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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6-02 (일) 10:47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12강-1.hwp (134KB) (Dow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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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12강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2024년 마가복음 제12강                                                         오정훈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말씀/ 마가복음 8:1-26
요절/ 마가복음 8:15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라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가끔 살다 보면 떡 하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예수님이 누구신지 또 주님께서 내 인생 가운데 행하신 일을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과 헤롯처럼 자기 것을 잘 꾸리며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에게 다시 칠병이어의 사건을 보여주시므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을 기억하므로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이기고 믿음으로 칠병이어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칠병이어로 사천명을 먹이신 예수님(1-13)
1절을 보십시오.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귀먹고 어눌한 자를 고치신 것을 보고 또 큰 무리가 모여든 것 같습니다. 마가는 이 일이 일어난 장소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대체로 갈릴리 호수 동편에 위치한 이방지역 데가볼리(Decapolis)로 추정되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이 무리들은 이방인들이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이 큰 무리와 사흘을 함께 계셨는데 먹을 것이 없음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굶주림의 고통을 겪으셨기 때문에(40일을 굶으셨습니다.) 인생들의 배고픔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굶겨 집으로 보내면 돌아가는 길에 기진하여 쓰러질까 걱정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제자들의 반응은 냉랭합니다. 먹이려는 마음보다 떡 구할 장소가 없다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과연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인가, 전혀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들처럼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 사건과 칠병이어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제자들이 왜 그러는 것일까요? 오병이어 기적 때는 자신들이 먼저 무리를 먹이자고 하였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의지나 소원도 없어 보입니다. 아마 제자들도 사흘간 무리들과 있으면서 많이 지쳐버린 것 같습니다. 황량한 광야에서 먹을 것도 떨어져가고 이들을 더 이상 어떻게 도와줄 수도 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예수님이 이들을 먹여서 보내고자 하시는 것은 제자들을 훈련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목자가 지치고 힘들어도 자리에서 일어나 양들을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양들을 먹이고자 하고 또 먹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그들이 힘들고 지친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이 어찌하든지 무리를 먹이는 자들이 되게 하고자 도전하신 것입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오병이어 기적 때와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떡 몇 개나 있냐고 물으십니다. 오병이어 기적 때는 떡이 다섯 개 있었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무려 떡 일곱 개나 있습니다! 그때보다 두 개나 더 많습니다! 그런데도 제자들은 별 반응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깨달음이 없는 제자들을 역사에 참여하게 하시며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떡 일곱 개를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서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작은 생선 두어 마리도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눠주게 하십니다. 제자들을 변함없이 예수님의 대행자요 무리들의 목자로 전면에 세우십니다.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는데, 마태복음에 의하면 여자와 아이 외에 먹은 사람이 사천 명이었습니다.(마15:38) 제자들은 다시 한번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놀라운 체험을 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것을 통해 무엇을 깨달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 인생들을 어떤 모양으로든지 먹이시는 참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먹이시는 만민의 목자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녀들을 배부르게 먹이러 오셨습니다(7:27). 그런데 이제 칠병이어로 이방인들이 배부르게 먹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자녀처럼 먹이신 것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은혜를 받게 된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칠병이어 사건이야말로 예수님이 이방인들까지 배부르게 먹이시는 만민의 그리스도가 되심을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길 바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내시고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갈릴리 호수 서쪽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힐난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이미 그들에게 차고 넘칠 만큼의 표적을 보여주셨는데도 또 표적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믿고자 하기보다 예수님을 책잡으려는 악한 의도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셨습니다. 우리도 가끔 탄식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똑같은 말을 여러 번 했는데 못 알아들으면 <아이구 답답해라> 깊은 탄식이 나오게 됩니다. 이들은 귀와 입뿐만 아니라 영적인 감각기관이 총제적으로 고장난 모습입니다. 아무리 못 알아보고 못 알아듣는다 해도 이런 엄청난 표적들을 보여주셨는데도 깨닫지 못하니 심각한 수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언급하신 것처럼, 보아도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나타냅니다(4:12).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도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며,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이 세대’는 음란하고 믿음이 없는 세대로서(8:38,9:19) 바리새인들만이 아니라 백성들과 제자들까지 포함해서 가리키는 말입니다. 표적을 구하는 이 세대는 표적을 보면 열광하지만 그것을 통해서 믿음을 갖지 못합니다.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야 관심을 갖지만 표적을 보여주지 않으면 시큰둥합니다. 이런 세대 사람들의 마음에는 내 삶에 표적 곧 기적이 일어나서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때로 그런 나의 문제를 아시고 심각한 병에서 낫게도 하시고 직장문제 물질문제 장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도 하십니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세대는 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오로지 자기들 삶 가운데 기적이 일어나기만을 바라며 표적신앙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그들에게 아무리 많은 표적을 행하신다고 해도 그때뿐 표적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13)
