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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2-12-02 (일) 12:21
분 류 로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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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로마서 제8강]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2012년 가을 로마서 제8강                                                              한아브라함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말씀/ 로마서 6:1-23
요절/ 로마서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요즘 경제가 어렵고 사회 분위기가 무겁습니다. 교회는 사회에 대하여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아니 비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캠퍼스도 영적으로 어두워져만 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다니는 옛 친구를 만났습니다. ‘UBF도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무기력한 크리스찬, 맛을 잃은 소금이 되게 하는 것일까요? 예배도 드리고 성경공부도 합니다. 소감도 씁니다. 할 것은 다하고 있는데 ...
  본문에서 바울은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삶이 따르지 않는 지식은 그 사람을 형식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교만하게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사도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 시간 우리의 눈을 뜨게 하사 말씀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전달되어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계기가 되는 예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사망의 길을 가지 않고 영생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 1 장, 그리스도 안에서 산자로 여기라.
  우리는 지난 로마서 5강 말씀을 통하여 성도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자임을 배웠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나?’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제 죄 짓는 문제 고민할 것 없어!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했잖아? 죄 많이 지은 사람의 소감에 은혜가 넘치지. 그래 마음껏 죄 짓고 멋지게 회개 하는거야.’ 이런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자인지, 은혜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입니다. 죄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은혜가 넘치기는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완악해집니다. 영적소원이 사라집니다. 은혜는 온데간데 없어집니다. 죄의 세력이 그를 잡아 죄의 종이 되어 버립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단호히 말합니다. 2절을 보십시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그러면 다른 질문이 뒤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 죄 많은 세상 죄가 넘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죄와 싸워 승리하는 것은 정말 가능할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대답은 ‘그렇다’라는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죄로부터 자유한 삶, 승리하는 삶을 살기 위한 비결이 오늘 말씀에 나옵니다. key word로 3가지 동사가 있는데 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알라’ ‘여기라’ ‘드리라’는 것입니다. “알라”는 단어는 3절, 6절, 9절에 계속 나옵니다. 무엇을 알아야 합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우리도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세례는 잠긴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때는 세례를 줄때 오늘날 침례와 같이 물속에 몸을 온전히 잠기게 하였습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옛 사람이 죽는 것이요, 물속에서 일어나는 것은 부활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사도바울은 이 사실을 연합의 원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3-8절까지 ‘함께’ ‘본받아’ ‘합하여’ ‘연합하여’ 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3-5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연합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예수님과 연합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으심 장사지내심 부활하심에 이미 동참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지시고 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 나도 죽은 것이고 예수님이 부활 했을 때 나도 영적으로 부활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의 옛사람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종노릇 하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입니다. 다시는 죄가 우리 안에서 왕 노릇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우리는 이제 죄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지배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8절 9절을 보십시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의 특권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과거 사망의 세력이 우리를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두려움 허무 무기력 운명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죄와 벗하며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파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더 이상 사망권세에 시달리지 않고 영생의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죄를 다스릴 힘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의 종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이 사실을 아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여기서 여길지어다는 명령문입니다. 여기라는 말입니다. 여기라는 말은 믿으라는 말보다 더 강한 뜻입니다. 확실한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직도 ‘나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있는데 어떻게 옛사람이 죽었다고 말할 수 있나?’ 라고 스스로 회의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말씀을 받을 때 성령 충만 했다가 죄에 빠짐으로 depress 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아예 깊은 절망에 빠져, 다시 일어나는 것을 스스로 포기해 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보면 실족합니다.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나의 옛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사셨기 때문에 나도 새사람으로 살아난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반복해서 죄를 범한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마십시오. 죄사함 받은 게 맞는지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내가 누구인지부터 분명히 알고 더 나아가 새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묻는다면 ‘나는 예수님과 함께 산 새 사람입니다.’ 대답해야 할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산 자인 것입니다.
