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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6-09 (일) 10:52
분 류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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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13강]고난받는 그리스도, 고난받는 제자
2024년 마가복음 제13강                                 김반석
고난받는 그리스도, 고난받는 제자
말씀/ 마가복음 8:27~9:1
요절/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지금까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한 예수님의 전반기 사역의 결산이며 동시에 후반기 사역의 시작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지만,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리스도로서 가야만 하는 길을 드러내놓고 가르치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어떤 그리스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를 배우고, 확신 가운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주는 그리스도(27~32)
2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지금까지 사역하시던 갈릴리를 떠나 제자들과 함께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빌립보 가이사랴’는 벳새다에서 40km 북쪽 헬몬산 기슭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간 도시로서 고대에 바알 숭배의 근거지였습니다.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하고 재건하여 그들의 신인 ‘판’(Pan)의 신전을 세우고 ‘파네아스’(Paneas)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로마가 정복하였고,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헤롯 대왕에게 하사했습니다.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사를 위한 신전을 건축했고, 헤롯의 아들 분봉왕 빌립이 이 도시를 화려하게 확장해서 자신과 황제의 이름을 따서 ‘빌립보 가이사랴’로 이름을 고쳐서 황제에게 바쳤습니다. 이곳은 예수님 당시 유대 출신의 왕이 통치하고 있었지만, 주로 시리아인과 헬라인 등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마을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보셨습니다. ‘길’은 마가복음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고(1:3), 헤롯에게 잡히고 순교함으로 예수님의 길을 예고했습니다(1:14,6:17~29). 예수님은 지금 그 길을 가고 있고, 제자들은 그 ‘길’을 따르며 함께 가는 사람들입니다. 아직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길을 분명하게 밝히시지 않으셨으나 이제는 그 길을 가르치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전반기 사역을 결산하는 핵심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사역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과 사역의 목적은 사람들의 문제 해결보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는 데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 한 분이라고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제자들이 전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격과 권위 있는 가르침, 말씀의 능력, 이적 등을 통해 감동하고, 위대한 영적 지도자 중 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견해의 공통점은, 모두 예수님의 인성적인 측면만 본 것으로 예수님의 신성은 알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부분적이고 피상적으로 알 때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구원도 없습니다.
사람들의 견해를 물으신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이 질문은 인격적이고 주관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너희는 나를 누구로 알고 있느냐고 물으신 것입니다.

29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여기서, ‘그리스도’(Χριστός,흐리스토스)란 히브리어 ‘메시아’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종을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왕(삼상9:16,10:1;삼하19:10), 선지자(왕상19:16; 시105:15; 사61:1), 제사장(출29:7레4:3,5,16)을 세울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베드로가 우상들이 가득한 곳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상 특히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 황제를 구원자로 믿고, 그가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방 문화에 동요되지 않았고, 사람들의 생각과도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고(1:18), 예수님과 함께하며 훈련받았습니다.
(3:13~16). 특히 예수님이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지켜보았습니다(5:37). 예수님이 죄와 질병과 귀신을 다스리시고, 자연계와 죽음까지 통제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물 위를 걸으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유대를 넘어 거라사, 두로와 시돈과 같은 이방 지역까지 미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인격과 삶을 체험하고, 예수님이 ‘여러 선지자 중 한 분’ 그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구별하여 세우신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으로서,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고했던 바로 ‘그 그리스도’(the Christ)로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분명히 예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고백이었습니다(마16:17~19).
이 시대는 민족・종교간의 갈등, 전쟁・환경・인권・정치・경제 문제 등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저출생과 초고령화 문제로 장래가 불안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죄와 죽음 문제입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인간은 결코 참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는 날 동안 우리를 괴롭힐 뿐 아니라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고, 영원한 파멸에 처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6:23),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선포합니다.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고 죽으면 심판을 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계21:8).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잘 먹고, 잘 살아도 예외가 없습니다.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과 죄의식으로 내면은 평안과 참 만족이 없습니다. 그 무엇도 결코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창세 때부터 여자의 후손을 통해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주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창12:2,22:18,시16:10,사7:14,사53장,렘23:5~6,미5:2,슥9:9) 때가 되어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갈4:4)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영원한 파멸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죄와 사망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시므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메시아(그리스도)가 되심을 확증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나 우연히 이뤄진 사건이 아니라, ‘성경대로’ 이뤄진 역사적 사건이고, 역사적인 사실입니다.(고전15:3,4) 이 사실을 단순히 믿고, 자신의 죄를 진실되게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자는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받게 됩니다. 여기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구원과 영생을 결정짓는 근거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으로 믿는 게 중요하지 꼭 고백해야 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10:9,10절은 말씀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만이 구원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종교철학자 존힉(John Hick)은 “하나님은 많은 이름을 가졌다.”고 했습니다. 이는 산의 정상에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듯이 모든 종교에는 나름대로 하나님께로 이르는 구원의 길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 말입니다. 얼핏 들으면 개방적이고 포용력이 있어서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는 혼합주의로서 죄를 합리화하고, 절대 진리를 상대화시키는 죄악된 사상입니다. 딤전2:5절은 분명히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오직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며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이 우리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신앙고백은 구원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의 출발점이 됩니다. 신앙고백을 하게 될 때 비로소 예수님과 나는 구원자와 죄인으로서 바른 관계성이 맺어지게 됩니다. 신앙고백을 하게 되면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예수님께 속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신앙고백을 자주 하면 할수록 예수님께 믿음의 뿌리를 견고히 내리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인정하신 유일한 중보자요, 참된 구원자이시며, 우리를 영원히 다스려 주실 진정한 왕이요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해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ㅇㅇㅇ의 그리스도이십니다.)