우리가 사는 이 세대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믿음을 구합니까? 아니면 기적이 일어나서 우리 인생 문제가 ‘짠’하고 해결되길 기대하지는 않습니까? 다른 사람의 건강문제 자녀문제 물질문제 장래문제는 잘 해결되는 것 같은데 내 삶에는 아무런 표적이 없어서 믿음을 갖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내 삶에 표적이 없어서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요20:2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대로 될 것을 믿는 그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적을 구하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믿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로 기뻐하고 앞으로도 행하실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14-26)
14,15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바다 건너편으로 가실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전에 힐난하고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을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강하게 경고하실 필요를 느끼셨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바리새인과 헤롯을 대신하여 그 세대를 섬길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칫하면 지도자의 모델을 바리새인들이나 헤롯에게서 찾기 쉬웠습니다. 은연중에 그들의 생각, 삶의 방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누룩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성장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비유인데(마13:33) 그만큼 누룩은 적지만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커지지만, 바리새인과 헤롯의 악한 영향력은 더 잘 퍼지고 더 잘 자랍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은 무엇인가요? 첫째, 바리새인의 누룩은 외식입니다. 막 7장에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에 대해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열심히 손도 씻고 목욕도 하며 깨끗한 체했지만 속으로는 세상 사람들같이 온갖 탐욕이 가득한 이중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섬김받기는 좋아했지만 섬기는 생활은 싫어하였습니다. 그중에도 가장 악한 누룩은 하나님 앞에 살지 않고 사람 앞에 사는 인본주의, 형식주의 신앙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쳤으나 결코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도 인본주의 신앙의 누룩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무서운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인본주의 신앙의 특징은 회개, 결단, 순종, 헌신 등의 복음적인 단어들은 부담스럽게 생각하고 은혜, 자유, 축복, 평강 등의 달콤한 단어들만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기본 생활은 무시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편리한 대로 신앙생활 합니다. 신앙과 생활이 전혀 다른 이중생활을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으면 필연 인본주의 누룩에 오염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위하신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사는 진실한 하나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헤롯의 누룩은 음란과 불의입니다. 그는 동생의 아내를 취하였고 이를 책망하는 의인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습니다. 또한 권세와 술수를 남용하여 백성들을 억압하고 임의로 다스렸습니다. 제자들은 음란하고 불의한 헤롯을 비판하고 정죄하였지만 늘 높은 자리, 높은 권세를 연연해하며 세상 영광과 권세를 바라는 누룩에 이미 전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누가 크냐 다퉜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경계해야 할 헤롯의 누룩은 물질주의와 육신주의입니다. 세상은 사람의 평가 기준을 단연 물질과 소유에 두고 있습니다. 돈만 많으면 어디서고 극진한 대우<좋은 차 타고 있으면 아무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음란과 쾌락 문화가 온 세상을 뒤덮고 있기 때문에 육신주의 누룩에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투브 음란 동영상을 한번만 잘못 건들면 알고리즘으로 연결되어 계속해서 그런 동영상들이 뜨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정욕의 노예가 되어 복음적인 가치관이 흔들리고 세속화 되어버립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많은 우리 모임은 육신주의의 누룩이 침투하기 쉽습니다. 이 누룩에 한번 전염되면 형제, 자매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 보지 않고 연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영적인 성장이 막히고, 점점 육신주의의 악한 영향력을 끼치며 세상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헤롯의 누룩과 피흘리기까지 싸우므로 이 시대 영적 지도자요 거룩한 하나님 백성으로 준비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통해 이 세대 어둠을 비추는 빛의 자녀요 이 세대 누룩을 제거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주의 제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먼저’라는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떡만 생각하고 있다가 예수님이 ‘누룩’이란 말씀을 하시자 즉시 떡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들은 떡을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책망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들어 자주 "너희에게 떡 몇 개가 있느냐" 물으셨기에 최소한 떡이 다섯 개는 있어야 되는데 떡 한 개밖에 없는 것이 심히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서로 ‘누가 다시 가서 떡 4개를 더 가져올 것인가’ 수군거렸습니다. 그들은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을 통해 오천 명, 사천 명을 배부르게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 일곱 광주리를 넘치게 거두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이 지금 그들과 같은 배를 타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떡 걱정하지 말아야 하는데 더 걱정하고 있습니다. 