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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8-01 (일) 12:59
분 류 요한복음
첨부#1 2010요한복음21-1.hwp (55KB) (Down: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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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요한복음제21강]사랑과 사명

 
  2010년 요한복음 제21강                                                                            김반석

사랑과 사명

말씀/요한복음 21:1-17
요절/요한복음 21: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우리는 지난 여름수양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배우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말로만 나를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희생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고난당하시고 다 이루었다 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과 영생을 주시고,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므로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시고, 그들에게 목양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시간 우리도 디베랴 호수로 나가 부활하신 예수님과 새로운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주님이 주신 사명을 새롭게 영접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Ⅰ. 와서 조반을 먹으라 (1-14)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요한복음 20장에서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세 번 나타나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다시 디베랴 호수(갈릴리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당시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7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마26:32,28:7)에 순종하여 갈릴리로 돌아와 함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차가운 현실에 부딪혔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버지와 배를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는다고 하더니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그들을 비웃고 외면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어디로 가셨는지 소식이 없자 제자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잃고, 인생의 목적과 방향도 잃어버린 채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물고기라도 잡아 생계를 유지하고자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겠네!”하며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제자들도 우리도 함께 가겠다고 나가서 그물을 챙겨 배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열심히 그물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물고기들도 그들을 비웃듯이 그물 사이로 잘도 빠져나갔습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결국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이때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3년 전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따를 때에는 그래도 큰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는 자신들에 대해 절망하고, 깊은 패배감과 좌절감으로 물에 뛰어 들고 싶은 비참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육신의 배고픔과 피곤함으로 노를 저을 힘도 없었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뼈저리게 체험했을 것입니다.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장래를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으로 제자들의 인생은 완전히 끝난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다 끝났다고 생각되는 이때 부활하신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님은 빈 그물만 걷어 올리고 있던 제자들, 낭패와 실의 가운데 괴로이 노를 젓고 있는 제자들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깊은 절망과 슬픔을 이해하셨습니다. 또 현재 그들에게 위로와 힘과 사랑이 필요함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도와주고자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인간적인 슬픔과 좌절에 빠져 눈이 가려 이 분이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없나이다”하며 실패를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들의 실패를 어떻게 만회시켜 주십니까? 6절을 보십시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자신의 경험을 의지할 때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내렸더니 153마리가 선착순으로 그물을 향해 헤엄쳐 들어왔습니다. 제자들은 놀라운 광경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고기를 잡도록 도와주신 두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나 제자로서 다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찾아오시고,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하심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실패와 절망 중에 예수님께 나아오기만 하면 우리 주님은 실패를 만회시켜 주시고 희망찬 새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평소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요한은 바닷가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베드로에게 소리쳤습니다. “이보게! 베드로! 예수님이셔!” 순간 베드로의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뭐라고! 예수님이라고!” 베드로는 반사적으로 겉옷을 두른 후에 “예수님!” 하면서 바다로 첨벙 뛰어 내렸습니다. 보통 물속에 들어갈 때는 입고 있던 옷을 벗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반대로 옷을 입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무의식 가운데서도 얼마나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고 존경하고 있었는가를 보여 줍니다. 베드로는 90m나 되는 거리를 헤엄쳐서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주님! 이 큰 죄인이 있는 모습 그대로 갑니다. 배반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하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해 팔을 저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보시고, “그래. 이제야 네가 나에게로 나오는구나! 나는 이미 너를 다 용서했다. 어서오너라! 어서와!” 하며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8~13절을 보십시오. 다른 제자들이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발갛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숯불은 사랑의 숯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숯불과 같이 발갛게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생선이 지글지글 타고 있었으며 떡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마치 하나님이 돌아온 탕자를 영접하시고 잔치를 베풀듯이 제자들을 위해 비취 파티를 열고 그들을 영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버린 죄의식과 불의한 마음 때문에 주님께 나가지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어정쩡한 상태로 서 있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심정을 아시고 “누가 지금 잡은 생선 좀 가져 오겠니?” 하시며 분위기를 바꾸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잽싸게 배에 올라가서 먹음직스런 생선 몇 마리를 가져 왔습니다. 예수님은 그 고기로 즉석 매운탕을 끓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와서 조반을 먹으라!” 이 얼마나 가슴 뭉클한 말씀입니까? “와서 조반을 먹으라!” 이 얼마나 은혜로운 초청의 말씀입니까? 배반자는 원수보다 더 밉다는 말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자기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면서도 사명을 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가는데 주동자가 되다니! 