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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5-19 (일) 13:53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10강-1.hwp (128KB) (Down: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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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10강]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2024년 마가복음 10강                                                                   이 종 하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말씀/ 마가복음 6:30-56
요절/ 마가복음 6:38a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지난 말씀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권능을 주며 전도여행을 보내셨습니다. 이어서 저자 마가는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 죽는 과정을 회고하므로 예수님의 죽으심을 예고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역을 제자들이 계승할 시기가 오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목자로서 양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바다 위를 걸어서라도 항상 함께 하시는 주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이 예수님을 깨닫고 믿음으로 자립적으로 양을 먹이는 목자요, 어떤 상황에도 평강을 누리고 감사 가득한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30~44)
30, 31절을 보십시오. 열두 제자들은 전도여행에서 돌아와 자기들이 행한 것과 가르친 것을 예수님께 낱낱이 보고하였습니다. 여기서 열두 제자를 사도라 부르고 있는데, 이 호칭은 마가복음에서 유일하게 이곳에만 나옵니다. 저자 마가는 그들이 이룬 역사로 인해 그렇게 부를 만하다고 본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났으며 민심이 예수님께 쏠리자 그 지역 분봉왕 헤롯도 매우 긴장하였습니다. 바야흐로 제자들의 전성기가 시작된 듯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많은 수고를 한 것을 들으셨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쉼이 필요함을 보시고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말씀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오랜만에 MT를 가고자 배를 탔습니다. 뱃전에 비스듬히 앉아 산들바람을 맞으며 스쳐가는 해안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볼 때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적한 곳, 빌립, 안드레, 베드로의 고향 벳새다 가까운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32, 3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 일행이 떠나는 것을 본 큰 무리가 육로를 통해 달려와 그곳에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순간 제자들은 맥이 빠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34) 예수님은 그들을 목자 없는 양같이 보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이 어떠합니까? 보호해주는 목자가 없으므로 풀을 먹지 못해 늘 주리고 때로 독초를 먹어 심한 고통을 당합니다. 온몸은 가시에 긁혀 상처투성이고, 이러저리 다니다가 주변 늑대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모여든 무리를 이같이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이스라엘에서 목자는 왕입니다. 다윗 왕이 대표적입니다. 예수님 시대 헤롯 일가가 왕으로서 그들의 목자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자기들의 이익만 챙겼습니다. 그러면 당시 지도층이었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백성들을 돌보아야 했지만, 그들도 헤롯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럴 때 백성들은 빈들로 나와 참 목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은 영육간에 갈급했으며 거짓 목자를 만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목자 없는 그들을 어떻게 도와주십니까?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이 ‘여러 가지’는 누가복음 9장 11절에서 ‘하나님 나라의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리가 고생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일, 즉 천국복음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보셨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도움은 복음이었습니다. 앞에서 제자들이 전도여행 나가서 한 일도 이 복음을 전한 것이었고, 여기서 예수님이 하신 일도 복음을 가르치신 것이었습니다. 한편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라는 말씀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방황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상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습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반복해서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해야 하겠습니다. 양에게 필요한 말씀을 부지런히 여러 가지로 가르쳐서 어찌하든 생명을 얻도록 도와야 하겠습니다.
