가를 단순하고도 박진감(곧, 즉시-41회) 넘치는 필체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선포되는 마가복음 말씀을 통하여서 복음의 기쁜 소식이 이 땅 가운데 울려 퍼지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요한의 사명과 예수님의 첫 메시지였던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I. 복음의 시작(1-8)
 1절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Ἀρχὴ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υἱοῦ θεοῦ(헬)/아르케 토 유앙겔리온 이에수 흐리스토 휘우 데우)  마가복음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라는 웅장한 선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ἀρχή’(아르케)라는 용어가 맨 앞에 나옵니다. 이는 ‘시작’(beginning) 또는 ‘기원’(origin)의 의미입니다.  창세기의 “태초에(ἐν ἁρχᾖ 엔 아르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1:1)  그리고 요한복음의 “태초에(ἐν ἁρχᾖ) 말씀이 계시니라...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1:1,4)라는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이는 복음의 기원을 말함과 동시에 복음의 시작은 우리 모두에게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새로운 창조의 역사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우리의 새로운 생명이 시작됨을 말해 줍니다. 그러면 ‘복음’(εὐαγγέλιον,유앙겔리온)이란 무엇일까요? 당시 로마시대에 전쟁에서 승리한 소식이나 새로운 황제의 탄생을 복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시대에는 익숙한 용어였습니다. 그러나 마가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복음 즉, 기쁜 소식은 전쟁에서의 승리나 황제의 탄생 그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모든 시대와 나라를 초월해서 온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종류의 삶을 가져다 줄 “기쁜 소식”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에서의 최후 승리를 가져 올 “구원자”이자 “왕의 왕”이 오신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마침내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온 인류에게 임한 “기쁨의 좋은 소식”이자 ”복음의 시작”입니다.  신입생들에게 그렇듯이 시작은 언제나 설레임이 있고 감격이 있습니다.  이 복음의 시작을 들으며 극심한 핍박 가운데 있던 당시 신자들은 복음의 감격과 설레임을 새롭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봄학기 마가복음을 통해 무엇보다도 기쁜소식, 복음으로 인해 감격과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기도합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 예언은 이사야 40장 3,4절과 말라기 3장 1절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 즉, ‘메신저(전령)’로,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세례 요한을 소개합니다. 그러면 선지자 이사야와 말라기를 통한 구약의 예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취되고 있습니까? 4,5절을 보십시오.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예수님의 등장에 앞서서 세례 요한이 먼저 등장하여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즉 메신저의 사명을 감당하며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합니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 내용이 무었이었습니까?  그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하고 세례를 받음으로써 자기 뒤에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 죄 사함을 받도록 준비시켰습니다(눅3:10-14). 우리가 성경 선생이요 목자로서 회개와 죄사함의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특권인가요! 그 누구도 죄사함이 없이는 참다운 자유와 생명의 삶을 살 수 없으며 결국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본받아 무엇보다도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6) 약대털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것은 선지자 엘리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왕하 1:8) 당시에는 이러한 의식주는 가장 검소하고 심플한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강남 스타일의 삶을 살기 위하여는 어디에서 사는가 무엇을 입고 먹는가가 중요합니다. 남자들에게는 자동차가 여자들에게는 들고 다니는 백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주의 길을 준비한 곳은 광야였습니다.  강남 스타일로 설교하고 노래 부르고 입고 먹어야 큰 울림이 있을 것 같은데 세례 요한의 경우는 정반대였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 났나요?  오히려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자,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람이 요단강으로 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놀라운 회개와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 났습니다. 이는 복음역사를 섬기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 나는데에는 장소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의 삶과 메시지와 스피릿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광야 또는 사막은 “미드바르-מדבר”입니다. “말씀” 또는 “말하다”의 의미를 지닌 “다바르-דבר”와 같은 어원을 지녔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말씀이 흘러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캠퍼스 제자 역사를 섬기는 우리에게는 대학 캠퍼스가 광야입니다.  또한 세계의 캠퍼스가 우리의 광야입니다.  흔히, 요즘 캠퍼스 제자양성 역사를 이룬다는 것은 황무지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처럼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가운데 이 광야에서 나의 자아가 온전히 깨어지고 부서져서 “예수로 살고, 예수로 죽기로 결단한 사람들”, 이 광야에서의 사명을 위하여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단한 주님의 제자들”이 있는 한,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피어 나는 역사는 반드시 일어나는 것임을 믿습니다. 이 믿음으로 캠퍼스 광야가 우리의 사명의 땅임을 영접하고 학생 제자 양성 역사를 섬기는 성령 충만한 말씀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7,8절을 보십시오.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7,8)  신발 끈을 푸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인데, 요한은 자기는 그런 일을 하기에도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을 억압하고 사로잡고 있는 궁극적 실체인 사탄을 몰아내십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하여 죄인들을 거듭나게 하시고 그 속사람을 변화 시켜 새사람 되게 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한분께만 집중하도록, 예수님의 모습만 나타나도록 자신을 철저히 낮추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9)   이제 구약의 예언대로 그리고 세례 요한의 외침대로 마침내 예수님이 인류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십니다. 