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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day Worship Message
주일예배메시지

작성자 리스닝
작성일 2010-09-19 (일) 12:50
분 류 이사야
첨부#1 2010년_이사야서_2-1.hwp (27KB) (Dow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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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이사야서 제2강]율법이 시온에서

2010년 이사야서 제 2강

율법이 시온에서

말씀: 이사야서 2:1-22
요절: 이사야서 2:3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이 시대를 가리켜 말세지 말이라고 합니다. 그 만큼 절망적인 시대임을 말해줍니다. 이런 시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절망적인 시대에 살던 이사야는 하나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는 절망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뜻을 섬기는 종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절망적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희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보여주셔서 하나님의 희망찬 구원역사를 섬기는 종들이 되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Ⅰ.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1-4)
첫째, 진정한 시온
  1절을 보십시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죄와 허물을 보았을 때 절망하여 탄식하다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말일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소망의 역사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2절을 보십시오.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여기서 말일은 ‘In the last days’로서 말세론적인 시제를 나타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부터 시작하여 재림의 때까지 모든 날들을 의미합니다. 이때에 이루어질 일에 대하여 선지자 이사야는 두 가지 이상을 보았습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만방이 다 그리로 모여드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은 구약적 배경으로는 성전이 세워진 시온산을 가리키고 신약시대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교회를 말합니다. 현재 시온산은 지극히 낮고 보잘 것 없는 산이라 아무도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그날에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세상의 어떤 산보다 높아질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의 성전이 회복되고 하나님의 율법이 흘러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만든 성전은 부패하여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새 성전은 모든 산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을 온 세상으로 흘러가게 합니다. 이 산은 로마를 정복하고 유럽과 미국을 거쳐 모든 세상 산들 위에 굳게 섰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산이 있습니다. 알프스 산과 같이 높은 산, 뒷동산 같이 낮은 산, 히말라야 산같이 높고도 험한 산, 금강산 같이 아름다운 산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산을 사랑하고 산에 올라가기를 좋아합니다. 전문적으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알피니스트(alpinist)라 하는데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을 정복하고자 오르고 또 오릅니다. 이들에게 왜 산에 오르느냐 물으면 그냥 산이 있으니 오르는 것이요 정상을 정복했을 때 오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격과 환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각종 철학과 이념의 산, 학문과 예술의 산이 있는가 하면, 물질의 산, 과학기술의 산도 있습니다. 오늘날은 경제의 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와 함께 정보산업의 산이 모든 작은 산 위에 높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산에서 정상을 정복하고자 애를 씁니다. 소프트 뱅크 사장 손정의씨가 정보산업의 정상에 우뚝 서자 정보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를 황제처럼 우러러봅니다. 학문의 산도 오를만한 매력 있는 산입니다. 이 산의 정상에 올라 노벨상이라도 타게 되면 그 이름이 전 세계에 알려져 많은 연구자들이 그 이름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산들은 정상에 오른 사람들에게 결코 참 만족과 구원과 생명을 주지 못합니다. 니고데모는 세상에서 오를 수 있는 산은 모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산도 그에게 생명과 만족과 참된 길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전의 산은 어떻습니까? 여호와의 전의 산은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산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산이기에 시작은 미미하지만 점점 자라나 결국은 모든 산 위에 우뚝 서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호와의 전의 산은 다른 산들에 비해 낮아 보이고 세상 권력에 의해 무시당하고 박해를 받아 왔습니다. 애굽, 앗수르, 바벨론, 헬라, 로마, 공산주의 등 세상 권세에 의해 지배당하여 무너질 것만 같았습니다. 오늘날은 높은 학문의 산이 여호와의 전의 산을 무시하며 인본주의의 산이 복음의 산을 핍박하며, 쾌락의 산이 십자가와 부활의 산을 멸시합니다. 그러나 이런 산들은 높아졌다가 다 무너졌고, 스스로의 모순으로 붕괴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만이 모든 산 위에 우뚝 서 세상 만방에 빛과 생명을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은 오르면 오를수록 성령의 열매와 생명력과 참된 보람을 줍니다.
