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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6-21 (일) 12:11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16강-1.hwp (28KB) (Down: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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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16강]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2020년 마태복음 제 16강
말씀 / 마태복음 10:1-42
요절 / 마태복음 10:7,8

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10장은 열두 제자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4절에는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신 열두 제자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습니다.(1) 마태는 ‘베드로 외 11명의 사도’라고 기록하지 아니하고 하나하나 이름을 남겼습니다.(2) 한 사람씩 불러보겠습니다. 베드로, 그의 형제 안드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3)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 시몬 및 가룟 유다(4),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의 열두 아들들과 오버랩됩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새이스라엘의 열두 조상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부르심은 사명을 감당할 원동력입니다. 복음의 일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능력이나 스펙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믿음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경 지식, 언어능력, 다른 사람을 압도할 탁월한 스펙’을 복음의 일군의 조건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갖추었을지라도 부르심을 믿지 못하면 복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복음역사는 일진일퇴를 오가는 치열한 영적 전쟁입니다. 화창한 봄날 같은 즐거운 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더위 푹푹 찌는 여름날처럼 지치고 숨막히는 날도 맞이합니다. 예수님처럼 세상의 거센 배척과 미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붙들지 않으면 그런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넘어지고 맙니다. 뿌리깊은 나무는 햇볕과 바람을 통해 거목으로 성장하듯이, 부르심이 깊은 사람은 고난을 만나도 성장하고 축복을 통해서도 성장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흔들림 없이 주와 복음역사에 충성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부르신 자들을 때가 되면 파송하십니다.(5) 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6)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율법도 알고 영적 기초도 있으면서 이스라엘에게 먼저 갈 것처럼 생각됩니다. 무엇보다 가까이 있는 동족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고자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지금 제자들은 멀리 떨어진 사마리아인이나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강한 선민의식과 자기의를 내세워 복음을 배척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모습은 가까이에 있다고 하여 복음 전하기가 쉽지만은 않음을 보여줍니다. 가까이에 있고 잘 알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르니까 희망을 갖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데, 교만하고 사납고 이기적인 내면을 아는 사람일수록 부담을 갖고 이리저리 피할 수 있습니다. 도와주어도 상처받을 것이 뻔하다는 생각으로 미리부터 손을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이라 하십니다. 선민이라는 타이틀만 있을 뿐, 그 안을 들여다보면 믿음도 잃고 열정도 잃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도 잃어버린 불쌍한 영혼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쉬워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갈 것이 아닙니다. 사실 세상에 쉬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르니까 쉬워 보이는 것입니다. 지금 가까이에 있지만 손을 내밀고 싶지 않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 대학생 성경읽기 선교회에게 캠퍼스 청년들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입니다. 주님 마음을 품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잃은 자들을 찾아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증거해야 합니까? 7절을 보십시오. 전도여행의 메인 메시지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어야 합니다.(8) 그리스도가 오시면 하실 것이라 예언되었던 일이며, 예수님을 대신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십니다. 제자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위임받은 것임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영혼을 구원하고 돕는 것은 나의 탁월함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금 은 동 같은 물질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9) 심지어 배낭이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같은 여분의 여행용품도 준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10) 아무 것도 챙기지 말고 현지에서 공급받으라고 하십니다. 이는 복음의 일군이 자기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10절의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8절의 거저 주라는 말씀과 충돌하는 것 같습니다.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은 복음의 일군이 가져야 할 자부심을 말씀합니다. 복음의 일군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살길 막막한 사람에게 직장을 구해주었다면,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치료약을 건네주었다면, 얼마나 고마운 사람입니까! 무엇으로 대접하고 섬긴들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의 일군은 죄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의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대접받고 존경받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자부심으로 어느 자리에 서 있든지 당당하라는 말씀입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어떤 성이나 마음에 들어가든지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거기 머물고 그 집의 평안을 빌어주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집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환영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때 손해의식이나 상처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섬겨주고 축복해주기에 힘써야 합니다. 