그분은 “메시아 즉, 구원자”로서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자 하십니다. 마 3장 14절에 따르면 요한도 너무 놀라서 이를 말렸습니다. 그러면 왜 죄 없으신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먼저는 세례 요한의 사역을 계승하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구약(옛 언약)과 신약(새 언약)의 다리 역할”을 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속역사는 단절이 아닌 계승의 역사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는 세례를 통한 연합의 의미가 있습니다(롬6:3).  세례는 죄인이 회개 하였음을 공적으로 인정하는 물로 행하는 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죄인들과 하나 되기 위하여서 한없이 자기를 낮추시고 죄인의 자리에서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마침내는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속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세례 받으러 나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외쳤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마태복음 3장 1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 하는지라”.  이처럼 ‘모든 의’ 즉,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주님은 죄인의 위치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의 한없는 겸비하심과 순종을 찬양합니다.

II.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10-15)
 10,11절을 읽겠습니다.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세례 받고 올라오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 났습니까? 세 가지 특별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늘이 갈라졌습니다. 또한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가시적으로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 하노라”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은 시편 2편 7절과 이사야 42장 1절의 성취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로서 인간의 원수인 마귀의 세력을 대적하여 이기실 ‘다윗의 자손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기뻐하시는 종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므로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만민의 주가 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시고 올라오실 때 예수님은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시고 하나님이 친히 음성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밝히심으로 예수님은 메시아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하사 성자 예수님을 약속된 메시아로 공적으로 드러내시고 예수님을 통하여 새 창조의 역사가 시작됨을 말해줍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나의 메시아로 깊이 영접할 때에 나의 인생에 새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자녀되는 역사,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의 존재로 새 새명의 역사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시작됩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입은 자들로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신다” 이런 사랑의 확증을 지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축복합니다.  “나의 인간 조건이 아닌 나의 존재 자체를 사랑 하시는 인자와 긍휼의(헤세드)의 좋으신 나의 하나님(시 136:1) 이런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의 존재 자체가 기쁨이다(헵시바의 존재의식, 사 62:4)”라는 분명한 정체의식을 가지고 우리는 언제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12, 13절을 보십시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12,13)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십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신 것”(마4:1, 눅4:1)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위에 임한 성령의 첫 사역이 ‘곧’ 예수님을 광야로 ‘몰아내는’ 것이었습니다. 성령께서 주체가 되셔서 예수님을 위험과 시험의 한복판으로 몰아넣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광야에서 사십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광야로 내몰리시고 들 짐승과 함께 계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신자들이 겪는 고통을 동일하게 겪으셨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천사들이 수종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들에게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인생의 고난이 때론 너무 크게 느껴져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한다 해도 주님은 천사를 보내사 격려하시고 승리하도록 섬겨 주십니다.  성경에는 광야에서의 삶의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된 분들의 수많은 삶의 고백들이 있습니다.  이 시대에도 하나님이 배열하신 삶의 고난을 통하여 광야학교를 통과한 분들의 삶의 고백들이 우리들에게 깊은 영감과 큰 감동을 줍니다. 그중 한편의 영성시를 함께 나누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광야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사랑(서 경희)***
 “광야는 하나님 나라 가는 필수코스, 광야의 고난으로 하나님 사랑의 퍼즐이 맞혀져 가네. 모세가 광야에서 하늘을 쳐다보며, 다윗이 광야에서 수없이 피해 다니며, 욥이 죽음을 마주하던 광야에서, 엘리아가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할 때,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신음하던 곳, 광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가기 전, 기적을 보이시며 함께하사,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 곳. 노예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의 하나님 소망 심으신 곳, 광야! 광야는 하나님 사랑의 용광로, 광야에 서 있네. 뜨거운 사랑에 데여 죽을 것 같은데, 하나님의 사랑은 살리는 신기한 사랑. 생명의 회복자 되신 하나님, 당신의 뜨거운 사랑을나타내신 곳, 광야!  인간이 무엇이관대, 죄인이 무엇이관대, 근본이 노예 백성인 자를, 포기치 않으시고, 심혈 기울여 주의 종 삼고자, 만나 주신 곳, 광야!  하나님의 찐한 사랑 맛보는 광야에서, 감사의 눈물이 흐릅니다. 주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주의 영광 드러나게 하소서.
