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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3-11-10 (일) 12:20
분 류 히브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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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히브리서 제1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2013년 가을 특강 히브리서 제1강                                                                     김반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말씀/히브리서 11:1-7
요절/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11장에는 믿음의 영웅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었습니다.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으로 행동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만났을 때도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전진하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했습니다. 우리가 히브리서 말씀을 통해 선진들의 믿음을 배우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는 믿음의 정의, 믿음의 기초와 내용, 하나님의 증거를 얻는 믿음에 대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Ⅰ. 믿음의 정의(1-3)
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믿음과 관련된 말을 자주 합니다. “믿음이 있다, 없다, 믿음이 좋다, 믿음이 어리다.” 또 “믿음으로 도전하라, 믿음으로 기도하라, 믿음으로 살아라, 믿음으로 승리하라.” 등. 하지만 믿음이 무엇이냐고 하면 막상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1절 말씀은 믿음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이 말씀으로부터 믿음에는 두 가지 요소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길 바라고, 스펙을 잘 쌓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들어가길 바랍니다. 경제적인 안정, 건강, 마음에 드는 결혼 상대 등 바라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의 대부분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서 물질적이고 현세적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 8:24절에서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야 할 것은 영적이면서 영원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부활, 예수님의 재림, 영생, 하나님 나라입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들의 실상입니다. 여기서, 실상이란 실제의 상태, 확신을 말합니다. 즉 믿음이란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75세나 된 아브라함을 세상 만민의 복덩이,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삼고자 소망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소망을 영접하고, 우상을 숭배하던 죄악된 삶을 떠나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조카 롯에게 좋은 땅을 양보한 후 힘들어졌을 때, 하나님은 롯에게 “눈을 들어 그 땅을 바라보라,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그 땅을 두루 다녀 보라,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13:14~18). 비록 현실은 땅 한 평 소유하지 못하였지만 아브라함이 그 땅을 바라보고, 그 땅을 밟는 가운데 장차 자신과 후손에게 반드시 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또한 신앙생활한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자식이 없는 것으로 드러누웠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창15:5) 아브라함이 하늘의 무수한 별을 바라보았을 때,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능히 약속의 말씀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런 믿음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에 얽매여 인생을 허비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2015년까지 200명의 유능한 성경선생 양성과 300팀의 1:1을 통한 단대별 학생계승의 기도제목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제목을 붙들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습관적으로 기도하면 바라는 것들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기도할 때 내가 유능한 성경선생이 되어 1:1로 성경을 가르치는 모습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유능한 성경선생의 소망이 있을 때 성경도 더 열심히 읽고 배우고, 더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이루실 소망을 바라보면 간절히 기도하게 되고,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뤄지게 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바라는 것들이 장차 이뤄질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존재의 세계에는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세계와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고 있는 실체의 세계가 있습니다. 공기, 세포, 바이러스 등은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실재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숨을 쉬고 살아 있으면서 “공기가 있나? 없나?” 하며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면서도 “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며 우길 수는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은하계는 천체 망원경으로 볼 수 있고, 원자핵의 내부는 슈퍼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성령, 죄 사함과 구원, 영생 등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들이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실체의 세계입니다. 믿음은 이런 것들의 증거입니다. 증거란 객관적인 증거, 확신이란 뜻입니다. 악명 높은 노예선장이었던 존뉴턴이 회개하고 목사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삶에 헌신한 것은 성령의 역사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원수요, 핍박자였던 바울이 복음 증거에 온 생애를 바치고 순교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와 이방인의 사도로서의 부르심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과 하나님을 만난 후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과 성령님의 존재, 구원의 역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하고 있다는 객관적인 증거입니다. 믿음이란 이렇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이 말은 조상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하나님의 인정과 칭찬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는 사회적인 지위, 권세,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만 하나님은 이런 인간조건과 관계없이 믿음이 있는 자를 인정하시고, 귀하게 사용하십니다.