이는 제자의 도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예수님이 마시는 잔을 마시겠다고 큰 소리쳤지만 도망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을 벌해야 마땅합니다. 아니 최소한 그들이 두려워하도록 노려보기라도 하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위하여 조반을 준비하시고 아름다운 비취파티를 베푸셨습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이 한마디 말씀으로 베드로와 제자들의 심령에 예수님의 사랑의 불씨가 떨어졌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하기 시작하였고, 눈에는 눈물방울이 맺혔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제자들에게 떡을 가져다가 입에 넣어 주셨습니다. 생선도 가져다가 그와 같이 먹여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은혜를 배반한 죄인들을 책망치 않으시고, 도리어 극진히 섬겨주시는 예수님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음식이 제대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되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고,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제자들은 잠시라도 주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물고기 잡으러 갔던 죄악을 애통히 회개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숯불 사랑은 제자들의 모든 실수와 허물을 덮어버렸습니다(벧전4:8). 이 예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요 변함없는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은 돌아온 탕자를 뜨겁게 영접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 예수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예수님은 제자들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불의한 행동으로 주님의 사랑을 불신하고 스스로 주님과의 관계성을 끊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주님은 디베랴의 숯불 사랑으로 초청하십니다. “와서 조반을 먹으라!” 늘 주님을 배반하고 불신하는 우리를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 시간 새롭게 영접하고,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길 기도합니다. 실수와 허물 많은 인생들을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부활의 주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Ⅱ.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15-17)
조반을 먹은 후에 예수님은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그런데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시켜 주신 예수님이 왜 “수제자 베드로야! 또는 사도 베드로야!”라고 부르지 않고, “요한의 아들 시몬아!”라고 부르셨을까요? 베드로의 원래 이름은 시몬입니다. 시몬은 충동적이고 성격이 급하며 모래와 같이 불안정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몬이 위대한 영적 지도자가 될 가능성을 보시고, “장차 게바 즉 베드로(반석)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요1:42). 또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신앙고백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 ‘반석’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는 행동을 했습니다. 이런 베드로에게 “사도 베드로야!”라고 부르셨다면 베드로는 자책감으로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큰 부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고기 몇 마리에 울고 웃으며 허무한 인생을 살던 시몬을 찾아오시고 제자로 부르셨던 그 시절로 돌아가 그를 다시 만나주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시기 위해 시몬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나갈 때는 목자로서의 체면을 벗어버리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야 합니다. 주님 앞에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으로 나갈 때, 영적인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면 될 것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을까요? 이는 베드로와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위함입니다. 과거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겠나이다."(요13:37)하며 큰 소리쳤습니다. 이런 그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은 주님께 대한 사랑이 인간적인 충성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 성실로 예수님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보다 자기목숨을 더 사랑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를 잘 아시고, 주님의 사랑에 기초하여 새로운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는 제자들이나 배와 그물, 자녀, 재산 등 이 세상의 어떤 것도 개입돼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갖고 사랑해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다른 여러 개 중에서 하나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을 최우선적으로 절대성을 갖고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려면 예수님과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깊이 맺어야 합니다.
신앙생활 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과 개인적이고도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성을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견고한 사람은 어떤 시련과 역경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중심을 지키며 주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합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과 끈끈한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숱한 고난과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다. 반면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이 깊지 못한 사람은 작은 시련을 만나도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감사와 기쁨을 잃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감사하고 기쁨 가운데 제자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견고히 맺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은 죄악된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 어떠합니까? 과거 같았으면 “아니, 주님!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당근이지요?”하며 큰 소리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15b절을 보십시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하며 우회적으로 대답하였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내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철저한 실패를 통하여 자신의 연약함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자기 의지나 의리, 충성심만으로는 주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잘 아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질문을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근심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질문이 베드로의 심령에 와 닿았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죄악된 사건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베드로는 자격지심으로 괴로워하며 자기가 예수님을 사랑할 자격이라도 있을까? 불의에 빠지기 쉬웠습니다. 