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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03-15 (일) 12:40
분 류 요한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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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요한복음 제1강] 말씀이 육신이 되어

2015년 요한복음 제1강                                                                          최바울

말씀이 육신이 되어

말씀/요한복음1:1-18
요절/요한복음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복음서는 예수님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왜 비슷한 이야기를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네 사람이나 기록을 했을까요? 2차원 2D보다 3차원 3D가 더 입체적이고 사실에 가깝듯이 네 사람이 다른 관점으로 기록한 사복음서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입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예수님에 관해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복음서 중 제일 마지막에 기록된 요한복음은 세배대의 아들이요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제자 요한이 1세기 말 경에 에베소에서 기록한 책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세 공관복음서와 달리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실체를 부정하는 가현설(docetism)을 공박하기 위해 기술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입니다. 요한복음은 특히 이 서론이 중요합니다. 고대 기독교인들은 병이나 악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이 서론 말씀을 가죽에 새겨서 목에 걸고 다녔다고 합니다. 신학자 볼트만은 이 서론은 요한복음의 신비이기 때문에 요한복음 전체를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곧 서론만 잘 이해해도 요한복음 전체를 이해한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서론을 통해서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또 다른 이름은 독수리 복음서입니다. 다른 새는 태양을 직접 보면 눈이 멀지만 독수리만큼은 태양을 직접 볼 수 있는 특별한 눈을 갖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독수리와 같은 눈으로 태양처럼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보고 기록했습니다. 우리도 봄학기 요한복음을 통해서 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예수님을 통해서 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제대로 알고 이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과 빛, 은혜와 진리를 누리는 인생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1-3) 1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의 ‘태초’가 우주가 창조된 시간의 출발점이라면,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는 그 시간조차도 아직 창조되지 않았던 영원 전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태초에 ‘말씀’이 계셨습니다.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로 ‘로고스’를 뜻하는데 당시 지성인이었던 헬라인들은 세상이 무질서해 보여도 자연에 규칙적인 사계절이 있고, 모든 생명에 예외없이 생로병사가 있으며, 밤하늘의 별들이 오차없이 운행하는 것들을 보면서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태초에 만물을 존재케 하고 다스리고 있는 ‘이성적인 원리(principle)’가 있을 것으로 믿고 이를 ‘로고스’라 불렀습니다. 한편 유대인들도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했던 이 ‘로고스’에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저자 요한은 당시 헬라인들과 유대인들 모두에게 익숙한 이 ‘로고스’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럼 왜 처음부터 ‘태초에 예수님이 계셨고 이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지 않고 굳이 예수님을 ‘말씀’으로 표현했을까요? ‘말씀’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계시의 전달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그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는 전달자이십니다. 그런데 단순히 ‘계시’의 전달자의 역할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의 전달자가 되셔서 천지창조에 개입하셨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 은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것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선포합니다. 이 예수님은 죄로 인해 창조질서가 무너진 세상에 오셔서 만물을 그가 지은 바 대로 깨끗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원하는 직장에 취업이 되기만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만 하면 새로 태어나 이전의 나와는 다른 삶을 살게 되리라는 소망을 갖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바뀐다고, 새로운 사람들과 사귄다고 내 인생이 새로 태어나지 않습니다. 본래 나를 지으신 분, 누구보다 나를 잘 아시는 분, 태초에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신 예수님만이 나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의 생명의 근원이 되십니다.(4-13) 4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모든 것을 창조하였습니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때 주어진 생명은 단순히 숨이 붙어 있는 목숨이 아닙니다. 이 생명은 누가 봐도 ‘살아있네!’ 할 수 있을 정도의 생명력이 넘치는 생명입니다. 세월이 가도 시들거나 병들지 않는 생명이요, 생명보험에 들 필요가 없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창3장을 보면, 창조주께서 주신 바로 그 영원한 생명을 죄 때문에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받은 생명과 비교할 때 지금 우리가 누리는 생명은 생명도 아닙니다. 인생 길어봐야 백세요 그 중 청춘의 생명은 너무나 짧습니다. 더 안타까운 일은 그 짧은 젊은 날 동안에도 주어진 생명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죄 때문에 죽은 생명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태초에 생명을 주셨던 바로 그분에게서 우리는 다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단순히 조금 더 오래 살게 해주는 생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은 죽지 못해 하루하루 연명하는 생명이 아니라 도전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며 새 역사를 창조해내는 생명입니다. 이 땅에서 간신히 자기 목숨하나 연명하는 수준의 생명이 아니라 죽어가는 다른 생명들을 살려내는 생명입니다. 새내기 시절에만 반짝 하다가 시들어 버리는 생명이 아니라, 저처럼 중년이 되어도 장년이 되어도 노년이 되어도 열정이나 꿈과 비전이 시들지 않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하늘에서 주시는 신령한 생명이요,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러면 이 생명은 사람들에게 어떤 역할을 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의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을 때 우리의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사람은 어두움을 헤매는 사람과 같습니다. 어두움에 있는 자들은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인생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해 다른 사람들 흉내내다가 끝나버립니다. 인생의 존재 의미와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허무와 운명주의에 시달리며 살아가거나 쾌락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빛이 필요하고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인격적으로 비추는 참 빛이 되십니다.(9) 예수님은 요한복음 8장 1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저희가 봄학기 요한복음 말씀을 통해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 예수님을 따르므로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성경에서 어두움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어두움은 속성상 빛을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빛이 어두움에 비취었으나 사람들은 어두움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빛 되신 예수님을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은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오랜 시간 함께 있던 인질범들에게 동화되어 오히려 자신들을 해하려는 범인들에게 호감을 나타내는 심리현상을 말합니다. 우리도 어두움에 오랜 시간 길들여지면 이런 증상을 보이게 됩니다. 