30절을 보십시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들으신 후 자기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실 구원자를 경제적인 풍요와 사회적인 정의를 세워 줄 영웅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요6:15). 이런 사람들에게 제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길이 큰 지장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자신이 어떠한 그리스도이신지 분명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그리스도로 드러내지 않고자 하셨습니다.

3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예수님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길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인자(메시아, 단7:13~14)가 ‘고난을 받고’,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라는 동사는 모두 ‘must’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일어나야 할 필수적인 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No cross No crown’ 고난을 통한 영광!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메시아)의 길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류 구원의 방법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며, 그리스도에 관하여 기록된 성경의 성취입니다(시22:1~8,슥12:1~14,13:7~9). 특히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종의 고난을 예언하였습니다.(사53:4~6) 예수님은 이 말씀을 ‘드러내놓고’ 즉 ‘명백하게’, ‘공개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12).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한쪽으로 데려가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강하게 부정하며 그런 말씀을 하시지 말라고 꾸짖고 경고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면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자기들은 최측근 실세가 될 줄 알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뿐 아니라 제자들이 꿈꾸는 메시아도 승리의 그리스도, 영광의 그리스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꿈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이 고난받고 죽는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멘붕에 빠졌습니다. 메시아가 악과 불의를 종식시키고 자유와 평화를 줘야 하는데, 고난받고 죽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로서의 사명이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포함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제자들이 반드시 영접해야 할 중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Ⅱ. 제자도(Discipleship):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33~9:1)
33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이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신 것은 제자들의 생각이나 베드로의 생각이 동일했기 때문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수제자 베드로를 통해 메시아로서 가셔야 할 고난과 죽음의 길을 막고자 시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생각이 사탄적인 것을 간파하시고,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고난받고 자기가 죽는 길입니다. 희생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는 길입니다. 고난을 통한 승리와 영광의 길입니다. 반면 사람의 일은 힘으로 쟁취하고 자신이 영광을 받는 길입니다. 고난 없는 승리와 영광의 길입니다. 이 길은 많은 사람이 따르는 길, 많은 사람이 원하는 길, 많은 사람에게 인기 있는 길입니다. 이런 길이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예수님의 제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3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이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열두 제자와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특별한 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잘 따라온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이라고 하시며, 예수님을 따르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결심하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은 이제 고난의 길을 가시는 예수님을 따라야 할지 심사숙고한 후에 분명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첫째,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란 자신의 욕망, 이기심, 자기중심적인 생각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계획과 목적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부패하여 구원받은 후에도 죄악된 본성을 좇아 살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여전히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자기 영광을 구합니다. 자기 부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생명과 소유가 내 것이 아님을 깊이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해야 합니다. 나의 목적을 위해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넘겨드리고,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매일 이것저것 해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입니다. 세상 것들로 채우라는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 만족함을 모르고, 더 가지려는 욕망으로 가득합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인 비만에 걸려 믿음의 능력,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자기 부인’은 영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들, 마음속의 악한 생각들을 빼는 것입니다. 운동할 때 힘을 빼라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예를 들어, 탁구나 테니스를 칠 때 손가락과 손목에 잔뜩 힘을 주면 스윙이나 스매싱을 제대로 할 수 없어 파리채만 날립니다. 하지만 프로는 어느 부위에, 언제, 어떻게 강약 조절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능숙하게 칩니다. 우리가 프로선수처럼 힘을 빼는 훈련 즉 날마다 내려놓고 비우는 자기 부인하는 훈련을 잘 감당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둘째,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을 선고받은 죄수는 자기가 못 박힐 가로 막대기를 등에 지고, 처형장까지 걸어가서 못 박혔습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가 감당해야 할 고난과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때로는 고난과 희생을 동반하지만, 그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면서 비난과 핍박을 받고,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 손해를 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이 주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신앙고백을 넘어, 실제 삶에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의 방식을 본받아 따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는 무엇일까요? 복음 전파의 십자가입니다.(막16:15) 또한 예수님의 양무리를 먹이고, 제자 양성하는 십자가입니다.(요21:15,마28:19~20a) 사람들은 예수님의 은혜는 받고자 하지만, 이런 사명의 십자가는 부담스럽다며 회피하고자 합니다. 십자가를 지라고 하면 갑자기 얼굴이 어둡고 딱딱해집니다. 지금 내가 얼마나 바쁘고 피곤한데 이런 걸 하라고 하느냐며 불평합니다. 하지만 사명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은 편할지 모르나 점점 세속화되어 불신자와 다름없이 살게 됩니다.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 없이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변화와 성장도 없습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가르치면 어떤 사람은 왜 우리 교회는 십자가를 강조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는 UBF의 교훈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은혜를 주신 것은 그분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인류 구속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뤄드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순종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할 자를 구원하시고 부르셔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하신 것은 참으로 큰 은혜요 영광입니다. 이를 알 때 주어진 십자가를 감사하게 되고, 기쁨과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 하시고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필요한 은혜를 덧입혀 주십니다. 비록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조금 힘들 때도 있지만, 오히려 나를 강하게 하고 기쁨과 생명력이 넘치는 인생을 살게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 맺는 삶으로 인도합니다. 이를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십자가의 고난은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요 축복임을 믿습니다. 우리가 분명한 각오와 자세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예수님을 더 깊이 배우고, 주와 복음 역사에 쓰임 받는 제자의 인생 살기를 기도합니다.

