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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01-29 (일) 12:52
분 류 야고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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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야고보서 제2강]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2012년 야고보서 2강                                                                        고영훈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말씀 / 야고보서 2:1-26
요절 / 야고보서 2:18“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오늘 말씀은 신자들에게 두가지 권면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하는 내용이고 두 번째는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를 행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을 대할때도 차별하지 않고 긍휼의 마음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하여 ‘행하는 믿음’을 잘 배워서 이 말세의 때에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귀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I.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1-13)
1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야고보 선생은 먼저 신자들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광의 주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영광스러운 부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곧 재림주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영광 가운데 임하실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과 하나 된 사람들이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스림을 받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먼저 영광의 주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행해야 합니다. 야고보는 이런 신자들이 제일 먼저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입니다. 여기서 ‘차별한다’는 것은 사람을 공평하게 판단하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얼굴이나, 신분, 지위에 따라 사람을 구별해 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본문에는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에 대한 차별이 있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회당에 손에는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 왔습니다. 이 사람은 부자이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때 신자들이 그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이면서 가장 좋은 자리로 안내하였습니다. 그 다음엔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에게는 반말을 하며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고 차별을 하였습니다. 이 가난한 사람은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겠습니까?
세상에서는 사람을 차별대우합니다. 학력으로 차별하고, 출신지역을 따지고, 빈부로 차별하며 외모로 차별합니다. 타고 다니는 차도 차별해서 작은 경차를 타고 다니면 도로에서도 무시 당하고 주차장에서도 괄시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히 사람들은 보이는 외모로 그 사람 전체를 평가해 버립니다.
여기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미국 보스톤의 하버드 대학 정문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비석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유명한 유래가 있습니다. 빛바랜 줄무늬 드레스를 입은 부인과 허름하고 헤어진 양복을 입은 남편이 하버드 대학 총장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비서에게 ‘총장님을 뵙고 싶습니다’ 정중하게 말하였습니다. 비서는 이 부부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는 ‘총장님은 하루 종일 바쁘실 것입니다’ 말하였습니다. 부인이 ‘그러면 기다리겠습니다’ 말하였습니다. 몇 시간이 흘러 비서는 이 부부가 돌아갔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서는 당황하여 총장에게 가서 ‘잠깐만 만나 주시면 곧 돌아갈 것입니다’하였고 총장은 귀찮다는 듯이 그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부인이 그에게 말하였습니다. ‘우리에겐 하버드에 1년을 다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애는 하버드를 대단히 사랑하였고 여기에서 무척 행복해 했습니다. 그런데 약 1년 전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캠퍼스 내에 아들을 위한 기념물을 하나 세웠으면 합니다.’ 총장은 ‘아니 죽은 사람을 위해 모두 다 동상을 세운 다면 캠퍼스는 공동묘지가 될것이기 때문에 곤란합니다’ 부인이 ‘총장님! 그게 아니라 동상을 세울려는게 아니고 하버드에 건물을 하나 기증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총장이 ‘아니 건물하나 짓는데 돈이 얼마나 들어 가는지 아십니까? 현재 하버드 내에는 750만 달러의 건물들이 들어차 있습니다’ 잠깐 동안 부인은 말이 없었습니다. 총장은 드디어 이들이 돌아가겠구나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부인이 남편에게 조용히 말하였습니다. ‘대학교를 하나 설립하는데 비용이 그것밖에 안 드는가 보죠? 그러지 말고 우리들이 대학교를 하나 세우지 그래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총장은 놀라고 얼굴이 새파래졌습니다. 그 후 이들 부부는 하버드가 아들을 더 이상 돌보아주지 않는 것을 알고 캘리포니아 여행길에 올랐고 거기에서 아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들의 이름(남편의 이름, Leland Stanford)을 따서 스탠포드 대학교(Stanford Univ.)를 설립하였습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사회에서는 이런 비슷한 종류의 일들이 참으로 많이 일어 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어떤 관점에서 보십니까?