  말일에는 왜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으로 오르고자 하는 것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 세계 곳곳에서 많은 경비와 시간을 희생하여 시온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 마음에 ‘그 길’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하나님께 이르는 진리의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을 가리킵니다. 여호와의 전의 산을 찾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이 산, 저 산을 헤매고 다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깨닫게 된 세상의 산들은 풀의 꽃과 같이 곧 사라질 안개 산이요, 죽음으로 끝나는 허무의 산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여호와의 산만이 구원과 생명과 진리가 있는 산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이 산을 찾아왔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 안에서 이런 분명한 이상을 보았기에 변천하는 시대 상황 가운데서도 방황하지 않고, 죄로 상할 대로 상한 백성들로 인해 절망하지 않고, 자신과 그 백성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함으로 살아 있는 시온이 되었을 뿐 아니라, 타락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비전을 심고 성경선생 양성에 일생을 바쳐 헌신 할 수 있었습니다.(8:16)
  시온산은 유능한 성경선생들이 있는 곳이요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곳입니다. 말일에 이루어질 시온의 비전은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성도들을 통해 실현됩니다. 어느 시대이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곳에 시온의 비전이 실현되었습니다. 말일에는 유능한 성경선생이 존경을 받고 세상에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성경선생을 찾아 몰려올 것입니다. 사도행전 시대에 안디옥 교회는 이방 세계에 작은 교회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곳에 사도 바울과 바나바 같은 빼어난 성경선생들이 있었을 때 보잘 것 없었던 안디옥 교회가 세계선교의 power station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사도 바울이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여 성경을 가르쳤을 때 우상숭배로 가득 하였던 에베소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여 우상숭배자들을 굴복시키고 복음의 절대성과 우월성을 우뚝 세웠습니다. 우리 모임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이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였을 때 18나라에 68명의 평신도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하는 시온의 비전을 실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원치 않게 현실문제로 고민하고 막연한 장래에 대해 염려하면서 영적으로 악하고 게으른 쓸모없는 모임으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가을학기가 시작된 지 벌써 3주가 지났습니다. 어떤 분은 열매 맺는 가을학기를 위해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는가 하면,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보느냐 보지 못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일에 하나님의 전의 산이 온 만방에 우뚝 서는 비전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이 빼어난 성경선생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다윗왕의 고백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주야로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함으로 유능한 말씀의 종이 되고자 하는 영적 소원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간직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를 통해 시온의 비전이 실현될 것을 믿습니다.
둘째, 참된 평화
  4절을 보십시오.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이 땅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함을 말해줍니다. 세상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할 만큼 이 땅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전쟁으로 많은 인명 피해와 경제적 손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왜 전쟁이 끊이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남에게 지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가장 높은 산이 되고자 하는 자만심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섬김으로 win-win의 삶을 살지 못하고 경쟁하고 싸우고 다투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가 간의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싸움과 전쟁은 교만과 탐심과 지배욕으로 인한 것입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1913년 7월에서 1918년 11월까지 약 4년에 걸쳐 있었습니다. 이 전쟁의 발발은 19세기 초, 독점 자본주의의 탄생과 함께 제국주의의 발달로 인하였는데 무수한 인명 피해와 경제적 타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전쟁이 있은 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때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의 원인은 세계 대 경제공황으로 경제 식민지를 만들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은 나라들이 전쟁의 참혹함을 뼈저리게 체험하고는 United Nations(UN)을 결성하여 세계 평화를 지키고자 애를 쓰지만 그 후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어떻게 참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실 때만이 진정한 평화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로 판단하시며 공의로 판결하십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 죄사함 주시고,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시는 희생적인 사랑으로 원수 같은 인생들을 섬겨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다스림 받을 때 죄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고 참된 평화가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맛본 자는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평화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은 칼을 쳐서 보습(농기구)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듭니다.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않을 것이며 전쟁이 없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됩니다. 평화는 십자가의 복음으로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자, 곧 영적 질서가 회복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는 모두 평화의 선물을 먼저 받은 자들로서 이 귀한 선물을 이웃과 나누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어떻게 평화의 선물을 서로 공유할 수 있습니까? 성경공부를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 받도록 돕는 것입니다. 진정한 시온은 받은 말씀을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전쟁의 역사로 얼룩진 이 땅에 십자가의 복음을 통하여 평화를 선포하는 진정한 시온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Ⅱ.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5-22)