셋째로,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는 것입니다. 3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천지만물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이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성으로 알 수 없습니다. 우주의 기원에 대한 견해는 크게 진화론과 창조론으로 나뉩니다. 진화론은 가설로부터 시작되므로, 이를 믿을 때 모든 것이 허무하고, 그 인생은 운명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데도 진화론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죄악된 본성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창조론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고 선포하신 말씀대로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고, 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라는 것을 믿을 때, 분명한 존재의미와 인생목적 가운데 복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사용해도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세계는 2%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아직도 볼 수 없는 세계가 98%이상이나 됩니다. 우리가 98%를 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 수 있습니다. 3b절의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니라.”는 말씀은 보이는 현상세계는 창조 이전에 존재했었던 어떤 물질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믿는 것이 신앙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창세기 1:1절 말씀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관념론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믿음이란 맹신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믿는 것이 신앙의 첫출발점이요,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의 믿음이 어떤가를 점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하나님께 바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지, 나의 믿음이 하나님의 창조주권과 목적과 권능에 기초한 것인지 점검하고, 이 위에 믿음을 분명히 세워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믿음의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Ⅱ. 증거를 얻는 믿음(4-7)
첫째, 아벨의 믿음(4). 4절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이 말씀은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에 관한 내용입니다. 제사는 죄악된 인간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제도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는데, 하나님은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종류나 양을 보시기 전에 드리는 자의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베푸신 은혜를 감사하고 경외심을 갖고 드리는 제사,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제사, 순종의 제사를 받으십니다. 아벨은 이런 자세를 갖고 믿음으로 드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그의 제사가 옳았음을 인정하셨습니다. 반면, 가인은 형식적으로, 의무감으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없이 책임감으로, 습관적으로 드렸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자기 의를 내세우며 교만한 자세로 드렸습니다. 제물이 아무리 좋고, 많아도 하나님은 이런 제사는 받지 않으십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세와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는 예배와 헌신, 겸손히 회개하고 경외함과 자원함으로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는 예배와 헌신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몸과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 12:1). 이 시간 내 안에는 가인과 같은 예배와 헌신은 없는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정해진 스케줄대로 했다고 다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 것보다 그것을 하나님이 받으시나 안 받으시나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의식하고, 아벨과 같은 믿음의 자세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지만, 제사를 거절당한 가인에 의해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의 삶은 허무하고 덧없이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4b절은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아벨은 죽었지만 그의 믿음은 살아서 오늘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만을 의롭다고 인정하시고, 기쁘게 받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벨의 믿음의 삶은 지금도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하면서 만사형통한 삶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일이 잘 될 때는 “역시 하나님이 최고야!” 하며 얼굴에 화색이 돌고 스피릿이 충만합니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서 그런 축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뭔가 일이 꼬이고, 기도와 정반대의 결과가 나오면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 않으니까 그런 거지.” 하며 믿음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성취지향주의로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해서 반드시 결과가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물론 결과가 좋으면 금상첨화겠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결과만 보고, 믿음을 평가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심을 명심해야 합니다. 시작도 믿음으로 하고, 과정도 믿음으로 했다면 하나님은 결과에 상관없이 그 사람이 믿음으로 한 그 자체를 기쁘게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믿음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드린 것만이 영원히 남습니다.
둘째, 에녹의 믿음(5,6).  5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의 생애의 특징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병들어 죽든지, 아니면 불의의 사고로 죽든지 하여튼 누구나 다 죽습니다. 죽음에는 고통이 따르므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진 것은 에녹에게 임한 특별한 은총이요 큰 축복입니다. 그가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에녹이 살던 시대는 가인들의 후예들이 번성하여 심히 불경건하였습니다. 강퍅한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원망과 불만을 토하며 정욕대로 행했습니다(유다서 1:14~16). 이런 시대에 믿음으로 살면 왕따를 당하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창5:24). 불신적인 분위기에서 믿음의 중심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말씀을 전파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1,2년도 아니고 무려 300년 동안이나 세상과 구별된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에녹의 믿음의 삶을 기뻐하시고,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우리를 영광스런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까? 6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많은 헌금을 드린다고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많은 십자가를 지며 하나님 역사를 섬긴다고 기뻐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행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믿음으로 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배우고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살면서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 쉽습니다.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힘든 상황에 처할 때,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지 하나님이 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고, 하늘에서 만나를 비 같이 내려주시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힘든 상황이 되면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마실 물이 없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시험하기까지 했습니다(출17:7). 또한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열 명의 수령들은 그 땅에 대해 악평하고,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에 비해 자신들은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이런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밤새 통곡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한 지휘관을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을 경험했지만, 열 번이나 하나님을 시험하고 불신하다가 40년 동안 광야훈련을 받았습니다(민14:22,33). 하나님은 항상 현재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출3:14).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는 마음이 부패한 자요, 참으로 어리석은 자입니다(시14:1). 내가 처한 형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사랑을 믿을 때, 하박국 선지자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둘째로,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상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누구의 말이 옳을까요? 둘 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틀린 것 같기도 하고 헷갈리는 말입니다. 상만 받기 위한 신앙생활은 구복신앙으로 옳지 않은 자세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족하여 믿음의 길에서 떠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지 않고 신앙 생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의와 교만에 빠지고, 피해 의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상을 바라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어떤 상을 바라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적인 성공이나 물질, 양 등을 하나님의 상급으로 생각합니다. 또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상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얻기 위해 겉으로는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남들과 비교하며 하나님께 섭섭한 감정을 품고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합니다. 섭섭병에 걸려서 툭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동역자에 대해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자기만족과 자기영광을 구하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으로 기쁨도 없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진정한 상급과 축복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것은 영생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가장 큰 상은 하나님 자신입니다(창15:1). 우리가 하나님 자체를 추구할 때,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외적인 열매에 집착하지 않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기쁨 가운데 자기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간 신앙생활의 동기와 목적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믿음으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마6:33).
