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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9-16 (일) 12:49
분 류 고린도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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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가을학기준비특강 제3강]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2012년 가을준비특강 제3강                                                                  이동원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말씀 / 고린도전서 9:1-27
요절 / 고린도전서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오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어떤 자세로 전도를 감당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분명한 전도철학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할 자유와 권리는 매우 소중합니다. 바울은 자기의 자유와 권리를 연약한 양들을 위해 포기하였고 또 모든 사람을 섬기는데 사용하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바울이 왜 이런 삶을 살았는지 바울의 믿음과 전도철학을 우리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장.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도록(1-18)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 음란과 방탕의 도시 고린도에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적어도 1년 반 동안 밤낮으로 수고하며 복음의 씨앗을 뿌린 결과 고린도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특별히 고린도 교회는 분열양상이 심각하였는데 게바파, 아볼로파, 바울파로 나누어 서로 정통파라고 다투었습니다. 바울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바울이 12사도에 들지 않기 때문에 그를 사도로 인정하지 않고 그가 믿음으로 하는 것을 모두 삐딱하게 바라보았습니다. “보아라! 사도들은 모두 당당하게 교회의 지원을 받아 선교활동을 하지 않느냐?”하며 비판하였습니다. 이들에 대해 바울은 먼저 자신의 권리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이에 바울은 자신이 자유자요 사도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는 로마시민권자로서 법적으로도 자유인의 신분이었습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의 자녀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영적 자유인이었습니다. 누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서 만났고 예수님은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택하였습니다. 1b과2절을 보십시오.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의 행한 일의 결과, 즉 열매가 너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복음의 씨앗을 고린도에 뿌려서 자란 열매가 너희인데 너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그가 사도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바로 그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과거 고린도의 많은 신상을 섬기고 헬라철학을 믿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둠과 흑암의 권세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바울은 눈물의 기도를 하고  부지런히 말씀을 전하고  또 양육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생긴 것은 바울의 복음전파를 인치신 성령의 역사이며 하나님께서 친히 바울의 사도됨을 인정하신 열매입니다.
 계속하여 바울은 자신을 변호합니다. 4절입니다.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이는 자유인으로 언제든지  먹고  마실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복음전하는 자로서 먹고 마시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즉 복음 전하는 자로서 생활하는데 경제적 부양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 즉 야고보, 디도와 같은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이나 게바처럼 아내의 조력을 받으며 교회의 재정적 지원을 받을 자격이 왜 없겠느냐 강변합니다. 이것은 세상법칙에도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7절을 보십시오. 군대는 자기목숨을 내놓고 국가에 봉사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면 모든 필요한 것이 보급됩니다. 목숨 걸고 싸울 준비하는 댓가로 그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지원해 주는 것입니다. 포도원을 가꿀 때는 어떻습니까? 포도원의 주인은 물론이고 포도원을 가꾸는 일꾼도 그 열매의 소산을 취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꾼에게 돈을 주기도 하지만 보통은 현물로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양떼를 기를 때도 주인이나 양치기들이 그 젖을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이 다만 세상법칙에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에도 나타나있습니다. 신25;4절을 인용하여 9절은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옛날부터 이스라엘사람들은 밀 같은 곡식을 마당에 깔아놓고 소나 나귀에게 큰방아를 돌리게 하여 타작을 하였습니다. 이는 이집트에서 건너온 타작법인데 이집트사람들은 이렇게 타작을 할 때 소나 나귀의 입에 망을 씌웠다고 합니다. 너희는 시키는 일만하고 먹지는 말아라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스라엘에 들어 왔을 때 모세는 명령하기를 짐승의 입에 절대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습니다. 짐승도 먹을 권리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율법에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  짐승만을 위해서 말씀하신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짐승을 위해서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얼마나 책임져주시고 먹여주시겠는가 반문하는 것입니다. 11절 보십시오.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우리가 너희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해 주었는데  그 댓가로 우리의 생계를 부양받는다고 해서 과다한 일이겠느냐? 