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OME | 세계선교 | 각부모임 | 경성소모임 | 성경연구 | 사진자료실 | 영상자료실 | 경성쉼터 | JBF/EBF/CBF | 기타 |

회원등록 비번분실

  Bible Study  
주일예배메시지
성경공부문제지
수양회강의
특강
구약강의자료실
신약강의자료실
강의안책자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7-26 (일) 10:45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20년_마태복음_제21강-1.hwp (30KB) (Down:37)
ㆍ추천: 0  ㆍ조회: 437      
IP: 61.xxx.145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2020년 마태복음 제 21강    
말씀 / 마태복음 13:24-58
요절 / 마태복음 13:44

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요즘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행도 어렵고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경제도 어렵고 항상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합니다. 서로 서로 위로와 격려가 많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박해의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7가지 천국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도 큰 힘과 위로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 번째 비유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24)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리면 엄청 기대가 큽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와서 곡식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 것입니다.(25) 가라지는 독보리를 말하는데, 먹으면 복통과 설사, 심하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는 싹이 나서 이삭이 팰 때에야 구별이 됩니다.(26) 알곡만 기대하고 있던 종들은 가라지를 보고 충격을 받고 주인에게 달려가 보고합니다.(27)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긴 것입니까! 당장 달려가서 확! 뽑아버릴까요!”(28) 하지만 주인은 종들에게 말합니다. 29,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넣으라 하리라” 가라지와 곡식 비유, 조금만 눈치있는 사람이라면 악인과 의인을 비유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가라지와 알곡을 함께 놔두면 알곡이 고통을 겪습니다. 악인들이 득세하고 잘 나가도록 가만히 놔두면, 의인들이 상처입고 어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시편 73편을 보면 시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거의 실족할 뻔했습니다. 악인은 벌이는 사업마다 잘되어 부자로 사는데, 의인은 계속 재앙을 당하는 일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성전에 들어가서야 겨우 믿음을 회복했습니다. 마귀의 노림수는 악인의 번성을 통해 의인으로 사는 것을 하찮게 여기고 회의와 절망과 불신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욥이 오랜 시간 고통하며 불같은 시험을 받은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선지자와 의인들이 악인들의 활개치는 세상을 보며 하나님께 탄식하며 부르짖습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런데도 주인은 왜 가만 두라고 했습니까!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을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가라지와 곡식은 모양도 비슷하고 뿌리도 얽혀 있기에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우리가 흰머리를 뽑다가 검은 머리까지 뽑기도 하고 흰머리인줄 알고 뽑았는데, 알고 보니 검은 머리를 뽑을 때가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어느 한 시점을 보고 ‘저 사람은 가라지야, 저 사람은 알곡이야’ 평가를 내립니다. 그런데 가라지와 곡식, 악인과 의인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회심전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가라지중의 가라지, 악질 가라지로 여겨졌던 사람입니다. 아마 바울이 스테반 집사를 죽였을 때, 성도들가운데에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바울을 벌하심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주시도록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질 가라지였던 그가 알고 보니 슈퍼알곡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 유산을 받아 먼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게 살며 재산을 다 말아먹어버린 대책없는 가라지였습니다. 그런데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졌을 때, 용기를 내어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둘째를 맞이하는 아버지가 외칩니다. “자, 잔치를 벌이자! 이는 죽었다가 살아온 내 아들이로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 볼 때에는 가라지였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로운 인생으로 전환합니다. 우리가 그러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우리의 죄값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면 안타깝고 무서운 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가라지처럼 보인다고 하여 뽑아내고 짤라버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양들, 우리의 자녀들이 때로는 알곡이 아니라 모든 에너지를 빨아먹는 가라지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알다가고 모를 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허랑방탕하던 생활을 청산하고 누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드러내는 알곡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인은 추수 때까지, 하나님의 심판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말씀합니다.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는 희망의 마음, 한 사람도 잃어버리기를 원치 않는 주인의 마음이 천국입니다.
또한 본문의 비유에는 가라지가 있어도 알곡은 알곡으로 산다는 주인의 믿음이 담겨 있습니다. 가라지가 의인에게 고통만 남기는 것은 아닙니다.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는 믿음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그러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2:4, 3:17,18) 악인이기에 악인의 길을 가는 것이며, 의인이기에 의인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기에 의인이 빛을 발하고 세상이 어렵기에 믿음으로 사는 것이 소중해지는 것입니다.