요즘 결혼식에 주례사가 점점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결혼하는 데 무슨 가르침이 필요한가 생각합니다. 필요할 때 인터넷 검색을 하거나 챗GPT에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문제는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특히 죄와 구원의 문제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해결될 수 없습니다. 어떤 세상 현인도 근본적인 구원의 답을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복음을 통해 그 답을 주십니다. 복음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근본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음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잘 배워서 이 시대 지성인들에 대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복음을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35~37절을 보십시오. 때가 저물어가도 계속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은 점점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들이 있는 장소가 빈들이며 때는 저물어가니 무리를 지금 보내서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의 제안은 매우 지혜롭게 보입니다. 무리가 많은 만큼 각자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체력이 바닥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무리를 먼저 생각해서 예수님께 현실적인 제안을 한 것이었습니다. 늘 의존적이던 제자들이 전도여행 후 보다 문제의식이 많이 생긴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37a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하십니다. 이 얼마나 황당한 말씀입니까? 그런데 요한복음 6장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이미 무리들의 저녁 식사를 친히 해결하고자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 중 제일 명석한 빌립을 통해 제자들을 시험하고자 하십니다. 빌립이 예수님의 의도를 알았다면 대답은 다음과 같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빌립은 논리적으로 자신들이 왜 할 수 없는지 말하였습니다.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빌립은 이름이 헬라식인데서 느낄 수 있지만 다른 제자들에 비해 계산 능력이 뛰어나고 비즈니스 감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점 때문에 예수님의 깊은 뜻을 놓쳤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은 우리 돈으로 약 16,000,000원 정도입니다. 지금 그들에겐 이백 데나리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헤롯왕이나 유대 부자 정도는 되어야 이 많은 무리를 먹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이백 데나리온’은 정말 큰 파워로 비춰졌습니다. ‘이백 데나리온’만 있으면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하는 제자들의 말에는 ’지금 저희들의 형편을 모르시고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하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에 매여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37절 중간부를 보십시오.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백 데나리온까지 되지는 않더라도 어떻든 가능한 대로 돈을 마련해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형편을 누구보다 잘 아셨습니다. 그들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안식일에 밀이삭을 잘라 먹은 일로 예수님이 어려움을 당하신 적도 있습니다. 현재 그들에게 그 떡 몇 개조차도 없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떡이 몇 개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고 오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8, 9절을 보면 안드레가 무리 중 한 아이로부터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즉 오병이어를 얻어 가지고 나왔습니다. 이 오병이어는 당시 가난한 팔레스틴 서민들이 먹던 지극히 작은 도시락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이것으로 어떻게 그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단순한 믿음으로 일단 예수님께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안드레가 가져온 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부터 예수님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면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하시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원하신 것입니까?
첫째,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리 피곤하셔도 사람들이 찾아오면 항상 환영하시고 그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사용하셨습니다. 많은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그들을 목자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어쩔 수 없이 떡을 찾아나서기보다 양들이 불쌍해서 떡 몇 개라도 더 찾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도 이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대학생들은 어떠합니까. 겉으로는 별로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의 속에 있는 정욕,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의, 분쟁, 사기, 악독의 죄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을 영적인 눈으로 보고 불쌍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공부와 중보기도로 섬기는 수고를 열심히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러할 때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지긋지긋한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 자유한 인생, 열매 맺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둘째, 가서 보라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지만 가서 보지 않으면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일도 하실 수 없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혼자 하실 수 있으시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에 반드시 동참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장차 제자들이 예수님을 계승하여 양 무리를 먹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이 앉아서 계산만 할 것이 아니라 직접 움직여서 현장을 살펴보고 떡 몇 개라도 가져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안드레가 가보니 떡 외에 부수적으로 물고기 두 마리까지 덤으로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매우 하찮은 것이었지만 그다음은 예수님이 책임을 지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십니다.
대형교회의 큰 역사에 비해 우리의 1:1 말씀공부는 미약해보입니다. 1년을 공부해도 양이 말씀을 받지 못하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말씀공부 초청이 부담스럽고 1팀의 1:1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기 쉽습니다. 그러나 1:1 말씀공부는 놀라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먼저는 우리 각자가 1:1을 통해 예수님을 배우고 지금껏 성장해왔습니다. 우리 모임은 1:1 말씀공부로 시작하여 지난 60년 이상 성서한국과 세계선교역사에 쓰임받고 있습니다. 비록 1:1을 하다 중단하였을지라도, 또 1:1을 하다 다른 모임에 갈지라도 1:1을 통해 뿌린 씨는 뿌리를 내려 한 사람의 인생을 얼마나 복되게 하는지 저는 여러 번 경험하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가서 보라‘하십니다. 그것은 가서 찾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1:1 말씀공부를 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1팀의 1:1을 통하여 놀라운 생명구원역사를 계속 이루시기를 기도합니다.