35~37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기서 ‘자기 목숨’은 단순히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안락함, 안전, 세속적인 욕망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삶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세속적인 것을 붙들고 살아가려는 사람은 결국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일시적인 세상적 만족을 위해 살면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세상적인 성공과 재물, 권세 등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이것들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과 영원한 생명입니다.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나와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예수님과 그분의 가르침,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복음을 위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전파하며,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입니다. 자기 목숨을 잃는 것은,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과 안전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라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박해와 고난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희생적인 삶을 살 때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을 얻기 위한 가장 지혜로운 길이며, 지극히 합당한 최소한의 희생이며 투자입니다.

38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이 세대는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입니다. 자기 욕망대로 편하게 즐기고, 고난 없는 영광을 좋아합니다. 절대적인 믿음으로 살면 배척받고 수치를 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대신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하면서 살기 쉽습니다. 사람들 눈치 보느라 하나님 믿는다는 것을 숨기고, 주일에 놀러 가자고 하면 교회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타협합니다. 식사 기도도 생략합니다. 이런 사람을 두더지 신앙인이라고 합니다.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하나님을 믿고 절대적인 믿음으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받고,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9장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높은 산에서 예수님의 부활의 영광을 목격하게 됩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오순절 성령 강림을 체험하고, 특히 요한은 밧모섬에서 예수님의 영광을 다시 한번 목격하게 됩니다.(계1:13~16)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영광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회피하려 하지 말고, 최후 승리를 거두게 될 영광의 날을 소망하며 끝까지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저는 주일 메시지에 대한 압박감으로 전국학사목자수양회에 참석하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주일 말씀이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이고, 수양회 타이틀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였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그리스도인이요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자기 부인도 하지 않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도 않으면서 메시지를 전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전체 역사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을 회개하고, 한마디 말씀을 받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믿음으로 수양회에 참석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현실 문제와 타협하지 않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제자도를 실천하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두 분의 메신저와 대표 소감을 발표한 두 분의 선교사님들을 통해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제가 육신의 안일을 좇아 살고자 하는 마음과 섬기는 고난을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을 날마다 부인하고, 주님이 주신 1대1과 제자 양성의 십자가를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주님을 따르는 제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비로소 제자들에게 그리스도로서 가셔야만 하는 길을 가르치셨습니다. 제자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제자도 만큼은 드러내놓고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이 참된 생명을 얻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제자도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고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제자도는 타협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드러내놓고 가르쳐야 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음란하고 죄 많은 시대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진리를 가르치며 실천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참된 제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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