  거지왕자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임금이 순시차 궁을 나갔다가 다리 밑에서 거지소년을 보았는데 마음에 드셨습니다. 그래서 그 소년을 데리고 궁으로 와서 ‘오늘부터 이 소년을 내 아들로 삼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거지소년은 이제 일방적인 은혜로 왕자가 된 것입니다. 거지는 이제 죽고 왕자로 새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잘 시간이 되자 으리으리한 왕자 방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 거예요. 거지왕자가 궁을 나가려고 합니다. 신하들이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이 거지왕자는 나는 본래 거지여서 다리 밑에서 자는 것이 편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신하들이 말합니다. ‘아니되옵니다. 왕자님이 주무실 곳은 왕자 방이옵니다.’ 아침이 되자 또 궁 밖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시녀들이 어디가시느냐고 묻자 다리 밑 개천 물로 세수 하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 왕자에게 필요한 것이 거지의식일까요? 왕자의식일까요? 거지는 죽고 나는 왕자라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합니다. 당분간 거지같은 행동이 나오겠지만 왕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찬이 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의롭다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죄짓는 삶이 계속될지 모릅니다. 그래도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옛 사람은 죽고 예수 안에서 나는 새 사람이라고 여겨야 합니다. 영적으로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해야 합니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 지어다.’ 영적으로 더 이상 거지가 아니라 왕자라고 여긴다면 서서히 변화 될 것입니다. 성화 될 것입니다. 죄와 싸울 힘이 생길 것입니다. 더 이상 죄에 쉽게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죄에 빠지더라도 절망치 않고 즉시 회개하고 돌이킬 것입니다. 설령 심각한 죄를 범했더라도 그 범죄가 우리의 구원을 흔들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다시 산 새 생명입니다.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죄 속에 거하지 않습니다. 즉시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구원의 확신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인 것입니다. 이토록 큰 축복을 받은 우리가 죄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아멘!

제 2 장, 너희 지체를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하여 죄의 종에서 벗어난 사실을 알고 더 이상 거지가 아니요 왕자로 여긴다 할지라도 죄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죠. 우리 주변에 여전히 죄가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우리를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치 말고’ 우리 몸을 죽을 몸이라고, 몸의 사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몸뚱아리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죽을 몸이라고 했습니다. 거듭난 속사람은 죄에서 자유하지만 내 몸은 그렇지 못합니다. 내 몸은 여전히 본능을 따라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몸의 사욕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본능에 충실하라“는 멋있는 말을 해서 이 말이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갈 데까지 가보자고 합니다. 본능에 충실하라는 말을 따라 하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타락했습니다. 이는 멋있는 말이 아닙니다. 본능에 충실 하라가 아니라 본능을 따르지 말라가 정답이죠. 본능 즉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하십니다. 우리 육신은  그냥 놔두면 죄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욕의 죄를 즐기고 싶고 거짓말 쉽게 하게 되고 원망 시기 불평하는 말이 입에서 술술 나옵니다. 이를 컨트롤 하지 않으면 갈 데까지 가게 됩니다. 갈 데까지 가보자는 게 요즘 스타일인데 이는 잘못된 스타일입니다. 결국 불의의 무기로 사단에게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겠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너희 자신을 드리되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십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예수님이 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생명을 덤으로 받은 자 같이 감사와 기쁨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생활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지체란 손 발 눈 등의 몸뿐만 아니라 생각 느끼는 감정 생활 등 삶 전체를 의미 합니다. 이 지체를 자신을 위해 쓰지 말고 하나님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중심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지체를 무기라고 표현했습니다. 무기란 도구로서 누가 사용하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 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칼이 외과의사의 손에 쥐어지면 생명을 살리는데 쓰임 받겠지만 강도에게 주어진다면 생명을 죽이는데 쓰여 질 것입니다. 죄에 드리면 죄의 무기, 하나님께 드리면 의의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중간지대 무소속은 없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양다리 걸치면 어떻게 될까요? 죄의 종으로 굴러 떨어질 것입니다. 내가 불의의 무기가 되면 나로 인해 많은 영혼들이 고통받을 것입니다. 의의 무기가 되면 나로 인해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어려워만 보이는 죄의 소욕을 물리칠 수 있는 비결을 배웁니다.
