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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1-26 (월) 15:04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8Matthew36_1.hwp (17KB) (Down: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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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마태복음 제36강]인자가 온 것은
2009년 마태복음 제 36강

인자가 온 것은

말씀: 마태복음 20:17-34
요절: 마태복음 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어떤 자가 위대한 자인가를 가르쳐주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았지만 여전히 위대한 자로 인정받고 싶은 욕심 때문에 복음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류구속역사 완성을 눈앞에 둔 중요한 시점에 서로 무모한 경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어떤 자가 진정으로 위대한 자이며 위대한 자가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본진리부터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섬기는 종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으로 성장하여 주 안에서 위대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Ⅰ. 도리어 섬기려하고(17-28)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려 할 때 따로 열두 제자들을 불러 또 다시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가르쳐주셨습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에 관해 교육하신 것은 이번이 벌써 세 번째입니다.(16:21, 17:9)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고난 받고 조롱받고 채찍질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을 상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부담스러워하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반복해서 가르치시는 것입니까?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부활의 영광은 만고불변의 진리로서 구원역사를 위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반드시 가야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고 타협하거나 없던 일로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반복 교육을 통하여 제자들의 마음에 이 진리를 절대적으로 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일상생활 가운데서 생기는 사건들을 통하여, 때로는 만나는 고난을 통하여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반복해서 교육하십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적극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가운데 부활의 영광에 이르는 승리의 인생을 살도록 도우십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가 반드시 믿고 순종해야 할 기독교 핵심교리입니다.
  그러나 정작 제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20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와서 무엇인가 간절히 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구하느냐 물으시자 그는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높은 자리를 청탁하였습니다. 그들은 얼마 전 예수님이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19:28) 선포하신 말씀을 듣고는 예루살렘이 가까워질수록 누가 예수님의 좌우편 최측근의 자리에 앉을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아무리 계산을 해보아도 그 자리에 앉기에는 항상 한발 앞서 가는 베드로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들은 형제끼리 힘을 합쳐 베드로를 따라잡고자 하였으나 여전히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막판 뒤집기작전으로 어머니 치맛바람까지 동원하여 예수님의 마음을 얻고자 도전한 것입니다. 그들은 3년씩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배우고 훈련 받았지만 세상 영광을 구하는 가치관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십자가와 부활의 진리를 건성으로 듣고 대신에 어떻게 하면 ‘다른 제자들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에만 관심을 쏟으며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이루는데 온통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먼저 그들에게 자기들이 무엇을 구하는지 조차 모른다고 책망하셨습니다.(22) 그들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을 영광의 자리로 생각하고 간절히 구하였지만 실은 그 자리는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할 섬기는 종의 자리였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영광을 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마시려는 고난의 잔을 마실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물어보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할 수 있나이다!” 자신 있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좌우편 자리만 보장해주신다면 어떤 고난도 감당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고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배와 부친도 버리고 지금까지 훈련 받느라 온갖 고난도 다 감당하였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못 마실 잔이 어디 있겠느냐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3)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역사에서 누가 어떤 자리에 앉는가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문제이니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에 그들은 주와 복음역사를 위하여 고난의 잔을 마실 각오를 하도록 마음 준비를 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마실 잔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마시는 조롱과 멸시의 잔이요 수치와 고통의 잔입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을 살고자 한다면 세상 영광의 잔을 내려놓고 현재 맡겨주신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게만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도 무엇을 구하는지 알지 못하고 자기 소원을 붙들고 무조건 ‘이루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욕심에 이끌려 열심히 세상 영광의 잔을 마시는 것으로 주와 복음역사를 잘 섬기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은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마셔야 할 십자가의 고난의 잔입니다. 