천국은 악인을 없애버림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의인 한 사람을 세워감으로 자라갑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부패한 도시라 할지라도 의인 열 명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의인 한 사람이 갖는 놀라운 가능성을 말씀하십니다. 31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우리는 작은 것을 깨알같다고 하는데, 유대인들은 겨자씨같다고 합니다. 겨자씨가 자라면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가 됩니다.(32) 또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습니다.(33) 누룩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가루 서 말을 부풀어 오르고 부드럽게 하여 장정 150명에게 맛있는 빵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의인 한 사람의 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의인 한 사람을 구원과 안식을 주고 주변을 변화시키는 천국의 통로로 삼으십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왔을 때, 겨자씨 같고 죽은 자와 같았습니다. 아내를 빼앗길까봐, 기근을 견디지 못하고 망할까봐 매순간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강한 자 앞에 주눅 들어 거짓말을 했으며, 수십  년 동안 인생문제를 해결받지 못해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그럴지라도 아브라함은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끝까지 하나님앞에서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으시고 큰 민족을 이루셨습니다. 나그네를 풍성히 대접하며 룻을 위해 중보기도하고 이삭을 바칠 정도로 여호와하나님을 사랑하는 풍성한 영혼으로 빚어 주셨습니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 믿음을 심고 계십니다. 제자들은 재벌도 아니고 왕족도 아닙니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영적 세계의 거물급도 아닙니다. 그들은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지 않고 영향을 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산다면 겨자씨처럼 커지고 누룩처럼 부풀어오르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을 심습니다. 그런 믿음을 따라 사는 자들을 통해 가장 크고 강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셨습니다. 어느 선교학자에 의하면, AD 100년에는 불신자와 신자의 비율이 1000:1이었다고 합니다. AD 1,000년이 되었을 때에는 270:1이었습니다. 1,500년에는 85:1이었습니다. 1,900년에는 21:1이었고, 1970년에는 13:1이었습니다. 2015년 미국 해외선교센터의 분석에 의하면, 73억 세계 인구중에 1/3인 24억명이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120여년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복음을 들고 한국 땅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이 나라는 가난과 부패, 각종 미신과 뿌리깊은 신분제도로 망해가고 있었습니다. 조선사람들은 눈이 파란 선교사들을  서양귀신으로 불렀고, 선교사들의 아기를 신기한 동물처럼 생각하여 훔쳐가기도 했습니다. 일 년 동안 옷을 빨지 못해 때가 쪄들어 누런색이 되어버린 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 그것조차 없어 상의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나무가 사람의 키만큼 자라게 되면 귀신이 들어간다고 하여 잘라버려 대부분 민둥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20%가 기독교인입니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들을 파송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들이 한국에 있습니다. 미신과 구습과 가난에 쪄들어 희망이 보이지 않던 나라가 G7에 이름이 거명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고자 몸부림을 쳤던 믿음의 조상들을 축복하신 역사였습니다. 그들은 성경을 공부할 기회가 있으면 열흘씩, 보름씩 걸어서라도 사경회에 참석할 정도로 열정을 가졌습니다. 가가호호 방문하여 쪽복음을 나누어주는 권서들의 눈물겨운 복음전도가 있었습니다. 새벽을 깨워 부르짖는 기도의 용사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영육으로 위기의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수용력은 떨어지고 정치 경제 현실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는 의인들입니다.  시대가 어렵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대가 어렵기에 나 한 사람이 의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그들을 보시고 겨자씨 같고 누룩 같은 천국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으로 의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나라의 희망입니다. 우리에게 이 믿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심으로 창세부터 감추어졌던 영적 비밀을 드러내셨습니다.(35)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 비유를 쉽게 깨닫지 못했습니다.(36) 이에 예수님은 가라지 비유를 설명하여 주십니다.(37)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예수님, 밭은 세상,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39) 추수날에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악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40)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쓰레기 수거하듯이 거두어갑니다.(41) 그리고 풀무불에 던져버립니다.(42) 그들은 꺼지지 않는 지옥불못에서 영원토록 고통할 것이며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며 가장 불쌍한 자들입니다. 의인들은 어떻게 됩니까! 43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해와 같이 빛나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해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서 본 적이 없기에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영광도 해와 같은 빛나는 영광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가 되면 의인들이 해처럼 빛나게 됩니다. 세상 그 무엇으로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을 누립니다. 과정 과정은 손해볼 수 있고 실패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고의 영광은 의인의 몫입니다. 예수님 약속의 말씀이 우리에게 믿음으로 와 닿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이 땅의 자잘한 영광이 아닌 해같이 빛나는 큰 영광을 사모하며 의인으로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4-46절에는 두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44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어떤 사람이 소작 농사를 짓다가 쟁기 끝에 뭔가 걸려 파보니, 금덩이 가득 들어있는 커다란 보물상자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얼른 다시 흙을 덮고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지 않겠습니까! 