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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9-03-23 (월) 10:52
홈페이지 http://ksubf.com
분 류 마태복음
첨부#1 2009년마태복음제44강-1.hwp (32KB) (Down: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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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마태복음제44강]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
2009년 마태복음 제 44강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

말씀: 마태복음 25:31-46
요절: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감람산 대 강연을 마치는 말씀으로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때 그 심판 기준과 결과가 어떠한가를 분명하게 가르쳐주십니다. 세상에 환란과 박해가 심해도 우리가 이 땅에서 믿음으로 진지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지극히 작은 자를 귀히 여기고 잘 섬겨서 주님이 오실 때 의인으로 인정받는 자들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Ⅰ. 복 받을 자들이여(31-40)
  31절을 보십시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하나님으로서의 본래 영광, 세상 만민의 존귀와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왕의 왕, 주의 주로서의 영광을 덧입으시고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 자리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와 영광과 통치권을 행사하실 심판주로서의 자리입니다.(단7:13,14) 이때 예수님은 모든 인생들을 모으시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 구분하실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낮 동안에는 함께 어울려 지내지만 밤에 우리에 들어갈 때는 추위에 약한 염소와 추위에 강한 양을 구분하여 들여보냅니다. 양과 염소는 외형은 비슷하여 구분이 잘 안되나 목자는 밤이 되면 이들을 구별하여 따로 보냅니다. 그 행위를 볼 때도 그 둘 사이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양은 목자를 알고 그 목소리를 알기 때문에 목자의 말을 듣고 따릅니다. 그러나 염소는 자기를 기르는 주인을 몰라보기에 기분이 나쁘면 서슴없이 주인도 뿔로 받아버립니다. 그래서 주인이라 할지라도 항상 몽둥이를 들고 다녀야 염소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목자는 양과 염소를 잘 알고 쉽게 구분합니다. 이처럼 거짓 신자도 똑같이 신자처럼 보이지만 주님은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불꽃같은 눈으로 감찰하셔서 의인과 악인으로, 영생과 영벌로 구분하십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고 선포합니다.(히9:27) 하나님은 각각 행한 대로 공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 사람의 인생목적에 따라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는 것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른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십니다.(롬2:7,8) 이런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을 믿을 때 우리가 어찌 한번밖에 없는 인생을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염소와 같이 난폭하고 감정대로 살 것이 아니라 양과 같이 선한 목자 예수님의 음성을 잘 듣고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4절을 보십시오. 그때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상을 내리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 받으라” 그들은 세상에서는 있는지 없는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았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렇게 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창세로부터 예비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사망이나 고통이나 눈물이나 불의가 없는 나라요, 속된 것,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영원히 거할 나라입니다.(계21:27) 이 나라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영원한 나라입니다.(벧전 1:4)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이 나라를 오른편에 구분된 의인들에게 상속하시고자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된 상급입니까? 우리가 이런 상급을 바라고 믿음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의인들의 삶은 어떤 삶입니까? 임금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 이를 볼 때 그들이 상을 받는 것은 엄청나게 큰일을 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웃의 고난에 참여하고 자비를 베푼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주린 자를 보면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나그네를 따뜻한 마음으로 영접해야합니다. 또 헐벗은 자에게 입을 옷을 주고, 병든 자를 심방하여 위로하고, 애매히 옥에 갇혔을 때 심방하여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끝까지 의를 행하도록 격려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이 가까우면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므로 마땅히 해야 할 의를 행치 않게 됩니다. 신자들도 이런 시대 악영향을 받아 마지못해 의를 행하거나 세상 흐름에 편승하여 적당히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머리로는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소시민적으로, 이기적으로 살며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시킬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의인들은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습니까? 37,38,39절을 보십시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린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그들은 주님께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이들의 평소 삶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그들의 일상생활이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한 이들에게 그들이 상을 받게 된 이유를 가르쳐주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40) 이들을 볼 때 우리는 주님의 상 받는 비결을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one of the least of these brothers)는 어떤 자입니까? 가난하여 주린 자, 목말라 마실 것이 필요한 자입니다. 인생의 참된 길을 모르고 방황하는 자, 헐벗어 춥고 배고픈 자 등 영육간에 실제적인 도움과 섬김이 필요하고 긍휼과 자비가 필요한 자를 가리킵니다. 또 예수님은 믿음이 약해서 실족하기 쉬운 제자들을 소자라 하셨습니다.(18:6) 예수님은 항상 이런 자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십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자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캠퍼스에도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죄로 병들어 도움이 필요한 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와 복음역사를 위해 오직 믿음으로 선교일선에 나갔지만 당장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길이 막연한 선교사님들도 우리에게는 지극히 작은 자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같은 수고라면 큰 자를 섬기고자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아 수고의 효과가 당장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지극히 작은 자는 도와주더라도 돌아오는 것이 없고 생색이 나지 않는다고, 또 끊임없이 도움이 필요하므로 내버려두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돌보는 것이 곧 자신에게 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와 복음역사를 잘 섬기는 것을 무슨 큰 업적을 남기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보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올수록, 말세가 될수록 주님은 제자들에게 지극히 작은 자들을 맡기시며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십니다.