직접적으로 반문하고 있습니다. 1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바울이 동역자도 없이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텐트메이커로 자립하며 복음역사를 섬기고자 할 때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그가 그런 고생을 하였던 것이 자기가 다른 사도 같은 권리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권리로 따지자면 고린도 교회를 개척한 바울의 권리가 가장 클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큰 권리가 있음에도 이 권리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도 그 권리를 쓰고 싶지만 그 마음을 억제하고 범사에 참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복음에 아무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의 진심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금까지 이렇게 장황하게 계속해서 자신을 변호하며 자신도 권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바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혹자는 자신을 변호하는 바울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일부 비판하는 말에 일일이 대꾸할 필요 없이 대범하게 그냥 한 귀로 흘려보낼 수도 있지 않겠느냐? 대사도로서의 내면성으로 부정적인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사명에만 충실하면 되지 않는가’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장애가 없게 하기 위함이라.”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해야 하는 이유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사도권이 의심받아 자신의 명예가 실추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약 자기가 사도라는 사실이 의심받으면 복음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사도로서 전한 복음이 훼손될 수 있습니다. 비판하는 자들이 사도가 아닌 자가 전한복음은 가짜다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의 기반이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장애받고 그 복음의 기초위에 놓여진 교회가 훼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의 권리보다 그리스도의 복음과 복음으로 이뤄진 공동체였습니다.   13-14절을 읽겠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바울은 성전의 일을 하는 레위인들과 제단에서 섬기는 제사장의 예를 다시 들고 있습니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치는 제물과 예물로 생계를 꾸려 나갔습니다. 이처럼 주께서도 복음으로 인하여 생계가 부양되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실 때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벌 옷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마10;10) 하며 주의 일꾼이 그 수고를 인하여 물질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말하셨습니다. 바울이  반복하여 물질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 15절에 보면 이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도 합니다. 오히려 차라리 죽을지언정 나의 자랑하는 것이 헛된 데로 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겠다고 합니다. 그당시 헬라 철학의 세계에서는 가는 곳마다 자기 생계를 위하여 철학을 논하고 다니는 떠돌이 철학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가르쳐 주는 댓가를 받았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지원받는다면 어땠겠습니까? 고린도 사람들은 바울을 보고 “아! 저 사람도 그리스도교철학을 가지고 와서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려 하는구나” 생각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오해를 받기 싫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전한 복음이 올바로 전해지기 원해서 자비량으로 복음을 전했다는 것을 주안에서 자랑이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에게는 투철한 사명의식이 있었습니다. 16,17절을 보십시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다 내가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사도 바울은 당연히 자기가 복음전파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 직무유기로 화를 당할 수 있다고까지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키울 때 항상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말 안 듣는 자식으로 인해 피곤하고 힘들지만 부모요 자식이기 때문에 돌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캠퍼스 양들을 영적 자녀로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이들의 목자로서 내 형편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잘 섬기지 않으면 직무유기인 것입니다. 주님은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그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투철한 책임의식과 사명감을 가지고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은 오로지 책임감 때문에 전도의 사명을 감당한 것은 아닙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그는 상급을 바라고 이 사명을 감당했다고 자랑합니다. 그가 바라는 상은 복음 전하는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노릇하던 그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그를 충성되이 여기시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의 일꾼으로 불러주신 그 은혜가 참으로 컸습니다. 그는 이 부르심의 상을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다 쓰지 않고 복음전파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제 2장. 사람을 얻고자(19-27)
 19절에는 바울의 최종관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다같이 19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되어있습니까? 사람을 얻고자하는데 있습니다. 그가  누릴 수 있는 자유과 권리를 포기하고 자발적으로 종과 같이 된 것은 사람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억지로 얻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사이 대권주자들도 민심을 얻기 위해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고 양로원이나 재래시장까지 찿아갑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낮추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다가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시내와 강보다 낮은 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그 만큼 더 낮아져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와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낮아져 오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의 맏아들로 오시지 않으시고 갈릴리 촌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신적권위가 있으셨지만 이를 통해  군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죄인들의 친구로까지 행동하셨습니다. 