주님 만나고자, 광야에 서 있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때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 넣으시고 깊은 어두움속에서 광야의 길, 고독의 터널을 걷게 하시는 훈련의 진정한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환경 또는 처지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해서는 안됩니다. 인생은 팩트가 중요한 것 같지만 실상은 해석이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성숙입니다. 한마디로 “인생은 해석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라 동역자와 저 또한 전쟁이라는 팩트, 전쟁중의 피난민이다라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만을 생각한다면 지난 2년간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너무나 슬프고 절망 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이곳 경성센타에 보내어 정상적 상황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특별한 시간을 보내게 하시는구나!  이 모든 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특별히 배열하시고 배려해 주신 시간들이구나!”라고 우리의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 편에서 해석을 하니 모든 것이 감사요 은혜의 시간들이요 귀중한 시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인생은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가 바로 “자립적인 믿음의 해석 능력을 키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는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또한 부모님, 목자님들, 믿음의 친구들 등 그러한 분들을 통하여 도와 주십니다. 우리들의 필요를 섬겨주시는 정말 고마운 분들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나로 하여금 예수님의 제자의 길(제자도)을 걸으며 믿음의 해석능력을 갖도록 도와 주는 영적인  도구들이 바로 일용할 양식이요 말씀공부요 소감쓰기요 기도요 전도훈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고 절대적으로 말씀의 능력을 믿는 우리 경성 동역자님들을 주님께서 크게 축복 하시는 줄 믿습니다.  언제나 말씀을 먼저 먹고 그 말씀을 나누고자 노심초사 하시는 서 제임스 목자님 및 우리 시니어 목자님들과 저는 매주 말씀을 공부하며 신실하게 소감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제가 믿음 편에서 사건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며 파괴적인 전쟁상황에서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말씀의 종으로 성장하고자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사라 동역자와 저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였음을 고백하며 하나님께 찬송과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14, 15절을 읽겠습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광야에서의 시험을 승리하신 후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 하셨습니다.  요한이 잡혔다는 것은 불의한 헤롯왕에게 붙잡혀 참수 당한 것을 말합니다(6:27)  세례 요한처럼 복음을 선포하며 불의를 꾸짖는다면 누구라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음 전파의 ‘때가 찬 것’(καιρός,카이로스)으로 보셨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기 시작 하셨습니다. “가까이 왔다’는 ‘이미(already)’ 우리 곁에 왔지만 ‘아직(not yet) 완전히는 오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Βασιλεία του Θεού 바실레이아 투 테우)’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세상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세례 요한의 죽음은 불행한 죽음 같았지만 그러나 그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이 추구하는 세속적인 행복(hapiness)에 삶의 가장 큰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생의 가치를  하나님의 구속사에 쓰임 받으며 주어진 사명을 완수하는 데 두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죽음은 복된 죽음이었고 그는 인생 최고의 블레싱(blessing)의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지인 대학 캠퍼스도 복음 역사를 하기에 너무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세례 요한과 같은 고난은 당하지 않더라도 많은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습니다. 많은 선교지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의 선교지인 우크라이나도 전쟁의 참화속에 있고 온갖 무기들을 앞세워 죽고 죽이는 살상과 슬픔의 울부짖음이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내 목숨을 부지하는 일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회의적인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 기초해 보면 오히려 이러한 때가 제대로 복음역사나 선교역사를 해볼 카이로스의 때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다만, 이 길을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마음의 결단이 중요한 것임을 배웁니다.