집도 팔고 소도 팔고 아이들 저금통 깨고, 은행 대출 full로 당기고, 그래도 부족한 것은 신한카드로 메꿀 것입니다. 사람들은 별 가치가 없어 보이는 밭을 웃돈까지 얹어 사겠다고 달려드는 농부를 어리석게 보았습니다. ‘그린벨트가 풀리는 건가? 신도시가 들어서는 것인가?’ 혹시나 하여 알아봤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농부라며 비웃었습니다. 그런데 농부는 그런 비웃음을 들으면서도 항상 웃음과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가치, 세상이 보지 못하는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또한 천국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습니다.(45) 그가 어느 날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했습니다.(46) 이윤만 따지는 장사꾼이었다면 입맛만 다시다가 다른 진주를 찾으러 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극히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 자기의 소유를 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가지고 있던 자잘한 진주들을 팔았고 진주가게도 팔았고 아파트도 급매로 내놓았습니다. 그래도 부족한 액수는 신한 카드로 메꾸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올인하여 그 진주를 샀습니다. 동료 진주장사들은 ‘꼭 그렇게까지 하면서 그 진주를 사야 하겠는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현재 있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손해볼까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윤만 따진다면 그들의 생각이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극히 값진 진주를 소유할 때의 기쁨과 의미와 행복을 몰랐습니다. 그와 같이 천국은 세상 어떤 가치와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아니 최고의 가치를 추구하는 자들에게 보석처럼 빛나는 가치입니다.

두 비유에서 공통으로 나오는 말씀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입니다. 우리에게 굉장한 부담감을 안겨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조금 투자하고 많이 받을 수 있는 것은 싸구려밖에 없습니다. 뻥튀기입니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은 시간도 팔고 건강도 팔고 자존심도 팔고 뭐든지 팔아 부자되는 길을 달려갑니다. 하물며 천국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각오가 필요합니다. ‘내게도 천국의 비밀이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댓가를 지불하는 각오를 준비하지 않는다면, 천국은 그림의 떡으로 남게 됩니다. 위기를 감수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쏟아부어야 할 때 모든 것을 걸어야 합니다.
천국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천국은 저 하늘나라에 숨겨져 있습니다. 죄사함의 은혜와 영생의 확신을 갖고자 한다면 이 땅에 붙잡힌 욕심과 정욕을 회개하고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수고해보아야 합니다.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숨겨져 있습니다. 온유와 겸손, 희락과 평강같은 성령의 열매를 얻고자 한다면 당장의 유익과 세상 인정을 좇아가는 마음을 회개하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천국은 극히 값진 진주와도 같은 예수님을 통해 얻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2:3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서 3:10-12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장사꾼이 팔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팔아야 천국을 얻습니다. 머리로 알 수 있는 천국의 세계는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자존심을 팔면서 욕도 먹어보고 열정을 팔아 시간과 물질의 손해를 보기도 해야 합니다. 진심을 다해 섬겼지만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아무 것도 보상받지 못하는 실패같은 상황을 맛보면서 말씀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한 영혼을 돕기 위해 영혼의 안식을 팔고 잠 못 이루며 기도하는 그런 자리에도 나가보아야 합니다. 지금 제자들이 그런 인생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억울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진짜 복받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남들이 모르는 천국의 비밀,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고상한 천국의 비밀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움켜쥐는 것이 많을수록 이상하게도 하늘의 비밀은 내게서 사라지고, 파는 것이 많을수록 신기하게도 하늘의 비밀이 내게로 다가옵니다. 한번 왔다가 가는 세상에서 남는 것은 예수님 배우기 위해, 의를 행하기 위해 많이 판 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가진 것을 팔아 천국의 비밀을 사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47절을 보십시오.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습니다. 그물에 물고기가 가득해지면 물가로 끌어내어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비늘이 없거나 지느러미가 없어 부정한 물고기들은 내다 버렸습니다.(48) 언뜻 생각하면 천국은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이 아니라 좋은 물고기만 담는 그릇이라고 비유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물은 이스라엘 공동체 혹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공동체라면, 교회라면 착한 사람들만 있어야 될 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부정하게 보이는 자들을 이스라엘 사회에서 짤라내었습니다. 나병환자들, 세리들, 출교시키고 안식일 어기는 자들, 다 짤라내었습니다. 고상한 사람들끼리,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 살면 천국공동체가 될 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그들의 마음에는 천국이 사라졌습니다.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판단하고 잘라버릴수록 그들은 긍휼과 자비에서 멀어지고 자기의와 우월의식으로 차가워졌습니다. 그물안에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가 있는 것처럼, 좋은 사람과 못된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이 교회입니다. 왜 같이 있어야 합니까! 그래야 못된 사람이 좋은 사람 보면서 자기 발견도 하고 회개할 기회도 얻고 새 인생을 살 수 있는 계기를 삼을 것 아니겠습니까! 죄인들을 돕기 위해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못된 사람에 영향 받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 못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고 섬겨주며 온전해지기까지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에 대해서는 내게 배우라고 보내신 사람이구나! 못된 사람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주어야겠구나!’ 그런 눈으로 바라보는 교회가 천국입니다. 물론 그런 마음으로 교회를 섬길지라도 못된 사람이 끝까지 못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심한 상처를 주고 의인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방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손해의식이나 불신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세상 끝 날에 가면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49) 어부들이 고기를 걸러내듯이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며, 악인은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50) 그러므로 사람 따라 요동하지 말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고 의인의 길을 가기에 힘써야 합니다. 교회에 나오고 있다는 것으로 자족하지 말고 하나님앞에 의인으로 살기에 힘써야 합니다.

