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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1-04-03 (일) 22:25
분 류 누가복음
첨부#1 2011년_누가복음_4강-1.hwp (25KB) (Down: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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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누가복음 제 4강]구유에 누인 아기
2011년 누가복음 제 4강

구유에 누인 아기

말씀: 누가복음 2:1-20
요절: 누가복음 2: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오늘 말씀은 천사가 전해주는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집트에 이어 리비아 내전소식, 구제역 소식으로 불안해하다가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일본에 큰 지진이 발생하고 쓰나미, 원전 폭발 등 끊이지 않는 슬프고 불안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가운데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기쁜 소식을 듣고 싶어 4월 1일 만우절 날 회사로부터 가장 듣고 싶은 거짓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연봉 인상, 특별휴가 지급, 오늘 휴무, 승진 대상 소식 순으로 듣고 싶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가상적인 것이요 또 부분적이고 상대적으로 잠간 기쁨을 줄 뿐입니다. 그러나 정말 모든 백성에게 미치는 큰 기쁨을 주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천사는 전합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이런 소식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이 시간 우리도 천사가 전해주는 소식을 통해 진정한 기쁨과 참된 소망을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Ⅰ. 거기 있을 그 때에 첫 아들을 낳아(1-7)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세계사와 연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1,2)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전 세계를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랜 정복 전쟁을 종식시키고 로마의 평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내치에 주력하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마의 번영을 이끌어 원로원에서는 그에게 ‘존엄자’라는 아구스도 칭호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번영의 역사는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큰 희생을 요구하였습니다. 막대한 통치자금을 위해 세금징수를 하고자 천하로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황제의 절대적인 명령을 따라 모든 사람들은 호적 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윗의 후손 요셉도 마리아와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가기 위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약 120km의 험한 길을 가야 했습니다. 제국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가난한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에게는 너무나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거기다 베들레헴에 도착하자 마리아는 산통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때의 형편이 어떠하였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 “거기 있을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란 뜻으로 인심이 후하기로 유명한 시골동네였습니다. 그러나 가이사의 통치 아래서 살기가 힘들다보니 모두가 내 한 몸 챙기기에 바빠 산모에게 방 한 칸 양보할 마음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마리아의 산통에도 사람들은 못들은 척하였습니다. 인간적으로 이 처럼 슬프고 답답할 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거기 있을 그때에’ 곧 베들레헴에 있을 때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장차 오실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미가서 5: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조금의 오차도 없이 예언하신 그대로 나사렛에 살던 요셉을 움직여 메시아가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에 탄생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가이사 아구스도의 막강한 권력을 쓰셨습니다. 하나님이 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가이사 황제를 쓰신 것은 하나님이 곧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의 인생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우리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을 때 소용돌이치는 세상 역사에 휩쓸리지 않고 확신 가운데 믿음의 경주를 끝까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 약속대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이 약속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예수님의 모습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우셔야 했습니다. 창조주시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만 해도 엄청난 희생이요 겸손인데, 불결하고 더러운 짐승의 밥통에 누이심은 측량할 수 없는 큰 겸손이요 희생입니다. 저자는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슬프고 운명적인 모습으로 탄생하신 것은 부친 요셉의 무능함 때문이나 시대를 잘 못 만난 때문이 아닙니다.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강보에 싸여 비천한 구유에 뉘우신 데는 놀라운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아이를 낳아 구유에 눕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비참한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아는 구유에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오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요1:35) 그러나 죄로 인해 죽음과 영원한 심판에 이르게 된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가장 낮은 구유로 찾아오신 것입니다. ‘구유의 자리’는 가장 큰 낮아짐과, 희생과, 겸손과 자기부인의 자리입니다. 구유의 자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자리요 긍휼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는 구유의 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유에 누워 계신 메시아의 마음을 품는 자만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빌2:11) 우리도 구유에 까지 낮아져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죄 가운데 있는 양들을 위로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유의 자리에 내려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성은 가이사의 높은 자리를 사모하고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여 섬김 받고자 합니다. 구유의 자리에까지 낮아져 섬기기 위해서는 낮아짐의 의미와 가치를 알아야 하고 낮아져 섬기신 주님을 본받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주님이 우리를 낮아져 섬겨주심으로 구원 받은 것을 인식하고 빚진 자의 심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낮아져 섬기는 복된 삶을 사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구유의 자리에 내려오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점점 더 높아지고 싶은 본성을 회개하고 구유의 자리에 임하고자 하는 가운데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Ⅱ.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표적이니라(8-20)
  8-12절에서는 천사가 전한 성탄 메시지입니다.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그날 밤에 목자들이 베들레헴 가까운 들녘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추자 저희가 크게 무서워했습니다. 이때 천사는 이들에게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 10,11절을 보십시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하며 그 소식은 바로 구주 예수님의 탄생소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왜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됩니까?