만약 그 집이 겸손히 끝까지 제자들을 영접하면, 제자들의 축복 그대로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13) 반대로 배척하고 대적하면, 제자들의 축복은 제자들에게 돌아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어떤 이유에서든지 섬겨주고 축복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배척을 많이 받는 일군일수록 손해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더 많이 환급받게 됩니다. 실제로 고난 받는 종들은 하늘의 위로와 영적 비밀을 풍성히 받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집안이나 마을 전체에서 한 사람도 영접하지 아니하고 배척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 버려야 합니다.(14) 배척하는 자들에게 속한 것은 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수 없으며 심판받게 될 것이라는 메시지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얼마나 무서운 심판을 받았습니까!(15) 그런데 제자들을 배척하는 자들은 그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습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배척하였는데, 신약시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셨는데도 배척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불쌍한 사람은 배척당하는 제자가 아니라 제자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전도의 현장에서 실제 고통당하는 사람은 제자들입니다. 16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예수님은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나아가야 한다는 절대 명제는 변함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치 총알이 빗발치듯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병사들에게 돌격명령을 내리는 지휘관과 같습니다. 희생 없이, 위기와 고통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는 초대교회만큼 살벌한 박해는 없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두드려 맞고 순교까지 각오해야 할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 고난은 아닐지언정, 여전히 복음의 일군에게는 찢겨질 각오가 필요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에서 찢겨지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와 같이 생명이 사는 현장에는 어린 양처럼 희생과 아픔을 겪는 일군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두가지를 갖추라고 말씀하십니다. 뱀의 지혜와 비둘기의 순결함입니다. 산불이 나면, 토끼는 토끼다가 죽지만 뱀은 유유히 산을 빠져나간다고 합니다. 뱀같이 지혜롭다는 것은 때와 상황을 분별하여 목표를 성취해내는 것입니다. 복음의 일군이 순수한 심정으로 사람들을 돕다보면 당연히 도움 받는 사람들도 순수하게 받아들일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며 자기 합리화에 익숙합니다. 힘들면 겸손해지기보다 더 거칠어지는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잘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자기 영광으로 돌립니다. 복음의 일군은 때를 분별하여 회개가 필요할 때 회개하도록 도전하고 결단이 필요할 때 결단하도록 믿음을 심어야 합니다. 뱀과 같이 때를 정확히 살펴서 그에 필요한 양식을 나누어줄 지혜가 필요합니다.
또한 뱀의 지혜와 함께 비둘기의 순결함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비둘기는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닭둘기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하지만 본래 비둘기의 이미지는 평생토록 배우자에게 충성하는 일편단심의 동물입니다. 상황이 어떠하고 결과가 어떠하든지, 구원의 은혜와 부르심의 사명을 따라 충성하는 것, 그것이 순결입니다. 세상은 손해 보지 않고 편안한 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일군은 손해 보고 어려움이 있더라도 목자의 자리에 서서 양들을 감당해야 합니다.
어느 때 뱀의 지혜를 붙잡고 어느 때 비둘기의 순결함을 붙들어야 할지, 실제 현장에 들어가면 고민스럽고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습니다. 잠언 3:6,7절은 말씀합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범사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고자 기도하면 됩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망한 줄로만 생각했던 거기에서 얼마든지 새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고자 부지런히 기도하면, 하나님은 지혜와 순결함을 주시고 믿음의 승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17) ‘삼가라’는 ‘watch out', ‘주의깊게 살피라’입니다.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알 수 없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여 공회나 회당에 끌려갈 수 있고, 총독이나 임금들에게 고발당하여 공권력의 박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18) 사람들이 무섭도록 살벌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19) 성령께서 마땅히 할 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20) 고난의 현장에는 고통과 아픔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은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워 성령 하나님과 소통하게 하는 은혜의 통로가 됩니다. 두려움 많던 사람이 박해를 견디고 나면 담대해지고 성령 충만한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핍박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서 받을 수 있습니다.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수 있다고 예고하십니다. 우리 1세대 목자님들 가운데 강도는 다르지만 이와 비슷한 성격의 핍박을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을 것이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을 끊자’는 협박을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몽둥이로 맞거나 어머니가 칼을 꽃아 놓고 예배에 가면 너 죽고 나 죽자며 멘붕을 일으키는 일들을 겪기도 했습니다. 저 또한 불신가정에서 자랐기에 가슴 아픈 충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부모의 기대를 좇아 살던 효자로 인식되었는데, 예수님 믿고 나서 부모의 기대와 정반대로 가는 문제아처럼 인식되었습니다. 그런 고통으로 인해 ‘세상에서 제일 큰 축복은 믿음의 가정에서 태어나는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세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의 인정과 영광을 기대하는 제자들 마음에 못질을 하십니다. 어떤 미움을 받을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견디라는 말씀입니다. 미움받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고통입니까! 때로는 우리 영혼을 깊은 어둠속으로 던져 버립니다. 내가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미움을 당해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분합니까! 그런데도 예수님은 왜 견디라는 말씀만 하십니까! 