이는 베드로의 마음 깊이 남아있는 죄책감과 불의로 그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내면문제였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베드로를 수제자로서 다시 회복시켜 주고자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질문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며 사랑고백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반복하여 진실한 사랑고백을 하는 동안 죄책감과 불의의 뿌리가 뽑히고,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려면 먼저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심령 깊이 영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살아 있을 때 비로소 주님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방향과 힘과 용기를 얻게 됩니다. 주님은 이 시간 나와 인격적이고도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기 위해 질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또한 주님은 나의 진실된 사랑고백을 원하십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우리도 이 시간 주님의 질문에 사랑고백을 해보겠습니다. “○○○의 아들 ○○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사랑고백을 할 때마다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15절.16절.17절 후반 절을 보십시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내 양’이라고 하신 것을 볼 때, 모든 양들은 예수님의 양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로 사신 양들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사랑고백을 받으신 후 그에게 예수님의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양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과의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목자에게 양을 맡기십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예수님이 맡기신 양을 먹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예수님의 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양을 치는 목적은 목자체면을 유지하거나 자기영광을 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사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표현으로 양을 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는 어떤 양도 사랑하고 끝까지 품고 섬깁니다. 자기 말을 잘 들으면 양에게 잘해주고, 말을 안 듣거나 기분이 나쁘면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양을 사랑하고, 자립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감당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이라면 자신의 형편과는 상관없이 어떻게 해서든지 들어 주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은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온 정열을 쏟고 목숨까지 바치기도 합니다. 우리가 육신의 사랑을 위해서도 이렇게 하는데, 하물며 우리를 죄와 사단의 권세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늘 주님을 배반하는 우리를 지금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함께 하시는 예수님, 참 생명과 평강과 행복을 주시는 예수님을 진실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양들을 사랑하고, 먹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의 양을 먹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양들을 볼보며, 1:1 말씀으로 키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양을 돌보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활을 합니다. 양을 먹이는 삶은 희생과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나 이런 삶이야말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양을 먹이는 목자의 삶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요, 생명의 열매를 맺고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승리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사랑하므로 양을 먹이는 아름답고 위대한 목자의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올해 직장에서 가장 힘든 업무를 맡아 직장의 십자가를 감당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남들보다 한 시간 빨리 출근하고, 야근까지 하는 생활로 체중이 3킬로그램이나 빠져 사람들은 어디 아프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새벽기도로 시작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면 집에 가서 쉬고 싶었지만 사명을 감당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했습니다. 늘어만 가는 직장의 십자가, 사명의 십자가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습니다. 거기다가 수년간 섬겨왔던 가정이 일언반구도 없이 떠나가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힘이 빠졌습니다. 저는 십자가에 얽매여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목자로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은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목자의 체면과 의무감으로 할 때 생명력이 없고 내면에는 은혜와 기쁨이 없었습니다. 점차 사명의 십자가가 부담스러워지고, 남들이 하는 만큼만 적당히 하고자 했습니다. 반면 직장에서 인정받는 위치에 있게 되자 승진에 대한 욕심과 이제는 나를 위해서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이중마음을 품고 주님을 따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인을 아시고, 요한복음 21장 말씀을 섬기도록 방향을 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심히 부담스러웠지만 회개하는 심정으로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주님은 죄인에게 “와서 조반을 먹으라!”는 말씀으로 자기중심적인 인생을 살고자 하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시고, 새롭게 사랑의 관계성을 맺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김창선의 아들 상식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질문하셨습니다. 저는 몰상식한 삶을 살다가 멸망할 죄인을 구원하시고, 캠퍼스 목자의 삶을 살게 하신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가를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심령에 밀려오고, 베드로와 같이 주님께 대한 사랑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주님은 부족한 죄인에게 부탁하십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제가 이 말씀을 심령으로 영접합니다. 제가 주님보다 자기와 직장을 더 사랑했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이 맡겨주신 양을 책임감을 갖고 충성스럽게 먹이는 목자의 삶에 헌신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내가 잘 할 때는 칭찬해 주시고, 못할 때는 찾아오셔서 위로해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주님은 나의 형편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늘 동행하여 주십니다. 이 주님은 소망의 주님이십니다. 지금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든지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믿고,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면 주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하시는 주님의 질문에 진실된 사랑고백을 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내 양을 먹이라!”고 하시는 주님의 유언적인 명령에 순종하는 사명인의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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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7 누가복음 [2011년 누가복음 제 8강]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관리자 2011-05-08 3188
706 신명기 [2014년 신명기 제9강]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관리자 2014-11-30 3182
705 요한복음 2009 부활절수양회 2강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장원규 관리자 2009-04-12 3182
704 출애굽기 [2009년출애굽기제15강] 영화롭고 아름다운 제사장 관리자 2009-07-19 3176
703 요한계시록 [2009요한계시록제7강]셀 수 없는 큰 무리(쓰리랑카선교사-백바나.. 관리자 2009-10-18 3174
702 로마서 [2009신년말씀]이방인을 제물로-권영진 관리자 2009-01-04 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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