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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6-16 (일) 10:51
분 류 마가복음
첨부#1 2024년_마가복음_제14강-1.hwp (83KB) (Dow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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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14강]그의 말을 들으라
2024년 마가복음 제14강                                                                                                 고 영훈                                                          
                                                               그의 말을 들으라
말씀/ 마가복음 9:2-29
요절/ 마가복음 9: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세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임재하사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변형되신 모습을 보여주신 목적은 영광의 예수님을 보도록 하심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쁨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영접하고 이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부활의 영광에 대한 소망 가운데 그의 말을 듣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 변형되신 예수님(2-13)
2절을 보십시오. 때는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예수님께서 메시아의 길과 십자가의 도에 대해 말씀하신 엿새 후를 가리킵니다.
제자들은 1학기 말 시험을 치르는데 첫 과목인 ‘예수님은 누구신가’하는 문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덧입고 대답을 잘하였으나, 둘째 과목인 ‘예수님이 앞으로 하실 일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재시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특히 항상 앞서 나가던 베드로는 예수님께로 부터 사탄이라는 책망을 듣고 심한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개인 기도실에 들어가서 하루종일 갈등만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같이 침울해졌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왜 세 제자만 데리고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수제자 세 사람에게 먼저 영광스런 부활의 믿음을 심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 교육 방법입니다. 실제로 수제자 세 사람이 전체 역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참으로 큽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부활 신앙 위에 굳게 세우는 일은 복음의 집에 세 기둥을 세우는 것과 같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이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산에 올라오시기 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연한 순같이 연약하고 흠모할 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변형되신 예수님은 지금까지의 예수님과는 전혀 다른 분이 되셨습니다.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습니다. 변형되신 예수님은 세상에서 감히 비교도 할 수 없는 영광과 아름다움과 권위와 승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은 장차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변형되신 모습을 보여 주셨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왕의 왕, 주의 주로 등극하시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뜻밖에도 고난받으시고, 버림받으시고, 죽을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갑자기 제자들의 희망은 산산이 깨어지고 그들의 앞날도 불안하고 험악해 보였습니다. 제자 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고 갈등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변형되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그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소망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변형되신 영광의 주님을 만나고 부활 소망 가운데 확신 있게 십자가를 지는 믿음을 갖도록 돕고자 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환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받은바 사명을 위하여 끝까지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은 장차 얻게 될 참된 소망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롬8:18). 제자들은 부활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십자가의 죽음만 생각했기 때문에 십자가가 사람을 망하게 하는 것이라 여겼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에 대해 시청각 교육을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변형되신 예수님을 보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모세는 율법의 대표자요,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들과 말씀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 성경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말해 줍니다. 나아가 모세와 엘리야는 이 땅에 있을 때 고난을 많이 받은 선지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현재 피곤에 찌든 초라한 모습이 아닌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형되신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주와 복음 역사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이 사람을 얼마나 영화롭게 하는 가를 보여주는 증인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이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에 대해 의논했습니다(눅9:31). ‘별세’는 ‘Exodus’로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영광스러운 출발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본 제자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특히 변형되신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하시는 것을 본 베드로는 황홀 지경에 빠졌습니다. 그는 즉시 예수님께 멋진 제안을 하였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그런데 저자는 6절에서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하고 코멘트하고 있습니다. 즉 베드로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잠재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속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의 영적 상태를 잘 말해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면서 많은 고생을 했습니다. 훈련받느라 굶기도 많이 했고 문제 많은 양들을 감당하느라 마음 상했던 일도 비일비재하였습니다. 산 아래에는 여전히 문제 많은 양들로 가득 차 있었고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바리새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다시 산 아래로 내려가서 고생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골치 아픈 세상일이 없는 산 위에서 초막을 짓고 사랑하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영광을 누리며 영원토록 살고 싶었습니다. 이를 초막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런 베드로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막연한 장래의 영광보다는 현재 손에 잡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하며 고난 없이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뭐가 문제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소원에 기초한 삶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신앙생활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좀 고생스럽더라도 산 아래로 내려와서 사명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갈 때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훗날에 베드로는 고난받고 박해로 흩어진 성도들에게 확신 있게 권면했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4:13)”