5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합니다. “그러하오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52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제자들은 당시 유대사회의 서기관들처럼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도, 자격증을 가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라고 인정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진 것을 팔아 의인으로 사는 사람들이 구약과 신약을 깨닫고 천국의 비밀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머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입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살기에 힘써야 겠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구약과 신약을 통해 풍성한 천국 비밀을 알게 드러내는 진짜 서기관들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53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모든 비유를 마치고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시니, 고향 사람들이 그 지혜와 능력에 크게 놀랐습니다.(54) ‘이런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은혜는 받으면서도 자세는 삐딱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55절을 보십시오. “이는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도저히 이런 지혜나 능력을 나올만한 집구석이 아니라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배척했습니다.(56)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57)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고향이니까 더 많은 기적을 행하셔야 하는데, 그들의 불신앙 때문에 조금 일하고 끝내셨습니다. 아무리 가깝게 있을지라도 배척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에게는 성령께서 역사하지 않습니다. 겸손함으로 듣는 자들에게 천국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매순간 간절함과 겸손함으로 복음을 듣고 순종함으로써 천국의 비밀을 풍성히 가진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0
3500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658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5강]내 안에 거하라 관리자 2020-08-09 326
657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4강]길, 진리, 생명 관리자 2020-08-08 263
656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3강]다 이루었다 관리자 2020-08-08 271
655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2강]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관리자 2020-08-08 265
654 요한복음 [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1강]빛 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8 275
65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2강]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8-02 370
65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1강]천국은 밭에 감추인 보화 관리자 2020-07-26 437
65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20강]네 종류의 밭의 비유 관리자 2020-07-19 406
65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9 강]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관리자 2020-07-12 425
64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8강]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관리자 2020-07-05 420
648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7강]쉬게 하리라 관리자 2020-06-28 407
647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6강]전도 여행 보내신 예수님 관리자 2020-06-21 378
646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5강] 내가 이 일을 할 줄을 믿느냐 관리자 2020-06-14 387
645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4강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관리자 2020-06-07 406
644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3강]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신 예수님 관리자 2020-05-31 450
643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2강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관리자 2020-05-24 402
642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1강]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관리자 2020-05-17 424
641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10강]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 관리자 2020-05-10 482
640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9강]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관리자 2020-05-03 417
639 마태복음 [2020년 마태복음 제8강]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늘 아버지 관리자 2020-04-26 400
12345678910,,,37
서울 동대문구 이문2동 264-231
Tel:070-7119-3521,02-968-4586
Fax:02-965-8594
서제임스목자님메일:Suhjt@hitel.net
[UBF한국본부] [유럽UBF] [UBF국제본부] [UBF TV] [시카고UBF] [Mother Barry's Homepage]
[뉴욕UBF] [워싱턴UBF] [노스웨스턴UBF] [콜롬비아UBF] [코스타리카UBF] [프랑크푸르트UBF]
[키에프UBF] [상파울루UB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