  죄의 소욕을 물리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비장한 결심을 해도 안 됩니다. 수도원에서 생활한다고 되지도 않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나의 지체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권면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죄를 짓지 않고자 하는 소극적인 방법으로 죄를 물리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해야 합니다. 정신병원에는 남자보다 여자환자가 더 많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자녀를 여러 명 키우는 여인은, 5명 이상 키우는 엄마 중에는 정신병 환자가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가운데 헛생각 하다가 죄에 빠지기도 하고 정신이 도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정신이 건강하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죄 지을 틈 없이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양들을 열심히 먹이고 기도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 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뛰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새 죄의 소욕이 물러가고 우리의 심령은 성령으로 충만케 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그렇게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명을 열심히 감당할 때 건강하고 행복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니까 뭔가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뭘 자꾸 하라고만 하나? 신앙생활이 극기 훈련인가?’ 하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신앙생활은 극기 훈련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에 있음이라.’ 율법 아래에 있으면 정죄감에 시달립니다.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하긴 하는데 억지로 합니다. 안 하는 것보다 나으니까 합니다. 은혜 아래에 있는 자는 이미 용서 받았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죠. 확신을 갖고 드리는 삶을 삽니다. 인천대교 공사할 때 처음에는 안전망이 없이 공사를 했습니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많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전망을 설치한 후에는 거의 안 떨어 졌다고 합니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고 일하니까 공사에 능률이 오르고 안 떨어지더라는 겁니다. 신앙생활을 시켜서 억지로 하면 힘이 없습니다. 쉽게 지칩니다. 은혜로 해야 합니다. 요즘 평신도목자님들은 새벽기도와 일용할 양식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시켜서 억지로 한다면 힘들겠죠. 얼마나 가겠습니까? 그러나 새벽기도는 하나님과 만나는 귀한 시간입니다. 바울도 젊은 지도자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디모데 전서 2장 8절 ‘각 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평신도들이 거룩한 기도의 손을 들어 기도할 때 교회가 은혜 받을 것입니다. 가정이 축복 받을 것입니다. 말씀을 꾸준히 먹음으로 영적인 파워가 더해질 것입니다. 무엇보다 본인이 이 시대를 섬기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의의 무기가 될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무장한 신무기가 될 것입니다. 비범한 신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소원과 비전을 갖고 한번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의 의미를 알고 본인을 하나님께 쓰임 받는 기도의 종으로 여기고 자기 지체를 드려서 기도해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은혜로 하는 것이죠. 신앙생활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 아니죠.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구원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은혜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메시지 전하는 순서가 된 것 같은데 전하지 않게 되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몸이 편하거든요. 이는 얄팍한 즐거움이죠. 그러나 순서가 아직 아닌 것 같은데 말씀을 전하게 되면 조금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만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하여 동역자님들이 은혜 받고 하나님이 기뻐하심을 알고 나를 사단 마귀를 대적하는 의의 무기로 여기고 은혜로 알고 감당합니다. 감당하다보면 위로부터 부어지는 더 크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임합니다. 양들을 섬기는 것이 부담입니까? 은혜입니까? 은혜죠.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최고로 값진 일이죠. 한 영혼이 죄에서 돌이키면 천국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했습니다. 찬양으로 기도로 섬김으로 쓰임 받는 것 다 큰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 억지로 신앙생활 하지 말고 오직 은혜로 신앙생활 합시다. 불의의 무기들이 되지 말고 의의 무기들이 됩시다.
  사실 내용상으로 여기서 끝내도 좋은데 워낙 중요하니까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은혜아래 있으니까 죄를 쉽게 지어도 될까요? 죄 짓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도 좋을까요? 은혜 아래 있다고 죄를 지을 수 없다고 합니다. 16절을 보십시오. ‘누구에게 순종 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누구에게 순종하는가에 따라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됩니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죄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즘 소위 우유주사라고 불리는 프로포폴에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는 예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약물이 투여되면 피로가 풀리고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이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계속 찾게 되면 중독이 됩니다. 중독이 되면 끊기 어렵습니다. 같은 느낌을 얻기 위해서 용량을 늘리게 됩니다. 결국 저산소증으로 죽게 됩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대수롭지 않게 죄를 짓지만 후에는 죄가 나를 사로잡아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더 큰 죄를 범하게 됩니다. 어느덧 나의 뜻과 의지와는 상관없이 죄가 이끄는 대로 끌려갑니다. 갈 데 까지 갑니다. 그리고 결국은 사망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게 됩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바울이 감사함으로 감격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바울이 전한 주님의 가르침 즉 말씀에 순종함으로 죄에서 해방 되었습니다.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 자신도 죄의 종이 되어 예수 믿는 자들을 핍박 하던 자였습니다. 이제는 의의 종이 되어 핍박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과거 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웃에게 부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의의 종이 되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입술이 이제는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로, 정욕을 채우기 위해 뛰어다니던 더러운 발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아름다운 발로, 욕심을 채우기 위해 움직이던 이기적인 손이 기도하는 거룩한 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어찌 감사치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감사 하리로다’
  19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의의 종이 되어 하나님께 헌신 하면 어떤 존재가 되는 것입니까? 거룩함에 이르게 됩니다.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도들이 하늘나라 가기 전까지 이 땅에서 추구해야 할 제 일의 가치는 거룩한 성품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함에 이른다면 가장 값진 인생을 산 것이겠죠. 지금은 부족하지만 하나님께 헌신하고 의의 무기로 자신을 드리면 언젠가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22절을 보십시오.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23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 앞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죄의 길과 의의 길이 있습니다. 죄의 길은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입니다. 의의 길은 예수의 참 제자들이 가는 좁은 길입니다. 죄의 길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사망입니다. 의의 길의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하겠습니까? 네 의의 길을 가야죠.

결론적으로,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나의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헌신하는 종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함의 열매를 맺고 영생을 얻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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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요한계시록 [2010 요한계시록18강]진실로 속히 오리라 리스닝 2010-02-21 3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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