사단은 우리를 인질로 삼고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기보다 육신만을 위한 삶을 살도록 유혹함으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들을 해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거부하고 죄책감도 느끼지만 나중에는 어두움에 동화되어 중독되고 즐기게 됩니다. 어둠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빛으로 나아오기를 두려워하고 도리어 깊은 어둠으로 숨어들고 빛을 대적합니다. 오랜 시간 어두움에 있다보니 어두움이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느껴지게 되고 도리어 밝은 빛은 눈이 부실 뿐 아니라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 같아 싫어하게 됩니다. 이들에게 어두움은 빛이 되고 빛은 어두움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사망과 어둠의 권세가 그를 지배하게 되고 결국은 멸망당하고 맙니다. 그러나 빛으로 나아오는 자, 빛을 기뻐하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임하게 됩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와 축복을 얻게 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우리가 생명의 수여자요, 참 빛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과거 우리는 어두움의 자식이요, 죄의 노예요, 사망 권세에 포로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우리는 소속과 신분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가 달라지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달라지고, 우리 삶의 주관자가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우리 인생의 고민과 어려움을 털어놓고 도우심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죄의 세력, 사망의 권세, 어두움의 그림자가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빛의 자녀요, 빛의 증인으로서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의 사자들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셋째로,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14-18) 다같이 14절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는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 “그리스도가 인간으로 오신 것처럼 보였지만 육체로 오시지 않았으며 그의 수난도 하나의 가상이었다”라는 소위 가현설(docetism)을 주장하며 예수님이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심으로 우리가 보는 은혜와 진리가 무엇입니까?
첫째,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본래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요 창조주로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과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의 모든 영광과 존귀와 하나님으로서 누리실 수 있는 것들을 다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연약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것도 비천한 말구유에서 연약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를 섬기시고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습 그대로 있어서는 결코 우리 인생들을 섬기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거룩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우리를 바라보시며 그저 불쌍히 여기시기만 했다면 구원 역사는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육신의 세상에 있는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높고 높은 저 하늘의 천성을 떠나 낮고 낮은 이 땅에 오셔야만 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은 실로 은혜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둘째,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형벌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죄인들을 아무런 형벌 없이 용서하신다면 그것은 ‘죄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하는’ 진리와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성품에 위배가 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고민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어 결국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만 하고 하나님은 이런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고 사죄의 은혜를 베풀어 구원하기를 원하신다는 딜레마가 생겼습니다. 또한 인간들을 대신해서 대속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런 죄가 없는 완전한 인간이어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본체로서 죄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의 되신 이 예수님의 모습 속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즉 하나님의 진리가 충만하심이 드러납니다.
사도 요한은 독수리와 같은 눈으로 이 어려운 딜레마를 단번에 해결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외칩니다. 14절 후반절을 보십시오.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사도요한은 이 예수님에게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이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였습니다. 성육신 예수님은 우리를 감당해 주시고, 이해주시고 사랑해 주시기 때문에 은혜가 충만합니다. 또한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해주시고, 때로는 책망하시고 훈련하여 키워 주시기 때문에 진리로 충만하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피조물에 불과한 우리 인생들이, 그것도 범죄함으로 심판 받아 마땅할 우리 죄인들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각 사람의 죄문제, 인생문제를 해결해주시고 마침내 영생을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 우리에게 이처럼 충만한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죄인을 깊은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시고 생명력이 가득한 인생을 살게 하시기 위해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는 재수를 거쳐 92년 경희대학교 치과대학에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이제 새롭게 태어나 새 인생을 살 수 있으리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에 들어왔어도 내면의 죄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당구장 만화방 노래방 술집 등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죽지못해 목숨만 연명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UBF 목자님들을 통해 창세기 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   ” 말씀의 빛을 비추어 주셨을 때 허무와 무기력 무절제왁 같은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도전하고 정복하는 빛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학생시절 그리고 졸업 후 평신도 치과의사로 근무하며 말씀에 거했을 때 조금씩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새로워지며 직장과 가정과 캠퍼스에서 다른 생명을 살리고 복을 나눠주는 복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생 하늘 영광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셔서 저와 임마누엘 하여 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간직하고 이를 잘 배워서 캠퍼스 지성인들과 함께 거하며 말씀을 비추는 성경선생의 직분을 감당하는 자가 되게 하시길 기도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역사는 모세를 통해 주어지는 율법과 대조가 됩니다. 율법은 노예근성에 찌들어 육신의 소욕과 감정대로 살아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죄로 깨닫게 하고 구원이 절실히 필요함을 깨닫게 해 줍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역할을 합니다(갈3:24). 또한 율법은 우리에게 있는 노예근성을 빼고 쓰실만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도록 훈련시킵니다. 그러나 문제는 율법이 우리에게 구원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율법으로 말미암아 정죄와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진리는 우리에게 생명과 참 자유와 구원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영원하신 하나님을 보게 하시고 만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심판 받을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봄 학기 이 예수님을 잘 배우고 감격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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