 15절 말씀을 다시한번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놀랍게도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였습니다.  먼저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던데서 하나님을 마주보고 사는 삶으로의 삶의 전환입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방향 전환“입니다.  ”믿음은 복음이신 예수님과의 긴밀한 신뢰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중심의 삶에서 하나님 중심으로의 삶의 방향전환 즉, 회개하는 삶과 함께 적극적으로 복음을 믿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음은 예수님 자체이며 그가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진정한 주인 교체식을 통하여 ”나의 왕 되신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로부터 예수님으로의 본질적이고도 전면적인 내 삶의 질서를 개편하고, 내 삶의 지배체제 전환을 이루는 것, 이것이 바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죄 가운데 살다가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자에게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이 주어집니다.(골 1:13) 하나님의 사랑 받는 존재로 진리와 생명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 최대의 행복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순히 호소하거나 권면하지 않고 단호하게 명령하고 있습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사람들은 말세지말의 충격적인 세상의 변화를 통하여 그 어느때보다 심판과 구원의 때가 가까이 왔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십니다. 이것이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여리고성의 세리장으로 부정축재를 일삼다 뽕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 인생의 목마름으로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었던 사마리아 여인, 돈과 자신의 삶의 안정만을 추구하다 민족의 반역자가 된 세리 마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을 때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으며 얼마나 복된 인생을 살았는 가를 생각할 때에 마음에 감동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주시는 이 복음의 능력 앞에서 우리를 괴롭히는 불안, 염려, 불신, 운명주의나 절망이나 분노, 슬픔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며 복음을 믿을 때 현재의 상황과 관계없이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이 기쁜 소식,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이 주는 메시지를 잘 영접하여 조건적으로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기보다 우리의 현실이 광야임을 인식하고 광야의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진정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마가복음을 통해서 복음의 감격과 기쁨을 회복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므로 기쁨의 좋은 소식인 복음의 팡파레가 우리의 삶과 가정 그리고 캠퍼스 가운데 힘차게 울려 퍼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통치를 더 깊고 풍성하게 누리는 삶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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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3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8강]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관리자 2023-07-09 682
5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4강]예루살렘 공회 관리자 2023-06-11 671
51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2강]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관리자 2023-08-20 659
50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4강]에스라의 결심 관리자 2023-10-29 638
49 누가복음 [2023년 성탄 말씀 제2강 ]구원의 뿔을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관리자 2023-12-24 631
48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4강]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관리자 2023-12-10 618
47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7강]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관리자 2023-07-02 617
46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2강]크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 관리자 2023-11-26 605
45 누가복음 [2023년 성탄 말씀 제1강]은혜를 받은 자 관리자 2023-12-17 582
44 마가복음 [2024년 신년 말씀 2강]하나님을 믿으라 관리자 2024-01-07 579
43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5강]나의 하나님, 나를 기억하소서 관리자 2023-12-31 568
42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12강]이방의 빛 바울 관리자 2023-05-28 532
41 룻기 [2023년 룻기 제3강]기업 무를 자 관리자 2023-09-24 531
40 에스라 [2023년 가을 에스라 2강]홀로 건축하리라 관리자 2023-10-15 530
39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제3강]하나님께서 이루셨다 관리자 2023-12-03 529
38 느헤미야 [2023년 느헤미야 1강]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관리자 2023-11-12 512
3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강]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관리자 2024-03-10 501
36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20강]주를 위하여 죽을 것도 각오한 바울 관리자 2023-08-06 490
35 룻기 [2023년 룻기 제2강]나의 하나님, 헷세드의 하나님 관리자 2023-09-17 475
34 사도행전 [2023년 사도행전 제 16강]이제는 다 회개하라 하였으니 관리자 2023-06-25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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