그리고 인류의 무거운 죄짐을 대신하여 십자가 형벌을 받고자 하셨습니다. 그랬을 때 예수님의 이름이 낮아지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이름을 모든 이름위에 뛰어난 이름이 되게 하셨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나라와 민족을 뛰어넘어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도된 바울도 바리새인 중에서도 흠이 없는 바리새인이었고 가말리엘 문하생으로서  학식이 높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예수님과 같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랑할 만한 세상타이틀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는 유대인으로 처신했고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얻기 위해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 행동하였습니다. 또 율법 없는 자에게 너는 그것밖에 안되냐? 너는 상식도 없냐? 하며 정죄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새로운 율법, 사랑의 법을 전하였습니다. 그는 내면이 강한 자였지만,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약한 자와 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합니다. 종은 주인의 안색까지 살피며 비위를 맞추고자합니다 그는 종과 같은 자세로 다양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스타일에 양들을 맞추고자 하지 않고, 양들의 스타일에 자신을 맞추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자기 의와 자기 스타일,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먹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먹고, 그들의 시간 스케줄에 자신을 맞추었습니다. 그들이 좋아하는 대화 제목을 찾아 대화하고 그들의 언어로 대화하기를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사도 바울의 이름이 업신여김을 받았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를 높이시고 구원역사에 크고 위대한 자로 남게 하셨습니다. 그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세계 선교에 반석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바울을 크게 쓰셔서 많은 교회를 개척하게 하셨고, 신약성경 대부분을 차지하는 성경의 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유비에프 선교사님들도 촉망받는 장래와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고 낯설고 물 설은 이방 땅에 나가 현지 양들을 섬기고 계십니다. 그들의 언어를 배워서 대화하고 그들이 먹는 음식을 같이 먹고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복음을 알지 못하는 그 나라 지성인들 중에서 몇몇 구원을 받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센타 가운데 서제임스목자님은 얼마든지 스텝목자로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이시지만 자비량으로 경성 센타 역사를 섬기셨습니다. 저는 다음 주에 메시지를 전하지 않는다는 소망이 있지만  목자님께서는 평신도로 직장 일을 감당하며 매주 충성되게 주일 메시지를 섬겨주셨습니다. 선배 목자님들은 선배의 권위를 내려놓고 까마득한 후배에게 존대말로 대화해 주시고 여러 모양으로 섬겨주셨습니다. 이 은혜로 제가 구원받고 지금 이 자리에 있음을 믿습니다. 여기서 생명 구원 역사에 한 가지 중요한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특권을 버리고,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모든 모양이 됨으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될 때, 생명 구원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여러 특권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특권이 있습니다. 말씀을 아는 특권이 있습니다. 나에게만 주신 은사와 달란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특권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특권을 캠퍼스와 이웃가운데 나눌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운데 살다가 멸망할 죄인을 구원하여 주시고 캠퍼스 목자요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쁜생활을 핑계로 낮아져 양들을 찿지않고 섬기는 점이 부족했습니다. 이런 죄인에게 사도바울의 겸손과 믿음을 새롭게 배우게 하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양들을 여러 모양으로 섬겨서 그들의 마음을 얻고 구원함에 이를 수 있도록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 자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4,25절을 보십시오. 사도바울은 자기의 자유와 권리를 자제하는 영적인 투쟁을 육상경기에 비유하여 말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육상경기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에서는 1등에게는 최고의 영광이 있습니다. 고대 올림픽에서는 1등에게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씌워주었습니다. 이 승리의 면류관이 주는 영광과 기쁨을 얻고자 많은 선수들이 평소에도 피나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먹는 것을 절제하고 쉬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고  고된 훈련을 자원하여 받았습니다.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하고 어려운 기술에 도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투쟁에도 절제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운동선수가 받는 나뭇잎으로 된 면류관은 금새 시들고 초라해지지만 신자가 받는 천국면류관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아니합니다.  26,27절에서 바울은 경기장에서 달리는 선수가 결승점을 향하여 달려가듯이 분명한 방향 가운데 영적인 투쟁을 하여야한다고 합니다. 바울도 많은 사람을 얻고자,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와 방향가운데 신앙의 경주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모든 일에 절제하며 분명한 방향을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자유와 권리가 분명 있습니다. 이것을 정당하게 쓰는 것은 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죄가 아닐지도 모두 선을 이루지는 못합니다. 더욱이 사람을 얻고 구원하는 일에서는 더욱더 그러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같이 영광의 면류관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여 사람을 얻고 생명을 구원하는 귀한 역사에 동참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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