첫째, 아기 예수님은 그리스도 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주’란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은 구원자란 뜻입니다. 구원의 주가 탄생하셨다는 소식이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슬프고 끔직한 소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슬픔의 나쁜 소식은 인간이 죄로 인해 죽고 심판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죽음은 모든 희망과 즐거움을 빼앗아가 버립니다. 세상은 눈부신 과학문명의 발달로 겉모습은 에덴동산과 같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소돔과 고모라같이 온갖 죄로 인해 심판을 앞두고 있습니다. 사탄은 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영상매체, 소설, 음악, 만화. 인터넷을 통해 청년들을 정욕과 물질의 노예로 만들고, 사람들은 죄를 가볍게 여기고 점점 죄의 수렁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롬6:23) 히브리서 9:27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범죄 한 인간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져져 영원한 고통을 받을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이것이 둘째 사망입니다. 만약 인간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심판을 받는다면 이보다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믿지 않는 자들조차 말세라 할 만큼 세상 멸망의 징조가 충만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졌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이 들리고, 곳곳에 지진과 기근이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재앙의 소식이 들리고 이런 소식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런 비참한 운명 아래에 있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원의 주 예수님이 이 땅에 찾아오셨으니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약속된 메시아시오 중보자가 되시는 대 제사장이요 우리를 다스리실 왕이십니다. 우리를 정욕과 운명주의와 절망에서 구원하시는 주이시오, 사탄의 시험에서 능히 구원해주시며 죽음과 사망권세로부터, 영원한 심판으로부터 구원하시는 구원자 그리스도 주이십니다. 그리스도 주를 믿고 따를 때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죄와 죽음의 종노릇하지 않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분명한 목표와 비전을 갖게 됩니다. 사형수에게 무죄선고가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듯이 인생들을 죄와 죽음과 영원한 심판에서 구원하실 구주가 오셨다는 소식이야말로 가장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천사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가 그리스도 주의 표적이 되신다고 가르쳐주었습니다. 어떻게 구유에 누워 있는 연약한 아기가 그리스도의 표적이 되십니까?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가장 큰 겸손과 희생을 감당하신 왕의 왕, 만주의 주의 모습입니다. 만일 온 인류를 힘으로 구원할 정치적인 메시야로 오셨다면 구유 대신에 화려한 궁궐에서, 강보 대신에 비단 천에 싸여 많은 대신들의 축복 가운데 탄생하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가이사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법과 칼로 다스려 슬픔과 고통을 줄 뿐입니다. 그러나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어떤 죄인에게도 구원을 주는 만민의 구주이십니다. 누가 나 같은 죄인에게 구원을 줄 수 있으며, 누가 나의 무거운 죄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겠습니까? 오직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만이 나의 죄 짐을 없애주시고 하나님과 화평케 하사 평안과 자유와 소망을 주시는 구주가 되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천사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세상 만민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된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비밀입니다. 저자 누가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구유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와 화려한 궁궐에서 시작된 가이사의 역사를 비교하며 역사의 주류는 가이사가 아니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임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구유의 표적을 보고 그 비밀을 깨닫고 따르는 자들이 구원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게 됨을 가르쳐줍니다. 실제로 가이사의 역사는 유적으로만 남았고 베들레헴 구유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역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퍼져나가 세상 만민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역사에 구유에 누운 아기를 따라서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들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귀하게 쓰십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처럼 광이 나는 자리, 군림하는 자리를 좋아합니다. 이들은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자리는 무익한 손해로만 생각합니다. 구원역사는 구유에 누운 아기처럼 자기 자리에서 내려와서 낮아지고 희생하고 섬기는 구유의 자리에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요즈음 특히 종말의 두려움에 시달리는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메시아 탄생 소식을 통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세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만이 누릴 수 있는 영적인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 기쁨은 앉아서 듣기만 한다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목자들같이 현장을 찾아가서 주님을 직접 만날 때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메시야로 인하여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야 말로 진정한 구원을 누리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려고 교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여러 교회가 눈에 띄었지만 쉽게 선택할 수가 없어 교통순경에게 좋은 교회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교통순경은 망설임 없이 한 교회를 가리켜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하는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저 교회 성도들이 항상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만약 내가 교회에 나가게 된다면 저 교회에 나갈 것입니다.” 주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도 큰 표적이 되고 좋은 영향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이 땅에 구주로 오신 예수님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쳐놓고 세상에서 얻는 보상이나 열매로 기쁨을 얻고자 하기 때문에 늘 어두운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내 인생의 기쁨의 근원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을 놓치고 슬프고 어둡고 절망하는 분들이 있으면 다시금 구원자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쁨을 우리의 생각에서, 말에서, 삶에서, 적극적으로 누릴 때 우리를 통해 구주 예수님이 세상 만방에 전파될 것입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천군 천사들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합창이 울려 퍼졌습니다. 메시아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성취되고 약속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땅에 있는 인생들이 구원을 얻고 진정한 평화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 땅에는 참된 평화가 없습니다. 사탄이 역사하는 한 어떤 방법으로도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없습니다. 전쟁과 반목과 질시가 가득 찬 이 땅에 메시아를 통해 낮아져 섬기고 희생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구원역사가 이루어질 때 사람들 마음 가운데 역사하던 미움과 시기 질투 욕심 등 전쟁의 요소가 사라지고 사랑과 섬김, 베풂의 평화의 역사가 구현되는 것입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계신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삶을 따르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이 땅에 참된 평화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천사들이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은 즉시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전하자 듣는 사람들이 다 놀랍게 여겼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였습니다. 이때 목자들의 기쁨이 어떠하였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그들은 천사로부터 들은 모든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충만한 기쁨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메시아를 보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습니다. 우리도 구주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찬송함으로 기쁨이 충만한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구유에 누우신 예수님은 약속된 메시아이십니다. 구유에 누우신 아기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과 심판에서 구원하실 구원자이십니다. 이 시대도 구원자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기쁨과 위로와 소망을 갖게 됩니다. 더욱이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자기를 완전히 비우시고 구유에 오신 예수님을 배우는 가운데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사랑이 심령에 충만하여 병든 영혼들을 감당하는 목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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