학력을 보십니까? 외모, 가문, 인간적 재능, 빈부를 보십니까? 또 인종차별을 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실 때 그 안에 믿음을 보십니다. 독생자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가 하는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외모보다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을 보면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기름 부을 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는 다윗의 형 엘리압을 봤을 때 잘생긴 얼굴과 키가 큰 것을 보고 한눈에 반하여 “여호와의 기름 부을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16:7)  하나님은 막내 아들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그는 어리고 형들보다 외모가 좋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 외모를 보고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자들도 아니었고 학식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갈릴리 촌구석의 무식한 어부들이었고 공인된 죄인 세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외모나 인간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그들 마음 중심에 있는 믿음과 영적 소원을 보고 그들을 제자 삼으신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4).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택하십니까? 5절을 보십시오. 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 가난한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믿음에 부요하게 하십니다. 가진 것이 없기에 오히려 마음은 겸손하고 낮아져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내면성과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아름답고 찬란한 천국의 자녀가 되게 하시어 그 나라를 상속받게 하십니다. 6,7절을 보면 그 당시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부자들의 횡포가 나옵니다. 그들은 신자들을 억압하며 채권자의 입장에서 법정으로 끌고가 무자비하게 다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름다운 이름인 “그리스도의 이름”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귀하게 대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기에 어떤 계명적 근거가 있습니까? 8,9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참된 사랑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주님의 계명의 말씀에 순종할 때 이루어 질수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듯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보일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요, 최고의 법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한다면 율법에서도 심각한 죄가 됩니다(9).
10,11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 야고보는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때 자기가 좋아하는 율법은 잘 지키고 자기가 마음에 안드는 계명은 지나쳐 버리는 속성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의 율법을 대할 때 아무리 마음에 안든다 하더라도 그냥 지나쳐 버리면 안되겠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5:19).
12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율법은 우리 영혼을 얽어매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율법을 통해 훈련을 받고 내면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런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고자 할때 우리는 죄의 소욕과 싸우며 우리 영혼은 참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율법을 어기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율법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특히 13절 말씀은 긍휼을 기준으로 심판 받는다고 말합니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13).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가지시는 마음은 근본적으로 긍휼입니다. 범죄로 가득한 이 세상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보다는 먼저 긍휼을 베푸십니다. 긍휼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을 차별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긍휼을 덧입혀 주실 것입니다.

II.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라(14-26)
14절을 보십시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저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유익이 없다고 강조합니다. 신자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자신의 삶에도 유익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도 유익이 없고 손해가 나고 망하게 된다면 반드시 믿음으로 살 필요가 있겠습니까? 15,16절은 그 실제적인 예가 나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사람에게 말로만 위로해주고 그들에게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안됩니다. 그들을 정말 불쌍히 여겼다면 몸을 움직여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 주고 따뜻하게 입히고 배부르게 먹도록 해 주는 것이 진정으로 유익한 일입니다. 행하지 않고 말로만 하는 신앙생활은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17).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 이 말씀은 한마디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이 보여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제대로 믿는다면 행하게 됩니다.

요즘 한국의 기독교는 그 위상이 말이 아닙니다. 인터넷 상에서 기독교는 ‘개독교’라고 불립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이처럼 욕을 먹는 이유는 교회와 신자들이 사랑과 희생을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열심히 믿는다고 외치면서 실제로는 신자들의 삶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심지어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시대의 흐름속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행함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은 살아있는 유기체와 같아서 신진대사가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으면 점점 믿음이 굳어져 버립니다. 우리가 처음 말씀의 은혜를 뜨겁게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과의 첫사랑으로 마음이 늘 뜨겁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싱글 벙글 웃으면서 전도하고 간증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신앙의 권태기에 빠져 첫사랑의 기억도 가물가물 하고 무기력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신을 진단해 볼때 주일 예배에 왔는데도 감사나 영적 기쁨이 없고 말씀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믿음의 신진대사에 문제가 생긴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을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곧 믿음이 정체되고 서서히 죽게 됩니다. 그러면 이 정체된 믿음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법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행함’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할 때 다시 믿음에 생기가 돌고 신진대사가 활발해 지게 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침체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는 이유도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의 문제라 볼수 있습니다. 지금의 신자들은 과거보다 말씀도 더 많이 듣고 다양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듣고 아는 것은 너무나 많은데 손과 발이 전혀 움직이질 않습니다. 수족을 못쓰는 영적 중풍병에 걸려 버린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영적 중풍병에 걸려서 알고 믿는 만큼 행하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은 물론 교회전체가 침체되는 것입니다. 