셋째, 노아의 믿음(7). 7절 말씀을 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하나님은 노아에게 부패한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창6:13~18). 그리고 홍수심판을 대비하여 잣나무로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방주 짓는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바닷가도 아니고, 산 속에서 배를 만들고 있는 노아를 향해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며 비난했을 것입니다. 노아가 아무리 홍수심판의 메시지를 전해도 그들은 롯의 사위들과 같이 농담으로 듣고 가볍게 여겼을 것입니다. 노아 자신도 때로는 불신과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꼭 잣나무로만 지어야 하나? 이렇게 크게 지을 필요가 있나? 과연 홍수심판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인생을 즐기며 사는데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되지?” 하지만 노아는 믿음으로 내외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120년 후에 있을 홍수심판에 대비하여 경외심을 갖고 방주를 준비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신 기한에 홍수가 일어나 방주 안에 있던 노아와 그의 가족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노아의 방주 짓는 삶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요, 이를 믿지 않은 사람들은 홍수 심판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불신앙에 대해 정죄를 받게 되었습니다. 노아는 심판을 믿는 믿음으로 세상에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노아 시대와 방불합니다. 죄악이 하늘을 찔러 하나님의 불심판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심판의 날은 도적 같이 오고,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날에는 인간이 의지하던 과학 기술도 아무 힘을 못 쓰고 불에 녹아버립니다(벧후3:8~14). 이런 시대에 우리는 노아와 같이 보지 못하는 일에 경외심을 갖고, 믿음으로 방주 짓는 생활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과 욕심대로 행하는 세상에 살면서 때로는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도 순수하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고 편한 넓은 문으로 들어갈지라도 그 길의 종착점은 멸망임을 알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과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지만 영적으로 무지했습니다. 성경읽기나 기도는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냥 몸만 왔다갔다헸습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대학에만 합격하게 해주시면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 잘 하겠다.’ 며 간절한 심정으로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은혜를 잊고 술 마시고 노래하며 세상 잔재미에 빠져 신나게 놀았습니다. 교회는 형식적으로 다니면서 다급할 때만 서원기도하며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금식기도원에 가서 신유와 방언기도를 체험하기도 했지만 하나님과의 깊은 인격적인 만남이 없어 불신자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배우는 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자기영광과 자기를 기쁘게 하는 전형적인 구신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도 수 없이 은혜를 배반하고, 받은 은혜를 감당하지 않았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번 사랑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제대를 앞두고 장래문제로 염려하다가 염치불구하고 다시 간절히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취직만 시켜주시면 이젠 정말 하나님을 잘 믿겠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하나님은 형편없는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만난 한 목자님을 통해 86년 가을 창세기 아카데미에 초청받고, “창조냐 진화냐” 세미나를 통해 하나님은 관념적인 존재가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전능하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목자님과의 일대일 말씀공부를 통해 점차 영적인 눈이 뜨이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자 믿음의 결혼을 결단했을 때, 순수하고 아름답고 절대적인 믿음과 영적 분별력이 있는 룻 동역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영적으로 헤맬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자르지 않으시고, 사람 낚는 어부로서의 소망을 붙들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을 오래 참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며 점차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빚어 가시고, 저희 가정을 의대, 간호대, 음대, 동덕여대, 서울과기대, 일본, 약대 개척역사에 귀하게 사용해주셨습니다. 귀한 믿음의 두 아들과 가정복음화를 이뤄주시고, 직장에서도 교사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계신 것과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은 영육 간에 넘치도록 축복해주셨습니다. 제가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은혜를 잘 감당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도 어느덧 살아 온 인생보다 남은 인생이 적은 세대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썩어 없어질 이 땅의 것들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산 소망을 굳게 붙들고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믿음의 인생을 살겠습니다. 유능한 성경선생으로 성장하여 12제자를 양성하는 비전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합니다. 제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복음역사에 헌신하는 종으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실제 삶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의 증거를 얻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믿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이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심판을 의식하고, 경외심을 갖고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진들의 믿음을 잘 배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로 성장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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