1985년 11월 14일, 전재용 선장이 이끄는 원양어선 광명 87호는 1년 동안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중국해를 지날 즈음 구조를 외치는 5톤 정도 되는 작은 목선을 발견하였는데, 그들은 베트남 난민들이었습니다. 전 선장은 관여하지 말라는 회사의 지침과 양심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사이 점점 멀어져갔습니다. 지나치는 배를 보고 난민들이 절망하고 있을 바로 그때, 선장은 그들을 구하려고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작은 배 안에는 96명의 사람들이 사흘을 굶은 채 서로 엉겨 붙어있었습니다. 선장은 ‘무조건 부산으로 간다. 책임은 내가 진다’는 다짐을 하며 구조 소식을 회사에 알리고, 다 같이 버티기로 하였습니다. 여성과 아이들에게 선원들의 침실을 내주고, 노인과 환자는 선장실로 데려와 치료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선원 25명의 열흘치 식량을 나누어 먹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우리가 잡은 참치가 많으니 안심하세요. 여러분은 안전합니다.”하고 안심을 시켰습니다. 부산항에 도착한 즉시 전 선장은 회사로부터 해고통지를 받았습니다. 여러 곳에 불려다니며 고초를 겪었습니다. 이후 그의 삶은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17년 뒤 자신이 구조한 난민과 나눈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습니다. “직장과 경력까지 희생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96명을 구조한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의 목자의 심정과, 자신의 희생을 감수한 행동으로 96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선장 한 사람의 오병이어가 많은 생명을 살린 것입니다. 고 Dr. Samuel Lee 선교사님은 6.25 전쟁 후 한국 청년들에 대한 목자의 심정으로 1:1의 오병이어를 드렸을 때 세계 각국에 목자들이 서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심정을 가지고 가서 찾아 예수님께 드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를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남자만 오천 명이나 되는 큰 무리를 어떻게 먹이십니까? 39~4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명령하셔서 사람들을 떼를 지어 앉히도록 하십니다. 이에 제자들은 순종하여 무리들을 50명씩 또는 100명씩 ‘파티 대형’으로 배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가져온 오병이어를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습니다. ‘축사하다’는 말은 ‘감사하다’, ‘찬양하다’, ‘축복하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드린 축사는 유대인 가장이 식사 전에 드리는 식탁 기도입니다. 여기서부터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고 먹이고자 하는 마음, 오병이어를 감사하는 기도에서 이백 데나리온 이상의 떡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푸른 잔디 위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이 주시는 떡과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는 장면은 빈들에서 벌어진 하나님 나라 잔치였습니다. 이 기적은 예수님이 자신을 목자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계시하신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무리를 먹이시는 분은 예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오병이어를 넘치게 축복하시는 주님의 권능의 역사를 찬양합니다.