이때 갑자기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위엄찬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하나님께서 위에서 지켜보시다가 베드로가 계속 인간적인 말만 하고 있기 때문에 마침내 직접 개입하셔서 그에게 책망하며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랑하는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친히 증거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그런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들으라’는 말씀은 순종하라는 뜻이고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듣고 순종해야 할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들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먼저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곧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제자들은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특히 십자가에 대한 말씀은 반드시 들어야 하는데 십자가 말씀은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수치와 고난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십자가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부담스럽다고 안 듣게 되면 결국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다가 믿음도 잃게 됩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의 신앙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 된 본성으로는 십자가의 말씀을 거절하지만 자기를 부인하고 믿음으로 듣게 되면 점점 그 비밀을 깨닫게 되고 그 맛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사랑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가르치지 않는 모임으로 가면 편안할 것으로 생각하고 부담없는 은혜로운 말만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요 사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십자가를 통한 영광은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가 장차 영원한 생명을 얻고 주님과 함께 하는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때마다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사랑하여 열심히 감당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 마음속에 있는 초막을 무너뜨리고 주님의 말씀을 겸손히 들으므로 십자가를 질수 있는 힘을 덧입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생소하게 여기고 서로 물었습니다. 11-13절을 보십시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의문 나는 것을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당시 서기관들은 성서학자들로서 말라기서 4장 5,6절 말씀에 기초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한 후에 메시아가 영광중에 나타나서 통치하게 될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는 현재 고난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민족적인 메시아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서적인 메시아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가리킵니다(마17:13).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므로 백성들의 마음을 준비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하고 결국에는 목 베어 죽였습니다. 이와같이 메시아가 이 땅에 오셨지만 사람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함부로 대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영적 무지와 교만과 시기심과 불순종의 죄 때문에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난은 메시아의 사역이었고 마침내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을 통해 예수님은 부활의 주, 승리의 주, 영광의 주가 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도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명하십니다. 우리들 각자가 들어야 할 말씀이 무엇입니까? 참된 예수님의 제자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의 말씀을 듣는 자입니다. 주님이 내게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순종하는 자입니다. 내 마음에 들어야 할 말씀이 선명하게 새겨지기를 기도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이 영생수 되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주신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다 튕기지 않고 잘 듣고 영접하여 변화되어 새 인생, 복된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38년된 중풍병자는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말씀을 듣고 일어나 운명적인 삶에서 구원받았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완전히 삭아버린 자기를 부르시고 바로에게 도전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전무후무한 출애굽 역사의 지도자로 쓰임 받았습니다(출3:10).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힘든 십자가의 말씀은 외면하고 자기 원하는 대로, 편한 대로 산다면 참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명하시는 말씀을 잘 듣고 십자가의 용사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II.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14-29)
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산에서 내려와 보니 나머지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변론은 말다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들과 무엇을 변론하는가 물어 보셨습니다. 이때 무리 중 하나가 대답하였습니다.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큰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하필이면 그때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제자들에게 부탁하였는데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리 ‘귀신아, 나가라’해도 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빌립이 해보고 안드레가 해보고 전부 돌아가면서 해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합심해서 외쳐 보았지만 귀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로부터 이런 전후 사정을 들은 예수님은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1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세대를 탄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는 종교 지도자들, 믿음이 없는 제자들, 믿음이 없는 아이의 아버지, 믿음이 없는 백성들을 보시고 탄식하셨습니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의 믿음 없음을 크게 슬퍼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제자들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영적 지도자들입니다. 서기관들은 성서학자로서 말씀을 연구하여 백성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문제 많은 양들에게는 무관심하고 종교 정치만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권위를 부리며 제자들의 약점을 비판하고 변론만 일삼았습니다. 제자들은 장차 그 시대를 이끌어 나갈 영적 지도자들로서 그 시대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큰 희망을 두시고 3년 동안 이들과 동고동락 하시며 말씀을 가르치고 믿음을 심으셨습니다. 그들이 양들의 선한 목자요 그 시대를 감당할만한 능력 있고 자립적인 종이 되도록 연단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무능하였습니다. 이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믿음 없는 것을 보실 때 심히 슬퍼하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러면 첫 번 전도 여행 때 큰 능력의 역사를 이루었던 제자들이 지금은 왜 이렇게 믿음이 없이 무능하게 되어 버렸을까요?
첫째로, 자기들의 경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처음 전도 여행을 나갔을 때 귀신이 쫓겨 나고 병이 낫는 권능이 나타났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할 수 밖에 없었고 예수님이 주신 권능만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과거에 귀신을 쫓아 냈었다는 경험 때문에 예수님을 의지하기 보다 자신들의 능력을 과시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할 수 없었고 자기들 본래의 무능함만이 드러날 뿐이었습니다.