행함은 자신의 믿음을 되새김질 하여 믿음의 깊은 맛을 보게 해주며 또한 행함은 믿음의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어 믿음이 침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해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깨달음이 있으면 곧 바로 이를 행함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하루의 첫 시간을 드리고 또 때마다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캠퍼스 영혼들이 이웃이고 넓게는 세상 사람 모두가 이웃입니다. 이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자신이 가진 것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성경 지식, 재능들을 가지고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어 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깊이 자신을 돌아보고 믿음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행함이 부족한 자신의 신앙생활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하며 말씀공부도 많이 하고 보고 듣는 것도 많아 아는 것은 많은데 그에 걸 맞는 행함은 부족하였습니다. 특히 캠퍼스 양들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 열심히 해야 될 심방과 피싱이 부족하였습니다. 센터에 찾아 오는 양들이나 반갑게 맞이해 주며 섬기고자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저에게는 가까이에 있는 경희대 캠퍼스가 아주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동역자가 열심히 캠퍼스에 올라가니 나는 센터에서 내게 주어진 십자가들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루하루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다고 하였지만 늘 뭔가가 찜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해를 시작하기 전에 팀장들을 중심으로 캠퍼스 여리고 작전을 명령하셨습니다. 7일 동안 새벽에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한 발 한 발 캠퍼스 땅을 밟아 나가니 조금씩 조금씩 제 마음에 캠퍼스를 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7일째 새벽 4시에 일어나 두시간이나 걸려 일곱바퀴를 돌고 나서 평화의 전당 앞에서 캠퍼스를 바라보고 다같이 외쳤습니다. ‘캠퍼스의 죄악된 성벽아 무너져라’ 이렇게 직접 손과 발을 놀려 캠퍼스 땅을 정탐하니 올 한해 캠퍼스를 오르내리며 열심히 캠퍼스 사명을 감당하는 비젼을 굳게 덧입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말씀을 통해 믿는 만큼 행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도 더 열심히 하고 성경말씀도 학자적인 자세로 열심히 연구하고 캠퍼스 양들을 사랑하여 직접 캠퍼스에 오르며 심방과 피싱도 열심히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올 한해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역사를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온전한 영광 돌리는 신앙생활 해 나갈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19절을 보십시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을 믿는 것은 제대로 된 믿음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이 있다고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 정도는 귀신도 믿고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에 도착하시자 이를 귀신이 먼저 알아보고 달려와 그 앞에 절하며 말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막5:7)” 귀신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 다 알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것은 사람들이지 귀신은 성경의 진리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귀신은 다 알고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없다면 귀신보다 나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야고보는 탄식하며 말합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20)”

이제 저자는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라합의 믿음의 예를 들어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은 75세에 신앙출발을 하였지만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는 이때 마음이 너무 힘들어 장막에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밖으로 데리고 나가 밤하늘의 뭇별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이때 아브라함은 하늘을 바라보며 뭇별과 같은 자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반드시 수많은 자손들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를 그의 의로 여겨 주셨습니다. 이제 그 후로 약 30년의 세월이 흘러 아브라함의 믿음은 그가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역시 아들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므로 순종을 통해 살아있는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22절을 보십시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믿음과 행함은 함께 갑니다. 믿는 곳에 행함이 있고 행하는 곳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또한 행하면서 그 믿음은 온전하게 됩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뒤따른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행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라는 것도 잘 알게 됩니다.

기생 라합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여리고 성의 기생 라합은 들은 소문을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야 말로 상천하지의 하나님, 하늘과 땅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여리고 사람들이 믿어온 신들은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자기와 자기 가족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라합은 이스라엘의 정탐군들이 왔을 때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안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녀는 의롭다 함을 받고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을 공격해 왔을 때 가족과 함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 믿음을 따라 용감하게 행함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자,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우리 몸에서 영혼이 떠나가면 우리 몸은 그야말로 시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전혀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고 언제나 함께 가는 것임을 잘 알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앞으로 우리 신앙생활이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는’  신앙생활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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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9강] 혼자 할 수 없으리라 관리자 2009-06-07 3196
717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8강]진실로 속히 오리라 리스닝 2010-02-21 3195
716 누가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1강<청년아 일어나라>-천수원 관리자 2009-04-13 3191
715 마태복음 [2009년 마태복음 제36강]인자가 온 것은 관리자 2009-01-26 3189
714 로마서 [2012년 로마서 제8강]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관리자 2012-12-02 3188
713 시편 [2015년 신년말씀 제1강]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관리자 2014-12-28 3187
712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강] 학대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니 관리자 2009-04-14 3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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