제 2 장,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45~56)
45, 46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셔서 자신이 무리를 보내는 동안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십니다. 이는 제자들이 그 자리에 더 머무르고 싶어 했음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무리들이 예수님을 강제로 왕을 삼으려고 하였습니다(요6:15).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리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미혹되지 않도록, 또 무리들이 자신들의 빵문제를 해결해줄 메시아 열망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제자들은 재촉해서 배를 타도록 하고, 무리는 해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혼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십니다. 47, 48a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제자들이 배를 탔을 때 날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배가 바다 가운데 있을 때 바람이 거스르기 시작하더니 이내 심한 역풍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저으며 심한 고통 속에서 바람과 싸워야 했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조금도 전진하지 못하였습니다. 밤새 고생을 하고 새벽녘이 되자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전 광풍 사건 때는 예수님이 비록 주무셨지만 함께 하셨는데, 이번에는 아예 예수님이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예수님은 홀로 육지에서 제자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48b~50a를 보십시오. 밤 사경(새벽 3시-6시 사이)쯤에 예수님은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셔서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들은 모두 놀랐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곁에 나타나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육지에 계셨고,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으며, 게다가 험한 바람까지 불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50절 후반부를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안심하라고 하시며 “나다(It is I)”라고 하십니다. 가장 오래된 헬라어 번역 구약성경인 70인역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 즉 ‘항상 있는 자’로 계시하십니다(사41:4). 이전에 처음 광풍을 만났을 때 제자들은 “이 분이 누구신가?(Who is this?)”라고 물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지 답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항상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능력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빈 들에서 오천 명을 먹이셨고, 제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 있을 때에도 지켜보시고 찾아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은 목자가 늘 양과 함께 하며 돌보는 것처럼 우리와 함께 하시고 보호하시고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며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십니다. 51, 5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배에 오르시자 그 강하던 바람이 갑자기 그쳤습니다. 그들은 앞에서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고, 이제 갑자기 그친 바람을 보고 또 놀라서 넋을 잃었습니다. 저자 마가는 이런 제자들의 반응에 대해 그들이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마음이 둔해졌다’는 것은 마음이 딱딱해졌다는 의미입니다.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백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분이십니다. 홍해에 길을 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같이 걸어가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 하나님으로 알았더라면 결코 그렇게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웰컴,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며 크게 찬양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일련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이루신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을 때 마음이 둔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매일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축제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잔치가 끝나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그곳에는 고난과 고통의 바람이 수없이 불어옵니다. 우리가 제자들과 같이 마음이 둔해지면 두려워하고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외롭고 주위는 온통 어둠뿐입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리고 밤 사경 주님의 시간에, 주님이 보시기에 가장 좋은 때에 찾아오시고 도와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어떤 상황일지라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평안이 가득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목자 되셔서 늘 보호하여 주시고 부족함이 없는 인생 되게 하심을 감사 찬양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의 축복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합니다.
53~56절을 보십시오. 예수님 일행이 바다를 건너 게네사렛 땅에 이르렀을 때, 그 지역 사람들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을 알아본 사람들은 온 지방으로 뛰어다니며 병든 자를 침상째 메고 예수님이 계시는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또 병자를 시장에 데려다 놓고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으며, 만진 사람은 모두 나았습니다. 저자는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사역 대신 게네사렛 사람들의 믿음의 행동을 적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알아보고 믿은 사람들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즘 저의 일상은 계속 역풍 가운데 있었습니다. 전공의가 병원을 나간 후 거의 3달 동안 혼자서 진료하고 각종 치료까지 하므로 근무를 마칠 쯤이면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번 말씀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는 말씀을 붙들고 장시간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은 ‘신입생 바이블 카페’에 가보도록 하셨습니다. 맨 뒤에 앉아서 상황을 관찰할 때 사모님과 풀타임 자매 목자님들의 양들을 향한 섬김, 모임을 잘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 홍일기, 문대범 목자님의 신입생 눈높이에 맞춘 메시지 등 여기에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저는 양을 섬기기를 원하면서 도무지 가서 찾지를 않았습니다. 현재 직장일로 너무 힘들어 몸도 마음도 움직일 수 없으니 주님께서 준비해주시기를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저에게 먼저 ‘가서 보라’고 하십니다. 제가 가보았을 때 바이블카페를 통해서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해야 할지 새롭게 배우게 하십니다. 저에게 있는 오병이어, 즉 새벽 기도, 학교 교직원이라는 신분, 진료가 없을 때의 자투리 시간 등을 다시 찾게 하십니다. 부족하지만 지금껏 제자로 세워주신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믿음없이 사는 이 시대 청년들에 대한 상한 마음을 회복하여 주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간절하게 먹이고 인도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처럼 방황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배불리 먹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을 항상 살피시며 역풍이 부는 바다 한가운데 있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깨닫고 영접하여 우리에게 있는 오병이어로 감사함으로 양들을 먹이기를 기도합니다. 또 역풍이 불어도 주님이 함께 하심을 믿으므로 두려워하지 않고 승리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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