둘째로, 인간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 제자만 데리시고 산으로 가시자 이를 두고 그들은 인간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들만 산 아래에 남겨 둔 것에 대해 예수님께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고 세 제자들에 대한 시기심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런 문제로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크냐?’하고 다툼이 있었습니다. 이런 인간적인 생각과 갈등으로 그들의 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셋째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에 대한 말씀을 영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력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세상에서도 잘 살고 싶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다면 자신들의 인생도 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점점 불안해지고 마음에 불신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돕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었고 또 도울 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아이의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데려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데리고 왔는데 귀신이 예수를 보고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게 했습니다. 귀신은 아이의 병이 더 악화된 것처럼 보이게 해서 아버지의 마음에 불신을 심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하고 아이의 과거 경력(history taking)을 자세히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 아버지는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의 심한 병을 생각하며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지만 반신반의하며 예수님께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런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가 보고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여온 실패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조금만 어려움이 생겨도 체념이 앞서고 믿기보다 의심하는데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 가닥 희망을 안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지만 실패로 끝나고 또 아이를 예수님께로 데려왔는데 아이의 상태가 더 심해지니 마음이 점점 어두워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황과 조건이 어떻든지 의심하는 것은 용납하거나 동정하지 않고 책망하십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러한 예수님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통로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항상 믿음을 따라 역사하셨습니다. 친구들과 중풍 병자의 믿음을 보시고 죄 사함을 주셨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Just one touch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의 말을 기뻐하시고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하고 그 믿음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일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이를 고치시는데 아이의 아버지가 절대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우십니다.
예수님께서 책망하시자 그는 영접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24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반신반의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불신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믿음 없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이 믿음을 갖도록 도와달라고 간구하였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믿음의 기도를 받으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셨습니다.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그러자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더니 마침내 아이에게서 나갔습니다.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죽은 것처럼 쓰러지자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죽었다고 웅성거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며 믿음의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쳐 주시고 집으로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 외의 다른 어떤 방법도 귀신의 세력을 쫓아내지 못합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는 아이의 아버지의 부르짖는 믿음의 기도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불신을 회개하고 도움을 구하는 부르짖는 기도를 통하여 주님은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의 능력을 말씀하신 후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 것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는 자는 실상은 믿음이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만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이 자립적이고 능력 있는 종이 되는 비결은 바로 기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무능을 깨닫고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위로부터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고 자립적이고 능력 있는 종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능력은 바로 기도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해에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젊은 시절에 고향을 떠나 불신자 집안의 핍박을 받으며 힘들게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면서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전국 학사 목자 수양회도 피곤하다는 생각에 참석하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저에게도 초막 신앙이 있음을 깨닫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사 목자 수양회에 참석하여 말씀을 통해 은혜도 충만히 받고 전국에서 모인 학사 목자님들과 진솔한 대화와 교제를 나누며 참석하기를 잘하였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여름 수양회도 팀장 목자님들이 알아서 잘 준비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였었는데 지난 주일날 오후에 여름 수양회를 위해 열띤 토론을 하며 이번에도 잘 섬겨 보고자 마음을 합하는 동역자님들을 보며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이분들과 합심하여 여름 수양회 역사를 열심히 섬기고자 방향을 잡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힘쓰므로 기도로 여름 수양회 역사 환경을 잘 마련하고 양들 초청 역사에도 열심을 내어 이 모임을 통해 양들이 많이 참석하여 생명 구원역사가 흥왕히 일어나게 되기를 소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니어 학사 목자로서 마음 속에 있는 초막을 무너뜨리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소원 가운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신앙생활 잘 감당해 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광스러운 왕의 왕, 주의 주가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기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감당하는 신앙생활을 통해 진정한 영광에 이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다가오는 여름 수양회도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힘쓰므로 우리 모임 가운데 양들을 통한 생명 구원 역사가 흥왕히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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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8강]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관리자 2024-05-05 253
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3강]고난받는 그리스도, 고난받는 제자 관리자 2024-06-09 251
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4강]그의 말을 들으라 관리자 2024-06-16 245
5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2강 ]바리새인들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관리자 2024-06-02 242
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5강]뭇사람의 끝이 되어야 하리라 관리자 2024-06-23 154
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6강]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관리자 2024-06-30 127
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제17강]섬기러 오셨다 관리자 2024-07-07 107
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18강]나귀 새끼 타고 오시는 왕 관리자 2024-07-14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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