예수님이 그러한 미움을 당하셨으며 끝까지 견디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견디면 반드시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견디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견딤으로 누군가 좋은 날을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했습니다.(23) 끝까지 고난을 채우기 전에, 모든 사명을 다 마치기 전에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될 것입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합니다.(24)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다고 하십니다.(25) 우리들이 받을 고난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의 선생이요 상전이신 예수님의 받으신 고난만큼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 모든 이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당하며 죽으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든지, 그토록 강하신 예수님이 하늘 아버지를 향해 절규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우리의 스승이요 주인이신 예수님에 비하면, 우리가 받은 고난과 시련이 어떠합니까! 나는 얼마나 억울한 손해를 보았으며, 나는 얼마나 조롱과 멸시를 당했으며, 나는 얼마나 자기 죽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기 위해 받으신 고난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유에서든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26)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어둠은 어둠으로, 진리는 진리로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온 세상에 진리의 말씀으로 밝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27) 그러므로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2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목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본문에는 두 개의 동사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라’입니다.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있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이것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사람의 평가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예민하면서도 하나님의 평가에 대해 너무나 둔감하며, 사람의 말을 따라 하늘과 땅을 오가면서도 하나님 말씀에는 도통 자극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몸을 죽이지만 영혼을 어쩌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 돈 오천원에 팔리는 참새 한마리도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습니다.(29) 하나님의 주권안에 있다는 것이 참새가 죽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때 있었던 참새도 죽었고 열두 제자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가운데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군들의 머리털 하나까지 다 세실 정도로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30)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31) 32,3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우리 인생은 저마다 출발점도 다르고 과정도 다릅니다. 하지만 그 끝은 구원과 영생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느 자리에 있든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때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 날을 맞이할 때까지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난을 겪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아들과 아버지가, 딸과 어머니가 불화하게 됩니다.(35) 가뜩이나 사이가 껄끄러운 며느리와 시어머니 사이가 더 크게 다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충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36절을 보십시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할지라도 저절로 복음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삶의 중심을 바꾸기 위해 치열한 씨름이 필요합니다. 돈과 쾌락을 중심으로 살던 사람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도록 하려면 회개하고 믿음을 갖도록 씨름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오해와 상처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갈등과 위기를 감당하며 인내하려면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합니다.(37) 아버지나 어머니를 인간적으로만 사랑하는 사람은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아들이나 딸을 인간적으로만 아끼면, 오히려 복음을 영접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고자 결심해야 합니다.(38)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고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입니다.(39) 예수님이 말씀하신 위대한 역설입니다. 당장 기분 좋고 당장 편한 것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에는 생명력을 잃어버립니다. 자기 죽음의 길을 가는 거기에서 하나님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배척만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접하는 것을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으로 동일시하십니다. 만약 제자들을 선지자 같은 하나님의 종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선지자의 상을 주겠다고 약속합니다.(41) 만약 제자들을 고결한 의인으로 영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의인의 상을 주실 것을 약속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기에 작은 자,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취급을 당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라는 이유 때문에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은 반드시 그에게 상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을 향한 사소한 대접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약속입니다. 세상은 제자들을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바라볼지라도,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신의 분신처럼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당당함을 갖고 복음전파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복을 넘치도록 주십니다. 미움과 다툼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수고롭고 고난스러울지라도 복음의 일군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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