둘째, 순수한 목적으로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주님이 주리실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아주었고 옥에 갇혔을 때에 심방 와서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이에 의인들은 “우리가 언제 그렇게 주님을 섬겼습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볼 때 이들이 얼마나 순수한 동기에서 작은 자들을 돌아보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소자를 섬기고 돌본 것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칭찬을 받기 위함이 아니요 그저 도움이 필요해서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들 자신도 나그네로 있을 때, 목말랐을 때, 헐벗었을 때, 배고플 때 받은 은혜와 구원받은 것을 기억하고 지극히 작은 자를 돌아보고 불쌍히 여겨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나그네들을 압제하지 말고 학대하지 말라 하시며 그들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로 있을 때 구원받은 것을 상기시키셨습니다.(출22:21)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내시며 병든 자, 문둥병자, 귀신들린 자를 고쳐주고, 죽은 자 살리는 일을 시키실 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명하셨습니다.(10:8) 우리가 주릴 때, 목마를 때, 나그네로 지낼 때 값없이 도움 받아 새 인생을 살게 되었듯이 도움이 필요한 소자를 순수하게 도와주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주님은 순수한 마음으로 소자 섬기는 것을 기뻐하시고 예비해 놓으신 하늘나라의 상급을 주십니다.
  신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합니까?  바로 소자 한 사람의 필요를 돕고 섬기는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사 심판하실 때 이런 자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내가 섬기고 돌봐줄 지극히 작은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이웃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를 어떻게 돌보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동일시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길 때 가져야 할 마음 자세는 그는 주님이 보내신 자요, 주님이 사랑하시는 자요, 주님을 영접하듯 영접하는 자세입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대한 우리의 작은 수고 하나하나를 일일이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마18:6)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를 무시하지 않고 예수님을 섬기듯이 겸손과 온유와 사랑으로 끝까지 섬기는 자들이 될 수 있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Ⅱ. 저주를 받은 자들아(41-46)
  41절을 보십시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심판이 있음을 말씀해주십니다. 왜 주님은 이렇게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무서운 저주의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까? 그들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마귀들이 받을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들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42,43절을 보십시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주님이 보실 때 그들은 주님이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이고 마시우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헐벗었을 때 옷 입히지 않았고 병들을 때, 옥에 갇혔을 때 돌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였습니다. 주님을 본적도 없는데 언제 섬기지 않았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돌아보지 않은 것은 주님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이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은 것이요 주님의 마음을 외면하고 주님의 은혜를 나누지 않은 큰 죄였습니다.
  그들은 임금이 그들의 죄를 지적할 때까지 심판 받을 심각한 죄인인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만일 주께서 주리고 병든 모습으로 보이셨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가서 섬겼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또 지금도 율법의 계명들을 다 지키며 선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름대로 상대적인 기준에서는 의롭게 살고 있다고 자족하였습니다. 그러나 심판 주 임금이 보실 때 그들은 해야 할 사랑의 계명, 이웃이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 돌아보지 않은 큰 죄인이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이었습니다. 자기만족과 자기유익을 위해, 자기 의를 위해 자신을 위한 삶을 살뿐이었습니다. 이들을 하나님이 보내신 양으로 보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접치 않았습니다. 이들에게 두신 하나님의 뜻을 찾고 하나님의 뜻을 섬기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전혀 별개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가까이 있는 형제 한 사람을 주님을 섬기듯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마음에도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지 않은 죄에 대해 변명이 많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너무 바쁘고, 피곤하고, 여유가 없고, 더 중요한 일이 있고, 나와는 관계성이 없고, 나 말고도 할 사람이 많다는 등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이들이 자립해야 한다며 이런 섬기는 일을 인간적인 것으로 보았는지 모릅니다. 이런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 하나는 무시되고 소외되기 쉽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런 자를 무시하고 돌보지 않은 사람은 영원히 주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그 누구보다도 귀하게 여기십니다. 과거 우리도 목자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목자들을 보내셔서 주리고 목마른 내면을 마시우고 배부르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섬기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보내시고 관심과 사랑으로 섬기길 원하십니다. 그리고 이를 주님을 섬긴 것으로 영접하시고 그렇게 하는 사람을 양으로 분류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상급으로 주고자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저는 구제부 역사를 섬기며 이 역사를 섬기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자주 생각했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요구르트를 넣어 드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하였습니다. 소회때 이 역사를 보고하는 것이 그래서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도 멋있지 않고 왠지 궁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자로서 이런 역사보다는 뭔가 남는 역사 열매가 확실히 보이는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 될성부른 한 사람을 낚아야 된다고 별렀습니다. 다음주 결혼하는 천수원 목자님 같은 자를 낚아서 키워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무리 도와줘도 표시도 나지 않고 계속해서 섬겨야 하는 지극히 작은 자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디 대어가 없나 주변을 두루 살피고 다녔지만 대어는 고사하고 피라미도 없고 항상 공을 들어야 하는 지극히 작은 자들만 보였습니다. 목자말도 잘 안 들을 뿐 아니라 목자도 알아보지 못하고 뿔로 들이받는 염소 같은 자들로 인해 내 인생이 피곤해 진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치여 사는 내 삶이 저주 받은 삶이 아닌가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보며 굶주린 자를 먹이고 목마른 자를 마시우게 하는 것이 작은 일이 아닌, 상 받을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육 간에 도움이 필요한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일이요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끝까지 섬기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죄인이 지극히 작은 자 섬기는 것을 가볍게 여기고 대어만 낚고자 했던 죄를 회개하고 주님 오실 날을 기대하며 삶 속에서 날마다 한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맡기신 구제부 역사를 통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영육간에 먹이고 섬겨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귀히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욕심과 교만 때문에 가장 작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외면하고 무시하고 이기적인 목자생활 하다 영벌 받는 자가 되지 않게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이 늘 힘들고 피곤하여 이해받고 사랑 받아야 한다는 오그라진 마음을 회개하고 이웃에 대한 관심과 이해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성숙한 의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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