표적만 보고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17,18절입니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이 씨 뿌리는 자 비유에서 외인을 언급할 때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지금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가 외인과 같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음이 둔하여져서 칠병이어의 표적을 보고도 전혀 믿음을 덧입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떡이 한 개밖에 없음을 인하여 근심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제자들을 볼 때 참으로 한심하고 수준이 낮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소망 가운데 끝까지 도와주십니다. 19-21절을 다 같이 읽어보시겠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병이어 기적과 칠병이어의 기적 때 얼마나 남게 거두었냐고 질문하십니다. 남은 것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하셨을 때 거기에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늘 ‘떡 하나밖에 없는 현실’, ‘부족한 현실’만 보기 쉬운데 이때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가운데, 우리 모임 가운데 행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현재 나에게 떡 하나밖에 없어 심히 염려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오천명 칠천명을 먹이시고 얼마나 많이 남기셨는가 그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전에는 양이 많아서 걱정이 없었는데 요즘은 겨우 양 한 사람으로 여름수양회 역사를 제대로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 오병이어를 받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신 권능의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앞으로 들어갈 돈이 한이 없는데 수중에 단돈 얼마밖에 없으면 심히 걱정되지만 아예 아무것도 없을 때 먹이시고 입히시고 채우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로 하여금  오병이어 칠병이어 기적을 통해 얼마나 ‘남게 하신 분’인지 기억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떡 하나밖에 없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도 능히 행하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도 떡 하나밖에 없는 현실로 인해 영적인 눈이 감기지 않고 오병이어 칠병이어로 행하신 놀라운 역사를 기억하므로 동일한 역사를 행하실 일을 기대하고 이 역사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가 학생 때 그리고 공보의 때는 보강 여름수양회가 있었습니다. 본 수양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이 참석하도록 8월 말에 하였는데 참석하는 양은 많아야 5-6명, 어떤 때는 2-3명 정도였습니다. 이 오병이어 칠병이어 같은 양들을 위해서 인생소감 강사 주제강의 강사 듀엣드라마 강사 특송 팀 등 모두가 총출동하였습니다. 그렇게 1995년에도 구파발 정말 어느 시골 같은 수양관에서 보강 수양회가 열렸는데 그 수양회는 말씀에 은혜가 있었고 밭에서 바로 따서 먹는 깻잎과 풋고추로 인해 천국잔치와 같았습니다. 저는 십자가 듀엣드라마를 하다가 채찍을 잘못 휘둘러 선교사로 간 어떤 목자님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큰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은 저희가 단 몇 사람을 위해 드린 오병이어,  칠병이어와 같은 헌신을 받으시고 사람들을 변화시키시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저는 이를 통해 우리가 주님께 드린 정말 작은 진심 하나도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축사하심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차마 누구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그때 받은 은혜로 지금 이 자리에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작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축사하시고 놀랍도록 먹이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모든 것이 풍성해지고 넉넉하여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이 우리를 위협하지만 저희의 마음은 변치 않아서 한 사람이라도 어찌하든지 먹이고자 하므로 이를 축사하시는 주님의 크신 은혜를 계속해서 체험해 나갈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22-26절을 보십시오. 벳새다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나오자 예수님은 두 번에 걸쳐 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눈에 침을 뱉으사 그에게 안수하셨습니다. 눈에 침을 뱉으신 것은 좀 과격하고 비위생적인 진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당시에 이런 치료법이 자주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하시자 사람들이 보인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확하지 않고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그에게 주님은 눈에 다시 안수하시자 모든 것이 밝히 보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한번에 그를 고쳐주실 수 있었는데 왜 이렇게 단계적으로 고쳐주신 것일까요? 맹인의 시력은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맹인이 처음 사물을 흐릿하게 보게 된 것은 제자들이 처음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따르게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알아보았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종교지도자들이나 무리들과는 구분되는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내인(內人)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정확히 모르고 세속적, 민족적 그리스도 정도로 흐릿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예수님의 안수가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조차도 완전히 눈을 뜨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성령이 임하셨을 때 비로소 완전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태에 낙심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영적인 눈을 뜨게 될 소망을 가지고 단계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예전에 제가 학생 때만 해도 성경공부 3, 4 년만 하면 훌륭한 목자요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 학생들은 여러 현실문제와 막연한 미래로 영적인 결단을 하기 어려워하고 온전히 믿음에만 의존하기 어렵다며 믿음을 체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이 성장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니 소망을 두고 섬기기 힘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소망 가운데 성장이 더딘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뜨이도록 돕고 계십니다. 우리도 이 주님의 소망을 가지고 이 시대 저희에게 맡긴 영혼들의 영적인 눈이 뜨일 때까지 안수하여 섬기는 종들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칠병이어로 사천명을 먹이신 권능의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주님을 기억하므로 떡 하나밖에 없는 현실에 매이지 않고 주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이 역사에 쓰임받는 종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인본주의, 물질주의, 육신주의의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므로 누룩 없는 거룩한 떡으로 자신을 주님께 드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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