중보기도의 잔, 심방의 잔, 피싱의 잔, 일대일 말씀공부의 잔, 섬김의 잔을 마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지금까지 옆에서 듣고 있던 나머지 열 제자들이 먼저 선수 치는 야고보와 요한에 대해 일제히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이를 볼 때 모든 제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마음으로 은밀하게 서로 경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몸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있었지만 마음은 세상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영적으로 어린 제자들로 인해 얼마나 마음 아프셨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장차 온 인류를 섬길 위대한 종들로 성장할 것을 희망하시며 진정으로 위대한 자가 어떤 자인가 가르쳐주셨습니다. 25절에서 예수님은 먼저 이방인의 집권자들의 잘 못된 모습이 어떠한지 말씀해주셨습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높은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임의로 다스렸고 그 고관들도 권세를 남용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그들을 비판하고 미워하였지만 어느새 그들의 악영향을 받아 그들마저도 세속적인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왕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 받았다면 제자의 세계에서도 높은 자리에 앉아 자기 뜻을 펼치며 인정받고 섬김 받고 싶었습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금상첨화, 한꺼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성공한 제자요, 위대한 인생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높은 자리가 결코 사람을 위대하게 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26,27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이는 예수님의 제자는 크고자 하고(great) 으뜸(first)이 되고자 하는 목적이 세상 사람들과 근본적으로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목적이 다른 사람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리기 위함이지만 제자들은 섬기기 위함이요, 종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여 섬김 받고 권세를 부리는 자를 크고 으뜸 되는 위대한 사람으로 보지만 예수님은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적인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섬기는 자는 낮은 자요 뭔가 부족한 자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섬기는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구원역사를 이루어나가십니다.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섬기는 자는 어찌하든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고 필요를 채워주고자 합니다. 섬기는 자는 다른 사람의 냄새나는 고질병과 오래 묵은 죄문제를 인내하며 감당해줍니다.
  또 예수님은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종은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주인에게 충성합니다. 훌륭한 종일수록 주인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자발적으로 그 뜻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이런 종의 철학을 갖지 않은 사람은 종처럼 사는 것을 개성도 없고 자기 의사도 없는 무책임한 인생을 사는 자로 여깁니다. 죄로 인해 본성이 교만해진 인생들이 낮아져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감안할 때 자기를 비우고 낮추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사는 자는 진정으로 위대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자신을 종으로 낮추는 자는 상대방과 허물없이 교제하며, 또 섬김으로 힘과 위로와 격려를 줍니다. 종의 자세를 가진 자는 자기감정, 주장, 취향 등 자기중심적인 것을 부인하고 오로지 주인의 뜻과 방향에 절대복종합니다. 종의 자세를 가진 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우리가 낮아져 섬기기만 하면 누구든지 위대한 인생, 위대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must be your servant...”라 하심으로 크고 으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 내면이 섬기는 종의 인격으로 변화되어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목자로 부르시고 성경선생의 권세를 주시고 또 여러모로 훈련하시는 목적이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위대한 자가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청년 요셉은 지도자가 되는 큰 비전을 소유하였지만 아버지 집에서 인정받고 섬김 받는 자로 머물러 있을 때는 지도자로 쓰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아버지 집에서 이끌어내어 노예로 팔려가게 하시고 보디발의 집에서 주인을 섬기게 하셨고, 감옥에서 죄인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어떤 환경에서도 온전히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내면을 갖추었을 때 그를 높이사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어느 넉넉한 생활을 하던 기독청년이 빈민촌을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말로만 듣던 어려운 생활을 직접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청년은 이 비참한 광경을 보며 하나님께 따져 물었습니다. ‘하나님, 이들을 왜 이렇게 가난한 생활을 하게 내버려두십니까? 왜 이들을 돕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그들을 돕고 있단다. 그래서 너를 그들에게 보내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를 섬기는 종으로 쓰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현재 나를 목자로 부르시고 캠퍼스로 보내시는 것은 영적으로 가난하고 궁핍한 캠퍼스 양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섬겨 구원역사를 이루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서 특별한 신앙경력이나 기술이나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섬기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아닌 사람도 넉넉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풀 수 있고, 영리하지 않은 사람도 지혜로운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고, 리더십이 약한 사람도 선한 일로 본을 보일 수 있고, 설득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진실한 말로 믿음을 줄 수 있고, 외모가 외소한 사람도 아름다운 마음으로 감동을 줄 수 있고, 힘이 약할지라도 기도로 더 크게 봉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른 사람의 영혼을 섬길 수 있습니다. 섬기고자 하는 자세가 문제이지 인간조건이 문제되지 않습니다. 희생적으로 섬기는 곳에 생명이 살아나고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높은 자리는 제한되어 있지만 낮아져 섬기는 자리는 무한하기에 예수님 안에서 누구나 섬기는 종의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부르심 받은 자로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순종함으로써 구원역사를 이루어드리는 위대한 섬기는 종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삶이 어떤 것인지 예수님 자신의 생애를 예로 들어 가르쳐주셨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며, 그 목적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셨는가를 가르쳐주십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 섬기는 종이 되기 위해