  5절을 보십시오. 이제 선지자 이사야는 야곱 족속을 여호와의 빛의 세계로 초청합니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야곱 족속은 하나님의 전의 산에서 율법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 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자,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온갖 장애물을 뚫고 찾아오는데 이들은 이미 그 산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은혜와 특권을 누리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야곱 족속들에게 와서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를 볼 때 야곱 족속의 문제는 여호와의 빛을 받았지만 빛에 행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빛은 세상을 밝히는 진리의 빛, 생명의 빛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여호와 빛은 사람이 마땅히 구해야 할 것과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존재의미와 목적을 가르쳐줍니다. 여호와의 빛은 야곱족속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줍니다.(딤후3:17) 그러나 야곱 족속은 많은 성경 지식을 가졌지만 말씀대로 살기를 거부하였고, 빛 가운데 거하였지만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외모는 갖추었어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행하는 믿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시온성에 거하면서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며 성전의 마당만 밟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백성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6a)
  그들이 하나님의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로, 이방 나라의 우상숭배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동방 풍속은 몰록 신을 위해 자기 자식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등 여호와 하나님이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우상숭배의 죄를 가리킵니다.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쳤습니다. 또한 그들은 여호와와 맺은 거룩한 언약을 헌신짝 같이 버리고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고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들에게 이방인들과 언약을 맺지 말 것을 경고하셨습니다.(신31:16,17) 그러나 이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먼저 나타난 죄가 이방인과 언약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이방인들과 손을 잡는 것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였으며, 마필과 병거가 무수하였습니다.(7) 그들에게는 물질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우상숭배의 죄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손으로 만든 우상에게 절하며 경배하였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죄를 짓는 데는 천한 자나 귀한 자 구별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런 자들을 용서하지 마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이사야가 그럴진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분노는 얼마나 크겠습니까? 하나님은 동방 풍속이 가득한 이들을 버리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둘째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였습니다. 10-17절에는 이스라엘의 교만의 죄에 대해 책망하시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높은 척 할 만 한 아무런 근거가 없는 부족한 백성이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 앞에 피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는 죄로 가득 찬 백성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교만하여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고, 하나님께 돌릴 영광을 가로챘습니다. 반면에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1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하나님은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 할 절대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 거만한 자, 자고한 자들을 철저히 낮추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은택을 감사하는 대신 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상수리 나무 등 세상의 위엄과 영광을 자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버리고 높은 망대를 짓고, 모든 견고한 성벽을 쌓아놓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을 무너뜨리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도 임할 것입니다. 이는 물질적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그들의 불신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하나님은 홀로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는 교만한 자는 철저히 낮추실 것을 경고하십니다. 교만은 하나님보다 높아지고자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 자기 나름대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교만과 싸워야 합니다. 자기가 높아지는 것, 자기가 영광 받고자 하는 것,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교만한 생각을 손사래 치면서 거절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 높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며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할 것을 굳게 붙들어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그들은 호흡이 코에 붙은 인생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이 각종 우상을 의지해보았지만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들임을 깨닫게 되면서(18), 다음으로 인생을 의지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강대국을 의지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호흡이 코에 있는 사람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무서운 죄가 됨을 증거합니다. 사람을 의지할 때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난이나 장애물을 만날 때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그때 가서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교만과 불신의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배웠습니다. 이 시대가 아무리 힘든 시대라도 호흡이 코에 붙은 인생을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야곱 족속은 하나님 백성답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한분만 경배하며 그 말씀을 청종하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굳게 믿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맡기시고 율법이 온 세상만방으로 흘러나게 하시는 참된 시온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사람들이 간절히 찾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육신의 쾌락을 다 맛보았지만 여기에 참된 만족이 없음을 깨닫고 영적으로 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여호와의 전의 산으로 향하여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 달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런 환상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자들에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는 진정한 시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자신이 율법을 간직한 진정한 시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의 빛을 사모하고 빛에 행하는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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