  예수님은 본체가 하나님으로서 섬김 받고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지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자기부인 하셨습니다. 섬김 받고 싶은 본성을 부인하지 않으면 얼마 못가 섬기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섬김을 수단으로 삼아 섬김 받고자 하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을 순수하게 섬기셨습니다. 어떤 목자는 위대한 목자가 되고자 양을 힘써 섬겼는데 양이 힘든 소리를 하고 반발하자 “내가 왜 이렇게 힘들게 양들을 섬겨야 하는가” 슬픈 생각을 하며 더 이상 양을 섬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팔려는 가룟 유다까지도 끝까지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섬기러 오신 이 인생 목적을 끝까지 감당하심으로 섬김의 본이 되셨습니다. 우리의 본성으로는 다른 사람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본받고 배우고 따르므로 섬김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섬기는 인생을 살 때 행복하지만 섬김 받고자 하면 피곤해집니다. 예수님은 자기중심적인 제자들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도록 인내로 훈련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김 받고 인정받는데서 신앙생활의 의미와 보람을 찾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배우고 본받아 다른 사람을 섬기는데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하나님의 종들로 성장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무엇보다도 섬기는 종이야말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라는 분명한 철학과 가치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
  예수님의 섬김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자기를 희생하되 자기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섬기셨습니다. 자기목숨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뿐인 귀한 목숨을 우리 인생들을 섬기시는데 100% 완전히 다 바치셨습니다. 자기희생이 없는 섬김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속물이란 죄사함을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섬기시되 죄문제를 해결해주시고 구원에 이르도록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목숨을 대속물로 주는 희생적 섬김으로 우리 모두가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예수님을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셔서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심으로 예수님을 가장 높은 곳에 앉히셨습니다.(빌2:9-11) 우리는 섬긴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지만 정작 무엇을 어떻게 섬길 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의 죄와 고질병을 섬겨주심으로 구원받고 새 인생을 살도록 도우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정말 섬겨야 할 부분은 죄문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문제를 섬기고자 할 때 고통을 많이 겪게 되고 생명을 바쳐 섬겨야 하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운 것을 알게 되면 섬기는 종의 삶을 중간에서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예수님을 본받아 상대방의 죄문제와 고질병을 겸손히 섬깁니다. 신앙생활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생활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의 희생적인 섬김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섬기는 위대한 종들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Ⅱ.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29-34)
  29-34절에는 두 시각 장애자가 눈을 뜨게 되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일행이 여리고를 지나실 때 시각 장애자 둘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이들은 자기들이 볼 수 없기 때문에 불쌍한 자임을 알고 예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습니다. 무리들은 시끄럽게 하는 이들을 잠잠하라고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눈을 뜨고자 하는 일념으로 더욱 한 맺힌 절규를 하였습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물어보셨습니다.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그들은 “주여, 우리의 눈뜨기를 원하나이다” 분명하게 그들의 소원을 아뢰었습니다. 현재 예수님은 인류 구속역사를 완성하시고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중대한 길목에 있었습니다. 이런 중요한 때는 시각 장애자의 간구를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들의 소원과 믿음대로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실제 삶 속에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면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소경에게 동전 몇 푼 던져주는 것이 결코 잘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그들이 눈을 뜨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잘 섬기는 것입니다. 캠퍼스 지성인들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시각장애자와 같은 이들에게서 구원자를 찾는 내면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예수님께 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력들을 극복하도록 도와야 하고, 궁극적으로 말씀공부와 중보기도로 예수님을 만나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도록 돕는 것이 진정으로 잘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말씀공부로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영적 눈을 뜨고 만민 구원역사에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도록 끝까지 섬기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섬김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섬기되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시기까지 life giving spirit으로 죄인들을 섬기셨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구원받고 새 인생을 살게 되었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가장 위대한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님을 본받아 다른 사람을 낮아져 섬김으로 진정으로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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